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이후 미국의 패권주의와 중동-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급진주의

9.11 이후 미국의 패권주의와 중동-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급진주의

이 희 수(한양대 문화인류학과)

1. 9.11 사태의 문명사적 의미

9.11 미국테러사건이 일어난 지 3년이 지났다. 무고한 인명의 살상과 끔찍한 공포에서 벗어나서 세계는 저마다 테러의 의미를 진지하게 되새기고 있다. 테러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이라크에서 전쟁을 명분으로 참혹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 테러를 뿌리뽑기는 커녕 그 전선을 지구촌 전체로 확산시켜버렸다. 나라를 빼앗긴 민중이 침략자는 물러가라고 온 몸으로 저항하는 순수하고 숭고한 해방투쟁도 모두 테러의 범주 속에서 잔혹한 학살을 동반하는 어처구니 현실에도 거저 방관자일 수밖에 없다. 매일처럼 자살폭탄 테러는 계속되고, 빼앗긴 자의 피맺힌 절규는 원한이 되어 인류의 내일을 어둡고 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으로 테러의 무풍지대였던 이라크마저 테러의 새로운 거점으로 전락해 버렸다. 명분과 대중적 지지기반을 잃고 와해해 가던 테러조직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부활하여 미국과 관련시설에 대한 폭탄 테러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응징으로 또 미국 행정부는 테러원인 제거보다는 테러분자를 색출하고 그 배후까지 뿌리뽑겠다며 전쟁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그 결과 아프간 공습으로 20년간 내전으로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살아가는, 지구촌에서 가장 못사는 불쌍한 사람들의 재산을 파괴하고, 뉴욕 테러로 숨진 미국시민들보다 훨씬 많은 선량한 아프간 시민들이 희생당했다. 그리고는 9.11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진 이라크를 대량살상무기라는 거짓 죄과를 씌워 초토화시켰다. 국제법과 유엔의 틀, 문화유산 보호와 제네바 협약 같은 인류가 이것만은 지키자고 약속해 놓은 최소한의 가치규범마저 무참하고 유린당하는 절망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고집과 징고이즘(전쟁선동주의)은 도를 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인권단체들의 보고서에 의하면 이미 이라크에서만 20만 가까운 민간인이 희생되었고, 지금 팔루자 대공세를 시작하면서 한 도시가, 한 문명이 송두리째 말살당하는 현장을 그저 무덤덤하게 지켜보아야 하는 무력감과 생명포기의 광기에 공범자가 된다.

분명한 것은 9.11테러가 단지 1회성 테러의 의미를 넘어 새로운 세계질서와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다 주는 기폭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인류역사를 9.11 테러 이전과 이후로 다시 기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을 정도로 2001년 9월 11일이 문명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첫째, 인류가 복지와 평화를 위해 마련해 놓은 최고의 첨단기술과 문명의 이기가 적대적 응어리와 복수심을 만나 행동으로 분출될 때, 얼마나 가공할 위협과 폭력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 대단히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아무리 작고 힘없는 민족이나 그룹들도 가장 힘이 센 절대강자에게 치명적 피해와 위협을 줄 수 있다는 한 사례를 9.11 사태는 분명히 보여주었다. 복지와 안전, 인간의 자유가 보장되던 절대강자 미국이 세계에서 하루 아침에 위험하고 위협받는 국가로 전락한 것이다. 미국내의 불안함은 물론, 미국바깥을 여행할 때, 미국인들은 가장 위험한 상황을 감내해야 하는 국민이 되어버린 것이다.

둘째, 미국의 일방주의와 패권주의에 대한 인류사회의 경고라는 의미를 9.11 사태는 담고 있다고 보여진다. 함께 사는 공존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만이 제국으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계속할 수 있다는 인류역사의 교훈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1000년을 지속했던 로마제국과 600년간 세계 최고의 영역을 통치했던 오스만 제국 모두는 다른 문화, 이질적인 종교와 관습에 대해 포용성을 통치의 기본으로 삼았다. 누구든지 통치권을 인정하고 순응하기만 하면 고유한 관습과 종교적 의례는 물론, 기본적인 일상에서도 차별없이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 로마라는, 오스만이란 용광로 속에서 다양한 민족과 이데올르기는 갈등보다는 융합과 조화를 통해 공존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었다. 이것이 제국의 특성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미국은 그 권위와 힘의 시용에 있어서 분명 세계 최강의 제국의 위치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질서만을 강요하고, 이에 반하는 모든 가치를 반문명적, 악의 구조로 파악하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징고이즘(Jingoism)이 성행하면서 미국 내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과 박해가 어느 때보다도 강화되고 있다. 제국의 말기적 현상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9.11 사태는 미국이 안고 있는 세기말적 현상과 구조적 모순을 한꺼번에 드러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이 사태는 인류근대사에서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9.11 사태 순으로 역사를 기록해도 좋을 정도로 그 충격과 후유증에서 인류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근원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아마 인류역사에서 오사마 빈 라덴이란 한 개인을 상대로 지구촌의 강대국들이 총동원되어 어마어마한 군사비와 가공할 무력을 사용하고도 실패한 전쟁을 인류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다. 물론 테러와의 전쟁이란 거창한 구호를 내걸었지만, 이 전쟁은 결국 미국의 앙갚음 전쟁이었고, 테러의 직접당사자가 아닌 아프가니스탄을 목표로 삼은 저질 전쟁이었다. 오사마 빈 라덴은 후일 스탈린, 히틀러 등처럼 인류역사에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한 한 인물로 후일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넷째, 9.11 사태는 두 개의 인권과 두 개의 가치관이 상치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부각시켰으며, 명분 없는 비도덕적 전쟁을 몰고 왔다. 테러를 근절하고 테러리스트 조직을 와해한다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상대로 시작한 무차별 공격은 결국 그 테러와 아무 관련이 없는 무고한 시민들의 대량살상으로 나타났다. 테러로 숨진 2500여명의 뉴욕 시민의 두 배에 달하는 약 5000명의 민간인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희생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라크 전쟁에서 민간인 희생자 숫자는 20만명에 이른다는 보도다. 지난 12년에 걸친 미국주도의 경제제재로 죽은 100만명에 이어 이라크 사회는 거의 기본축이 흔들리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생명을 죽이는 어마어마한 비용의 10%만 생명을 살리는 일에 투자한다면, 지구촌은 기아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 훨씬 커질 것이다. 두 개의 인권과 두 개의 기준이 적용되는 불합리하고 일방적인 가진 자의 횡포를 9.11 사태는 현실로 보여주었다.

