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기 인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 신부)
우리는 한때 ‘외국’이란 말을 들으면 뭔가 염소처럼 꿈꾸는 듯한 눈이 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이고, 타지마할이 있는 인도, 만리장성의 중국, 에베레스트산 밑의 네팔에 대해 신비한 동경을 가지고 그 나라 사람들을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경제가 나아지면서 그들에 대한 태도는 돌연 바뀌게 되었습니다. 밖에서 만난 그들이나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그들이나 할 것 없이 우리는 그들을 함부로 대하고 무시하고 불친절하게 대합니다. 특히 가난한 아시아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은 소위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3D 업종에 종사하면서도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불법체류자라는 멍에를 쓰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꿈의 상징이었던 ‘외국’이란 말이 차별의 상징으로 바뀐 서글픈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또 한 편으로는 우리는 항상 우리만을 생각하고 살곤 합니다. 우리에게 다가 온 그들의 나라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그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반성해보아야 합니다. 첫째는 우리도 한 때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그 2, 3세들이 해외에서 코메리칸으로 혹은 지문날인 등으로 차별 받는다는 사실을 접하면 분노를 느끼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주노동자들에게 보내는 소외와 홀대의 눈길은 바로 우리 윗 세대들이 받았던 서러움의 눈길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외국인에 대한 동경과 차별은 겉보기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비겁한 노예근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과 유럽에서 온 백인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동경과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이들에게 말 한 마디 붙여보려고 갖은 애를 씁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아시아권에서 온 외국인들은 마치 몹쓸 균이나 가진 사람으로 보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박노자교수는 그의 저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자신은 피부가 하얀데도 러시아인이라고 밝힌 순간, 한국인들로부터 차별적인 시선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이러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의 뿌리가 개화기 미국, 일본 등으로부터 받아들인 인종주의라고 지적했는데 참 적절한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 우리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버마가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었고, 인도가 우리의 평화를 위해 애써 주었습니다. 우리가 5월 광주로 신음하고 있을 때 전 세계의 많은 양심 세력들이 우리의 진실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아프간, 이라크, 인도네시아 아체, 버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까?
우리사회에서는 지금, 군부독재하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인권유린의 상황을 극복하고 잃어버렸던 기본권들을 찾기 위해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웃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리고 한국사회에 들어 온 그들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만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는 지금 반민주적 인권탄압에서부터 노동 착취 그리고 살육에 이르기까지의 처참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위해 나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요, 인류애를 나누는 일입니다. 아시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인권유린을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이 이곳 부산에서 열심히 활동하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잡지가 아시아의 여러 곳에서 소외되고 홀대받는 사람들의 따뜻한 벗이 되기를, 그리고 그들의 벗들을 많이 만들어 가는 잡지가 될 것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