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루트는 ‘민간 보복 공격’을 증언한다
공급 지점은 대부분 상가나 아파트고 길가는 구급차도 무차별 타격 당해… 어떻게 이스라엘의 초정밀 무기는 그 많은 민간인을 학살할 수 있었는가
▣ 베이루트=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레바논 폭격 17일째, 베이루트의 무슬림 시아파들이 살아가는 남부 지역은 오늘도 파괴된 건물 더미에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주민들이 모두 떠나버린 그곳에는 야만스런 전쟁의 공포만 휘몰아쳐다닌다.
한때 참한 종교 공동체를 이뤘던 남부 레바논은 미국과 이스라엘으로부터 ‘테러리스트’라 낙인찍힌 헤즈볼라(Hezbollah)와 함께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만신창이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시아파 공동체만 끈질기게 타격
이스라엘은 남의 나라 수도까지 날아와 일상처럼 남부 주민 거주지역을 공습하면서도 “침략이 아니다. 헤즈볼라 본거지에 대한 타격이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현지를 취재한 기자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스라엘이 파괴한 헤즈볼라 군사시설은 주민들이 살아가는 아파트였고, 구멍가게였고, 식당이었다. 그리고 주민들이 다니는 길이었고 다리였다.
폭격당한 베이루트 남부 시아파 거주지역을 살펴보면 두 가지 특징이 잘 드러난다. 첫째는 철저한 ‘대민 공격’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이 베이루트 남부에 있는 헤즈볼라 방송국 <알마나르>(Al-Manar)나 헤즈볼라 사무실을 공격한 건 그나마 ‘목적타’였다고 인정해줄 수 있다. 그러나 그 밖에는 헤즈볼라의 실질적인 군사시설이나 목표물이 눈에 띄지 않는다. 공습당한 지점들을 둘러보면, 대부분 아파트나 상가 건물들일 뿐이다.
예컨대 남부 지역에 놓인 교차로 고가도로에 해당하는 ‘하디 나스랄라 브릿지’를 폭격한 건 민간 이동만을 방해할 뿐 군사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건 남부 무슬림 주민들뿐만 아니라 베이루트 시민들이 이용하는 일반도로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이 다리를 파괴한 건, 헤즈볼라의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Hassan Nasrallah)의 아들로 전사한 하디 나스랄라(Hadi Nasrallah)의 이름을 딴 다리라는 ‘괘씸죄’ 말고는 달리 설명한 길이 없다.
둘째는 야만적인 ‘보복 폭격’이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껏 세계 전사에서 한 공동체만을 이토록 집중 타격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토대가 시아파 무슬림이라는 사실 하나만을 놓고 남부 베이루트 시아파 주민 거주지역을 지속적으로 반복 타격해왔다. 남부 시아파 거주지역과 붙어 있는 수니파 무슬림 지역은 폭탄 한 발 맞지 않고 온전히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복 폭격’임을 잘 대변해준다. 물론 베이루트 북부 기독교 지역은 사업이 전만 못하다는 것 말고는 전쟁의 기운마저 느낄 수 없는 실정이다.
이렇듯 이스라엘은 베이루트 남부 시아파 거주지역에서 드러낸 공격의 성격을 레바논 전역에서도 똑같이 되풀이함으로써 이번 전쟁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
전쟁을 놓고 말씨름을 하다 보면, 어떤 이는 “전쟁엔 법이 없다”고 할 거고 또 누구는 “아무리 잔인한 전쟁에도 법은 있다”고 받아칠 것이다. 아래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목록을 통해 그 판단은 독자들 몫으로 넘긴다.
전달될 길을 찾지 못한 구호물자
참고로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군인 2명의 납치를 빌미로 레바논 전역을 초토화한 이스라엘의 개전 자체가 원천적인 불법이었음은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제사회가 이미 인정했다. 이건 헤즈볼라의 행위가 정당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전면적인 개전에 정당성이 없다는 뜻이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이스라엘의 공격을 비난하면서 “상응하는 행동(공격)”을 강조했던 말이 국제 기류를 잘 대변해준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공격 목표가 ‘테러리스트 헤즈볼라의 군사시설 궤멸’이라고 되풀이해 말해왔지만, 지난 17일 동안 결과는 ‘민간 공격’이었음이 드러났다. 이건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공격 16일째까지의 인명 피해가 잘 말해준다. 이스라엘의 지난 16일간 공격으로 레바논 시민 600명(보건부 집계)에서 1천여 명(현지 민간 구호단체들 집계)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가운데 3분의 1이 어린이들이다. 그사이 헤즈볼라 게릴라의 인명 피해는 50여 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게 현지 언론인들 집계다. 이런데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헤즈볼라 궤멸 작전이라고 소리치고 있다. 이스라엘의 공습과 타격 목표를 살펴보면 엄청난 대민 피해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는 작전임을 알 수 있고, 동시에 불법성이 잘 드러난다.