다섯째,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나 최근 이라크 전쟁 등으로 미루어 볼 때, 9.11 사태는 현실적인 위협이 아닌 테러의 잠재적인 위협에 대한 선제공격과 전쟁 가능성의 길을 열어 주었다. 종래처럼 국제사회의 협의와 유엔의 절차를 거치지 않는 미국만의 결정 방향이 강화될 조짐이다. 국가안보를 위해 신무기를 개발하고 소유하려는 근대국가의 기본속성을 근원적으로 부정하고, 무력사용에 대한 정의와 악의 기준을 미국의 자의적인 판단에 맡겨야 하는 엄청난 결과가 현실로 나타났다.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반미성향이 강한 어떤 아랍국가도 공격할 수 있는 선례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공격일변도 정책으로 국제적인 연계 조직을 활용한 이슬람 급진조직의 테러활동은 상당 부분 위축되겠지만, 이미 전세계에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퍼져있는 반미테러 온상을 제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거센 위협을 감수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여섯째, 9.11 사태는 서구사회의 충격뿐만 아니라, 아랍-이슬람권 내부의 대변혁과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심정적으로는 아랍권의 반미감정이 확산되기도 했지만, 이슬람세계 주류의 움직임은 이제 내부의 개혁과 변화를 통해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9.11 테러를 바라보는 아랍인들의 생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는 미국이 그동안 이슬람 세계에 가해왔던 오만불손한 독선과 이중잣대에 대한 통쾌한 보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특히 팔레스타인 분쟁에서 미국의 지나친 친이스라엘 정책과 민간인 학살을 부추키는 국가테러리즘을 정당화하는 문제를 가장 많이 지적했다. 물론 그들도 급진적 이슬람 원리주의나 무고한 인명을 앗아간 9.11 테러행위 자체를 두고 옹호하거나 환호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에 대한 응징이라는데는 모두가 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온건그룹이나 지성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9.11 사태는 이슬람 심장부를 겨냥한 지울 수 없는 테러였다는 것이다.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으로 각인된 이슬람의 호전성을 더욱 부각시켰을 뿐이라고 했다. 더욱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과 이라크 공격에 빌미를 제공해 주었다는 점에서 최대의 피해자는 바로 무고한 이슬람 시민이란 점을 강조했다.

나아가 아랍내부의 문제해결을 위한 목소리도 높아졌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버나드 루이스는 오늘날 이슬람 세계의 낙후성과 반서구적인 성향을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이슬람권 내부의 문제로 돌린다. 적절한 지적이다. 그렇다고 이슬람 세계가 온통 반미성향으로 테러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주류의 흐름은 이슬람 내부의 문제를 파헤쳐 진정한 민주주의의 길로 나서야 한다는 강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정권교체의 민주화, 자유언론과 다양한 견해의 표방, 이슬람에 대한 세속정부의 박해, 여권신장과 사회참여확대, 전통적 종교계율의 적절한 재해석 같은 내부 문제의 해결없이 감정적인 폭력의 대처가 결코 이슬람 세계의 복지와 자존심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인식하고 있다. 다만 지금 이슬람 세계를 휘몰아치는 글로벌 열풍이 상호이익의 방향이 아닌 강요된 ‘세계의 미국화’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9.11은 사태는 우리의 창으로 세계를 들여다 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지금까지 우리의 세계화, 즉 글로벌 스탠다드는 정확히 서구화, 나아가서는 미국적 기준과 거의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 사실이다. 지구촌 전체를 꿰뚫는 균형있는 시각과 정보는 거의 부재했던 것이다. 반 쪽 세계화였던 셈이다. 9.11 사태는 이런 반 쪽 세계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이슬람 세계를 중심으로 한 비서구사회를 서구의 오도된 정보나 자료가 아닌 우리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국민적 관심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9.11테러로 사실 우리사회에서는 ‘누가 테러를?’ 이라는 문제보다는 ‘왜, 이슬람은 반미를?’ 이라는 담론이 봇물처럼 터지면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열풍이라 할 정도로 고조되었다. 9.11 테러 1년 만에 80여종의 이슬람 관련서적이 출판되고, 대학에 이슬람관련 교과목이 개설되었다. 이슬람 관련 전공자들의 일자리도 늘었으며, 수십억의 기금이 이슬람연구에 지원되기도 했다. 물론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하는 제3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투자가 증대된 배경에 9.11테러는 가장 중요한 원인제공자였다. 14억 57국에 달하는 이슬람문화권에 관한 관심이 촉발되면서 무엇보다 9.11테러는 우리에게 ‘진정한 글로벌화’ ‘균형있는 세계화 인식’이라는 선물을 가져다 주었다. 해방 이후 지난 반세기동안 서구와 미국을 향한 극도의 지적편중에 대한 반성과 함께 지금까지 거의 무지상태로 방치해 왔던 다양한 여타 세계를 우리의 입장에서 재조명하자는 대중적 인식이 크게 확산되었다.

