CIA 용병, 이라크를 뛴다
흑인운동가 암살하던 남아공 용병에서 인도·네팔·피지 출신까지 2만여명 추정…정치적 부담감 없어 미군당국이 선호…전투 수당은 미 정규군의 10배나
▣ 아테네=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teledomenet.gr
지난 9월, 미국 남부를 휩쓴 카트리나의 재앙은 미국 남부 일대를 도탄에 빠뜨렸고 특히 뉴올리언스를 완전히 휩쓸고 지나갔다. 당시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끈 것은 기관총을 메고 뉴올리언스 거리를 순찰하는 무장군인들과 경찰들이었다. 이들이 맡은 임무는 사회질서의 유지였는데 이들 중에는 사설 보안업체를 통해 이라크에서 전투를 수행하다 돌아온 용병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여느 경찰과 다름없이 가슴에 루이지애나주에서 발행한 황금색의 경찰 배지를 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들의 상의 팔 위에 ‘블랙워터’ 신분증이 붙어 있었다고 전한다.
팔루자에서 최후 맞은 ‘블랙워터’용병
블랙워터와 더불어 이라크에서 용병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지난해 4월이다. 2004년 3월 말, “팔루자에서 미국 민간인 4명이 살해됐다”는 미국 언론의 왜곡 보도는 미 국민의 피를 끓게 했고 무차별 학살의 길을 열어주었다. 미군의 대대적인 공세가 전개되면서 팔루자는 초토화됐고 최소한 600명의 이라크 민간인들이 학살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까지도 팔루자에서 벌어진 무차별 학살은 미군 최대의 오점으로 기록되고 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팔루자에서 이라크 저항세력에게 살해된 미국 민간인들은 모두 ‘블랙워터’에 소속된 용병들이었다. 블랙워터 쪽은 이들이 미군기지로 식량을 배달하는 도중 이라크 저항세력에 체포돼 처형당했다고 발표했다. 왜 이라크에서도 저항의 기운이 가장 심하다는 팔루자를 거쳐 식량을 배달했는지에 대한 의혹은 풀리지 않고 있다. 사실 블랙워터의 용병들은 특수부대 출신으로 위험한 특수임무를 주로 수행해왔다. 아랍 쪽에서는 당시 이들이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시로 팔루자에서 비밀활동을 하던 중 체포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민간인이라고 알려졌던 네 명의 블랙워터 소속 미국 출신 용병들의 사망으로 소문으로만 떠돌던 용병의 실체가 표면화됐다.
1년 전인 2004년 12월, 이라크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그레이 브란필드(55)가 바그다드에서 200km 떨어진 쿠트시에서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격을 받아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계약직 용병’으로 이라크까지 와서 전투에 참전했다. 그는 1980년대 남아공의 소수 백인정부에서 다수를 차지하던 흑인들을 탄압하는 인종차별 정책이 횡행하던 시절 암약하던 정치적 암살범이다. 남아공 국경 너머의 이웃국가에서 남아공의 흑인해방 운동을 지원하던 흑인 민권운동가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암살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유명한 남아공의 흑인운동가 카비도 그에게 암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한 그레이 브란필드처럼 용병들 대부분은 특수부대 출신이다. 수많은 전쟁터를 거치며 단련된 미군이나 영국군 특수부대 출신들은 용병의 비율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는데 값도 가장 비싸다. 이들과 함께 캐나다나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용병들도 이라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값싼 외국 출신의 퇴역군인들도 용병으로 모집하고 있다. 현재 이라크는 인종 전시장이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국적의 용병들이 전쟁특수를 노려 죽음의 위험도 무릅쓰고 모여들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용병집단은 남아공 출신의 용병들인데 그레이 브란필드와 같은 전력을 갖고 있다. 칠레 출신의 용병들도 있다. 이들 다수는 CIA가 지원하는 쿠데타로 집권한 피노체트 정권 아래에서 칠레 민중들을 납치하고 살인을 일삼던 특수부대 출신이다. 이외에 필리핀이나 인도, 네팔, 심지어 피지 출신의 용병들까지 30개 이상의 다양한 국적의 용병들이 활동하고 있다. 현재 이라크전에 참전한 용병들의 수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략 2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미군 다음으로 큰 규모다. 미국 정부의 이라크전 예산 20% 정도가 용병업체로 흘러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네바협약 47조에는 용병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1994년의 유엔총회에서도 용병의 활동을 금지하는 안건을 통과시킨 바 있다. 하지만 이런 규정들은 미국 정부 앞에서는 한낱 휴짓조각에 불과하다. 1994년 이래로 미 국방부는 12개 용병업체와 3천억달러의 계약을 체결했다. 공식적인 계약은 미 국방부를 통해서 진행되지만 구체적인 일은 CIA가 맡게 된다.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용병업체들은 모집에서 운용까지 CIA와 긴밀한 협력체계 속에서 움직이며 CIA의 지휘하에서 모든 비밀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이라크 침공 전 적발되어 처형되기도
CIA가 창설된 주목적은 정보 수집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비밀활동의 장점인 민첩성과 합법적인 절차를 뛰어넘는 편이성으로 인해 정권의 손발이 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보 수집과 전혀 관계없는 요인 암살, 정권 교체까지도 공공연하게 수행하면서 전세계에 악명을 떨쳐왔다. CIA는 자체적인 군사조직뿐만 아니라 전세계 어디에서나 즉각적으로 호출할 수 있는 용병들의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물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미국 정부의 천문학적인 예산 배정과 자체적인 자금확보 능력이다.