이스라엘의 대레바논 공격은 먼저 ‘전시 민간인과 민간 시설물 보호’를 규정한 제네바협정을 송두리째 위반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피난민들이 이용하고 긴급 구호물자가 달려야 할 주요 도로를 모조리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다리 55개(7월24일까지)를 격파해 민간운송 부문을 마비시켜버렸다.
그리고 도로 위를 달리던 구호물자 트럭과 피난민 차량, 심지어 구급차까지 목적타로 공습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무기 운반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공격한 트럭만도 450대에 이른다. 빈 트럭과 주차해 있던 트럭까지 모조리 공격한 결과다. 이제 레바논에서는 이스라엘의 전폭기 공습을 두려워하지 않고 트럭을 몰 운전기사는 찾기 힘든 실정이다. 이렇게 레바논 운송산업의 마비로 국제사회가 지원한 구호물자가 국경마다 쌓여 있지만 현지로 전달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유엔과 국제적십자사가 나서 이스라엘 당국에 통사정하고 있지만, 피난민 75만 명이 발생한 17일째인 7월28일 현재까지 이스라엘은 아무런 대꾸 없이 여전히 통행 차량들을 공습만 하고 있다. 그게 피난 차량이든 응급 차량이든 유엔 차량이든 취재 차량이든 가리지 않고.
집속탄·화학탄 사용했다는 증언도
군사적으로 가장 정밀한 기술을 갖췄고 세계적인 정보력을 지녔다는 이스라엘군의 ‘대헤즈볼라 시설 공격’은 또 다른 의문을 낳고 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와 전혀 관계없는 휴지공장, 우유공장, 직물공장뿐만 아니라 발전소와 식수원, 송전탑까지 거의 모든 민간시설을 무차별 공격했다. 말할 나위도 없이 이스라엘군은 민간 공항과 항만을 가장 먼저 폭격했다. 현재 레바논의 공항과 항만 기능은 완전히 마비된 상태다. 이스라엘 해군은 레바논 해안을 봉쇄한 채, 남부 타이어에서 자국 피난민을 후송하려던 터키와 오스트레일리아 선박에 함포 사격을 가해 위협하기까지 했다.
이스라엘 공격의 불법성은 국제적십자사 환자 후송 구급차에 대한 공격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됐다. 남부 콰나에서는 두 대의 구급차가 1분 간격으로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이건 제네바협정이 보호하고 국제사회가 인정한 민간 의료구호단체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지난 25일, 남부 레바논 히암에서 유엔레바논잠정주둔군(UNFIL) 관측소를 폭격해 유엔군 4명을 살해함으로써 그 불법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그 폭격이 있기 전에도 유엔 차량들과 관측소들이 타격을 받았던 탓에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즉각 “목적타”였다고 비난했다. 물론, 이스라엘 당국은 외무장관을 통해 “결코 유엔군을 목표로 삼은 적이 없고, 공격할 의향도 없었다”고 잡아뗐다.
그러나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유엔이 1978년 레바논 남부에 파견한 UNFIL을 향해 끊임없는 도발을 해왔고, 특히 1996년 이스라엘이 ‘분노의 포도’라는 작전명 아래 레바논을 공격하면서 콰나의 유엔 영내로 대피한 시민 106명을 학살한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대유엔 공격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로부터 묵살된 채 아무도 책임지는 이 없이 흘러와버렸고, 결국 이스라엘은 이번에 다시 대유엔 공격이라는 만성적 불법 행위를 버젓이 저질렀다.