2. 이슬람 이해를 가로막았던 지적인 걸림돌

우리는 지난 50년간 무지 속에 방치해 왔다. 전근대적이고 후진이라는 낙인을 찍어, 물질가치의 오염에 젖은 사고방식과 인식체계의 1차적 희생물로 삼아 왔다. 왜 그런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나?

첫째, 건국 이후 오늘날까지 한번도 우리의 입장에서 제대로 이슬람과 이슬람사회를 들여다 볼 기회의 창을 가져보지 못했다. 중동에서 일어난 4차례의 전쟁, 최근에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거의 매일 반복되는 자살폭탄테러, 유혈충돌, 투쟁 등과 같은 사건을 통해 이슬람을 접할 수 밖에 없었다.

둘째, 어쨋거나 이슬람세계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적대적 이해당사자인 유대와 미국중심의 언론과 정보를 통해서만 아랍이나 이슬람의 문제를 인식하고 판단해 오는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양산된 오류와 편견의 구조적 양산이다. 이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OECD국들과 비교해서 아예 비교 데이터가 없을 정도로 열악한 이슬람 연구나 이슬람지역 투자 현황이 그것이고, 1인당 국민소득 3천불 수준의 저개발국에 비해서도 유독 이슬람에 관한 문제만은 우리가 뒤쳐져 있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셋째, 이번 미국테러사건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지만, 일부 급진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테러와 폭력행위를 전제 이슬람의 모습으로 이미지 메이킹해 가는 서구의 홍보전략을 거의 무분별하게 수용하고 있는 문제이다. 급진조직들은 이슬람권내에서 거의 대중적 지지기반을 상실하면서 집권가능성이 희박한 5% 미만의 극소수이다.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내에서도 그들은 배척과 타도대상이 되어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반인륜적 행위는 가장 반이슬람적인 행위로 이슬람권내에서도 비난을 받고 있다. 이미 서방세계와 협력하면서 실용노선을 걷고 있는 95%의 주류 이슬람사회의 참모습과 그들의 생각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넷째, 이슬람과 아랍을 동일시하는 초보적인 상식의 오류가 지적사회에 까지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슬람의 본질적인 가르침과 유목적인 환경에서 생겨난 아랍의 토착적인 관습과 전통문화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랍의 문화 유산인 일부다처, 여성할례, 차도르 강제를 통한 과도한 여성탄압, 근친결혼, 침략과 약탈 근성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아랍이 전체 이슬람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 미만이다. 나머지 70%의 이슬람은 우리의 이웃이고 1일 생활권에 있는 아시아에 분포해 있다. 인도네시아와 동남아시아, 인도, 파키스탄, 방골라데시 등의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전역, 중국에 이르는 아시아 최대의 종교이다.

다섯째, 이슬람은 서구가치체계와는 달릴 정교일치 사회구조를 갖고 있다. 종교가 삶에 완전히 녹아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정교분리의 서구적 시각으로 보면 답답하고,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하루 다섯 번의 예배만 해도, 그들에게는 하루 세끼 식사를 하는 것과 같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는 자연스런 삶의 한 부분이 되어 있는데, 시간을 쪼개는 첨단정보시대의 개념으로 보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답답한 중세의 악습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3. 이슬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위하여

