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성의 인권 – 이인경(인권모임 상담실장)

인도여성의 인권-그 쉼 없는 투쟁 속에서….

이인경 (외국인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상담실장)

인도에서의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는 참담하다. 인구의 약 80%가 농촌지역에 살고 있고, 그 문제는 그들의 일상생활 수준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의 인권은 농촌 생활의 현실과 직결된다. 이들 여성들의 가장 기본적인 투쟁은 가족과 그들 스스로의 끼니를 해결하는 것과 관계를 가진다. 음식, 연료, 물 등과 같은 생필품을 생산하는 것이 인도 농촌여성이 공통으로 가지는 문제이다. 인도의 수 만개의 마을 대다수는 깨끗하고 이용 가능한 수자원이 없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물을 기르고 요리를 위한 땔감을 구하기 위해 하루의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불충분하고 비위생적인 물은 인도 농촌 사람들의 생존에 위협이 된다.
70년대 이후 인도의 여성에 대한 연구와 여성운동은 도시의 교육받은 중산층여성들의 전유물처럼 보인다. 그들은 학회, 세미나, 미디어, 등을 통해서 그들이 직면한 문제를 폭로해 왔다. 그러나 절대적인 다수의 여성들은 아직도 농촌지역에 거주하며, 그들의 문제는 도시의 교육받은 중산층 여성들의 문제와 다르다. 이들 여성들은 여성인구 80%이상으로 수적으로 절대 다수임에도 비주류로 전락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즉 그들은 대다수 교육을 받지 못한 문맹상태에서 여성문제의 토론장이나 도시의 미디어에 접근하는 것이 어렵다는데 있다. 그러나 인도여성의 인권에 언급함에 있어, 지금까지 비주류로 소외당한 절대다수의 농촌여성의 삶과 그들이 당면한 문제를 이해해야한다.

가사노동의 성질
인도에서 농촌여성들은 가사와 육아에 대한 독점적인 책임을 공통적으로 지고 있다. 이들 여성들이 그 가족의 주 수입원이든지 혹은 보조적인 역할을 하든지 간에. 가족이 소유한 논과 밭에서, 혹은 무토지 임노동자로 장시간 노동을 하였을 때도 가사와 육아의 책임은 어김없이 여성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인도농촌에서 가사노동은 끝없는 최소한에 생존을 위한 고된 작업의 연속이다. 음식을 준비하고 만드는 작업, 주거공간을 청소하고 유지하는 작업, 아이들을 돌보는 작업은 여성들이 매일 지는 생존의 짐이다. 무엇보다도, 수천만의 인도마을의 대부분은 이용 가능한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없다. 대부분 인도의 수많은 마을에는 어떠한 질의 물이라도 얻을 수만 있다면 다행이고, 개울, 우물, 혹은 연못에서 몇 마일을 걸어서 오염된 물이라도 집으로 길러 나르는 것은 언제나 여성들만의 몫이 된다. 물을 기르는 것과 같이 번거롭고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을 남성들은 거의 하지 않는다.
불충분하고 비위생적인 물은 가족들의 생존에 위협을 줄 뿐 아니라 인도여성들에게 더 큰짐으로 여성들의 삶을 억누른다. 제3세계에서 모든 병의 80%은 오염된 물소비와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인도 유아사망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이런 유아사망의 80% 가까이는 설사 때문에다. 설사는 영양실조로 이미 약해진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고 이러한 설사는 주로 오염된 물을 사용으로 인한 것이다. 높은 유아사망률로 인한 비극은 여성들에게 출산의 무거운 짐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몇몇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혹은 어린 나이에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여성들이 더 많은 아이들을 낳아야만 그 중 몇몇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어른들의 잦은 병치레 또한 여성들의 책임을 크게 더하는 것이다. 여성 스스로도 자주 아프지만, 필요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다. 인도는 산모사망률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중 하나이다. 임신한 여성들은 아이를 출산하는 그 순간까지 계속 일할 것을 강요당한다, 왜냐하면 생존의 의무는 하루의 휴식도 없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땔감을 모으는 일은 시골여성의 힘을 아주 많이 사용하는 또 하나의 일이다. 우따르쁘라데시주의 산악지역에서, 정부와 사설벌목업자에 의해서 최근 수 십 년 동안 무차별적인 벌목작업의 증인이 되어왔던 여성들은 점점 더 귀해지고 있는 마른나무 잎이나, 나뭇가지를 구하기 위해서 바위산을 기어오르는데 8-10시간 가량 소비해야 한다. 이 지역에서 무토지 소작노동자들인 여성들이 땔감과 건초로서 구하기 위해서 매일 4-5시간을 소비하고 있다고 구자라트 주에서 최근 한 연구는 보여준다.
국가의 전체 산림자원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몇 년 동안, 땔감과 건초 구하는 일은 여성들에게 점점 더 힘든 일이 되어가고 있다. 산림정책은, 19세기 식민지 지배자들에 의해서 고안되었고, 주정부(국가)의 손에 산림자원의 대부분을 완전히 귀속되었다. 독립 이후, 정부는 산림자원에 대한 전적인 권력을 쥐게 되었고,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욱더 억압적인 산림정책을 만들고 있다. 정부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산림자원을 개발하는 것을 장려해 왔고, 한때 공동체가 소유했던 산림에 대해 지역 민들의 권리를 줄이는 것 뿐 아니라 거대한 벌목작업으로 산림을 파괴해 왔다. 가족들의 생존을 위한 필수품인 땔감은 점점 더 귀해지고 여성들은 그로 인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한다.(chipco movement)
인도의 많은 곳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집 근처에 채마밭을 가꾸는 것 또한 여성들이 주로 하는 일이다. 이 채마밭에서 나온 수확물은 주로 가족들이 소비하는 것이지만, 때로는 시장에서 판매 혹은 교환을 목적으로 재배하기도 한다. 가족이 가금류 혹은 양과 같은 가축을 기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대게 여성들의 책임(몫)이다.
음식이 귀하거나 가뭄 때는, 가난한 시골여성의 역할은 더욱더 맹렬해진다. 그들은 무엇이든- 그들이 식용으로 시도해 볼만한 뿌리, 잡초, 잎들, 나무줄기, 풀- 찾아서 마을 곳곳을 헤맨다. 이러한 위기에 가족들이 생존 혹은 그렇지 못 하나지는 이 시기의 여성들의 역할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난한 임노동자와 가족들의 생존은 추수 후 빈들에 널려 있는 이삭줍기에 달려 있기도 하다. 인도에서 가사노동의 성격은 산업화되고, 부유한 나라의 가사노동과 극심하게 다르다. 인도에서 가사노동은 삶의 필수품을 구하기 위해 집 밖에서 많은 시간을 사용하게 한다.
또한 여성들은 집안에서 설거지와 빨래와 같은 가사노동 외에 몇 가지 경제활동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서, 가정에서 여성들은 음식을 준비하기 위한 거의 모든 공정과정을 수행한다. 매끼마다 음식을 만들기 전에 소비되는 곡식 혹은 콩에서 작은 돌이나 먼지 덩어리를 정성스럽게 손으로 깨끗이 골라내는 것은 기본이고, 많은 여성들은 1주에 2-3일은 손으로 쌀을 도정하고 밀가루를 빻는 작업을 한다. 벼 20 파운드를 도정하기 위해선 두 명의 여성이 한두 시간은 족히 사용한다. 밀이나 옥수수의 맷돌질에도 같은 노동과 시간이 소요된다. 가족들이 매일 사용하는 양념류들도 여성들에 의해서 준비되는 것이다.