이번에도 이스라엘의 대유엔 공격은 유엔에서 미국의 거부로 아무런 책임을 묻지 못한 채 끝났다. 또 하나 눈여겨볼 건, 이스라엘군이 남부 레바논 국경지역을 공격하면서 국제법이 금지한 집속탄(cluster bomb)과 화학탄을 사용했다는 현지 구호단체 요원들과 의사들 증언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유엔과 휴먼라이츠워치(HRW) 같은 국제 인권단체들이 이 사안에 뛰어든 상태라 머잖아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민간인과 민간시설을 집중적으로 공격해왔고, 국제기구나 국제 구호단체마저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이렇게 민간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 민간인 희생자를 내고 있는 결과를 놓고 보면, 이스라엘의 대레바논 공격은 자신들이 밝힌 ‘테러리스트 응징’이 아니라 ‘민간 보복 공격’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길 가는 구급차마저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는 이스라엘 공군의 레이저 유도 정밀탄이 어떻게 그 많은 민간인을 살해하고 민간시설을 공격할 수 있었을까?
과연 중동은 이스라엘과 공존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은 모두 실수였다고 외치고 싶겠지만, 만약 그것이 실수였다면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17일 동안 대레바논 공격에서 군사적 목표를 거의 달성한 게 없는 꼴이 되고 만다. 아니면, 레바논 시민 모두가 테러리스트였거나 레바논의 사회간접자본들이 모두 테러리스트 시설이었든지.
어쨌든 오늘도 쉬지 않고 이스라엘 공군기들은 레바논 전역을 날며 무차별적 폭격을 해대고 있다. 이 야만적인 전쟁의 끝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가운데, 레바논 시민들은 가슴을 조리며 또 하루를 보내고 있다.
‘과연 중동은 이스라엘과 공존할 수 있을까? 이 레바논 전쟁이 결코 끝이 아닐진대….’
꼬리를 무는 의문과 함께, 초대 브리티시 팔레스타인위임행정부(BMAP)에서 법무장관을 지냈던 유대민족주의자 노먼 벤트위치(Norman Bentwich)가 했던 말만 자꾸 아리게 떠오를 뿐이다.
“유대국가의 영역은 사슴 가죽과 닮았다. 사슴이 살쪘을 때는 팽창하고 야위었을 때는 수축하는 것처럼.”
레바논, 기자들의 훈장
이스라엘군은 전쟁 취재 기자들을 거리낌 없이 공격
전통적으로 전쟁기자들 사이에는 1970~90년대에 아프가니스탄과 레바논을 취재한 경험이 마치 훈장처럼 여겨지곤 했다. 그만큼 전선이 치열했다는 뜻이다. 아프가니스탄이 산악전으로 악명을 떨쳤다면 레바논은 도시 게릴라전으로 맞장구쳤다.
그러나 2000년 이스라엘군이 국경 철책선 밖으로 퇴각하면서, 한때 전쟁기자들의 고향처럼 여겨지던 레바논의 ‘영광’은 잦아들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2006년 7월, 다시 레바논은 기자들로 들끓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이 기자들을 몰고 온 셈이다.
그리하여, 현재 약 50여 개국 300여 명 기자들이 몰려든 레바논은 다시 한 번 전쟁이라는 아픈 주제를 안고 국제사회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미 전쟁 취재 기자들의 수난도 시작되었다. 7월23일 아침 레바논 여기자 한 명이 남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군으로부터 공습당해 사망했고, <알자지라>와 <알아라비야> 텔레비전 기자들이 남부 레바논 마르자윤에서 하스바야로 이동하던 중 이스라엘 전폭기들로부터 11차례나 공격당한 끝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아드난 감로우쉬(<알아라비야> 기자)는 “이스라엘 전폭기들이 우리 차량의 앞과 뒤를 차례로 공습했다. 이건 언론 전체에 대한 위협”이라고 성토했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수많은 기자들이 이스라엘군으로부터 공격받을 것이다.”
레바논 일간신문 <데일리스타> 발행인 겸 편집자인 한나 안바르의 말이 그저 기우가 아님은 이미 팔레스타인 쪽에서 현실로 드러난 지 오래다. 실제로 제2차 인티파다(민중봉기)가 일어난 2000년 9월28일부터 2002년 3월까지 1년6개월 동안 이스라엘군은 180여 건에 이르는 대언론 공격을 감행했다. 그 가운데 현장 취재기자 59명이 총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고, 6명이 사망했다.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소리> 라디오, <팔레스타인TV> <알쿠즈TV>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언론사들과 <알자지라> <나일TV> <아부다비TV> 같은 외신지국들도 직접적인 군사공격을 받았다.