이슬람교에서는 아담에서 아브라함, 모세, 예수로 이어지는 성경상의 많은 선지자들을 시대적 임무를 띤 훌륭한 인간 예언자로 인정하고 추앙한다. 무함마드는 예수 이후에 신에 의해 보내진 마지막 예언자로서 앞선 복음의 부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곡해되고 변질된 신의 진리의 말씀을 바로잡고 완성하는 사명을 가졌다고 본다. 따라서 꾸란은 모세오경, 시편, 복음서 등 앞선 경전들의 내용을 순화,보완해 주거나 확증해 주는 최후의 경전이 되기 때문에, 이 땅에서의 종교는 이슬람으로 완성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슬람은 지구상에서 기독교에 가장 가까운 철저한 일신교 가치체계이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신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최상의 인격체를 갖춘 인간 예언자로 존중하고 그의 가르침을 추종한다. 예수의 십자가 대속개념을 부정하기 때문에 중개자나 중재자 없이 신과 인간의 직접 교통과 대면을 강조한다. 하룰 다섯 번의 예배와 라마단 한 달간의 단식, 자기 순수입의 2.5%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자카트, 평생에 한 번 하느님의 집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순례하는 의무를 통해 끊임없이 하느님을 만나고 그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은 남에게 보여주는 종교행위는 없다. 순전히 자신의 문제이고, 하느님과의 관계가 구원의 본질이기 때문에 자기신앙에 철저하고, 계율에 엄격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현대사회에서 이슬람만큼 독특한 문화와 가치체계를 갖고 있는 종교도 흔치 않다. 끊임없이 정치와 종교의 일체화를 추구하면서, 종교를 일상적인 삶 속에 완전히 동화시켜 생활의 구체적인 지침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그래서 이슬람은 더 이상 종교적 체계라기보다는 인간의 삶 속에 완전히 녹아 일상을 지배하는 문화적 체계로 이해해야 한다. 이슬람은 앞선 일신교의 불합리성과 집권층의 지배 이데올르기로 변질된 기존 이념을 일소하고 창시됨으로써 선험적인 우월감을 신자들에게 심어 주었고, 현재도 가장 역동적인 모습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슬람 사회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서구 열강의 압제를 경험한 신생 아랍국가들이 독립 후에 채택한 사회주의 이념과 경제체계가 더 이상 국제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국민들의 복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자각이 일면서 서구와의 협력관계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친서방 성향의 온건 왕정국가들 조차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정치에서 서서히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에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더욱이 요르단과 모로코, 바레인에서 젊은 국왕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이슬람권 전역에서 세대교체의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의 망령

일찍이 서구인들이 이슬람인들에 의한 단시일의 정복사업을 소위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이슬람의 호전성과 강제전파를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이교도에 대한 적개심과 확산되는 이슬람 세력에 대한 위기감에서 만들어진 용어에 불과하다. 오히려 개종하게 되면 인두세나 토지세 등의 일부가 면제되었음으로 정부는 국가수입의 증대를 위해 피정복민의 개종보다는 공납을 요구하였다. 또한 공납의 액수도 비잔틴이나 페르시아의 수탈에 비하면 가벼운 것이었음으로 이슬람 제국하에서 크리스찬과 유대교도들은 상당한 종교의 자유와 경제적 기득권을 향유하고 있었다.

이슬람원리주의의 실상과 조작

이슬람원리주의는 어느새 폭력과 테러의 이념적 온상이 되어버렸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고한 인명을 담보로 하는 극단적 테러가 기승을 부리면서 이슬람원리주의에 대한 경계와 관심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이번 미국 테러사건의 배후에도 일제히 이슬람원리주의 집단이 거론되고 있다. 그들의 행태에 인류는 몸서리치는 전율과 공포를 느끼며 이를 뿌리뽑기 위한 거대한 국제적 응징연대가 어느 때보다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응징과 복수라는 비수에 꽂힐 대상은 다름 아닌 또 다른 무고한 민간인이고 보면 인류의 비극은 재생산과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이슬람원리주의는 실상인가 허상인가? 그 실체는 무엇이고, 배태된 역사적 배경은 무엇이며, 그들은 왜 그렇게 저항하는가?

일부다처제와 여성권리의 문제

이슬람의 기본원칙은 일부일처이다. 그러나 특수한 상황에서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꾸란은 일부다처의 문을 열어놓았다. 󰡒만일 너희가 고아들을 공평하게 대해 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면 결혼을 할 것이니 너희가 마음에 드는 여인으로 둘, 셋, 또는 넷을 취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을 공평하게 대해 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면 한 여인을 취할 것이다…. 그것이 너희가 부정을 범하지 아니할 최선의 길이다.󰡓(꾸란 4:3). 이슬람 초기 전투에서 많은 남성들이 사망하게 되자 과부들과 고아들이 대거 생겨났다. 여성들의 경제취득의 방편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유목 중심의 교역사회에서 여성들만의 생존은 불가능하다. 그들을 구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도는 한 남자가 여러 아내를 노예가 아닌 정식 가족구성원으로 맞아들이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초기 이슬람 사회에서 일부다처제를 받아들였던 직접적인 이유였다.

4.이라크 전쟁의 허구와 미국의 중동-중앙아시아 새판짜기

전쟁은 무릇 선과 악의 함수관계다. 자신은 선이고 상대는 악이다. 악을 다이나믹하게 극대화해서 전쟁을 정당화하는 것은 역사가 말해주는 강자의 특권이다.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도 그랬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사담 후세인 정권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9.11 테러로 미국을 공격한 알 카에다와 연계되어 있고 테러단체들을 지원해 왔으며, 수십만의 자국국민을 살해한 용서받지 못할 독재자를 제거함으로써 이라크 국민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키고 이라크의 민주화, 나아가 왕정과 독재정권에 신음하는 중동전체의 민주화 도미노를 꾀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실질적 침공 이유 중의 하나는 중장기적으로 이라크 석유를 확보함으로써 OPEC의 가격통제권을 약화시키고 명실공히 군사력과 경제를 동시에 장악한 초강대국으로 거듭나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벌써부터 미국의 장기군정과 석유판매 대금의 전비 충당이 부통령과 국방장관의 입에서 공공연히 흘러나오는 것만 보아도 그 내막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나아가 후세인 정권 제거로 인근 중동 왕정 독재국가들에게 미국의 힘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들을 민주화로 이끌어 줌으로써 명실공히 중동에서의 미국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장미빛 플랜도 내세운다.

