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아시아의 창] 강연자 이성규 피디의 관련 글

오는 5월 19일부터 시작되는 [아시아평화인권연대]가 주최하는 인권 강좌 '2003 아시아의 창'에서 세 번 째 강연을 해 주실 이성규 리포트25 피디의 관련 글입니다. 강의를 듣기 전에 미리 읽어 보고 오시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정 대표의 강연은 5월 26일 날 19:00에 있습니다. 30분 분량의 다큐멘타리 자료도 방영됩니다.

===========

마오쩌둥의 마지막 빨치산 부대

이성규 – 리포트25 프로듀서

아프카니스탄을 향한 미국의 공격이 한창이던 지난 10월 21일 밤, 인도의 서남부 안드라프레데시 주에 있던 코카콜라 공장이 일단의 무장 조직에게 습격당한다. 그것은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공격을 반대하는 테러였다. 마오쩌둥주의를 따르는 인민전쟁파(PWG-People's War Group)의 조직원으로 알려진 이들은 지난 2년 동안 안드라프레데시 주의 장관들을 살해하고 경찰관서 습격과 지뢰 매설 등 무차별 공격을 감행한 바 있는 빨치산이다. 이밖에 11월 1일, 인도의 중북부 비하르 주에서는 일단의 전투가 벌어진다. 이 전투에서 마오쩌둥주의 중앙조직(MCC-Maoist Community Center)은 경찰 13명을 사살한다. 비하르 주를 거점으로 활약하며 카스트의 완전철폐와 토지 재분배를 주장하는 MCC 또한 마오쩌둥주의 빨치산이다.

카쉬미르 분리주의 세력과 더불어 인도에서 가장 과격한 게릴라 단체인 PWG와 MCC는 좌익정치 집단인 낙살(Naxal) 세력의 분파 조직으로서 안드라프레데시와 비하르뿐만 아니라 마드야프레데시, 오리사, 마하라쉬트라 주 등 인도 중부와 동부 여러 곳에서 경찰을 살해하고 공공 건물을 불태우는 등 빨치산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 조직 중 MCC는 상층카스트의 목을 베는 공개처형으로 악명이 높은데, 1999년 3월 18일 비하르 주의 세나리에서는 MCC의 인민재판이 벌어져 35명의 상층카스트들이 공개처형됐다. 마오쩌둥주의를 따르는 빨치산의 활동과 경찰의 소탕전으로 인해 지난 10년 동안 인도에서만 민간인․경찰․게릴라를 포함하여 2만 여명이 살상됐다.

인도에서 마오쩌둥주의에 입각해 빨치산 투쟁을 하는 조직들을 통틀어 ‘낙살’이라고 한다. ‘낙살’은 투표에 의한 민주 정치를 거부하고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사상을 신봉하는 공산주의 조직이다. 이들은 전형적인 빨치산 전술을 사용하는데, 주로 중앙 정부나 주 정부의 힘이 좀처럼 미치지 않는 농촌과 밀림 지역을 거점으로 무장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낙살의 전술은 먼저 경찰과 지방관서 등 공권력에 대한 공격을 통해 농촌지역을 해방구로 선포하고 도시지역을 압박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프롤레타리아 혁명 정부를 세운다는 것이다. 인도와 네팔을 무대로 활동하는 낙살은 PWG, MCC, CPI-ML 등 모두 16개 분파로 나뉘어져 일정 지역에선 독자적인 행정 체계를 갖추는 해방구를 가지고 있다. 이들의 군사력을 보면 인도는 5만명, 네팔은 3만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의 문화 혁명이 홍위병의 광기로 끝난 이후 마오쩌둥주의는 종말을 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마오쩌둥의 유령은 힌두교가 강세인 인도와 네팔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위대한 혁명전사로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지역에서 마오쩌둥의 가르침에 의한 혁명 세력이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에서 비롯된다. 인도와 네팔의 헌법에는 카스트제도를 불법으로 규정짓고 있지만, 21세기로 들어선 지금까지 카스트는 그들의 강력한 관습법으로 살아 존재하고 있다. 카스트 제도의 비인간적이고 반인권적인 모순 속에서 마오쩌둥의 혁명 이론은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낙살 세력의 등장은 인도의 사회․경제적 문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도 정부는 1948년 토지개혁법을 제정하여 하층 카스트인 농촌 빈민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토지를 지닌 상층 카스트들은 집권당인 국민회의당(Congres)에 대거 입당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최대한 유지하는 방향으로 토지개혁법을 왜곡함으로써 다수 농업노동자의 반발과 적대감을 유발했다. 이러한 불만을 등에 업고 결성된 맑스파 인도 공산당(CPI-M)은 지주계급(상층카스트)에 대한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CPI-M은 1952년 총선에서 일부 의석을 얻게 되자 무력 투쟁을 포기하고 제도권의 정치 집단으로 안주한다.

