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시간 속에서
― 2011년 9월 캄보디아 방문보고서
정귀순, (사)이주민과 함께 상임이사
< 캄보디아의 노을, 반티쁘리옙 >
1. 방문 일정 : 2011년 9월 3~11일
2. 방문지
– 뽀이뻿 Scholarship Project Partner Group 방문 및 사업협의(2011.9~2012.8 예산협의),
마을방문 및 자매결연 아이들 가정방문(6명)
– 뽀이뻿 돈보스코 학교 방문
– 반티쁘리옙 장애인 기술학교 방문
– 코미소 직업학교 방문
– 언동마을 원불교 탁아소 방문
– 프레이벵 촘라운 고등학교 방문 및 운영협의(2011.9~2012.8 예산협의)
– 현지 출판 및 교육활동 중인 이성욱 목사 만남
– 현지 활동가와 MT
3. 캄보디아의 시간 속에서
◑ 사람과 사람
벌써 여러 해째 이맘 때(8월말~9월초) 캄보디아를 다녀왔다. <아시아평화인권연대>에서 진행하고 있는 캄보디아 지원사업인 뽀이뻿 “아이들에게 희망을” Scholarship Project 협의와 프레이벵 촘라운비체아 고등학교 운영협의을 위해 7월말 한 학년이 끝나고 10월 초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1년간 진행된 사업들을 함께 점검하고, 새로운 1년간의 활동을 위한 예산 등 전반적인 의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4년째 현지 Partner Group으로 활동하고 있는 뽀이뻿의 The missionary Society of the Sacred Heart of Jesus의 수녀님들과는 이번 학기부터 <아시아평화인권연대>에서 지원하는 아이들을 40명에서 80명으로 늘이기로 하여, 방학 중 2주간 열었던 여름학교를 막 마치고 고단함과 만족감이 함께 묻어나는 얼굴로 만났다. 2008년 고등학교를 지어 신입생을 받은 후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한 프레이벵 촘라운비체아 고등학교에서는 알베르토 신부님의 후임으로 오신 김주헌 신부님은 졸업시험에 학생 전원이 통과했다며 환한 얼굴로 맞아주었다. <아시아평화인권연대>와 직접적인 활동을 함께 하진 않지만, 서로의 활동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 분들과의 인연도 지속되어 시간이 허락되는 범위에서 그분들도 만났다.
지난 몇 년 사이 한국사회도 전쟁과 빈곤으로 고통 받는 곳들에 대한 지원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KOICA 등을 통한 정부 차원의 지원도 크게 늘어나고 있고, 개인들의 관심과 지원도 다양한 방식으로 늘어나고 있다. 때로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여행일정 사이에 잠시 ‘가난’을 둘러보고 선심을 베푸는 방식도 있고, 불교 국가에서 공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기독교의 선교활동을 보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해외지원과 해외활동의 경험이 적은 한국사회로서는 불가피하에 거쳐야 할 과정일 수도 있고 결국 한국사회의 내적 성숙과 현지 사회의 성장을 통해 천천히 극복되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 삶의 뿌리는 내린 이들의 선한 마음과 노고들은 어느새 캄보디아 사람들 삶 속으로 깊숙이 자리 잡아 풍성한 잎과 가지를 펼쳐가고 있어 그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함께 깊어지는 그런 시간들이었다.
