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로서의 여성을 성찰


가해자로서의 여성을 성찰
   
日 ‘아시아와 여성해방’운동 시사점

 
 조이승미 기자
 2006-12-06 04:40:49 
“회의에 참가한 당신(미국여성)들은 평등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미국이 중남미에 1억 달러를 투자해서 50억 달러를 이익으로 남기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1975년 국제여성멕시코회의. 중남미 여성들은 날로 심화되어가는 남반구와 북반구의 격차와 그 속에 희생되어가는 가난한 여성들의 상황에 대해 토로했다. 이에 대해, 회의에 참가한 미국여성들은 ‘여기는 여성들의 회의다. 그런 정치적 사안에 대해 말하는 것은 남성들에게 조종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들의 문제에 대해서만 말하도록 하자’고 반론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저널리스트로 참가했던 일본의 마츠이 야요리(1934~2002)는 멕시코 국제회의에서 느꼈던 것들에 대해, <세계 페미니즘의 가능성>이라는 책(1996년, 임팩트)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화려한 여성회의 회장에서 남녀평등이 토론되고 있는 동안, 회장 문을 열고 한 발짝만 나가면 ‘격차’가 보였다. 맨발에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껌을 팔기 위해 내게 다가왔다. 밤이 되면 이 10살, 11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몸을 팔기 위해 손님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여성회의에 참가하고 있는 각국 대표 여성들과의 너무도 큰 이 격차에 아연실색했다. 이 회의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속한 사회의 ‘가해’를 자각하는 것

국제여성멕시코 회의에서 돌아온 마츠이 야요리는 ‘아시아 여성들의 모임’과 함께 1977년 ‘아시아와 여성해방’ 운동을 시작하며 기관지 <아시아와 여성해방>을 창간한다. 이 창간호에 실린 “아시아와 여성해방 우리들의 선언문”을 읽어보면, 자신이 속한 사회의 ‘가해’에 대한 자각과 반성을 촉구하고 나아가 ‘가해자로서의 여성’의 정체성으로 다른 여성과 만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중국과 조선반도를 비롯하여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서 불지르고, 학살하고, 빼앗고, 강간하며 침략의 첨병이 되었던 사람들은 우리들의 육친이었고, 친구였고, 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더 이상 남편과 연인을 경제침략, 성 침략의 첨병으로 보내는 여자들이기를 거부하려 합니다. 이 결의 없이 우리들 자신의 해방은 결코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1977년 3월 1일 “아시아와 여성해방 우리들의 선언” 중에서)

‘가해자로서의 여성의 위치를 돌아보지 않고서는 결코 자신의 여성해방도 없다’는 이 선언으로 시작된 일본의 ‘아시아와 여성해방’ 운동의 활동은 주목할 만하다. 이들이 이른바 ‘기생관광’으로 불리는 일본남성의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원정 성매매’ 문제를 규탄하고 저지하는 활동을 벌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아시아와 여성해방’ 운동은 아시아 국가들로 진출한 일본 섬유기업이 현지 여성노동자들에 대해 저임금 착취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발했다. 한국, 타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여성노동자에 대한 일본계 기업의 착취에 대해 ‘1920년대 일본의 여공들을 착취한 슬픈 역사(女工哀史)를 그대로 수출한 것이 아닌가’라고 물으며 비판했다.

그리고 일본 등 ‘선진국’의 경제원조로 이루어지는 ‘개발도상국’ 내 인구억제 피임시술에 대해서도 고발했다. 예를 들면, 1980년대 중반 일본의 ODA(경제개발원조금)가 페루에서 인구억제정책을 지원하게 됐는데, 이 정책은 많은 페루여성의 피임시술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페루여성들의 자궁을 적출하거나, ‘선진국’에선 발암 우려로 인해 사용이 금지된 피임주사약 데포프로베라(Depo-Provera)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한편, 1990년대부터 일본으로 인신매매되어온 타이여성들의 인권에도 관심을 가졌다. 당시 일본에는 많은 타이여성들이 성 산업 종사자로 유입됐는데, 이들은 일본 국적의 여성들과는 달리 노예생활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타이여성들에 대한 살해와 타이여성들과 포주여성 간 살인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하고 있었다. ‘아시아와 여성해방’ 운동은 타이여성들을 위한 소송과 재판을 지원하는 활동을 벌였다.