여성들이 요리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연기 나는 출하(화로)는 비효율적으로 땔감을 많이 허비한다. 요리를 하는 동안 여성들은 끊임없는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또 여성은 주거공간(일반적으로 볏짚 혹은 흙집)을 보존 유지하는 일을 한다. 이런 집은 거친 짚 빗자루를 들고 쪼그리고 앉아서 매일 쓸고 청소해야 하고, 정기적으로 매주,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소똥으로 회벽칠을 해주거나 자잘한 수리들이 필요하다. 소똥을 모으고, 진흙과 볏짚을 농도를 맞추고 회반죽을 만들어 알맞게 섞는 것에, 빈틈없이 벽과 바닥에 칠하는데는 여성의 손만큼 좋은 것은 없다.
여성은 세계의 노동시간의 약 2/3 가까이 수행하는 것으로 1980년에 UN의 보고서는 결론을 내렸다. 이와 비슷하게, 인도의 몇몇 연구에서도 여성의 노동일수는 남성의 노동일수보다 길다는 것을 보여준다. 농촌지역의 에너지 소비 패턴을 알기 위한 목적으로 3년간 깨랄라 주에서 시행된 한 연구는 마을의 모든 작업에 사용되는 인적자원의 거의 70%가 여성과 아이들의 노동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에너지의 대부분은 수입을 산출하는 활동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의무-땔감을 모으고, 물을 기르고, 요리를 하는-에 사용된 노동이었다. 이 조사에는 청소 빨래, 설거지, 육아와 같은 가사노동은 계산하지 않고, 심지어 이런 일에는 아주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고 있지만 노동으로 계산하지 않고 있다. 여성 에너지의 대부분은 계절에 상관없이 수행되는 일상적인 삶을 지원하는 일로 소비되고 있다. 반면에 남성은 에너지소비에 있어서 보다 계절적인 영향을 받는다, 즉 대개 일년에 한 두 번 혹은 어떤 지역에서는 일년에 한 번의 쟁기질과 같이.
여성의 노동은 가족의 생존을 위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평가절하 되고 있다, 그들은 가장 단순한 기술적인 도움도 제공받지 못한다. 보통 그들이 유일하게 사용하는 연장은 맨 손뿐이고, 머리에 물건을 이기 위한 바구니와 요리를 만들기 위한 그릇이 고작이다. 그러므로 여성들의 일은 매우 노동 소비적(집약적)인 특징을 가진다.

가족 안에서 여성의 박탈
대부분의 여성들 특히 가난한 여성들에 대한 차별은 끝나지 않았고, 남성들보다 더 무거운 노동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 여성은 남성들 보다 더 적게 먹는다. 가정 내에서 여성들이 당하고 있는 심각한 차별에 대한 정보는 거의 수집되지 않았다. 소수의 연구자료만이 가정 내에서 음식분배가 남성의 이익을 위해 편향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펀잡Punjab 주의 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 평균 칼로리 소모는 남성의 소모보다 2/3에 지나지 않다고 한다. 그 기간동안 거의 모든 여성들이 밭일을 포함하여 매일 15시간 이상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노동일수는 여성들에 비해 훨씬 짧음에도. 까르나따까(karnataka) 주의 농촌에서도, 가정 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1/3정도 칼로리를 적게 소비한다는 음식분배의 불평등을 측정하는 연구가 있다, 반면에 그들의 노동기여도(일부 가사노동 포함)는 남성의 두 배 이상이다.
이러한 차별은 높은 여성사망률로 귀결된다. 가족에 의한 여성건강에 대한 심각한 무시와 다양한 질병들은 여성의 취약성을 배가한다. 여성들의 시간에 대한 끝없는 요구는 때로 여성이 아플 때도 며칠간의 휴식도 허용하지 않는다, 여성은 지치고 소모된다. 대부분 가족 내에서, 여성에게 기대되는 모든 일을 스스로 행하고 있는 한은, 아무도 그가 치료를 위해 쉬는 동안 불편을 감수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오직 그가 쓰러지거나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때 가족들은 그를 보건소 혹은 병원에 데려 가야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심지어, 대부분의 가족들은 필요한 지출과 문제를 감당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성들은 쉽게 희생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지기 때문이다. 라자스탄(Rajasthan)주 시골의 한 여성 활동가는 여성은 마을에서 동물보다 낮게 평가된다고 주장한다. 그 논리는 아주 간단하다: 동물을 교체하기 위해선 돈이 든다, 반면에 여성을 교체하는 것은 쉬울 뿐 아니라, 어떤 특정한 상황하에선 더 쉽다. 그 지역에서 사회사업단체가 여성을 위한 병원을 시작하려 했을 때, 많은 저항과 위협에 부딪쳤다. 마을의 남성들은 왜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여성들을 위해서 해야하는지 허용할 수 없었고, 그들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들판에서 일하는 가축을 위한 병원이라고 주장했다.

인도의 위대한 소설가 문쉬 프램찬드(munshi premchand)가 쓴 kafan(수의)은 인도여성의 잔인한 현실에 대한 고발서이다. 이 소설은 대다수 인도여성의 곤궁한 상태를 상징적인 방법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에는 마도(madho)와 기수(ghisu)라는 아버지와 아들이 나온다. 어느 추운 겨울 아침에 그들은 오두막 밖에 감자를 굽는 불 가까이 앉아 있다, 마도의 아내는 오두막 안에서 아이를 낳으며 죽어 가고 있다. 그녀는 그들 가정에서 유일하게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녀가 아픈 것에 정색을 하고 있다. 그들은 아내, 어머니가 죽는 것보다 앞으로 그녀가 죽고 나면 누가 자신들을 먹여 살릴 것인가를 걱정한다. 술을 마시게 누가 돈을 가져다 줄 것이며, 누가 그들이 취해 때릴 때 아픔을 침묵으로 참아 줄까 걱정이다. 그들은 그들의 처리를 불쌍하고 가련히 여기며 밖에 앉아있고, 그들 중 아무도 집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이를 낳다가 죽는 여성을 보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 큰 고통이고 너무나 불유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아침에, 마고의 아내는 죽었고, 그들에게는 그녀의 수의를 사기 위한 돈이 한푼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5루피(150원)를 이웃집에 가서 구걸하다시피 하여 빌렸다.그러나 그들이 시장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자동적으로 술집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음식과 술을 마시는데 그 돈을 탕진해 버렸다. 그들은 취하자 감상적으로 변하여, 아내와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게 되었다, 그들 스스로 그녀의 시체를 수의로 잘 싸는 것보다 그들이 잘 먹는 것을 그녀도 좋아했을 것이라고 말하며 위로한다.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그녀가 모든 에너지를 그들을 돌보는데 사용되었던 것처럼.