이스라엘의 이런 대언론 공격 앞에, 세계인권선언 제19조와 제29조 ‘전시 기자를 포함한 민간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문구나 제네바협정 부칙의정서 제79조 ‘분쟁지역에서 위험하고 전문적인 직업을 수행하는 기자들을 민간인으로 존중해야 하고… 이 협정과 의정서에 따라 기자들은 민간인 신분으로 보호받고 또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아니하며…’를 들먹이는 자체가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언론 자유를 보장한다는 이스라엘 당국은 많은 기자들을 공격하고 살해한 뒤에도 조사는커녕 사과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반대쪽 레바논 언론 환경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7월23일 영국 기자 두 명이 베이루트에서 구금되는 일이 발생했다. 동네 아이들이 이스라엘 스파이라고 신고한 탓이란다. 독자들이야 웃고 넘기겠지만, 전시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는 섬뜩하게 다가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쟁 당사자인 헤즈볼라의 경우는 지독한 언론 통제로 기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과 접경지대 헤즈볼라 전선 취재는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다. 하여, 전문적인 전선기자들은 하나둘씩 짐을 꾸려 레바논을 떠나기 시작했다. 헤즈볼라는 ‘피해자’ 입장을 부각시키는 언론관에 따라 이스라엘로부터 공습받은 자신들의 지역에 대한 안내는 비교적 충실한 편이지만, 자신들의 군사와 관련된 부분은 철저히 차단해왔다. 헤즈볼라에 대한 군사 정보는 오직 자신들의 방송인 <알마나르>를 통해서만 흘러나온다. 물론 이스라엘의 만행과 헤즈볼라의 승전보일 뿐이다.
어쨌든, 레바논은 다시 한 번 전쟁 특종을 노리는 기자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동시에 숱한 전시 언론통제를 뚫고 시민의 편에 서야 하는 ‘의무의 땅’이기도 하다. 전쟁 취재 기자들만의 ‘특권’인 신체적·정신적 위협을 누리는 대가로!
공급 지점은 대부분 상가나 아파트고 길가는 구급차도 무차별 타격 당해… 어떻게 이스라엘의 초정밀 무기는 그 많은 민간인을 학살할 수 있었는가
▣ 베이루트=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레바논 폭격 17일째, 베이루트의 무슬림 시아파들이 살아가는 남부 지역은 오늘도 파괴된 건물 더미에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주민들이 모두 떠나버린 그곳에는 야만스런 전쟁의 공포만 휘몰아쳐다닌다.
한때 참한 종교 공동체를 이뤘던 남부 레바논은 미국과 이스라엘으로부터 ‘테러리스트’라 낙인찍힌 헤즈볼라(Hezbollah)와 함께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만신창이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시아파 공동체만 끈질기게 타격
이스라엘은 남의 나라 수도까지 날아와 일상처럼 남부 주민 거주지역을 공습하면서도 “침략이 아니다. 헤즈볼라 본거지에 대한 타격이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현지를 취재한 기자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스라엘이 파괴한 헤즈볼라 군사시설은 주민들이 살아가는 아파트였고, 구멍가게였고, 식당이었다. 그리고 주민들이 다니는 길이었고 다리였다.
폭격당한 베이루트 남부 시아파 거주지역을 살펴보면 두 가지 특징이 잘 드러난다. 첫째는 철저한 ‘대민 공격’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이 베이루트 남부에 있는 헤즈볼라 방송국 <알마나르>(Al-Manar)나 헤즈볼라 사무실을 공격한 건 그나마 ‘목적타’였다고 인정해줄 수 있다. 그러나 그 밖에는 헤즈볼라의 실질적인 군사시설이나 목표물이 눈에 띄지 않는다. 공습당한 지점들을 둘러보면, 대부분 아파트나 상가 건물들일 뿐이다.
예컨대 남부 지역에 놓인 교차로 고가도로에 해당하는 ‘하디 나스랄라 브릿지’를 폭격한 건 민간 이동만을 방해할 뿐 군사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건 남부 무슬림 주민들뿐만 아니라 베이루트 시민들이 이용하는 일반도로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이 다리를 파괴한 건, 헤즈볼라의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Hassan Nasrallah)의 아들로 전사한 하디 나스랄라(Hadi Nasrallah)의 이름을 딴 다리라는 ‘괘씸죄’ 말고는 달리 설명한 길이 없다.