◑ 뽀이뻿 ― 거친 땅 위에 키우는 아이들의 꿈
태국과의 접경지역 뽀이뻿은 캄보디아에서도 참 삭막한 곳이다. 캄보디아 어디를 가나 넓게 펼쳐지는 논밭과 키가 큰 코코넛 나무들은 가난하지만 풍요롭고 평화로운 느낌을 안겨주지만 이곳 뽀이뻿은 땅이 척박하여 농토가 적고 마을 주민 상당수가 땅이 없는 이들로 여기저기서 이주하여 태국으로 일일노동 혹은 장기노동으로 이주노동을 하며 우기에 쏟아지는 빗줄기에 여기 저기 깊이 패인 웅덩이만큼이나 사람들의 시름도 깊은 곳이다. Scholarship Project는 이곳 마을에서 ‘가난한 이들 중 더 가난한’ 집 아이들 40명을 선택해 이 아이들이 초등학교 교육을 포기하지 않고 마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 2011년 여름학교의 아이들 >
2009년과 2010년 여름학교 중에 아이들과 자매결연을 맺은 한국가족들의 방문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올 여름에는 한국가족들의 방문 프로그램은 내년으로 보류하게 되었다. 가족들의 방문을 미룬 대신 이번 나의 방문 때 캄보디아의 아이들에게 사진이나 편지, 작은 선물을 전해달라는 열한가족들의 마음을 담아 갔다. 김진숙님의 가족 콩다니, 김미애님의 루이스 파까이프레잌, 정지숙님의 스라이 뻗, 정승호님의 카이속, 윤정희님의 스라이누엔, 원준혁님․원재경님의 추엥사본, 설동일님의 스라이립, 박숙경님의 웅누엥, 김용보님의 임파리, 주진경님의 주엔소픽, 배정혜임의 폴소찬이다.
한국의 가족들을 만난 적이 있는 아이들은 사진과 편지, 그리고 작은 선물을 받고 얼굴이 환해졌다. 이 아이들에게 한국의 가족들은 더 이상 낯선 외국인이 아니라 가슴에 담긴 그리운 이들이 되어 있었다. 영도 한진중공업 사측의 일방적인 노동자들의 해고조처에 항의하며 9개월째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님의 가족 콩다니는 꼭 만나러 오겠다했던 김진숙님이 오지 않자 어디 아픈 것은 아닌가 염려하며 ‘보고싶다’고 했다. 지난 해 여름, 콩다니가 사는 집을 보고 자신이 너무 좋은 곳에서 살고 있다며 가슴 아파했던 김진숙님은 콩다니에게 작은 집을 마련해 주고 싶어 했지만, 현지 파트너 수녀님들과 의논한 결과 '과유불급', 그다지 좋은 방안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콩다니가 고등학교까지 잘 마칠 수 있도록 곁에서 지켜봐주고 본인이 원하다면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으로 정리했었다. 콩다니의 예쁜 사진을 넣은 액자를 전해주면서 얘기했다. “우리는 콩다니가 공부 열심히 해서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대학도 가면 좋겠다”고, 그러자 콩다니는 “저도 그러고 싶어요”. 콩다니의 엄마는 태국으로 일하러 가고 드문 드문 콩다니를 만나러 오지만, 이모가 콩다니는 잘 보살피고 있어 다행이다. 부디 콩다니가 잘 자라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콩다니와 파까이쁘레잌>
콩다니의 옆집에 살고 있는 파까이쁘레잌은 김미애님의 자매결연 가족이다. HIV 양성환자인 엄마는 태국에 가고 없고, 역시 HIV 양성환자인 누나의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파까이쁘레잌은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햇살처럼 빛나는 예쁜 소년이다. 사진과 편지, 선물을 받아든 파까이쁘레익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의사가 되고 싶단다. 왜 의사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많이 배우고 싶다”며 그 초롱한 눈을 반짝였다.
<스라이뻗 가족>
<스라이립>
1년 새 아이들은 모두 훌쩍 자라 있었고 예전보다 밝고 환한 표정을 가지고 있어 기뻤다. 계속 내린 비로 삐카 마을은 들어갈 수가 없어 그 마을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물건들은 수녀님께서 길이 마르면 전달해 주기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하게 되었다. 애초 이 사업은 가난한 아이들이 초등학교라도 졸업할 수 있도록 배움의 기회를 주는 것이었지만, 어느새 우리의 사업은 형편이 너무 어려워 아무런 희망도 없고, 꿈도 가질 수 없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꿈을 갖게 하는 그런 일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아이의 가슴에 꿈을 심어주는 일, 그 꿈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지켜봐주고 받쳐주는 일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모쪼록 우리의 작은 일이 아이들 가슴에 꿈이 깃들고, 설사 모두의 꿈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하더라도 귀한 꿈들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껏 돕는 그런 일이 되었으면 싶다.