여성에게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의료혜택은 거의 접근하기 힘든 것이다. 의료혜택이란 고작 출산과 관련한 것이다. 남성환자 대 여성환자의 전인도 비율은 약 3:1이다. 출산시 병원이용률은 10%에 내외이고 나머지 90%는 의료혜택도 없이 비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아이를 출산한다. 출산 이후 합병증으로 시달리는 여성들도 많다. 아이를 낳는 동안에 파상풍과 전염병 때문에, 왜냐하면 깨끗한 물이 없고, 녹이 쓴 더러운 칼 혹은 돌을 사용하여 탯줄을 자르는데 이용해서 여성들은 죽어 간다. 극소수의 여성과 영아들만이 파상풍에 면역제를 맞는다.
이 모든 요인들은 남성들에 비해서 여성들의 사망률을 매우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인도 전체인구의 비율에 비해서 여성인구의 비율은 계속적으로 부족하고 있다. 1901년도 인구조사에 따르면, 남성 1000명 당 여성은 972명이었다. 1981년 남자 1000명당 여성은 겨우 935명을 기록하고 있고, 전체적인 부족액은 1901년에 300백만이었으나, 1981년에는 2천 2백 9십만명의 부족이었다.
그들 가족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성들이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경제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 밖에서 단순노동에 종사하는 것을 포함하여 그러나 대부분 시골 여성들에 대한 신화는 그들이 기본적으로 두문불출하며 그들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사노동‘만을 수행하는 것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박탈된 토지 상속권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건 상관없이, 가난한 농부출신의 여성은 가족의 경제적인 생존을 위한 기여자로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 그들이 속해 있는 계급의 권력과 경제적 특권을 공유할 수도 없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집 밖에서 일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자유도 없다. 더구나 가족들의 수입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 것인가에 대한 결정권에 참여하는 것을 더욱 더 불가능한 일이다.
가족소유의 토지에서 가사노동에서 여성의 무력함과 그들 노동에 대한 평가절하는 땅에 대한 남성들의 독점적인 지배의 산물 중 하나다. 땅이 점점 더 가치 있는 필수품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땅에 대한 지배는 가정과 사회에서 모두 권력과 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작용하고 있다; 땅은 보다 중요성이 높아지고 노동력은 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므로, 가족 내에서 땅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남성들은 여성 혹은 그 땅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 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다.
땅에 대한 재산권과 상속권박탈은 여성의 종속과 억압을 야기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영국 식민화 이전 인도에서는 땅에 대한 인도여성의 권리에 대해 거의 인식 못했다. 세금징수 과정을 용이하기 위해, 식민지 지배자는 인도의 전 지역에 가장 착취적인 토지정착제도를 소개했다. 이러한 제도의 공통적인 특징은 각 주정부가 최고의 지주라고 생각하고, 그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주 무거운 세금을 뽑아내는 것이다. 경작자는 점점 더 중간 관리자와 탐욕스런 지주들의 농노가 되어 갔다. 이러한 새로운 소작권의 발생으로, 땅에 대한 여성의 권리는 완전히 경시되고 무시되었다. 심지어 여성이 일하고 있었고, 계속적으로 존재하는 공동체에서도, 예를 들어서 대부분 부족민들에게, 씨족의 공동체의 재산이 개인 재산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여성은 거의 배제되었다. 영국에 소개시킨 땅소유에 대한 영국의 제도 전에 존재하는 극소수의 증거들은, 대부분의 지역과 대부분의 공동체에서 여성에 대한 종교법적 권리와 재산권은 개인적인 것과 거리가 멀고 공동체에 기초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식민지지배는 땅으로부터 여성의 거의 완전한 소외를 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경향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중간적인 지주제 타파와 자영농 계급의 확장을 용이하게 하는 1950년대의 국민회의에 의해 개정된 토지개혁 혹은 1960년대 깨랄라(kerala) 주의 좌익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급진적인 토지개혁과 1980년대 서벵갈(west bengal)주에서 각각 있었던 토지개혁의 지표에는, 그런 조치에 의한 새로운 수익자는 언제나 남성들이었다. 이는 여성들의 지위를 더욱 더 격하시키는 역할을 했다. 예를 들면, 토지개혁조치에도 불구하고, 안전한 소작권리는 물납소작인 혹은 경작자가정의 남성 가장에게만 주어졌다. 가족 내에서 여성의 지위는 더 열악해지고 고통은 커졌다. 중농의 여성이 지주의 아내로 보이기 시작한 순간, 가족 농장에서 그녀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가와 상관없이, 그녀는 부양자로 취급되기 시작한다.

농민 계급 : 새로운 시골의 엘리트
비록 1950년대 1960년대 표면상 다양한 토지개혁조치를 통해서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토지가 주어졌다고 하지만, 진정한 이익은 억세고 힘있는 소유권을 가진 중농계급의 합병에 있어 보인다.
자민다리(zamindari)제도와 다른 중간관리제도의 폐지와 함께, 땅에 대한 소유권은 이전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진 고유의 경작자와 소농민의 손에 점점 더 집중되게 되었다. 지난 2-30년 동안, 하나의 불럭으로 중산 농민층은 마을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삶을 조종할 뿐 아니라 이제는 그들은 지역, 주, 최근 몇 년 동안 국가적인 차원으로 그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경제적 힘을 모으고 있다.
대부분의 낮은 계급 마을 내 위계질서의 표준으로서 적용되어 왔고, 점점 더 확대하여 적용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중상층 농민집단의 지배적 영향력은 그들 가족의 구조와 땅소유의 형태를 구축한다. 그들 가족의 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로 가정되는 농업 생산에서 여성을 격리시키는 전통이 점점 더 확대되어가고 있다. 여성의 삶과 노동에 대해 부여된 낮은 가치는 여성의 소외와 의존성을 높이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러한 농민 가족들의 기본적인 구조는 여성들에게 중요한 결과를 가져온다. 첫째로 등기부등록과 상속법에 무엇이라 쓰여져 있든지 상관없이 땅 소유권 혹은 경작권은 남성들의 손에만 독점적으로 부여되다. 1956년 초에 힌두상속법에는 여성이 남성과 거의 동등한 재산권을 가지는 것으로 나와 있다. 땅과 관련된 재산권 조항은 사어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여성이 땅 소유권자가 될 수 있는 경우는 남성 가장이 땅소유의 최고한도 법을 피하기 위해서 명의를 변경해주는 것으로 사용될 때뿐이다.
최근 북인도에서는 권력을 가진 농부들은 명목상의 여성의 재산권마저도 합법적으로 박탈하기 로비를 벌이고 있다. 예를 들어서, 몇 년 전에 농민 계급들이 주류를 이루는 하리아나 주정부는 친정부모의 땅에 대한 상속권에 여성의 합법적인 권리를 대부분 무효로 만들기 위한 새로운 입법을 제정하였다. 이러한 움직임과 관련해서 하리아나 주의 여성들은 거의 아무런 저항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유일한 저항은 델리나 다른 도시 지역의 여성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결국 그 로비는 법정에 이 법안이 상정되었을 때 헌법불합치 판결을 우려한 대통령의 동의를 얻지 못하여 취소되고 말았다. 판잡 주에서 부유한 농민정당 중 하나인 아카리 달(Akali dal) 내에서 영향력을 가진 분과도, 부모의 땅에 대한 여성이 상속 할 수 없도록 주창하는 움직임이 있어왔다. 또한 전통적인 시크교(sikh)도들은 과부가 대가족의 땅에 대한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서 남편의 형제와 결혼해야하는 전통을 유지하려한다. 고로, 이런 공동체에서 여성은 자신의 이름으로 재산권을 향수 할 수 없다.