그런데, 9.11 테러로 이미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뀐 미국 시민들은 이라크의 놀라운 죄목들에 경악했다. 심리적 공황상태에서 끊임없는 테러 공포에 시달리던 그들에게 아프가니스탄은 적절한 희생양으로 부족했다. 그래서 이라크가 선택되었다. 이미 이라크는 9.11 테러 직후부터 부시 행정부 매파 관료층인 소위 네오콘(신보수주의의 약칭)들로부터 공공연히 다음 공격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었다. 적절한 기회와 그에 걸맞는 명분 쌓기가 조직적으로 시작되었다. 대기업들이 소유하는 언론들은 앞장서 이라크 침공을 외쳤다. 전쟁을 시청자의 관심을 묶어두면서 평균 30% 이상의 고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전쟁 명분은 거의 완전한 허구였다.

이라크가 유엔이 정한 기준을 초과하여 국제사회를 위협할 생화학무기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여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이미 10여년에 걸친 유엔의 무기사찰로 충분히 입증되었다. 특히 걸프전쟁 직후부터 시작된 12년의 경제제재로 이라크는 그러한 여력이 없었고, 미국과 영국에 의해 자국 영공이 비행금지구역으로 일방적으로 지정되어 모든 군사시설과 이동이 감지되었고, 의심나는 시설은 시도 때도 없이 무수히 폭격을 당했다. 거의 모든 중동 전문가들이 사담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 보유에 회의적인 견해를 보였고, 무엇보다 미국의 정보기관이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유엔 무기사찰단의 보고서는 물론, 1999년까지 미국의 최고 이라크 전문가였던 안토니 지니 미 해병대 사령관도 “CIA나 다른 정보기관내에서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에 대한 현실적인 우려가 고려된 적은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DIE와 CIA를 비롯한 미 정보기관들의 보고서에도 한결같이 사담 후세인 정권이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는 물론 대량살상무기에 개발과 보유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1997년과 2000년 사이 의회보고서에도 이라크의 핵무기 위험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9.11 테러 이후 급변했다. 갑자기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이 불거져 나온 것이다. 이미 보고서에 언급된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아마…”, “최소한의 시도…” “잠재적 가능성…”의 표현이 어느새 미 행정부 고위관료들에 의해 “개발중..” “확실한 보유..” “수백만을 살상할 가공할 무기…”등으로 둔갑되어 갔다. 특히 2002년 8월 딕 체니 부통령은 “우리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으며, 수백만의 생명이 위협에 직명하게 되었다”고 단언함으로써 이라크 침공을 위한 명분쌓기에 결정적 힘을 보탰다. 이라크 침공 직전인 2003년 IAEA의 유엔 마지막 보고서에는 “이라크가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어떠한 징후도 없으며, 외국에서 농축 우라늄을 수입한 적도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이미 침공계획을 굳힌 부시 행정부에게 이러한 보고서는 아무런 제약이 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라크를 점령하여 9개월간 수천명의 최고 전문가를 동원해 전역을 샅샅이 뒤지고, 기술이전과 무기개발 재정지원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무기 개발에 참여한 핵심 과학자는 물론 사담 후세인과 관련 관료들을 거의 체포한 상태에서 조사를 벌였지만, 대량 살상무기 개발과 보유는 완벽한 허구로 드러났다. 결국 2004년 2월, 부시가 가장 신뢰하는 이라크 사찰무기 팀장인 데이비드 게이 박사의 의회 양심선언에 이르렀다. 자신의 과학자로서 양식에 비추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한다는 것은 허구라는 것이다. 거의 모든 중동 전문가들이 상식처럼 알고 있었던 사실을 확인하는데 전쟁이란 최후 수단이 이미 동원된 후 10개월만의 일이었다.

이제 이라크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고, 유엔 무기사찰단에 의해 현재 개발하고 있지 않음이 밝혀졌음에도, 미국은 세 가지의 가능성 삼단논법을 내세웠다. 즉, 이라크가 향후 핵무기나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한 가능성이 있고, 그 무기가 테러조직에 흘러 들어갈 가능성이 있으며, 테러 조직은 그 무기로 미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라크를 침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과연 지구촌의 어떤 나라가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이 억지논리가 미국사회에 먹혀들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 지구촌의 비극이다.

