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현지르포] 폭격에 질린 ‘베이루트의 밤’
[한겨레] 국제분쟁 전문기자인 정문태 <한겨레21> 아시아네트워크 팀장이 23일밤(현지시각) 베이루트에 도착했다. 전란에 휩싸인 도시 한가운데서, 정문태 기자가 보내는 소식은 <한겨레>와 함께 <한겨례21>에 전문이 소개된다.
국경도시 아안잘 ‘유령바람’…북쪽 자흘라도 공습 상흔
꼬리문 피란민 “전쟁 멈춰라”
길! 그 길을 달렸다. 역사가 바뀔 때마다 침략자와 피란민을 교차시켰던 ‘다마스쿠스~베이루트’ 길. 외신이 전하는 것처럼 난민행렬까지는 아니지만, 여느 때보다 서너 배 많은 차량들이 그 길을 통해 시리아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국경 황무지 돌풀에서 먹을거리를 찾던 이들도 손을 놓고 차량 행렬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시리아 국경 검문소 알즈데덴을 지날 즈음,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 말이 라디오 잡음을 타고 흘렀다. “침략이 아니다. ‘테러리스트’ 헤즈볼라의 거점을 궤멸시키기 위한 한시적 점령이다!” 7월22일, 이스라엘 지상군이 레바논 남동부 마룬 알라스를 점령한 뒤였다.
24년 전 1982년 6월21일, ‘테러리스트’ 팔레스타인 박멸을 내걸고 레바논을 침략했던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도 똑같이 말했다. “침략 아니다. 레바논을 점령하거나 합병할 뜻이 없기 때문에!”
그러나, ‘테러리스트’는 없었다. 레바논 국경검문소 마스나아를 통해 시리아 쪽으로 쏟아져나오는 이들은 피란민들일 뿐이었다. 베이루트에서 탈출한 시민 아부 에이헴(48)은 기자를 보자마자 “전쟁을 멈추라! 전쟁을 멈추라!”고 핏대를 올렸다. 이스라엘까지 들릴 리는 없겠지만.
레바논 국경도시 아안잘엔 유령바람만 휘몰아쳤다. 살아있는 것이라곤 없었다. 이스라엘군 폭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1번 고속도로를 피해 곁길로 빠져나오는 피란 차량들만 숨죽여 움직일 뿐이었다. 보통 때라면 베이루트까지 1시간에 닿던 1번 고속도로, 피란민들이 달리고 긴급 구호물자들이 지나야 할 그 길을 이스라엘은 ‘테러리스트’ 박멸을 외치며 가장 먼저 폭격했다.
그리하여, 피란민들 사이에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져 온 북쪽 자흘라로 올라가 비크화야를 거치는 먼길을 돌아 베이루트로 향했다. 그러나 자흘라 언덕길에는 이스라엘군 공습을 받아 뼈대만 남은 구호물자 수송트럭과 승용차가 엎어져 있었다. 레바논엔 이스라엘 폭격으로부터 안전한 곳이 없다는 뜻이다.
“헤즈볼라 궤멸…침략 아니다”
24년전 똑같은 이스라엘 나팔
그렇게 이스라엘은 피란민도, 길도, 자동차도 모두 ‘테러리스트’라 불러왔던 모양이다.
하늘을 쳐다보며 달린 2시간20분, 베이루트 시가지가 발아래 밀려왔다.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두 곳이 화염에 휩싸인 베이루트는 한없이 떨고 있었다. 그리고 베이루트에 밤이 내렸다. 이스라엘군은 그 밤을 노려 무슬림 거주지역인 남부 베이루트에 거대한 폭격을 해댔다.
24년 전, 이스라엘군으로부터 당한 그 학살의 기억을 안은 구급차 사이렌이 다시 2006년 7월23일 밤을 내달렸다. 베이루트는 숨이 넘어가고 있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동안에도 베이루트는 폭음에 흔들리고 있다.
“철수할 의지를 지닌 공격은 침략이 아니다!”
1982년 7월9일치 이스라엘 극우신문 <에디엇 아로놋>이 베이루트 침략에 광분했듯이, 2006년 7월23일 오늘 이스라엘 신문 <아루츠 쉬바>는 “이스라엘은 유대의 땅을 모두 지배해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반드시 공격해야 한다”고 확전 나팔을 불어댄다.