동시에, 이런 농민 계급은 딸에게 다우리(지참금)를 제공하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출한다. 소비용품과 신랑의 가족을 위한 현금 등을 포함하여. 이러한 거대한 지출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딸을 사물 화시키는 것을 정당화라고 땅에 대한 자신의 딸의 공유를 요청하기 위해서 사위에게 주는 뇌물이다. 이는 누군가에게 성장한, 가임의 미혼 딸이 있다는 것은 아주 깊은 문화적 두려움이다. 그래서 딸은 아무리 많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가능한 빨리 시집을 보내야한다. 이런 농민 계급이 여성의 토지소유권을 부인하는 것은 무거운 지참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상쇄되는 것이라고 때로 여겨진다. 이러한 협상은 딸은 경제적인 짐이고 여성은 쓸모 없고 가치 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한다.
딸의 탄생은 보통 아주 불길한 일, 종종 슬픔과 애통의 의식으로 여겨진다. 남성 상속자를 낳지 못하는 여성은 죄인으로 취급되고, 그녀는 가장 중요한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아주 많은 공동체에서 이런 남편들은 다시 결혼 할 수 있다-중혼을 금지하는 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동체로부터 전적인 동의 심지어는 격려를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내의 가치는 그가 남성 후계자를 생산하느냐에 따라 냉정하게 결정된다. 아들은 땅에서 일할 뿐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부계 가족의 땅을 지키고 부모가 늙었을 때 부모를 부양하는 역할을 한다. 직접적인 폭력에 의한 여영아살해는 과거의 일이 되었을지 몰라도, 여아는 그들 스스로가 죽도록 고의로 방치되기도 한다. 인도의 많은 지역에서, 1-5살 사이의 여아들 사이의 유아사망률은 남아에 비해 약 50%이상 높게 나타난다.(성비)
농민계급은 자신의 딸을 아주 멀리 시집 보내는 전통이 있다. 그래서 여성은 그들의 친정가족들과 매일매일 접촉하는 것을 저지 당한다. 딸들은 그들 부모가 살고 있는 마을의 남성과 거의 결혼을 하지 않는다. 가부장제 구조는 여성으로 하여금 부당한 대우에 저항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인도의 어떤 지역에서는 완전히 ’새로움‘의 생각으로 심지어 여성의 이름 자체가 시댁식구들에 의해 바뀌게 된다. 딸은 보통 ’다른 사람의 부‘paraya dhan’ 로 생각되어진다, 딸은 친정부모들에게 잠시 들렸다가는 손님으로 여겨진다, 그는 남편의 집에 진짜로 속하는 사람이다. 일찍 시집을 갈수록 좋은 일이다.
여성의 삶에 있어서 결혼이란 전환기이다. 그들은 시부모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친정부모의 중재를 구하는 것을 차단 당한다. 친정부모가 부당한 대우를 그만둘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그 결혼을 깨게 만들 것이다. 그 경우엔, 그 여성은 친정으로 돌려보내질 것이지만 그것은 아주 큰 재앙과 불명예로 여겨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딸을 심지어 목숨을 치르더라도 시집에 가서 계속 ‘적응’하라고 돌려보낸다. 결혼하는 딸에게 “딸아, 오늘 우리는 너의 가마doli를 너의 시집으로 보낸다, 너의 재arthi만이 그 집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충고한다.
여성은 행동의 자유와 독립적인 모임을 구성할 자유는 극단적으로 제한 받는다, 특히 북부인도 평야지역에서. 극단적으로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성이 마을에서 비공식적인 조직, 독자적 모임을 구성하려는 노력은 아주 불명예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가장으로부터 허락 받지 않고 어떠한 목적으로라도 여성이 집밖으로 나가는 것은 그녀의 치안에 있어서 아주 위태로운 일이다.
이러한 제한은 여성스스로 바깥 세상으로부터 가능한 멀리 떨어져 스스로를 격리시키게 한다. 많은 형태의 분리-얼굴에 베일을 쓰는 것, 혼자서 밖에 나가지 않는 것, 남성의 구역이라고 여겨지는 어떤 곳에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남성 혹은 나이든 사람들 앞에서 말하지 않는 것-들은 여성으로 하여금 계속 소외되게 하고,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와 접촉에 대해 남성에게 완전히 의존하게 만들고 있다. 그 결과 여성이 충분히 실제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가족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그들은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다. 농민계급 대한 몇몇 연구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여성들은 그들 가족의 수입의 분배와 지출에 대해서, 자녀의 교육, 혹은 그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자녀를 낳을 것인가에 대한 아무런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격리와 분리는 여성의 격무를 가볍게 하지 못한다. 몇몇 부유층을 제외하고, 농업에서 여성의 노동력을 완전히 면제할 수는 없다. 그러한 가정에서, 개인적 가사노동과 경제적 생산의 공적인 영역 사이의 관계는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얇은 것이다. 그래서 여성들이 농업가정의 기능을 수행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아주 긴 시간동안 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사실은 단순히 ‘가사 노동’으로 묘사되어지는 것은 집에 앉아서 면직될 수 있는 것을 보증하고 가족의 체면을 높이는 것이다.
남편이 죽거나 술주정뱅이기, 혹은 아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여성 혼자 가족의 농장을 돌보는 것임에도, 그녀가 농산물을 판매하기 위해서 읍의 시장에 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엔 그녀는 남성 친척이나 이웃들에게 대신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도록 도움을 구해야한다. 누가 그 농장에서 실제로 일했느냐와 상관없이, 대부분 남성들만이 거래를 하고 돈을 주고받을 수 있다. 생계를 위한 농장에서 아직 농사가 발전되지 않는 곳에서는, 곡식이 거의 돈으로 판매되지 않고 생활의 필수품인 소금 기름 등으로 물물교환 된다. 여성은 이때 시장에서 우세하고, 거의 모든 부족지역은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환금작물이 생산되기 시작되면서 여성은 시장에서 밀려나기 시작한다. 인도의 많은 지역에서 여성을 그런 곳(시장)에서 보여주는 것은 아주 불명예스러운 일로 간주되기 시작한다.
형편이 좋은 가정에서도 여성은 금방 쉽게 농사일에서 물러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은 대개 노동자를 구할 능력이 될 때에 농업노동에서 물러나가 된다. 특히 중농 가정에서는 노동력 고용은 여성노동의 증가로 이어진다. 여성들은 노동자들을 위해서 요리하는 무거운 짐을 감수해야한다, 게다가 고용된 노동자들과 함께 그들의 농장에서 추수하는 일을 감독하는 일을 수행해야한다. 몇몇 연구는 중간, 빈농의 가정에서 여성들은 일년의 특정시기에는 하루에 보통 16시간 이상 일하는 것으로 지적한다. 펀잡의 몇몇 젊은 여성들은 농부보다 덜 버는 임금노동자와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한다. 왜냐하면, 농부가정에서는 가족 구성원들과 고용된 노동자들을 위해서 그들의 전생애를 연기나는 아궁이(chulha) 앞에서 끊임없이 차빠띠chapatis와 채소요리를 하면서 보내야하기 때문이다.