◑ 프레이벵 ― 촘라운 비체아 고등학교
교육여건이 열악한 캄보디아, 그 중에서 가장 가난한 주인 프레이벵 주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실시하는 고등학교를 만들고자 했던 알베르토 신부님의 열정에 감동하여 이 학교의 운영지원을 약속하게 되었다. 캄보디아에서 학교의 외관은 동일하다. 노란색 건물에 붉은 기와지붕. 2009년 촘라운 고등학교 건물이 완성되었을 때 감탄사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노란색 중에서도 이주 예쁜 노란색 건물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2008년 9월 신입생을 뽑았고, 올 7월 29일 그들이 첫 졸업생이 되었다. 그 사이 학교는 한 학년이 30~40명 남짓의 한반씩 구성된 아주 작은 학교이지만, 완전한 학교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고, 자신의 온 열정을 쏟아 부었던 알베르토 신부님은 올 5월로 8년간의 캄보디아 소임을 마치고 이탈리아로 돌아가시고 후임으로 한국외방선교회에서 캄보디아에 4년째 머물고 계신 김주헌 신부님이 새로 오셨다.
방학 중 학교에서는 오전에 보충수업이 진행되고 있고, 신입생 면담을 마치고 모두 39명을 선발한 상태였다. 캄보디아의 학제는 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마치면 자동 졸업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졸업시험에 통과해서 졸업자격이 주어진다. 따라서 전체 고등학교 졸업시험 응시생들의 1/3 정도가 탈락하는 졸업시험의 통과가 중요하며, 동시에 성적(A~F까지)도 함께 명시된다. 학생들 사이의 차별을 드러내게 된다며 학교수업 외 과외를 금지하는 이 학교규칙에 따라 12학년들은 아무도 과외를 하지 않고 졸업시험에 응시해서 모두 통과하여 다들 기뻐하고 있었다. 다만 상위권의 성적이 적어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검토는 필요하지만, 다른 학교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컴퓨터, 영어, 인문교육 등의 내용을 높여가는 것과 시험성적을 높이는 것이 조화롭기를 바란다.
이번 새 예산 협의에서 주요한 안건은 선생님들의 급여인상이었다. 현재의 수업 시간당 3$에서 4$로의 인상이 제안되었고, 그 현실성에 대한 협의와 함께 중요 과목 교사의 정규적으로의 채용은 어떠냐는 의견도 협의과정에서 제안되었다. 교육부에서 임명한 교장은 학교운영에 실질적인 참여와 권한이 낮고, 두 명의 스탭이 각자의 과목을 가르치며 학교 전체 운영을 맡고 있으며, 다른 교사들은 모두 파트파임이다. 스탭인 두 교사의 임금에 대한 부분만 결정하고 나머지 부분은 김주헌신부님께 일임하고 돌아온 며칠 뒤, 신부님은 교사들의 임금인상에 대해 조금 더 연구해 보시겠다고 잠시 보류하자는 연락을 주셨다.
멀리서 학교에 지원한 학생들이 많아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는 없지만, 학교에 작은 기숙사 건물도 지어져 다행이었고, 집으로 돌아가면 공부할 여건이 되지 않는 아이들이 학교에 남아 공부할 수 있도록 교실 개방이나 도서관 확충은 필요한 일이다. 교육은 긴 호흡으로 가는 만큼, 어떤 학교가 될 것인지, 어떤 교육을 할 것인지 많은 논의와 협의가 있기를 바란다.
<2011년 7월, 12학년들의 졸업사진>
◑ 캄보디아의 노동자들
캄보디아는 급격한 산업화를 겪고 있다. 도시 외곽에 거대한 공장들이 들어서고,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서 도시로 온 젊은이들이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 공장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공단 쪽방에 지친 몸을 뉜다. 마치 한국의 60년대와 70년대의 공단의 모습과 흡사하다. 빠른 속도로 상승하는 물가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으로 최근 여기저기서 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나고 있단다. 독재정권인 캄보디아는 형식적으로는 사회주의를 표방한 만큼, 공장에는 노동조합들의 설립과 복수노조가 허용되며 노동조합의 상급단체만도 70여개나 된단다. 덕분에 하나의 파업에서 노조들간의 경쟁도 존재하고 노동조합의 상급단체는 회사와의 금전거래를 통해 그 파업을 정리하기도 하는 황색노조들이 많다. 좌파 정당과 긴밀한 관계에 있던 노조지도자가 죽임을 당하는 일도 있었던 만큼 제대로 된 노동운동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 이곳의 현실이다.