둘째는 야만적인 ‘보복 폭격’이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껏 세계 전사에서 한 공동체만을 이토록 집중 타격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토대가 시아파 무슬림이라는 사실 하나만을 놓고 남부 베이루트 시아파 주민 거주지역을 지속적으로 반복 타격해왔다. 남부 시아파 거주지역과 붙어 있는 수니파 무슬림 지역은 폭탄 한 발 맞지 않고 온전히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복 폭격’임을 잘 대변해준다. 물론 베이루트 북부 기독교 지역은 사업이 전만 못하다는 것 말고는 전쟁의 기운마저 느낄 수 없는 실정이다.
이렇듯 이스라엘은 베이루트 남부 시아파 거주지역에서 드러낸 공격의 성격을 레바논 전역에서도 똑같이 되풀이함으로써 이번 전쟁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
전쟁을 놓고 말씨름을 하다 보면, 어떤 이는 “전쟁엔 법이 없다”고 할 거고 또 누구는 “아무리 잔인한 전쟁에도 법은 있다”고 받아칠 것이다. 아래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목록을 통해 그 판단은 독자들 몫으로 넘긴다.
전달될 길을 찾지 못한 구호물자
참고로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군인 2명의 납치를 빌미로 레바논 전역을 초토화한 이스라엘의 개전 자체가 원천적인 불법이었음은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제사회가 이미 인정했다. 이건 헤즈볼라의 행위가 정당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전면적인 개전에 정당성이 없다는 뜻이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이스라엘의 공격을 비난하면서 “상응하는 행동(공격)”을 강조했던 말이 국제 기류를 잘 대변해준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공격 목표가 ‘테러리스트 헤즈볼라의 군사시설 궤멸’이라고 되풀이해 말해왔지만, 지난 17일 동안 결과는 ‘민간 공격’이었음이 드러났다. 이건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공격 16일째까지의 인명 피해가 잘 말해준다. 이스라엘의 지난 16일간 공격으로 레바논 시민 600명(보건부 집계)에서 1천여 명(현지 민간 구호단체들 집계)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가운데 3분의 1이 어린이들이다. 그사이 헤즈볼라 게릴라의 인명 피해는 50여 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게 현지 언론인들 집계다. 이런데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헤즈볼라 궤멸 작전이라고 소리치고 있다. 이스라엘의 공습과 타격 목표를 살펴보면 엄청난 대민 피해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는 작전임을 알 수 있고, 동시에 불법성이 잘 드러난다.
이스라엘의 대레바논 공격은 먼저 ‘전시 민간인과 민간 시설물 보호’를 규정한 제네바협정을 송두리째 위반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피난민들이 이용하고 긴급 구호물자가 달려야 할 주요 도로를 모조리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다리 55개(7월24일까지)를 격파해 민간운송 부문을 마비시켜버렸다.
그리고 도로 위를 달리던 구호물자 트럭과 피난민 차량, 심지어 구급차까지 목적타로 공습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무기 운반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공격한 트럭만도 450대에 이른다. 빈 트럭과 주차해 있던 트럭까지 모조리 공격한 결과다. 이제 레바논에서는 이스라엘의 전폭기 공습을 두려워하지 않고 트럭을 몰 운전기사는 찾기 힘든 실정이다. 이렇게 레바논 운송산업의 마비로 국제사회가 지원한 구호물자가 국경마다 쌓여 있지만 현지로 전달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유엔과 국제적십자사가 나서 이스라엘 당국에 통사정하고 있지만, 피난민 75만 명이 발생한 17일째인 7월28일 현재까지 이스라엘은 아무런 대꾸 없이 여전히 통행 차량들을 공습만 하고 있다. 그게 피난 차량이든 응급 차량이든 유엔 차량이든 취재 차량이든 가리지 않고.