여성노동은 평가절하 되어 있다. 심지어 잘 사는 농민계급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원시적인 상태에서 일을 계속한다, 가족의 소비수준이 상당히 증가하고 새로운 농사기술의 사용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면, 뻔잡지역의 한 가정 주부는 집 담 장의 모퉁이에 있는 아주 오래된 연기 나는 chulha(아궁이)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그 가족은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 두 가지 물건의 아내의 다우리로 샀다, 남편은 가까운 읍에 나가기 위해서 커다란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고, 트랙터와 다른 중장비들은 그들 농장에서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부유한 서부 우따르 뿌라데쉬(Uttar pradesh)의 마을에서 실행된 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사실을 보여준다. 여성들은 보통 7인 가족 기준으로 옥수수와 밀을 갈기 위해서 약 3시간을 소비한다고 한다. 그러나 부유한 농민 가족도 몇 푼의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 곡식 빻는 기계사용을 고려하지 않는다. 겨우 한 달에 9루삐(180원)에 해당하는 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이들 대부분의 여성의 하루 일과는 새벽 4시부터 시작된다. 여성이 하는 일은 금전적인 수입을 가져오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은 유용한 노동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수입창출의 기회 박탈과 임금노동으로부터의 배제는 여성들이 가족들을 위해서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상관없이, 여성을 가족의 짐으로 여기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쉽게 희생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다우리의 문화는 이런 사조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남성들의 동맹과 여성들의 소외
부유층과 중산층 농민계급 남성의 힘의 첫째 원천은, 땅의 지배와 다른 경제적인 자원에 기초한, 직접적 혹은 확대된 친족 남성 사이의 동맹에서 유래한다. 여성들은 자신들에 대한 부당한 행위-학대-와 같은 것에 대항하여 스스로 정당방위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여성들 스스로를 위해서 단체협상을 할 조직을 만들 능력도 없다. 반면에 남성들에게 결혼은 그들의 동맹을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있어 결혼은 친정가족들이라는 작은 발판마저 잃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에 대한 평가절하의 중요한 징조는 다우리의 전파와 증가로 들 수 있다. 정당과 사회복지 그룹들, 여성단체들에 의해서 몇십년동안 선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우리에 대한 요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이전에는 다우리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던 그룹과 혹은 다우리가 존재하지 않았던 그룹으로까지 널리 펴지고 있다. 몇몇 연구는 다우리가 얼마나 많이 확대되고 있는 현상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최근까지 신부대를 지불하던 일반적인 풍습을 가진 공동체에까지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서, Uttarakhand 산악지대에서 남부의 몇몇 공동체에서 다우리는 얼마 전까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최근에,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에서 다우리 없이 결혼식이 성사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심지어 다우리의 전통이 거의 없었던 소위 말하는 낮은 카스트 혹은 계급들 사이에서도 결혼의 전제조건으로 다우리의 실제적인 양은 점점 더 중요하게 생각되어지고 있다.
여성의 삶에 대한 평가절하의 중요한 결과는 인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남성들에 비교해서 여성들의 높은 사망률이 지역학적으로 전파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여성의 낮은 성비로 인구조사에 나타나고, 북부 인도의 평원지역에서 특히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몇 해 전까지 여성의 성비가 약간 높았던 거의 대부분의 남인도 지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남인도에서 여성인구부족 발생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중산층 부농에 의해서 지역적 통제의 통합과 동시에 일어났다. 이런 계급의 문화적 지배권은 여성의 생존권의 기회를 줄이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남부의 몇몇 공동체는 얼마 전까지 만도 모계주의와 처가거주를 실시하는 사회였고, 남성의 지배의 증가와 여성의 소외와 의존성을 수반하는 급속도로 부계주의와 시댁거주 가족구조로 변해 간다.

농민계급의 가정
도시 인구의 대다수의 비율은 아직도 시골에 가까운 가족과 경제적인 뿌리를 두고 있다. 인도에서 산업역군 계급의 대부분은 중하층 농민계급 출신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다양한 방식으로 고향에 발판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특히 북인도 도시에서는 도시의 노동계급의 남성들 대부분은 고향에 그들의 가족을 남겨두고 이주한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결혼동맹은 엄격하게 같은 카스트 내에서 같은 종교적인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져, 고향에 계속적으로 정착한다. 마을과 연결되는 삶은 남성들이 마을을 떠나왔을 때에도, 변함없다. 예를 들어서, 펀잡의 jat 농민계급이라면 영국이나 캐나다처럼 먼 거리까지 이주를 해도, 그들은 대개 그들 마을로 돌아와 같은 종교와 카스트 그룹에서 신부를 찾는다. 도시의 교육받은 엘리트, 관료들, 군인 경찰 중에서도 큰 도시로 그들의 아들을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보낼 수 있는 부유한 농민 가족 출신이 많다. 인도에서 큰 사업가들을 대부분 지배하는marwari의 많은 산업가들은 내부 가족구조와 사업을 조정할 그들 마을과 친족의 뿌리를 남겨둔다. 상층에는, 거대한 확대가족 사업과 같이 사업의 기능을 가부장제의 가장과 그의 다양한 아들들 혹은 가까운 남성 친족들이 주요 관리직을 장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도시에서 대부분 사회적 그룹은 중산층 농민계급의 가족구조의 성격과 지배적 문화의 직간접적인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공식적으로 교육받은 엘리트 출신을 포함하여 도시에서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는 인도시골마을의 깊이 뿌리를 둔 규범의 반영이다. 여성에 대한 억압 문화는 단지 전통적인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가장 현대적인 경제적 정치적 발전의 산물과 더 많은 관련이 있다.

가정생활=인자한 관점
이 글은 여성의 삶을 억압하는 요인으로 인도 가족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서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인도 가족구조의 중요한 편차와 가족들의 삶에 대한 많은 긍정적인 관점들도 있다. 가정 생활은 다양한 종류의 따뜻함, 사랑 보살핌, 계산할 수 없는 주고받는 것 잊을 수 없는 경험들과 같이 아주 많은 것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글은 권력관계에 초점을 두고 분석한 것이다. 가족구조의 지배적인 형태는 남성의 손에 쥐어진 거대한 확인되지 않는 힘에 집중되어 있는 동안에, 모든 남성들이 그 힘을 반드시 남용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보살핌과 정의로 모든 가족구성원들의 관심을 살피는 인자한 가부장의 전통은 일반적으로 남아있고, 여성들의 이기심을 없애고 모성을 키우는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지배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남성 가족구성원은 동시에 사랑스럽고 자상한 아버지이고 형제이고 아들일 것이다.
