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장기수들 석방이 중동평화 지름길
2006-09-06 오후 5:12:47 입력 ⓒ르몽드 코리아 목록으로
(ⓒ김재명) 하마스요원들이 미국기를 불태우고 있다(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라말라)
사미르 알-쿤타르. 1979년 2명의 이스라엘인 부녀를 죽인 혐의로 무기형을 선고 받았다. 그에겐 가족들의 면회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병사 납치작전(7월12일)은 헤즈볼라 지도자 셰이크 하산 나스랄라가 쿤타르의 가족들에게 했던 석방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쿤타르는 2004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사이의 죄수-포로 맞교환 때 이스라엘이 거부함에 따라 풀려나지 못했다.
2006년 여름의 중동 유혈사태로 말미암아 팔레스타인 죄수 석방 문제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 감옥에는 약 9,700명 가량의 팔레스타인 죄수들이 갇혀 있다. 잡범들도 물론 있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유혈투쟁 과정에서 붙잡혀 들어온 정치범들이 대부분이다. 15년 또는 20년 이상의 징역형을 언도받은 장기수들이 많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지도부도 상당수는 지난날 이스라엘 감옥을 거쳐 온 경력을 지녔다. 따라서 아직껏 감옥에서 장기수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부채를 느끼고 있다. 장기수 가족들은 “당신들은 옛 동료를 잊고 있느냐”며 죄수 석방 문제에 힘써 줄 것을 주문해 왔다. 2005년 이스라엘은 900명의 팔레스타인 죄수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석방일이 얼마 남지 않거나 잡범들이 대부분이어서 혹시나 하고 애태우던 가족들을 다시 울렸다.
이스라엘의 온건파들과 평화주의자들은 정부의 행형정책에 비판적이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한꺼번에 팔레스타인 죄수 석방이 어렵다면, 우선적으로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 이전에 붙잡혀 이스라엘 법정에서 장기형을 언도받았던 팔레스타인 죄수들을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라파트 후계자‘ 바르구티 풀려날까
팔레스타인 죄수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 마르완 바르구티(47세)다. 그는 고 야세르 아라파트의 직할정치조직이자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안의 최대정파인 파타(Fatah) 서안지구 사무총장 출신이다. 2004년 이스라엘군에 붙잡혀 구속될 때까지만 해도 아라파트의 권좌를 이어받을 신세대 후계자로 꼽히던 인물이다. 서안지구 정치중심도시인 라말라에서 그를 2000년과 2002년 두번 만났을 때, 그는 “지금의 인티파다(intifada 봉기)가 3년쯤 갈 것이고, 지금은 힘들지만 결국은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는 장기적인 전망에서 낙관론을 내비쳤다.
(ⓒ김재명) 마르완 바르구티 전 파타 서안지구 사무총장. 2000년9월말부터 시작된 인티파다 과정에서 이스라엘에 붙잡혀 복역 중인 최고위직 인물이다.
그러나 바르구티는 곧 체포됐고, ‘테러 교사’ 혐의로 이스라엘 법정에서 5회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 무렵 이스라엘 외무장관 실반 샬롬은 “바르구티는 그동안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인 테러공격에 연루돼 있는 탓에 그가 죽는 날까지 감옥에 있게 될 것”이라며 사면 가능성을 부인했다. 형량대로라면 살아서 바깥세상 자유를 누리기 어려운 처지다.
바르구티의 석방은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쪽이 2000년 이래 이어지는 중동 유혈사태에 ‘피로 현상’을 보여 평화 무드로 바뀌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온건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극적인 정치적 협상 타결에 따라 새로운 평화이정표(road map)가 마련되는 경우다. 또는 이스라엘이 대타협을 모색하면서, 바르구티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죄수들에 대한 형집행정지와 대사면을 하나의 카드로 내밀 수도 있다. 지금의 중동 긴장상황을 봐서는 실낱같은 희망일 뿐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각료 가운데는 죄수업무장관(Minister for Prisoner Affairs)이란 직함도 있다. 죄수업무부엔 300명의 공무원들이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팔레스타인 죄수들의 상황을 살피고 있다. 그만큼 죄수 문제가 중요한 이슈다.
이스라엘 병사는 ‘버려진 카드’인가
지금껏 인질-죄수 맞교환 전례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2004년 1월 헤즈볼라에게 4년 동안 인질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 기업인 1명과 이스라엘군 시신 3구와 맞바꾸는 조건으로 430명의 팔레스타인 죄수가 풀려난 적도 있다. 1985년엔 레바논에 납치된 3명의 이스라엘 병사와 1,150명의 팔레스타인 죄수가 맞교환되었다.
지금의 중동 유혈투쟁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는 길은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죄수들만 풀어줘도 중동평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런 맞교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듯, 군사적 강공책을 펴 왔다. 이스라엘 정치군사 지도자들에게는 인질로 잡힌 이스라엘 병사 3명(하마스 1명, 헤즈볼라 2명)의 목숨이 ‘버려진 카드’나 다름없는 것일까.