지난 해 <아시아평화인권연대> 안양숙 운영위원이 공단 쪽방에서 함께 살던 여공가족들을 만났다. 함께 캄보디아를 방문하기로 했다가 혼자 오게 되어 양숙을 대신해서 그의 가족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17살 스라이레아부터 23살의 스라이라까지 꽃다운 나이의 아름다운 아가씨들 4명과 양숙, 모두 5명이 5평 남짓한 방에서 함께 거의 1년을 살았다. 이들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어 8개월 동안 한국에서 연락 한번 못했고, 이번에도 인편에 어렵사리 연락을 취해 공단 가까운 식당으로 초대했다. ‘양숙 봉스라이(언니)가 우리를 잊은 줄 알았어요……’,라며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은 그 사이 넷 중 셋은 남자친구가 생겼고, “제 결혼식에 봉스라이가 꼭 와주면 좋겠어요”라는 스라이꾼은 결혼을 계획 중이다. 이 친구들 덕분에 공장주 혹은 공단 관계자들이나 옴직한 멋진 식당에서 맛난 음식들을 먹으며 이들의 모습에서 젊은 날 함께 공장을 다녔던 나의 오랜 벗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 캄보디아, 그리고 한국
<아시아평화인권연대>에서 해외지원사업을 시작한 지도 어언 8년째 접어들었다. 캄보디아와의 인연도 6년째, 그 사이 해외지원사업은 시간과 기다림, 인내와 지혜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물질적인 수준에서 그곳이 부족하고 가난하다고 해서 그 사회가 더 불행한 것도 아니며 서구 문명의 잣대로 그 사회의 수준을 평가할 수는 없다. 자연환경과 문화가 완전히 다른 곳을 이해하며 함께 생활하거나 함께 만들어가는 것은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기다림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런 시간과 기다림이 없다면 자칫 도움은 그 사회를 흐트러놓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나의 이런 배움도 꽤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캄보디아와의 인연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뽀이뻿의 Scholarship Project 파트너 그룹인 수녀님들과 인연으로 <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미란 사무국장은 연구년 6개월, 그리고 그 후 7개월 더하여, 1년 1개월을 뽀이뻿의 돈보스코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8월말 귀국하여 업무에 복귀했다. 그리고 이제 그곳에는 양산외국인노동자의집 미선이 1년 정도 시간을 예정하고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올해로 3년째 캄보디아에서 머물고 있는 소령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깊어진 얼굴이었다. 다들 자신들이 머무는 곳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잘 지내주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내겐 더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어디에 머물건 삶은 힘껏 밀고 갈 일이다.
새벽 초당
도 종 환
초당에 눈이 내립니다
달 없는 산길을 걸어 새벽 초당에 이르렀습니다
……
누구도 살아서 완성을 이루는 이는 없습니다
자기 생애를 밀고 쉼 없이 가는 일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진선진미의 길입니다
……
바람에 눈 녹은 물방을 하나 날아와
눈가에 미끄러집니다.
― 도종환,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중에서
4. 사업비
1) 뽀이뻿 Scholarship (※Second Term 보고서 별도 첨부)
– 결산 : 2010년 9월~2011년 8월 Scholarship 11,685$ (766$ Remain)
2011년 여름학교 Program 2,037$
2011년 여름학교 발표회 220$ + 선물 T-shirts 400$
Total 14,342$
– 예산 : 2011년 9월~2012년 8월 Scholarship 23,934$
여름학교 예산 미 확정 (아이들이 80명으로 2배 늘었음으로 예산도 2배 늘 예정)
Total 28,000$ 예정
2) 프레이벵 촘라운 비체아 고등학교
– 결산 : 2010년 9월~2011년 8월 운영비 총액 15,190$ (4,840$ Remain)
– 예산 : 2011년 9월~2012년 8월 운영비 총액 22,000$ (안)
=> 예산 협의 중, 미 확정
5. 출장 소요예산 (※ 별도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