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수(아시아평화인권연대 사무국장)
아시아평화인권연대가 출범하고 첫 사업은 전쟁의 비참함과 난민생활의 고통을 알리는, 그래서 왜 우리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를 일깨우는 ‘사진전’이었다. 2월 13일부터 한달간 아프간난민캠프와 태국의 미얀마난민캠프를 돌아보는 인권여행을 통해 나는 사진 속에서 만났던 난민캠프의 어린이들을 만났고, 태국에서 난민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살아가는 버마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파키스탄 국경변의 난민캠프로 가는 길은 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뀌는 것만 같았다. 연두빛 들판은 국경변으로 갈수록 사라졌고, 황무지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난민캠프는 쓸쓸하고 삭막하기만 하다.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천막들은 거의 다 사라지고 대신에 흙집들이 자리했다. 문도 없는 작은 흙집에 온식구가 함께 산다. 아프간으로 돌아간 난민들의 집은 폐허처럼 남았고, 물도 귀하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캠프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맑은 미소를 간직한 어린이들을 만났다. 학교에서 배운 짧은 영어로 말을 건네는 그들을 보면서, 한국 사람들의 도움이 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흙으로 만들어진 교실에는 어린이들의 그림과 낡은 친판이 걸려 있었다. 방학중이라 수업하는 어린이들을 볼 수 없었던 아쉬움을 뒤로 하고 태국으로 향했다.
태국에 살고 있는 버마 사람들의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국경변을 따라 건설된 7곳의 난민캠프에만 10만 5천 여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버마 난민은 태국정부가 직접 관리하며, 전투난민만을 난민으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버마의 정치적 불안, 군부의 탄압,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국경을 넘은 버마 사람들은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국제사회의 지원 또한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들은 대개 농업노동자로, 건설노동자로, 공장노동자로 일하고 있으며, 이들의 수를 작게는 100만, 많게는 150만까지 추산하고 있다. 난민캠프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국제 NGO들의 관심과 지원을 받고 있었지만 더 나은 삶을 누리기를 원하는 난민 젋은이들은 캠프를 떠나 미등록상태로 일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태국에는 버마문제에 관심을 가진 다양한 NGO들이 활동하고 있다. 버마내 소수민족들을 지원하고, 정치범 석방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버마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이들의 자녀를 교육하는 소규모의 학교를 운영하기도 한다. 특히 태국 동부의 매솟에는 많은 버마 이주노동자들이 공장에서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의 고용주는 법에 명시된 최저임금도 지금하지 않고 있다. 지금 태국에서는 버마 이주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최저임금 지급소송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나는 그들로부터 승리의 소식이 전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인권여행을 다녀오고 다시 일상의 업무로 되돌아왔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아프간 난민캠프에서 내게 꽃을 꺾어 건네주었던 벙어리 소녀, 그녀는 거친 손이 부끄러워 자꾸만 도망치면서도 계속 내 주위를 맴돌았다. 매솟의 신시아클리닉에서 만났던 젊은 남성, 그는 국경을 넘어오다 지뢰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충격과 고통 속에서 내뱉는 신음소리에 나는 절로 진저리를 쳤다. 총성은 아직 멎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