여성의 자유와 권리는 이런 압도적인 가족구조 안에서 심각하게 제한 받고 있다. 또한 여성에 대한 존경과 숭배의 특정한 형태, 어머니로서, 따른 전통이 강하게 나타난다. 최근에 들어서, 인도에서 가족은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사회적 감정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이다. 가족은 여성들의 삶에 가장 중앙에 자리 잡고 있고, 그들의 모든 삶과 에너지는 가족이 잘 살게 하는데 쏟아 붓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가끔 가족 내에서 상당한 위신과 영향력을 가지기도 한다. 의존성과 제한은 여성에 대한 일반적이지 않는 숭배와 보살핌과 공존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어쨌든, 가족 내에서 여성들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만약 그들이 가족 내에서 학대를 당한다면 그들의 의존성과 취약성 때문에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가족 밖에서 여성이 그들을 지원할 만한 어떠한 대안적인 지원도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진정한 삶에서는 억압자와 피억압자 사이에 선명한 분리를 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 여성을 때리고 학대하는 것은 언제나 남성만은 아니다. 자주 여성들은 또 다른 여성들의 손에 의해서 잔인하게 학대당하고 고통받는다, 시어머니에게 혹은 시누이에게 학대당하는 며느리와 같이. 여성이 다른 여성을 학대할 때는 여성으로서 그녀의 힘이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가부장제 가족 내에서 같은 그룹으로서 남성의 총체적인 힘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여성들은 남성이 주도하는 가족구조 안에서 지배와 억압의 대리인으로서만 힘을 가질 수 있다. 신분상승을 원하는 여성은 대부분 가장 힘있는 남성 뒤에 있을 때, 혹은 남성의 허락이 받은 사람이다.

농촌의 노동과 여성
땅을 소유한 농민 계층 사이의 가족구조와 달리, 무토지 가난한 가족들은 여성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덜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무토지 임노동 여성 노동자들은, 그녀가 얼마나 많이 착취당하는 것, 임금을 버는 사람으로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그녀의 벌이로 가족을 부양하는 기여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점점 더 그들은 일할 기회는 줄어들고 있지만, 이들 여성들은 그들 가족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벌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하나의 장점은 그녀가 가진 다른 약점들을 상쇄하기엔 훨씬 부족하다. 왜냐하면 그녀는 가난하고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런 여성들의 생존을 위한 싸움은 특히 가혹하다. 그들은 대부분 천하고 농업에서 소모적인 일을 하고 있으나, 남성들 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다. 동일임금법이 존재하고 다른 법에서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라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서, 전통적인 인도의 대부분 벼 경작지역에서 모내기는 여성들이 독점적으로 하는 주요한 일이다. 이런 작업은 대단한 육체적인 인내와 기술, 다년간의 경험이 요구된다. 모내기는 보통 뜨거운 태양아래서 질퍽한 물에 서서 구부린 자세로 일한다. 물에는 또한 곤충과 기생충들이 많아 물리면 심각한 병에 걸리기도 한다. 종종 거머리가 다리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남성들을 비교적 가벼운 노동을 한다, 손으로 조작하는 기계를 가지고 살충제를 살포하는 것과 같이, 이는 비교적 기술을 요구하는 것으로 여겨져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
남성들에 비해 더 많은 노동집약적인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여성 농업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남성 임금의 40-60%를 받고 있다. 1974-75년 정부의 농촌노동력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농업 노동자 계급에 속한 남성과 여성의 일수입 사이의 불균형은 1964-65년과 19754-75년 사이의 약 50% 이상 증가하였다. '기술'이라는 분류되는 특정한 일은 더 나은 임금을 받고, 많은 일을 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지루하지도 않고, 시간을 많이 소비하는 것도 아니고, 생산적인 가치가 더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 일이 여성에 의해서 행해지고 있다는 이유로, 그 노동은 평가절하 되고 더불어 값이 낮은 일된다.
점진적인 기술의 발전은 여성들이 농장에서 허용된 몇몇 낮은 임금의 일마저도 점점 더 박탈해 간다. 예를 들어서, 서부 uttar pradesh 주에서 실시한 한 한 연구는 여성은 일에서 쉽게 내몰림을 당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튜브로 하는 관계시설은 수동식 관계시설을 대체하는 것과 같이. 이전에는 농장 주변의 작은 도랑에서 물통으로 농장까지 물을 가져와 뿌렸다. 이때 여성들은 매우 활발히 일했다. 이제 디젤 펌프가 설치되고 물을 직접적으로 농장에 보내고 있다, 여성들은 새로운 관계시설에 접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간단한 기술이 들어오면, 경작지의 관계시설은 숙련된 일로 여겨지기 시작한다. 이 일을 통해서 더 많은 임금이 지급된다. 이는 보다 덜 노동집약적이지만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한다, 또한 남성에게 부과되는 일이다. 유사하게 생계농업에서, 소똥을 모아서 머리에 이는 짐과 관련 있는 비료를 주는 곳에서 이것을 비료로 만들어서 머리에 이고 몇 번이고 농장까지 왔다갔다 반복하는 것과 손으로 농장에 뿌리는 일,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농민 가정의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그 가족들이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살 수 있게되자마자, 기계로 농장에 비료를 뿌리는 일과 같은 일은 일반적으로 고용된 노동자들인 남성들에게 독점적으로 주어지게 되었다. 비록 이 일이 아무런 기술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노동자들은 이러한 일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지게 된다.
시골에서 옥수수 혹은 밀 쌀을 손으로 가는 것과 도정하는 작업은 한때 수백 만명의 여성을 고용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쌀과 밀가루가 공장에서 도정되고 분쇄되면서, 많은 여성들은 이 일도 박탈당했다. 점점 더 어떠한 새로운 고용이 창출되든지 간에 기계화는 여성들에게 거의 아무런 이익을 주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대화와 기계화는 여성들을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되었다.
전통적으로 여성들은 수확에 있어서 중요한 일을 담당했었다, 거의 모든 수확과 탈곡의 과정을 수행했다, 그러나 기계화된 수확기 혹은 탈곡기가 소개되면서, 여성은 그들의 일을 남성들에게 즉각적으로 빼앗겼다. 유사하게 제초제의 소개로, 여성들은 제초작업을 잃게 되었다. 이런 예들은 아주 많다. 여성들이 전통적인 일을 잃어 가는 속도는 더욱더 빠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1901년 인구조사는 인도의 노동력 중 남성 1000명 당 여성은 525명이라고 기록한다. 1971년에 노동력의 이러한 숫자는 남성 1000명 당 여성인구 210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더욱더 밀려나고 있고 더 극빈자가 되어 가고 있다. 시골에서 소개되는 아주 낮은 수준의 기술도 여성의 고용기회에는 아주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농업 생산의 어떠한 부분에 적용되는 약간의 개선이라도 여성들을 그들의 일에서 즉각적으로 내모는 것이고, 남성들은 같은 일을 새로운 연장과 더 많은 임금으로 수행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로서, 펀잡, uttar pradesh와 haryana와 같은 지역들은 농업영역에서 실제적인 진보가 있었다, 개선된 기술, 화학비료, 관계시설의 소개로 생산이 증가하게 되었고, 생계형 농업을 하고 있는 '후진적인' 다른 지역에 비해서 농업에 있어서 여성들의 참여가 점점 줄어들었다. 펀잡에서는 예를 들어서, 가난한 무토지 임노동 여성들이 매년 45-60일 보다 적은 날에 고용되어 일한다는 것은 몇몇 연구들은 확실시 해준다. 일년의 다른 날들은 목화와 밀을 추수한 곳에서 이삭줍기, 꼴모으기, 동물 헛간을 청소하고, 소똥을 모아서 운반하고, 지주의 가축을 돌보는 것과 같이 점점 더 주변적인 일을 하면서 겨우 생계를 유지한다. 펀잡과 서부 우따르 쁘라데시 주에서는 아주 많은 수의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부족이주남성들은 계절적인 고용을 찾아온다. 지역의 무토지 여성노동자들이 구할 수 있는 작은 농장의 노동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여성의 기술로 접근하길 배제는 종종 알려진 것보다 더 기초적인 수준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면, 농장에 비료 주기, 파종, 수확, 탈곡, 가공, 저장, 판매 등과 같이 농업 노동에서 실적인 경제에서 여성들이 대부분 수행했다. 남성들이 수행하는 유일한 농업노동은 쟁기질이었다, 여성들이 쟁기질은 여성들에게 금지되었고, 이는 여성들을 남성들에게 의존하게 한다. 여성들이 신체적으로 쟁기질을 할 능력이 없다는 논쟁을 지지해줄 만한 증거는 없다. 심지어 12-18세 남자아이도 쟁기질을 하고 있으나, 그보다 건장한 몸을 가진 여성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심지어 즉 아주 먼 거리의 숲에서부터 땔감과 대나무를 머리에 이고 수 없이 반복하는 일 등과 같은, 그녀가 더 힘든 일을 하고 육체적으로 불굴의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약 여성이 금지된 것을 만지는 것은 남성들로만 구성된 마을자치위원회에 의해서 무거운 벌금형에 처해질 것이다. 생산의 기본적인 연장인 쟁기를 다루는 것이 여성들에게 금지되었다면, 트랙터와 같은 발전된 기계는 더욱더 꿈을 꿀 없고 여성들의 삶은 더욱더 황폐해질 것이다.