사담 후세인과 알 카에다와의 연계 주장은 한 편의 코미디 같은 억지였다.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사담의 이라크 바스당 사회주의 정권은 철저한 이슬람 박해로 악명을 날렸다. 세속주의와 사회주의의 길을 걸으면서 이슬람 종교지도자에 대한 암살과 투옥, 종교적 박해는 극에 달해 사담 후세인은 전세계 이슬람주의자들의 오랜 공적이었다. 나아가 남부 다수 시아파에 대한 차별과 종교적 탄압은 순니와 시아파를 망라한 총체적 적의감을 고조시켰다. 사담 후세인은 일찍부터 오사마 빈 라덴에 의해 ‘사악한 지도자’로 타도 대상에 올라있는 반이슬람적인 독재자였다. 적과 동지가 구분되지 못하는 정치의 속성 때문에 반미라는 커다란 연대 속에서 이라크 정권이 알 카에다에 대한 심정적 동조를 보내고 부분적인 협력이 물론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을 알 카에다와 직접 연결시키고, 9.11 테러의 비호 책임으로 몰고 간다면 거의 모든 이슬람 국가가 공격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테러범 19명 중 15명이 자국인이고 알 카에다의 온상으로 실질적인 자금줄이 된 사우디아라비아가 가장 먼저 공격을 받아야 하는 것이 순리다. 이라크 침공 1년이 지났지만, 지금은 알 카에다와 사담 후세인을 연계하는 발언을 하는 부시 행정부 관리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라크 침략 전쟁의 공식 명칭은 “이라크 해방 전쟁”이었다. 젊은 미군들은 잔혹한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고통받는 이라크 국민들을 구한다는 투철한 전쟁명분으로 참전했다. 이라크 진격 첫 날부터 그러한 명분은 철저한 기만이었다는 사실을 미군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성조기를 흔들며 거리를 뛰어 다니던 아이들과 만나면 손을 흔들던 일부 시민들의 행동은 침략자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적 보호의 제스처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도 미군을 진정으로 반기는 환영의 분위기는 없었다. 곧 바로 두렵고 끈질긴 저항의 자살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고, 독재자인 사담 후세인이 비굴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체포되는 장면을 보았으면서도 미군에 대한 저항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후세인을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침략자인 미국을 이 땅에 머물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이라크인들의 확고한 애국심 앞에 미국은 고전하고 있다. 이제는 누구도 이번 침략을 이라크 해방 전쟁이라고 목청을 높이지 않게 되었다.

이번 이라크 전쟁은 거짓 정보와 거짓 명분으로 미국시민은 물론 지구촌 전체를 우롱한 전형적인 침략전쟁이었다. 부시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악의 축을 응징하는 의미있는 전쟁일지 몰라도 지구촌 전체에게 이번 전쟁은 더럽고 추악한 전쟁일 뿐이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정부와 국민이 동시에 지지한 나라가 미국과 영국뿐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새겨야 한다.

이라크에 대한 침략으로 미국은 이란을 압박할 수 있는 절대적 입지를 확보하였다. 이란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어렵겠지만, 이란을 통제가능한 틀 속에 묶어둔다는 것은 중동에서 미국에 저항하고 이스라엘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는 마지막 걸림돌을 제거한다는 면에서 매우 의미있는 중동정책의 완성을 뜻한다. 석유의 생산뿐만 아니라 정제, 유통, 판매, AS 네트워크를 거의 독점하면서 1000% 가까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미국 석유 메이저들이 이익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물론이다.

동시에 이라크를 차지하고 이란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즈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확보한 미국 군사거점과의 연계를 통해 세계석유와 전략적 이익 극대화를 꾀할 수 있는 절대적 승리를 의미한다.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을 의식해서 또 다른 석유 및 천연가스의 산지이며 카스피해 유전 장악의 필수적인 거점인 체첸에 대한 러시아의 부당한 침략을 미국이 용인해주는 선물을 주었다. 1991년에 독립을 선포하고 자국정부를 구성한 체첸에 대한 무력침략을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 개념으로 호도하고 독립투쟁을 말살시키는 러시아의 전략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5. 반복되는 약자의 저항과 독재의 악순환

이라크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고통받는 이라크 민중을 위한 해방전쟁이라는 미국의 거창한 구호는 어느새 꼬리를 감췄다. 이라크 국민들은 혼신을 다해 미국에 저항하고 있다. 후세인이 좋아서도 그를 다시 권좌에 앉히기 위해서도 아니다. 신성한 조국을 침략한 미군을 몰아내기 위해 저항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테러도 아니고, 종교적 이데올르기에 팔려간 정치적 집단의 저항도 아니다. 외국인에게 점령당한 자신의 조국을 되찾아야 된다는 몸짓일 뿐이다. 나라를 뺏기고도 아무렇지 않게 점령군을 환영하는 민족은 이미 혼과 정신을 잃은 희망없는 족속일 것이다. 이러한 당연한 저항을 테러나 후세인 잔당들의 발악쯤으로 폄하할려는 미국의 심정은 측은하기만 하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 함께 춤추며 날뛰는 우리 언론이다. 물론 모든 악조건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갖춘 가공할 적들과 대적하기 위해서는 통상의 교전 방식으로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저 몸을 바쳐 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던져 침략자에 맞서는 것이다. 필요한 경우 자신들을 지원하는 누구의 도움도 아쉬울 것이다. 반미에 들끓고 있는 외부의 이슬람 무장조직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라크에 몰려든다. 이라크 민중들의 환영과 보호를 받으며 미군을 몰아내기 위한 조직적인 저항을 계속하는 것이다. 어떤 조직이 누구의 지원을 받으며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는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국이 이라크인들의 마음을 읽고 그에 걸맞는 대안을 찾지 않는 한 미국의 이라크 점령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사담 후세인의 체포로 이라크 사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듯했으나, 저항과 자살공격은 끝간데 없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을 더욱 초조하게 하는 것은 후세인의 제거로 이라크가 전쟁 이전 보다 더욱 혼미스럽고 자칫 내전상태로 치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을 반대하던 많은 중동전문가들이 우려하던 결과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정권의 핵심에 있었던 순니파와 인구의 다수를 점하는 시아파, 북부 유전지대를 장악하고 결코 만만치 않는 독자적인 세력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쿠르드 족과 투크르멘족 등을 하나의 깃발아래 묶을 수 있는 카리스마와 지도력이 현재로서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의 허수아비 전위대로 구성한 과도통치위원회는 이미 그 역할을 포기한지가 오래고, 2005년 1월 새로 구성될 정부마저도 친미적 성향에다 국민다수를 대변하는 정통성 문제로 내내 저항세력들의 목표가 될 전망이다.