CIA가 수십 년 동안 정권교체 작업을 비밀스럽게 수행해온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CIA의 최종 목표는 친미 정권의 창출에 있다. 칠레, 니카라과, 유고슬라비아가 그 사례들이다. 1973년 칠레에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아옌데 정권이 CIA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 세력에 의해 붕괴되고 피노체트 군부독재 정권이 수립된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CIA는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수년간 천문학적인 달러를 쏟아부어 용병을 모집해 훈련시켜 쿠데타를 치밀하게 준비했다.
국제분쟁에서 CIA가 연관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 1999년 코소보가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코소보해방군(KLA)의 창설을 주도한 것은 CIA였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코소보를 분리시키기 위해 CIA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알바니아에 군사훈련 캠프를 설치하고 알바니아 출신의 용병들을 모집해 훈련시키는 일이었다. 용병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합법적인 경로로는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유럽과의 마약밀매를 통해 코소보해방군의 운영자금을 공급하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뒤 무자헤딘의 지원과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권에 대항한 콘트라 반군을 지원할 때도 마약밀매로 자금을 확보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기 오래전부터 CIA는 이라크에 침투해 비밀스럽게 전쟁을 준비했다. 이라크 북부로 침투해서는 쿠르드 민족을 중심으로 후세인 군대에 대항할 게릴라 부대를 조직하고 이라크 남쪽에서는 이라크 시아파를 중심으로 비밀스럽게 반군을 조직했다. 바그다드에서는 사담 후세인을 암살하기 위해 모집한 용병들로 비밀 군사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라크 침공이 있기 며칠 전, 이 암살단은 후세인의 보안대에 적발돼 처형됐다고 한다.
현재 이라크에서 CIA와 미군 당국은 용병들을 선호하고 있다. 새로 창설된 20만 이라크 보안대의 불복종과 배신이 가장 큰 원인이다. 2004년 4월에 벌어진 팔루자 전투에서 이라크 보안대원들은 참전을 거절했고 소수는 이라크 저항세력과 함께 미군에 대항해 싸우기도 했다.
“우리도 용병이 되고 싶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 내의 정치적인 상황과 맞물려 있다. 용병들은 전장에서 사망하더라도 공식적인 사망자 수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부담감이 없다. 지금까지 수백 명의 용병이 사망했다는 소문만 떠돌고 있을 뿐 공식적인 사망자 수는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2119명의 미군이 사망하고 수만 명이 부상당했다는 공식통계가 나와 있지만 이라크의 상황은 여전히 터널 속에 갇혀 있다. 지금 이라크에서는 위험한 작전수행은 용병업체가 맡고 정규군은 보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라크에서 전투 중인 상당수의 미군들은 하루빨리 정규군에서 제대해 보안업체의 용병으로 취직하기를 원하고 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무기를 들고 전투를 벌이지만 돌아오는 수당은 용병들이 받는 수당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데 대한 불만 때문이다. 미군들의 상대적 허탈감은 곧 용병들에 대한 적대 행위로 표출되고 있다. 최근 미군들과 용병들의 충돌이 잦아지면서 용병 문제는 이라크 전쟁의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지만 CIA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스파이에서 정권 전복까지
냉전 종식 후 암약하는 용병업체들… 소규모 국가의 군사력을 능가하기도
소비에트가 무너지고 냉전시대가 끝난 뒤 전세계에 흩어져 있던 직업적인 전투요원이나 비밀요원들은 대부분 전역하게 된다. 1987년부터 1994년 사이 전역한 사람은 대략 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사회에 적응한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다시 용병업체들로 흡수되어 전선으로 돌아갔다.
용병업체들은 수백~수천 명의 전투 경험이 있는 특수부대 출신 용병들을 상시 대기상태로 관리하다 일거리가 생기면 즉각 배치하는 기동성을 과시하고 있다. 미 국방부에서도 긴박한 일이 생겼을 경우 복잡한 명령체계를 따라야 하는 정규군을 호출하기보다는 용병업체에 의뢰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용병업체들이 맡는 일은 광범위하다. 경호 업무나 전쟁터에서의 전투, 스파이 활동까지 다양하다. 군사작전 수행이나 군대, 경찰조직의 창설 등의 활동도 이들의 몫이다. 현재 이라크에서 이라크군이나 경찰들에 대한 훈련은 용병업체에서 담당하고 있다. 용병업체 중에서도 대기업이라 할 수 있는 몇 개의 업체를 든다면 다음과 같다. ‘이그제큐티브 아웃컴스’는 시에라리온과 콩고, 앙골라 등에서 활동했고 ‘샌드라인’은 시에라리온과 파푸아뉴기니에서, ‘딘콥’은 콜롬비아와 아이티, 코소보와 보스니아에서 활동했다. ‘MPRI’는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코소보 그리고 이후에는 마케도니아에서 활동했다. 스파이를 주로 취급하는 용병업체도 있고 첩보활동만 하는 업체들도 있다. 위의 열거된 용병업체들은 소규모 국가의 군사력을 능가하기도 하여 정권 전복까지도 가능한 전투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업체가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 정부와 맺은 계약 액수는 수천만달러에서 수십억달러에 달한다. 업체에 소속된 용병들의 수입도 미군 병사가 벌어들이는 수입의 10배를 넘는 게 보통이다. 한 달에 2만~3만달러의 수입은 보통이고 맡은 임무에 따라 10만달러를 웃돌기도 한다. 하지만 제3세계 출신의 용병들에게는 2천~3천달러가 지급된다.
보안업체나 용병업체가 벌어들인 액수는 1990년에는 560억달러였으나 2010년경에는 2200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가 전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