유사하게, 장인계급에서, 여성들은 모든 조력적인 역할과 준비단계의 일을 한다, 여성들은 아주 간단한 기술을 수행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도공의 집안에서 여성은 좋은 흙을 찾고, 적절한 배합으로 흙반죽을 만드는 것, 가마에 옹기를 굽는 것 등과 같이 시간을 많이 소비하는 일을 한다. 힘을 상징하고 기술을 상징하는 옹기의 바퀴(물레)를 돌리는 일은 대부분 남성 독점한다. gujarat 주의 mehasan지역에서 베틀직조공집안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모든 남성 구성원들은 베틀 일을 하고 있으나, 이 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1.5배의 부가적인 인원이 요구된다. 이 부과인원은 그 집안의 여성과 아이들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모든 베틀작업은 항상 여성 노동자들에 의해서 지탱된다. 여성들의 활동은 직조를 지원하고 있으나, 그들은 독자적으로 분리되어서 그들 노동에 대한 임금을 받지 않는다, 그들의 노동은 직조의 비용을 계산할 때 고려되지 않는다. 여성들은 또한 혼자서 베틀을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성들이 가내생산 수준에서 중요한 기술에 접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남성들만이 '장인'으로 인식되게 한다. 그들은 더 많고 더 큰 노동을 제공하고 있지만 여성들의 노동력은 계산되지 않을 뿐 아니라 남성에게 의존하고 보조적인 존재로 남게 된다.
기초적인 기술에서 여성의 배제는 운송수단의 사용에도 나타난다. 많은 부족지역에서는 숲의 생산품을 모으고, 숲에서 땔감을 모으는 일은 실제경제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이 지역에서 여성들이 머리에 나무를 수없이 여 나르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남성들은 숲에 거의 가지 않는다, 그들이 숲에 간다고 해도 그들은 거의 그들 머리에 나무를 이고 오는 일도 거의 없다. 대신, 그들은 황소 달구지에 나무를 실어 온다, 황소 달구지는 여성들이 절대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트럭은 고사하고 자전거나 템포를 사용하는 것도 여성들에게는 금지되어있다.
또한, kerala 주에서 어부여성들에 대한 연구에서는 여성들은 점점 더 그들의 작은 사업을 남성들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생선행상은 여성들의 직업으로 주도되고 있었다. 여성들은 바구니 가득 생선을 머리에 이고 가까운 마을로 집집마다 돌아다닌다. 보다 보수가 많은 도시와 수출시장으로 공급되기 시작하자, 남성들은 이 사업의 전부를 점유했다. 남성들은 짧은 시간에 여성들이 사용할 꿈도 못 꾸는 그런 운송수단, 트럭과 다른 동력이 있는 운송수단으로 더욱더 많은 생선을 운반한다. 심지어 집집마다 판매하는 것도, 여성들이 걸어서 혹은 생선이 뜨거운 열기에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수 마일을 걷는 대신 뛰다 해도, 남성들은 자전거로 생선을 운반함으로 여성들을 능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행상에서 더 힘들게 일하도록 강요받고 있지만, 그들이 노동의 대가는 더 적어진다.

여성이주자들
이런 차별과 함께, 여성들은 더 이상 고향에서 임노동을 구할 수 없을 경우, 가난한 빈농이 그들의 땅을 잃었을 경우, 혹은 남편에게 버림을 받거나 쫓겨났을 경우, 그들은 다른 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서 떠나지만, 이들이 더 잘 살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만약에 이러한 여성들이 광산에서 일자리를 찾을 경우에는, 그들은 reza coolie(짐꾼)와 같은 일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은 가장 낮은 임금이 지급되는 일일 뿐 아니라, 노동집약적이고, 어떠한 직업에 대한 발전이나 비전을 기대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한번 reza(짐꾼)는 영원한 reza(짐꾼)다. 만약에 그녀가 벽돌 가마에서 일한다면, 그녀는 또 다시 성에 기초한 노동 분화를 똑 같이 직면하게 된다. 여성들은 대부분 머리에 물건을 여 나르는 것과 같이 단순한 일이 허용된다. 여성들에게는 조형, 성형, 벽돌 굽기 등과 같이 더 기술이 필요하거나 비교적 임금이 높게 책정된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건설현장에서도 이주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거부되어진다, 그들은 오직 머리에 흙, 회반죽, 벽돌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여 나르는 것과 같은 단순한 일만이 허용된다. 그러한 배제가 허용되는 법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석공, 목수와 같이 모든 기술직은 여성들에게 효과적으로 닫혀 있다. 인도에서 대다수의 여성들은 비정규직(unorganized)에 종사하고 있다, 6% 이하의 여성노동자들만이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조직되지 않는 곳의 대다수의 작업장은 사실상의 예속된 조건이 특징적이다, 그런 곳은 최저임금보다 저임금이 지급되고, 어떠한 고용보장도 없고, 최소한으로 존재하는 안전과 노동법이 아무런 처벌 없이 무시되는 반면에 일당을 매일매일 지급 받으면서 노동자들은 일하고 있다.