중동에서의 테러는 주로 이스라엘을 겨냥한 것이었다. 미국이 그 배후에 있지만, 뚜렷한 직접대상이 없어 대미테러는 한계를 가졌었는데, 이제 그들은 물을 만난 것이다. 중동 한복판에 미군이 국제법을 어기고 이라크를 점령하고 있는 상황은 명분과 여론 지지에서 테러집단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호기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후세인 시대를 그리워한다든지, 그의 잔존세력이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복구하리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거짓 시나리오다. 그들은 결코 후세인 지지하지 않는다.“후세인이 싫지만, 미국이 더 싫기 때문에 저항하는 것이다.” 후세인 제거에 대한 환호가 미국의 점령을 수월하게 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을 미국은 처음부터 간과해 왔던 것이다.

6. 이라크의 미래

이라크는 수렁에 빠졌다. 미국이 쉽게 이라크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자명한 일이고 보면, 이라크의 장래는 지금보다 더욱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지 않을까 많은 전문가들이 걱정하고 있다. 이라크는 기본적으로 복합사회다. 1932년 이라크를 독립시키면서 영국이 만들어 놓은 통치전략의 불행한 결과다. 유전지대를 장악하고 있는 쿠르드 공동체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고, 이라크 북부 유전지대를 통치하고 있던 터키에게 석유 이권을 박탈했다. 1979년 이란에서의 이슬람 혁명 성공이후에는 반미노선이 뚜렷한 이라크 다수 시아파들이 정권을 잡지 못하게 순니 소수정권인 사담 후세인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왔다. 이라크 북쪽에는 또 터키계인 투르크멘 집단이 자신들도 자치와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그나마 지금까지 다양한 이질적인 집단을 조정하면서 이라크 국가통합을 유지할 수 있었던 요인은 첫째는 이슬람의 공통적 가치, 반미라는 강력한 연대의식, 후세인 정권의 카리스마와 강력한 독재였다. 그러한 후세인의 독재를 지지해주고 심지어 강화시켜준 배후에는 항상 미국이 빠지지 않고 등장해 왔다. 조만간 이라크는 미국의 식민통치에서 미국의 조정을 받는 과도정부로 다시 서서히 민주국가로 거듭나리라는 희망섞인 전망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민주주의가 달성되는 과정에서 겪어야 될 돌발변수가 너무나 많다. 우선 다양한 집단들의 상충하는 이해를 조정하고 이끌어 갈 카리스마를 갖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쿠르드의 자치와 독립에 대한 것도 터키와 이란, 시리아 등 주변국가들의 강력한 반발 때문에 쉽지 않은 문제다. 시아파 중심의 정권도 민주적인 절차에는 부합하지만, 미국으로서는 밤잠을 설치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언제 바로 이웃의 이란과 연계하여 미국의 이익에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올 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상태에서 민주적인 절차와 방식의 고집은 자칫 이라크 국가 통합을 해치고 혼란 상태를 초래하여 레바논에 버금가는 내전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현재 제시할 수 있는 방안은 미국식 민주주의의 강요도, 이란식의 신정체제의 고집도 아닌 정교가 어느 정도 분리된 세속적인 시아정권을 들어서게 하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 중동 전문 컬러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만이 지적한대로 “이란보다는 더 민주적이고, 터키보다는 더 종교적인” 국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강력한 이슬람의 가치를 내세울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이러한 체제를 받아들일지가 관건이다. 세계 여론을 거스르며 힘든 전쟁을 치르고 난 미국은 어떤 상태에서도 친미적인 정권을 세우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친미를 고집하다 보면 또 다른 독재정권의 탄생이외에 대안이 없다는 엄연한 현실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덜 반미적인 정권으로 미국과 기꺼이 협력할 수 잇는 수준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한다. 따라서 하루 빨리 미군 위주에서 유엔주도의 국제평화군으로 대체하고, 국제법과 규범을 존중하면서 국가 테러의 주범인 이스라엘 정권을 강력하게 압박하여 팔레스타인 문제를 하루 빨리 해결하는 것이 또 다른 사담 후세인을 막는 첩경일 것이다.