집속탄·화학탄 사용했다는 증언도
군사적으로 가장 정밀한 기술을 갖췄고 세계적인 정보력을 지녔다는 이스라엘군의 ‘대헤즈볼라 시설 공격’은 또 다른 의문을 낳고 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와 전혀 관계없는 휴지공장, 우유공장, 직물공장뿐만 아니라 발전소와 식수원, 송전탑까지 거의 모든 민간시설을 무차별 공격했다. 말할 나위도 없이 이스라엘군은 민간 공항과 항만을 가장 먼저 폭격했다. 현재 레바논의 공항과 항만 기능은 완전히 마비된 상태다. 이스라엘 해군은 레바논 해안을 봉쇄한 채, 남부 타이어에서 자국 피난민을 후송하려던 터키와 오스트레일리아 선박에 함포 사격을 가해 위협하기까지 했다.
이스라엘 공격의 불법성은 국제적십자사 환자 후송 구급차에 대한 공격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됐다. 남부 콰나에서는 두 대의 구급차가 1분 간격으로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이건 제네바협정이 보호하고 국제사회가 인정한 민간 의료구호단체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지난 25일, 남부 레바논 히암에서 유엔레바논잠정주둔군(UNFIL) 관측소를 폭격해 유엔군 4명을 살해함으로써 그 불법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그 폭격이 있기 전에도 유엔 차량들과 관측소들이 타격을 받았던 탓에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즉각 “목적타”였다고 비난했다. 물론, 이스라엘 당국은 외무장관을 통해 “결코 유엔군을 목표로 삼은 적이 없고, 공격할 의향도 없었다”고 잡아뗐다.
그러나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유엔이 1978년 레바논 남부에 파견한 UNFIL을 향해 끊임없는 도발을 해왔고, 특히 1996년 이스라엘이 ‘분노의 포도’라는 작전명 아래 레바논을 공격하면서 콰나의 유엔 영내로 대피한 시민 106명을 학살한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대유엔 공격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로부터 묵살된 채 아무도 책임지는 이 없이 흘러와버렸고, 결국 이스라엘은 이번에 다시 대유엔 공격이라는 만성적 불법 행위를 버젓이 저질렀다.
이번에도 이스라엘의 대유엔 공격은 유엔에서 미국의 거부로 아무런 책임을 묻지 못한 채 끝났다. 또 하나 눈여겨볼 건, 이스라엘군이 남부 레바논 국경지역을 공격하면서 국제법이 금지한 집속탄(cluster bomb)과 화학탄을 사용했다는 현지 구호단체 요원들과 의사들 증언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유엔과 휴먼라이츠워치(HRW) 같은 국제 인권단체들이 이 사안에 뛰어든 상태라 머잖아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민간인과 민간시설을 집중적으로 공격해왔고, 국제기구나 국제 구호단체마저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이렇게 민간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 민간인 희생자를 내고 있는 결과를 놓고 보면, 이스라엘의 대레바논 공격은 자신들이 밝힌 ‘테러리스트 응징’이 아니라 ‘민간 보복 공격’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길 가는 구급차마저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는 이스라엘 공군의 레이저 유도 정밀탄이 어떻게 그 많은 민간인을 살해하고 민간시설을 공격할 수 있었을까?
과연 중동은 이스라엘과 공존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은 모두 실수였다고 외치고 싶겠지만, 만약 그것이 실수였다면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17일 동안 대레바논 공격에서 군사적 목표를 거의 달성한 게 없는 꼴이 되고 만다. 아니면, 레바논 시민 모두가 테러리스트였거나 레바논의 사회간접자본들이 모두 테러리스트 시설이었든지.
어쨌든 오늘도 쉬지 않고 이스라엘 공군기들은 레바논 전역을 날며 무차별적 폭격을 해대고 있다. 이 야만적인 전쟁의 끝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가운데, 레바논 시민들은 가슴을 조리며 또 하루를 보내고 있다.
‘과연 중동은 이스라엘과 공존할 수 있을까? 이 레바논 전쟁이 결코 끝이 아닐진대….’
꼬리를 무는 의문과 함께, 초대 브리티시 팔레스타인위임행정부(BMAP)에서 법무장관을 지냈던 유대민족주의자 노먼 벤트위치(Norman Bentwich)가 했던 말만 자꾸 아리게 떠오를 뿐이다.
“유대국가의 영역은 사슴 가죽과 닮았다. 사슴이 살쪘을 때는 팽창하고 야위었을 때는 수축하는 것처럼.”