김재명 본지편집위원 국제분쟁전문기자
2006-09-06 오후 5:12:47 입력 ⓒ르몽드 코리아 목록으로
(ⓒ김재명) 하마스요원들이 미국기를 불태우고 있다(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라말라)
사미르 알-쿤타르. 1979년 2명의 이스라엘인 부녀를 죽인 혐의로 무기형을 선고 받았다. 그에겐 가족들의 면회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병사 납치작전(7월12일)은 헤즈볼라 지도자 셰이크 하산 나스랄라가 쿤타르의 가족들에게 했던 석방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쿤타르는 2004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사이의 죄수-포로 맞교환 때 이스라엘이 거부함에 따라 풀려나지 못했다.
2006년 여름의 중동 유혈사태로 말미암아 팔레스타인 죄수 석방 문제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 감옥에는 약 9,700명 가량의 팔레스타인 죄수들이 갇혀 있다. 잡범들도 물론 있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유혈투쟁 과정에서 붙잡혀 들어온 정치범들이 대부분이다. 15년 또는 20년 이상의 징역형을 언도받은 장기수들이 많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지도부도 상당수는 지난날 이스라엘 감옥을 거쳐 온 경력을 지녔다. 따라서 아직껏 감옥에서 장기수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부채를 느끼고 있다. 장기수 가족들은 “당신들은 옛 동료를 잊고 있느냐”며 죄수 석방 문제에 힘써 줄 것을 주문해 왔다. 2005년 이스라엘은 900명의 팔레스타인 죄수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석방일이 얼마 남지 않거나 잡범들이 대부분이어서 혹시나 하고 애태우던 가족들을 다시 울렸다.
이스라엘의 온건파들과 평화주의자들은 정부의 행형정책에 비판적이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한꺼번에 팔레스타인 죄수 석방이 어렵다면, 우선적으로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 이전에 붙잡혀 이스라엘 법정에서 장기형을 언도받았던 팔레스타인 죄수들을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라파트 후계자‘ 바르구티 풀려날까
팔레스타인 죄수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 마르완 바르구티(47세)다. 그는 고 야세르 아라파트의 직할정치조직이자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안의 최대정파인 파타(Fatah) 서안지구 사무총장 출신이다. 2004년 이스라엘군에 붙잡혀 구속될 때까지만 해도 아라파트의 권좌를 이어받을 신세대 후계자로 꼽히던 인물이다. 서안지구 정치중심도시인 라말라에서 그를 2000년과 2002년 두번 만났을 때, 그는 “지금의 인티파다(intifada 봉기)가 3년쯤 갈 것이고, 지금은 힘들지만 결국은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는 장기적인 전망에서 낙관론을 내비쳤다.
(ⓒ김재명) 마르완 바르구티 전 파타 서안지구 사무총장. 2000년9월말부터 시작된 인티파다 과정에서 이스라엘에 붙잡혀 복역 중인 최고위직 인물이다.
그러나 바르구티는 곧 체포됐고, ‘테러 교사’ 혐의로 이스라엘 법정에서 5회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 무렵 이스라엘 외무장관 실반 샬롬은 “바르구티는 그동안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인 테러공격에 연루돼 있는 탓에 그가 죽는 날까지 감옥에 있게 될 것”이라며 사면 가능성을 부인했다. 형량대로라면 살아서 바깥세상 자유를 누리기 어려운 처지다.
바르구티의 석방은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쪽이 2000년 이래 이어지는 중동 유혈사태에 ‘피로 현상’을 보여 평화 무드로 바뀌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온건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극적인 정치적 협상 타결에 따라 새로운 평화이정표(road map)가 마련되는 경우다. 또는 이스라엘이 대타협을 모색하면서, 바르구티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죄수들에 대한 형집행정지와 대사면을 하나의 카드로 내밀 수도 있다. 지금의 중동 긴장상황을 봐서는 실낱같은 희망일 뿐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각료 가운데는 죄수업무장관(Minister for Prisoner Affairs)이란 직함도 있다. 죄수업무부엔 300명의 공무원들이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팔레스타인 죄수들의 상황을 살피고 있다. 그만큼 죄수 문제가 중요한 이슈다.
이스라엘 병사는 ‘버려진 카드’인가
지금껏 인질-죄수 맞교환 전례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2004년 1월 헤즈볼라에게 4년 동안 인질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 기업인 1명과 이스라엘군 시신 3구와 맞바꾸는 조건으로 430명의 팔레스타인 죄수가 풀려난 적도 있다. 1985년엔 레바논에 납치된 3명의 이스라엘 병사와 1,150명의 팔레스타인 죄수가 맞교환되었다.
지금의 중동 유혈투쟁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는 길은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죄수들만 풀어줘도 중동평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런 맞교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듯, 군사적 강공책을 펴 왔다. 이스라엘 정치군사 지도자들에게는 인질로 잡힌 이스라엘 병사 3명(하마스 1명, 헤즈볼라 2명)의 목숨이 ‘버려진 카드’나 다름없는 것일까.
김재명 본지편집위원 국제분쟁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