7. 이라크 전쟁이 가져다 줄 변화

미국의 부당한 이라크 침공으로 중동전체 민중들의 반미정서는 어느 때보다 강하게 각인되었다. 침공 명분뿐만 아니라, 침공 과정에서의 민간인 살상, 점령 후의 오만한 강공책과 이슬람 정신유산에 대한 경시, 전직 지도자들에 대한 공개적인 모욕 등으로 막연하고 관념적인 반미정서가 보다 구체적이고 목표가 뚜렷한 반미 운동으로 옮겨 붓을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이는 이슬람 강경세력을 자극하여 테러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일반적인 분석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동시에 인근 아랍국가 지도자들에는 심각한 교훈이 되었다. 미국에 저항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며 비민주적인 독재자의 과오와 몰락에 대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면전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아랍국가의 민주화에 촉매제가 될 것이다. 특히 석유로 부를 축적한 산유국 왕정국가들의 고민은 더욱 커졌다. 미국에 의존해 왔던 이들 정권에 대한 반미적인 민중들의 저항과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의회제도가 활성화되고, 사법 제도의 개혁, 여성의 사회진출 등이 단계적으로 허용될 전망이다. 여성의 운전조차 허용하지 않는 사우디의 변화는 곧 아랍전체의 혁명적인 변화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8.테러에서 평화로

중동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오리엔트 등 인류 고대 문명의 발상지이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라는 일신교를 잉태한 토양이다. 문화적 다양성과 이질적인 상대에 대한 관용과 포용의 정신이 험난한 생태공간에서 함께 사는 삶의 지혜였다. 그런 정신적 바탕에서 이슬람도 생겨났다. 그리고 7세기부터 20세기초까지 서구를 비롯한 세계문명의 발전과 성숙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이슬람세계는 20세기를 맞으면서, 서구의 가혹한 식민지 통치를 경험하고, 빼앗긴 자로서 응어리와 저항전신이 자라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급진적 이슬람 과격분자는 이슬람 주류에서도 배척되고 있다.

이슬람권의 5%에도 미치지 못하는 과격단체는 서구의 끊임없는 경제적 착취와 이슬람 가치체계에 대한 흠집내기에 극단적으로 반응하면서 폭력에 호소했다. 그리고 소수의 폭력적인 성향의 배경에도 다른 저항의 수단을 앗아가 버린 서구자신의 책임이 엄연히 도사리고 있다. 빼앗긴 자들의 절규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서구의 독선과 오만이 바로 이슬람 급진주의의 최대 후원자인 셈이다. 걸프 해에서 철저한 미국의 경찰국가로 자처했던 팔레비 샤 정권이 이란에서 이슬람 정권의 태동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오랜 일당 군부독재와 프랑스의 지원이 알제리에서 FIS(국민구국당)의 집권가능성을 만들어 주었다.

따라서 이제는 서구가 저기 성찰을 통해 진정으로 빼앗긴 자들을 어루만져 주고, 착취한 최소한의 양식을 나누어 줄 차례이다. 무고한 미국 시민들이 희생당한 참혹한 테러현장에서 서방세계가 경악하고 분노와 슬픔을 보이고 있을 바로 그 시각, 아랍인들은 지난 50년간 이스라엘의 테러로 숨진 수만명의 형제와 가족을 생각하며 눈물짓고 있었다. 그러면서 복수를 다짐하는 것이다. 아랍인들의 일반적인 성향이 반미를 깊이 깔고 있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과격 테러리스트 집단에 동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절대다수는 폭력보다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갈구하고 있다. 미국중심의 세계질서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편입되어 살아가고 있는 한, 대립보다는 화해를 원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국의 과도한 보복공격이나 엄청난 민간인의 희생이 따르는 폭격은 또 다른 테러를 양산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런 테러의 악순환의 고리는 가진 자가 먼저 푸는 것이 순리다. 미국이 세계의 최강자로서 빼앗긴 자의 아픔과 약자의 응어리에 귀 기울이면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하루 빨리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공습비용의 10%만이라도 경제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팔레스타인 아랍에게 지원한다면 테러 원인을 제거하는 가장 확실한 정책이 될 것이다.

나아가 고삐풀린 미국의 전쟁광신주의와 일방주의에 브레이크를 걸 국가세력은 이미 사라졌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서 지구cjs 전체가 반대하는 전쟁을 밀어붙이는 미국에 누구도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유일한 견제 세력은 세계 여론이다. 평화단체와 인권단체 등 NGO를 총망라한 지구촌 수퍼 파워가 그 대안인 셈이다.

9.11 테러 3년이 지났어도 이슬람인들의 서구에 대한 증오가 줄어들지 않았다. 그만큼 테러위협은 존재하고, 크고 작은 테러는 계속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증오를 극복하기 위해 1차적 책임은 이슬람 내부에 있다고 서구는 생각할 지 모른다. 그렇지만 서구가 그 증오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면 그 증오의 뿌리를 제거하는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날 서구는 지배적인 강자의 입장에 서 있다. 그러한 변화를 유도하기 훨씬 유리한 상황에 있다. 서구자신의 보호와 번영을 위해서도 이슬람 세계를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마냥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인류는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9.11 테러는 분명 가진 자와 빼앗긴 자의 간격을 좁히라는 문명사적인 메시지였다.

이희수 lee200@dreamwiz.com

참고할 책들

이희수 외, 2001, <<이슬람:9.11 테러와 이슬람문명 올바로 이해하기>> 청아
로레타 나폴레오니, 2003, 모던 지하드, 테러 경제, 시대의 창
이슬람학회, 2003, 끝나지 않은 전쟁, 청아
당대비평, 전쟁과 평화, 2001,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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