레바논, 기자들의 훈장
이스라엘군은 전쟁 취재 기자들을 거리낌 없이 공격
전통적으로 전쟁기자들 사이에는 1970~90년대에 아프가니스탄과 레바논을 취재한 경험이 마치 훈장처럼 여겨지곤 했다. 그만큼 전선이 치열했다는 뜻이다. 아프가니스탄이 산악전으로 악명을 떨쳤다면 레바논은 도시 게릴라전으로 맞장구쳤다.
그러나 2000년 이스라엘군이 국경 철책선 밖으로 퇴각하면서, 한때 전쟁기자들의 고향처럼 여겨지던 레바논의 ‘영광’은 잦아들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2006년 7월, 다시 레바논은 기자들로 들끓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이 기자들을 몰고 온 셈이다.
그리하여, 현재 약 50여 개국 300여 명 기자들이 몰려든 레바논은 다시 한 번 전쟁이라는 아픈 주제를 안고 국제사회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미 전쟁 취재 기자들의 수난도 시작되었다. 7월23일 아침 레바논 여기자 한 명이 남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군으로부터 공습당해 사망했고, <알자지라>와 <알아라비야> 텔레비전 기자들이 남부 레바논 마르자윤에서 하스바야로 이동하던 중 이스라엘 전폭기들로부터 11차례나 공격당한 끝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아드난 감로우쉬(<알아라비야> 기자)는 “이스라엘 전폭기들이 우리 차량의 앞과 뒤를 차례로 공습했다. 이건 언론 전체에 대한 위협”이라고 성토했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수많은 기자들이 이스라엘군으로부터 공격받을 것이다.”
레바논 일간신문 <데일리스타> 발행인 겸 편집자인 한나 안바르의 말이 그저 기우가 아님은 이미 팔레스타인 쪽에서 현실로 드러난 지 오래다. 실제로 제2차 인티파다(민중봉기)가 일어난 2000년 9월28일부터 2002년 3월까지 1년6개월 동안 이스라엘군은 180여 건에 이르는 대언론 공격을 감행했다. 그 가운데 현장 취재기자 59명이 총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고, 6명이 사망했다.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소리> 라디오, <팔레스타인TV> <알쿠즈TV>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언론사들과 <알자지라> <나일TV> <아부다비TV> 같은 외신지국들도 직접적인 군사공격을 받았다.
이스라엘의 이런 대언론 공격 앞에, 세계인권선언 제19조와 제29조 ‘전시 기자를 포함한 민간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문구나 제네바협정 부칙의정서 제79조 ‘분쟁지역에서 위험하고 전문적인 직업을 수행하는 기자들을 민간인으로 존중해야 하고… 이 협정과 의정서에 따라 기자들은 민간인 신분으로 보호받고 또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아니하며…’를 들먹이는 자체가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언론 자유를 보장한다는 이스라엘 당국은 많은 기자들을 공격하고 살해한 뒤에도 조사는커녕 사과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반대쪽 레바논 언론 환경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7월23일 영국 기자 두 명이 베이루트에서 구금되는 일이 발생했다. 동네 아이들이 이스라엘 스파이라고 신고한 탓이란다. 독자들이야 웃고 넘기겠지만, 전시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는 섬뜩하게 다가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쟁 당사자인 헤즈볼라의 경우는 지독한 언론 통제로 기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과 접경지대 헤즈볼라 전선 취재는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다. 하여, 전문적인 전선기자들은 하나둘씩 짐을 꾸려 레바논을 떠나기 시작했다. 헤즈볼라는 ‘피해자’ 입장을 부각시키는 언론관에 따라 이스라엘로부터 공습받은 자신들의 지역에 대한 안내는 비교적 충실한 편이지만, 자신들의 군사와 관련된 부분은 철저히 차단해왔다. 헤즈볼라에 대한 군사 정보는 오직 자신들의 방송인 <알마나르>를 통해서만 흘러나온다. 물론 이스라엘의 만행과 헤즈볼라의 승전보일 뿐이다.
어쨌든, 레바논은 다시 한 번 전쟁 특종을 노리는 기자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동시에 숱한 전시 언론통제를 뚫고 시민의 편에 서야 하는 ‘의무의 땅’이기도 하다. 전쟁 취재 기자들만의 ‘특권’인 신체적·정신적 위협을 누리는 대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