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이후 미국의 패권주의와 중동-아시아의 창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급진주의
이희수,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이슬람권의 5%에도 미치지 못하는 과격단체는 서구의 끊임없는 경제적 착취와 이슬람 가치체계에 대한 흠집내기에 극단적으로 반응하면서 폭력에 호소했다. 그리고 소수의 폭력적인 성향의 배경에도 다른 저항의 수단을 앗아가 버린 서구자신의 책임이 엄연히 도사리고 있다. 빼앗긴 자들의 절규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서구의 독선과 오만이 바로 이슬람 급진주의의 최대 후원자인 셈이다. 걸프 해에서 철저한 미국의 경찰국가로 자처했던 팔레비 샤 정권이 이란에서 이슬람 정권의 태동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오랜 일당 군부독재와 프랑스의 지원이 알제리에서 FIS(국민구국당)의 집권가능성을 만들어 주었다.
따라서 이제는 서구가 저기 성찰을 통해 진정으로 빼앗긴 자들을 어루만져 주고, 착취한 최소한의 양식을 나누어 줄 차례이다. 무고한 미국 시민들이 희생당한 참혹한 테러현장에서 서방세계가 경악하고 분노와 슬픔을 보이고 있을 바로 그 시각, 아랍인들은 지난 50년간 이스라엘의 테러로 숨진 수만 명의 형제와 가족을 생각하며 눈물짓고 있었다. 그러면서 복수를 다짐하는 것이다. 아랍인들의 일반적인 성향이 반미를 깊이 깔고 있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과격 테러리스트 집단에 동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절대다수는 폭력보다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갈구하고 있다. 미국중심의 세계질서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편입되어 살아가고 있는 한, 대립보다는 화해를 원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국의 과도한 보복공격이나 엄청난 민간인의 희생이 따르는 폭격은 또 다른 테러를 양산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런 테러의 악순환의 고리는 가진 자가 먼저 푸는 것이 순리다. 미국이 세계의 최강자로서 빼앗긴 자의 아픔과 약자의 응어리에 귀 기울이면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하루 빨리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공습비용의 10%만이라도 경제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팔레스타인 아랍에게 지원한다면 테러 원인을 제거하는 가장 확실한 정책이 될 것이다.
나아가 고삐 풀린 미국의 전쟁광신주의와 일방주의에 브레이크를 걸 국가세력은 이미 사라졌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서 지구촌 전체가 반대하는 전쟁을 밀어붙이는 미국에 누구도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유일한 견제 세력은 세계 여론이다. 평화단체와 인권단체 등 NGO를 총망라한 지구촌 수퍼 파워가 그 대안인 셈이다.
9.11 테러 3년이 지났어도 이슬람인들의 서구에 대한 증오가 줄어들지 않았다. 그만큼 테러위협은 존재하고, 크고 작은 테러는 계속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증오를 극복하기 위해 1차적 책임은 이슬람 내부에 있다고 서구는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서구가 그 증오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면 그 증오의 뿌리를 제거하는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날 서구는 지배적인 강자의 입장에 서 있다. 그러한 변화를 유도하기 훨씬 유리한 상황에 있다. 서구자신의 보호와 번영을 위해서도 이슬람 세계를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마냥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인류는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9.11 테러는 분명 가진 자와 빼앗긴 자의 간격을 좁히라는 문명사적인 메시지였다.
♣ 이 글은 지난 11월 아시아의 창에서 발표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발표문의 전문은 홈페이지의 아시아의 창 강의안에 있습니다. 아울러 발표해주신 이희수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