여성억압의 역사를 묻다, 일본의 전쟁책임을 묻다

‘아시아와 여성해방’ 운동이 해온 모든 활동들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아시아에서 제국주의 일본의 전쟁책임을 묻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마츠이 야요리를 중심으로 1998년 설립된 VAWW-NET저팬(전쟁과 여성폭력에 반대하는 네트워크 Violence Against in War Network Japan)은 2000년 12월, 민중법정으로 진행된 ‘여성국제전범법정’을 열고 “천황” 히로히토의 전쟁책임을 묻고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1995년 설립된 ‘아시아 여성자료센터’ 운영위원장 니와 마사요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우리는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의 ‘역사성’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경제대국으로 아시아에 군림하며 아시아의 나라에 공장을 세워 앞다투어 이익을 챙기는 일본 기업들, 아시아의 관광객을 가장하여 돈 다발을 들고 성매매 관광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일본남성들. 그 남성들의 출장가방에 콘돔을 살짝 넣어두는 것이 ‘아내의 역할’이라고 말하는 사회 분위기. 거슬러 올라가면, 아시아와 아시아 여성을 총으로 착취해 온 일본 제국주의 역사가 있었다. 우리는 일본 사회와 일본 여성이 이 점을 진지하게 반성하기를 원했다.”

가해에 대한 책임의식이 ‘여성연대’ 가능케 해

1970년대부터 활동해온 ‘아시아 여성들의 모임’을 기반으로 설립된 ‘아시아 여성자료센터’는, 2000년 4월 자위대 기념행사 연설과 인터뷰에서 “삼국인 망언”(중국, 한국, 동남아시아 등 과거 일본이 침략했던 나라 출신자들이 동경에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을 했던 현 동경도 지사 이사하라 신타로의 사죄와 사임을 촉구한 바 있다.

아시아 여성자료센터가 발간하는 기관지 <여성들의 21세기> 2007년 11월호에선 일본 사회에서 ‘불안’이 동원되고 있다는 점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불법 입국한 외국인을 찾아내겠다는 것을 골자로 한 테러 치안정책이 시행되고, 빈곤도 안전도 모두 자기 책임이라는 ‘자기책임론’이 횡횡하는 일본 사회에서 ‘경찰과 테크놀로지로 과연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가? 도대체 누구의 안전이 희생당하고 있는가’라고 되묻고 있다.

이는 일본 사회 내 불안이 상승하는 배경 이면에는, 한부모 가정 등 빈곤한 여성들과 이주노동자들, 사회적 약자의 안전과 안녕이 희생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처럼 여성들 스스로 자신이 속한 사회의 ‘가해’를 고발해 내는 ‘아시아와 여성해방’ 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또한 이 운동은 아시아에서 일본에 버금가는 경제력과 정치력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의 전쟁범죄에 깊숙이 개입해있고, ‘원정 성매매’를 비롯한 아시아 여성 성 착취에 앞장서고 있는 한국사회에도 시사하는 바 크다.

우리는 과연 우리가 속한 사회가 다른 여성들에게 가하고 있는 ‘가해’에 대해 얼만큼 자각하고 있으며, 그 ‘가해’ 행위에 대한 책임을 얼만큼 부담할 수 있을까? 일본의 ‘아시아와 여성해방’ 운동의 역사는 여성운동의 주체들이 스스로를 피해자, 약자의 위치에서만 바라보아선 안 되며, 오히려 사회구조적으로 가해자로서의 위치를 성찰하고 그 가해행위를 고발하며 저항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국경을 넘은 ‘여성연대’,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여성해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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