이러한 힘의 공백 상태를 비집고 낙살 세력이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낙살이란 명칭은 1967년 웨스트벵갈의 다르질링 근처 낙살바리 마을에서 일어난 대규모 폭동에서 비롯된다. 낙살바리에서 처음 시작된 마오쩌둥주의 빨치산은 웨스트벵갈에서 토대를 마련하는 듯 싶었지만 조티 바수가 이끄는 CPI-M의 주 정부 장악으로 토지개혁이 일어나 낙살 운동은 곧 쇠퇴하고 만다. 지금까지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 웨스트벵갈은 사회주의식 정책을 펼쳐 토지를 둘러싼 카스트간의 갈등을 잠재우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웨스트벵갈에서 활동공간을 잃은 낙살조직들은 1970년대 초 비하르와 안드라프레데시로 유입되어 빨치산 활동을 전개한다. 이들 지역의 미흡한 토지개혁과 뚜렷한 빈부격차 그리고 강한 카스트제도가 낙살운동의 새로운 토양이 된 것이다. '돌리브타나'로 불리는 초야권은 이 지역 상층카스트들의 관습이었다. 이같은 폭력에 저항하는 낙살조직은 하층민들의 방패막이로 자리잡는다. 데칸헤럴드의 제이피 야다브 기자는“하층카스트 여성이 상층카스트로부터 강간을 당해 이런 상황을 경찰에 신고한 뒤 법원의 판결을 기다린다면, 그 기간은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라고 말한다. 인도의 재판기간은 세계에서 가장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빨치산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선 ‘인민재판’을 통해 즉각 정의를 시행한다. 또한 이들은 부패한 관료와 상층카스트로부터 재산을 강탈하여 농촌 빈민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의적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편 하층카스트와 토착 부족민을 세력 기반으로 하는 낙살 세력에게 위협을 느낀 상층카스트는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민병대를 결성한다. 자신들에게 값싼 노동력과 사회적 지위를 제공하는 카스트 질서를 뒤엎는 낙살운동에 반대하며 나선 것이다. 상층카스트 민병대는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하층카스트들에게 잔혹행위로 맞섰다. 자와하를랄 네루大의 사회학 교수 디판카르 굽타는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상층카스트의 잔혹행위가 증가한 것은 하층계급이 권리를 주장한 결과라면서 전에는 오랫동안 천민들이 자신의 위치를 인식해 아무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상 하층 카스트 사이의 갈등이 전통적으로 치열하고 지주의 횡포가 심한 비하르 주에서는 낙살 대 지주 세력간 충돌이 잦아서 무차별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 비하르 주에선 이러한 충돌로 연간 500여명이 학살되는 것으로 인도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이들 상층 카스트 민병대는 낙살조직에게 협조하는 천민 마을을 습격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 학살을 자행한다. 2000년 6월 비하르 주의 아우랑가바드에선 민병대의 습격으로 36명의 하층카스트민이 학살당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네팔의 낙살도 인도의 경우와 같이 카스트로 인한 반목과 기존 정치가 농촌 빈민의 어려운 생활에 무관심한데서 생겨났다. 낙살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네팔에서 생소한 이름이었다. 1990년 네팔의 비렌드라 국왕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네팔 국민들의 저항에 굴복하여 절대왕정을 포기한다. 이후 네팔은 의회를 설립하는 민주정치가 실현되면서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이 크게 고조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정치세력의 난립과 국가 발전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네팔의 내각이 거의 매년 바뀌는 등 정치적 불안이 계속되자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혐오감도 커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아래 1996년 2월 네팔의 마오쩌둥주의 빨치산이 결성된다.

AIPRF(전인도인민저항포럼)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21세기 들어서 인도의 마오쩌둥주의 빨치산들은 새로운 투쟁 방식을 채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대 규모의 공작조가 밀림에서 활동하던 종전의 방식을 바꾸어서 3~4명의 소조를 마을과 부락에 배치하여 암암리에 활동하도록 하는 방식을 구사하고 있다. 종전의 방식은 경찰에 노출되기 쉽고 밀림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효과가 별로 없다는 단점을 개선하여 공작조의 규모를 줄여 기민성을 높이고 해방구에 대한 선전과 정치활동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앞으로는 뉴델리와 몸바이 등 대도시에서도 비밀 아지트를 구축하여 도시 투쟁을 강화하겠다고 나선 점이다. 이와 달리 네팔의 낙살은 비상사태를 선포한 정부의 대대적인 소탕작전에 의해 전멸 위기에 처해있다.

인도와 네팔의 낙살은 마지막 남은 마오쩌둥주의 빨치산일 것이다. 이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소멸한 것인가? 아니면 더 오랫동안 혁명세력으로 남게 될 것인가? 21세기인 오늘날 전근대적 유물이라 할 카스트가 위력을 발휘하는 봉건적 토양이 인도와 네팔에 남아 있는 한, 마오쩌둥주의를 추종하는 빨치산들은 유령으로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실체로 남아있게 될지도 모른다. 카스트와 빨치산은 서로 공생공사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2001년 12월 20일 안산에서

자료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