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부적절 수사’ 드러났다…포항건설노조파업 월권·부당 대처

檢 ‘부적절 수사’ 드러났다…포항건설노조파업 월권·부당 대처

검찰이 지난해 포항건설노조 파업 당시 일용직 근로자에 대한 노동부의 실업급여 지급을 제지하는 등 과거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연상케 하는 공안 총지휘부 역할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 검찰은 노조원들의 결집을 막기 위해 시위 중 사망한 건설노조원 하중근씨의 부검 장소를 포항에서 대구로 옮기는 ‘시신 이송’ 계획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경향신문이 20일 단독입수한 대구지검 포항지청의 ‘포항건설노조 불법 파업사건 수사 결과’란 대외비 보고서에서 확인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해 9월 노동부가 파업근로자 1170명에 대해 모두 17억원 상당의 실업급여를 지급하자 “실업급여 지급이 임단협 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에서 부결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며 이를 제지하고 나섰다. 검찰은 “향후 실업급여 지급을 중단하고 이미 지급된 실업급여를 환수하라”는 의견을 노동부에 전달했다고 문서에서 밝혔다. 노동부는 그러나 실업급여를 지급했고, 환수하지 않았다.

검찰은 숨진 노조원 하씨의 부검 장소를 당국에 유리한 곳으로 옮기기 위한 계획도 수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건의 ‘부검 장소 선정(7월20일)’ 대목에는 ‘(하씨가) 입원 중인 포항 동국대병원에서 부검될 경우 노조원들이 대거 집결할 우려가 있으므로 거리가 떨어진 대구시 소재 경북대학병원으로 결정’이라고 적시돼 있다. 이어 ‘유족이 부검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하씨의) 문중과 지역향우회를 사전 설득할 것’을 경찰에 지시했다.

검거된 파업근로자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는 ‘피의자들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한다’는 내부 원칙을 세운 사실도 밝혀졌다. 실제 이런 질문을 중점적으로 해 영장을 청구한 70명 전원에 대해 영장이 발부됐다.

검찰은 또 파업 초기부터 민주노동당 등 외부세력 개입시 형사처벌키로 기본방침을 정하고 민노당 단병호 의원, 김숙향 경북도의원 등 주요 인사의 집회 참가 횟수, 발언 내용, 행적 등을 면밀히 수집한 것으로 드러났다.

〈황인찬기자 hic@kuyunghyang.com

“답변하기 어렵게 질문하라” 檢 ‘포항건설노조 수사’ 보고서 파문

경향신문이 20일 입수한 ‘포항건설노조 불법파업사건 수사 결과’ 보고서에는 당시 파업과 관련해 검찰의 사태인식과 단계별 대응방안이 총정리돼 있다. 검찰은 ‘원칙대로 처리한다’는 수사방침을 내세웠지만, 검찰이 고유 수사기능을 넘어서 과거 군사독재시절 공안 총사령탑 역할을 수행한 때로 돌아간 듯한 대목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보고서는 A4용지 338쪽 분량으로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대구지검 포항지청이 작성했다.
 
 

◇실업급여 지급 불가=검찰은 노동부가 건설노조 파업근로자에 대해 1인당 145만2000원 상당의 실업급여를 지급하자 노동부에 반대의견을 전달했다. 표면적으로는 ‘파업근로자가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등의 법리상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보고서에서 ‘실업급여 지급이 당시 임단협(임금과 단체협약)의 잠정합의안에 대한 부결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즉, 검찰이 실업급여 지급을 막아 건설노조의 임단협을 찬성 쪽으로 유도하는 등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 셈이다.

검찰은 고(故) 하중근씨의 부검에도 막후 조종을 시도했다. 검찰은 하씨가 사망한 뒤 파업 열기가 뜨거워지자 “유족들이 부검에 반대할 경우 원만한 부검에 지장이 있으니 (하씨의) 문중, 지역주민 단체인 애향회, 고향 면장 등을 통해 부검 협조 및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르도록 설득하라”고 경찰에 지시했다. 검찰은 노조원들의 결집을 막기 위해 부검 장소를 포항에서 80㎞ 떨어진 대구에서 실시토록 결정하고 이를 추진했다.

◇“전원 구속 진기록 수립”=검찰은 구속영장이 청구된 파업근로자들의 영장실질심사에 앞서 ‘심문시 범죄 사실보다는 답변하기 어려운 사항을 묻는다’라는 내부 원칙을 세웠다. 이에 따라 사제 화염방사기 등 시위용품 준비과정과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이유 등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중점적으로 물었다. 영장이 청구된 70명 전원에 대해 영장이 발부됐다.

그러나 검찰은 보고서에서 “선봉대·실천단·대의원·소대장의 경우 누가 직책이 높고 낮은지 구분할 수 없어 (법원이) 피의자에 대해 영장을 기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자체 분석했다. 검찰의 공격적 신문과 모호한 공소장 내용이 영장발부율 100%가 된 한 이유인 셈이다. 성시웅 포항지청장은 “영장 청구한 전원에 대해 영장이 발부되는 진기록이 수립됐다”고 자평했다.

검찰은 파업 초기부터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 등 파업지원 유세에 참가한 외부인사의 형사처벌을 염두에 두고 파업지원 행동을 면밀히 수집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형사처벌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보고서에서 노조의 점거농성이 실패한 이유에 대해 “(지도부가) 담배를 준비하지 않아 자진이탈자의 상당수가 담배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검찰은 시위대가 농성장에 남긴 라면 1만2000개와 생수 4000개 등을 이례적으로 시위용품으로 규정하고 이를 팔아 현금화(1137만원)한뒤 국고로 환수했다고 밝혔다.

〈황인찬기자 hic@kyunghyang.com


◇포항건설노조 파업

지난해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산하 포항건설노조원 3000여명이 임금인상, 외국인 노동자 고용금지 등을 요구하며 6월30일부터 82일간 벌인 파업. 한때 포스코 본사건물을 점거하고 노조원 하중근씨가 시위 중 숨지는 등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검찰은 국내 단일 노동 파업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70명을 구속하고, 20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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