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포옹에 중독되다!
이미란 이주민과함께 부설 이주노동자인권을 위한 모임 사무국장,
현재 캄보디아 뽀이뻿 돈보소코 학교에서 자원봉사 활동 중
이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려나 봅니다. 지금 가만히 방안에 앉아 컴퓨터만 보고 있는데도 참 덥습니다. 덥고 땀이 나기 시작하니까 덩달아 살도 조금 빠졌습니다. 요즘 저의 일과는 조금 바빠졌습니다. 처음 석 달은 참 널널하게 보냈었거든요. 그래도 물론 한국에서의 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정말, 조금 바쁘답니다. 예전의 저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이른 시간이지만, 저는 아침 6시면 문타 선생님과 함께 학생들을 데리러 가는 트럭을 얻어 타고 시장엘 갑니다. 요즘 저는 장보기의 매력에 푹 빠져 있습니다. 이른 아침 시장에서 느껴지는 활기가 기분 좋습니다. 조금만 비가와도 물에 잠기는 물론 열악하기 그지없는 재래시장이지만,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자신들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참 보기 좋습니다.
시장에 가면 학교 사람들이 먹을 음식재료와 여러 가지 필요한 물품을 삽니다. 하루에 장보는 양이 적지 않습니다. 돈 보스코 뽀이뻿은 학생과 직원을 다 합해서 3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아침과 점심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 기숙사에 사는 100여명 남짓한 사람들은 저녁도 먹어야하구요. 단골집도 생기고 대충 가격도 알겠고, 이젠 혼자 가도 바가지 쓸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장본 물건들은 모토 택시로 실어 나릅니다. 이 모토 택시 기사들은 초능력자인 것만 같습니다. 앞뒤로 엄청난 양의 채소와 고기 등등을 싣고 뒤에 저희 두 사람까지 태워서 갑니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시장 길을 지나 중간에 또 얼음 덩어리까지 사서 싣고 갑니다. 시장에서 학교로 가는 뽀이뻿의 흙길은, 저희는 농담처럼 세계최고라고 말하는데, 울퉁불퉁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 길을 그렇게 무난하게 달리는 모토 택시 기사들은 분명 초능력자일 겁니다.
아침에 시장에 다녀오면 허기가 집니다. 남들보다 약간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나면 속 선생님과 캄보디아어 공부를 합니다. 속 선생님은 돈 보스코 학교 안의 어린이 기금(Children fund) 담당자입니다. (어린이 기금은 뽀이벳 지역의 가난한 아이들이 학업을 중단하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돈과 생필품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로 학교와는 별도로 뽀이뻿 지역 학교 학생 100여명을 지원합니다.) 그렇게 캄보디아어를 공부하고 나면 저는 간단한 한국어 인사말을 속 선생님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두 명의 선생님과는 한국어를, 또 세 명의 선생님과는 영어를 공부합니다. 모두 일대일 과외인지라 하루가 훌쩍 갑니다. 사실 바쁜 선생님들은 매일매일 공부하러 오지는 않습니다. 그럼 비는 시간 틈틈이 저는 학생들과 놀기도 하고, 쉬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바쁜 신부님 대신, 필요한 물건을 사야하는 사람에게 돈을 지급하고 영수증과 서류를 챙기는 사소하지만 복잡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간 중간 선생님들과 직원들이 돈이 필요하거나, 사용 내역을 보고 하기 위해 저를 찾아옵니다. 꼼꼼한 것과는 거리가 조금 먼 저는 가끔 돈이 빕니다. 그럼 꽤 오랜 시간 빈 돈을 찾아내느라 전전긍긍합니다. 뭔가 한국에서의 일상과 데자뷰되는 느낌입니다. 하하하~
4시 반이 되면 학생들의 수업이 끝나고 함께 운동을 하는 시간입니다. 저질 체력인 저는 10분만 학생들과 뛰다보면 기진맥진하기 때문에 요즘은 그냥 구경만 하는 편입니다. 구경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학교 이야기, 사람들 이야기, 연애담……. 같이 생활하는 자원활동가들은 학교 안 구석구석, 누구누구 연애한 이야기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저에게 돈 보스코 CIA 요원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별명이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제가 자주 써 먹는 말 중에 ‘너 지금 맘 아픈 거 누구 때문인지 난 다 알아.’입니다.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은데도 대부분 다 사실이 됩니다. 그 한마디로 다들 저한테 다 이야기해주거든요. 하하하.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면 기숙사생들이 모두 모여 저녁 모임을 합니다. 여기는 가톨릭계 학교이기 때문에 주로 기도를 합니다. 아마 한국에서 한국말로 진행되는 기도 모임이었다면 가톨릭이 아닌 저는 무척 힘들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캄보디아어로 학생들이 조용하게 읊조리는 기도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왠지 저도 덩달아 홀리(holy)해지는 것 같습니다. 모임을 마치면서 ‘리어뜨라이 수어스다이(Good night.)'하고 인사를 하면서 어린 학생들은 저를 안아줍니다. 아이들의 따뜻한 포옹은 중독성이 강합니다. 다른 일 때문에 저녁에 학교에 없을 때엔 아이들의 포옹이 그립습니다. 아마 제가 아이들에게서 좋은 기운을 많이 얻고 있는 모양입니다.
저녁 모임이 끝나면 학생들의 공식적인 일과는 끝이지만, 우리 부지런하고 욕심 많은 학생들은 저녁에 또 영어 공부를 하거나 강당에 모여 자습을 합니다. 하루를 마무리할 그 시간에 주로 환자들이 저를 찾아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픈 친구들이 찾아오는데 저는 그 시간이 참 행복합니다. 물론 심각한 병이 아닌 경우의 학생들만 저를 찾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봉스라이~’하고 부르면서 ‘머리 아파’, ‘감기 걸려서 콧물이 자꾸 나와’, ‘목 아파’ 하면서 저한테 엄살을 피웁니다. 그럼 저는 간단한 약들을 주면서 머리 아픈 아이는 머리도 한번 짚어주고, 춥다고 하면 한번 안아도 주고 그런답니다. 한 명이 무릎이 까져서 약 발라달라고 오면, 다른 꼬맹이 학생들이 덩달아 ‘나도 여기 여기~’하면서 까지고 상처 난 부위를 다 내 보입니다. 이미 다 나아서 흉터만 조금 남아 있어도 약 발라 달라고 엄살을 부립니다. 아이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시간이랄까요. 하하하!
지금 제가 여기 캄보디아에서 보내는 시간은 참 고마운 시간들입니다. 이렇게 느긋하게 예쁜 아이들에 둘러싸여 좋은 기운을 듬뿍 받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혼자 받은 이 좋은 기운을 한국에 돌아가면 여러분들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기운을 안고 돌아갈 때까지 다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2011년 3월 3일 캄보디아 뽀이뻿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