가난한 부족민들에게 가장 잔인한 8-9월에, 채용업체가 마을을 방문한다. 마을에서 인력알선 업체는 반사회적 요소들(젊은 남성들)과 연결 돼 있다. 이런 남성들은 술과 음식 또는 다른 뇌물을 제공받는다. 이런 마을남성들은 젊은 부족 여성들을 예속노동상태를 받아들이도록 유혹한다. 젊은 여성 adivasi의 부모들에게 선불을 지급한다. 각각의 여성 부족민들은 100-150(3000-4500원)루피에 선불로 여성 업체에 예속된다. 그들은 다른 고용주 밑에서 일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그들이 일반적으로 예속된 벽돌 가마에서 일하는 것을 거부하지 못한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에 대한 착취에 완전히 거부할 수 없고 완전히 예속되고 무력한 존재가 되어 간다. 벽돌가마에서 그들에게 주로 굽지 않는 벽돌과 구운 벽돌을 머리에 이고 옮기는 일이 주어지고, 그런 일을 통해서 그들은 대부분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지급 받는다. 그들의 이런 빈약한 임금 중 일부는 그들의 주인에게 묶여 있다. 주인들은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게 될 우기 때 돈을 모아서 주겠다고 하고 그들의 박봉을 저당 잡는다(외국인노동자의 적립금처럼). 어쨌든, 이러한 돈은 그들에게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떠날 때 받는 돈은 사리 한 벌과 열차 표 한 장이 전부다. 이러한 여성들은 거의 무장한 보초가 그들을 따라다니지 않고서 일자리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제공된 오두막은 돼지우리보다 더 나쁘다. 그들은 심지어 여름이 절정인 순간에도 작렬할 듯이 뜨거운 벽돌가마 가까이 살아야 한다. 그들은 일주일에 7일을 일하고, 하루에 12-14시간 동안 일을 한다. 그들에게는 휴식이 없고, 휴일도 없다. 이런 작업장에는 깨끗한 마실 물에 대한 아무런 규정이 없다. 또한 변소와 소변에 대한 아무런 규정이 없기 때문에, 여성들은 작업장 근처의 열린 공간에 웅크리고 앉아서 배변을 해야한다. 만약 그들이 일하는 동안 다쳤다면, 의료혜택은 불구하고 응급처치도 제공되지 않는다. 이런 여성들은 아주 다양한 형태의 성적 착취의 대상이 되고 있고, 강간과, 작은 이익을 위해서 성 상납(뇌물)을 강요받거나, 주인 혹은 감독의 첩으로 살기를 강요받는다. 경험이 많은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에 대한 채용업체로 활동하도록 만들어지기도 한다.
진보적이고 완전한 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여성들에게는 왜 어떠한 개선도 없는지 이유는 분명하다. 이는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들에 대한 착취를 깨닫지 못하거나 혹은 그들이 분노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아무리 진보적이고 정치적인 활동가라도 그렇게 잔인한 착취 하에서 사는 사람들과 대면하면, 인간으로서 그들의 권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계몽‘ 혹은 의식의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으로 문제는 거의 해결되지 않는다. 여성들이 그런 잔인하고 억압적인 작업환경을 속에 있는 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디에도 돌아 갈 곳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을 처음 그들의 집에서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은 가난과 빈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행해지는 차별들 때문이다. 대부분, 그들이 떠나온 마을의 상태는 그들이 일하는 작업장 보다 훨씬 열악하다. 여기선 적어도 하루에 두 끼씩은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약간의 돈을 모아서 집에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에, 벽돌 가마와 채석장 혹은 남성과 여성들이 예속노동자로 불법적으로 고용된 작업장에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로 파악된 사람들에 대한 해방하려는 진심 어린 노력들이 있었다. 이러한 노력들의 대부분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종속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한 무리가 풀려남과 동시에, 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다. 많은 경우, 종속 노동에서 풀려난 바로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찾을 시간도 주지 않고 다시 돌아온다, 똑 같이 비인간적인 착취자들에게로.
여성들은 극심하게 가난한 지역에서 땅을 잃거나 농작물을 망친 가뭄 해에 이주해야 한다. 비하르 부족 출신의 자스마니 순디(jasmani sundi)의 경우를 보자. 그의 친정 가족은 3명의 오빠와 결혼한 언니가 한 명 있다. 그녀의 형제 중 한 명은 그 마을을 떠났다 도시에서 많은 임금을 주는 일자리를 찾았기 때문에. 자스마니는 다른 형제들의 도움으로 농장에서 일을 돌보고 있었다; 도시로 떠난 오빠는 돈이 필요해서 그 농장을 저당잡아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면서 그녀의 의견을 묻지도 않았고, 그녀의 몫으로 한푼도 남기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 부족들은 여성들에게 아무런 재산권이 없기 때문이다. 땅은 부계에 의해서 남성 상속자에게만 상속된다. 자스마니는 고향에서 그녀를 도와줄 아무런 수단도 없이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가까운 산업 도시로 이주하여 짐꾼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살루까 순디를 만났고, 그들은 부부로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 도시에서 일을 해서 그녀는 약간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이 모든 돈은 남편의 집을 고치고 씨를 구입하는데 사용되었다. 그가 그녀를 학대하기 시작하자, 그녀를 때리고, 다른 아내를 하나 더 데려온다고 협박하고, 그녀에게 ‘그의’ 집과 농장에서 나가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가 그의 집을 고친다고 그녀에게서 가져간 모든 돈을 돌려주면 집을 떠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가 그녀의 요구대로 돈을 돌려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자스마니는 그가 계속 그녀를 때릴 경우, 그녀는 광산에서 혹은 벽돌가마에서 머리에 짐을 나르는 일을 해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땅과 여성의 관계는 아주 불확실하기 때문에, 그들의 땅에 대한 권리도 최소한이다. 마을에서 여성들이 고용될 기회도 심각하게 드문 일이다. 만약 그들의 가족이 그녀를 학대할 경우, 그들은 발판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그러므로 그들은 직장에서 착취에 대항하기도 더 어렵다. 그 결과, 가난한 가정의 여성들은 빈곤과 기아와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서양을 포함해서 다른 많은 국가에서처럼, 사회의 가장 가난한 부분에서 가장 가난한 가정들은 여성들이 가장이다. 인도에서 이러한 가정의 숫자가 20%에서 50%로 첨예한 가난과 함께 그 비율은 증가하고 있다. 정책 입안자들은 그들 자신의 계급의 경험에서 유래한 ‘남성은 돈을 버는 사람이고 여성은 가정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신화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남성에게 가족을 위해 일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편향적으로 한다, 여성들은 직업이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조직된(정규직)에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는 곳이라면 여성은 완전히 무시되고 또 아주 극소수의 여성이 대부분 가장 낮은 단계의 일을 수행한다, 권리나 이익이 없는 비정규직으로 주변부 일을 수행한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현대적인 조직된 산업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몇몇 직업에서 점점 더 밀려나고 있다.
조직된 부분에서 고용의 3가지 주 원천은 공장, 광산, 플랜테이션농장이다. 1951년과 1971년 사이에 공장에서 총 고용의 여성들 비율은 20% 이상 감소하였다. 예를 들면, 1944년에 황마(jute)산업에 고용된 전체 인구가 289,000명 중 38,957명은 여성이었다, 거의 전체 노동자들의 14%에 해당된다. 1972년에는 겨우 6,642명의 여성들이 전체 황마산업에서 남겨졌다. 이들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여성 노동자가 퇴직을 하면, 그녀의 자리에 새로운 여성 노동자가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엔 남성 노동자로 대치된다.
1951년과 1971년 사이에 광산산업에서 여성의 비율은 21.1%에서 11.9%로 줄었다, 그것은 47.4%이다. 가장 높은 감소를 보이는 곳은 탄광이었다. 1919년 탄광 노동자의 38.1%가 여성노동자들이었다. 매 10명이 땅속에 고용되었고, 그곳에는 여성들도 같은 종류의 일을 했다.
탄광에서 전체 고용이 증가하는 반면에, 아주 경미하게 1951년에 3.52 lakh에서 1971년에 3.82 lakh으로, 이런 고용에서 여성의 고용비율은 15.7%에서 5.2%으로 급감하였다. 최근에 탄광경영은 여성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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