베이루트, 공포에 질린 도시는 묻고 있다. ‘테러리스트’는 어디에 있는가?
베이루트/정문태 <한겨레21> 아시아네트워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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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도시 아안잘 ‘유령바람’…북쪽 자흘라도 공습 상흔
꼬리문 피란민 “전쟁 멈춰라”
길! 그 길을 달렸다. 역사가 바뀔 때마다 침략자와 피란민을 교차시켰던 ‘다마스쿠스~베이루트’ 길. 외신이 전하는 것처럼 난민행렬까지는 아니지만, 여느 때보다 서너 배 많은 차량들이 그 길을 통해 시리아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국경 황무지 돌풀에서 먹을거리를 찾던 이들도 손을 놓고 차량 행렬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시리아 국경 검문소 알즈데덴을 지날 즈음,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 말이 라디오 잡음을 타고 흘렀다. “침략이 아니다. ‘테러리스트’ 헤즈볼라의 거점을 궤멸시키기 위한 한시적 점령이다!” 7월22일, 이스라엘 지상군이 레바논 남동부 마룬 알라스를 점령한 뒤였다.
24년 전 1982년 6월21일, ‘테러리스트’ 팔레스타인 박멸을 내걸고 레바논을 침략했던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도 똑같이 말했다. “침략 아니다. 레바논을 점령하거나 합병할 뜻이 없기 때문에!”
그러나, ‘테러리스트’는 없었다. 레바논 국경검문소 마스나아를 통해 시리아 쪽으로 쏟아져나오는 이들은 피란민들일 뿐이었다. 베이루트에서 탈출한 시민 아부 에이헴(48)은 기자를 보자마자 “전쟁을 멈추라! 전쟁을 멈추라!”고 핏대를 올렸다. 이스라엘까지 들릴 리는 없겠지만.
레바논 국경도시 아안잘엔 유령바람만 휘몰아쳤다. 살아있는 것이라곤 없었다. 이스라엘군 폭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1번 고속도로를 피해 곁길로 빠져나오는 피란 차량들만 숨죽여 움직일 뿐이었다. 보통 때라면 베이루트까지 1시간에 닿던 1번 고속도로, 피란민들이 달리고 긴급 구호물자들이 지나야 할 그 길을 이스라엘은 ‘테러리스트’ 박멸을 외치며 가장 먼저 폭격했다.
그리하여, 피란민들 사이에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져 온 북쪽 자흘라로 올라가 비크화야를 거치는 먼길을 돌아 베이루트로 향했다. 그러나 자흘라 언덕길에는 이스라엘군 공습을 받아 뼈대만 남은 구호물자 수송트럭과 승용차가 엎어져 있었다. 레바논엔 이스라엘 폭격으로부터 안전한 곳이 없다는 뜻이다.
“헤즈볼라 궤멸…침략 아니다”
24년전 똑같은 이스라엘 나팔
그렇게 이스라엘은 피란민도, 길도, 자동차도 모두 ‘테러리스트’라 불러왔던 모양이다.
하늘을 쳐다보며 달린 2시간20분, 베이루트 시가지가 발아래 밀려왔다.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두 곳이 화염에 휩싸인 베이루트는 한없이 떨고 있었다. 그리고 베이루트에 밤이 내렸다. 이스라엘군은 그 밤을 노려 무슬림 거주지역인 남부 베이루트에 거대한 폭격을 해댔다.
24년 전, 이스라엘군으로부터 당한 그 학살의 기억을 안은 구급차 사이렌이 다시 2006년 7월23일 밤을 내달렸다. 베이루트는 숨이 넘어가고 있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동안에도 베이루트는 폭음에 흔들리고 있다.
“철수할 의지를 지닌 공격은 침략이 아니다!”
1982년 7월9일치 이스라엘 극우신문 <에디엇 아로놋>이 베이루트 침략에 광분했듯이, 2006년 7월23일 오늘 이스라엘 신문 <아루츠 쉬바>는 “이스라엘은 유대의 땅을 모두 지배해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반드시 공격해야 한다”고 확전 나팔을 불어댄다.
베이루트, 공포에 질린 도시는 묻고 있다. ‘테러리스트’는 어디에 있는가?
베이루트/정문태 <한겨레21> 아시아네트워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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