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랑스, 유럽의 새빨간 거짓말

톨레랑스, 유럽의 새빨간 거짓말
 
[한겨레21 2005-12-06 09:09]   
 

 

[한겨레] 전후 장기 호황기에 사회적 가치로 받아들였으나 70년대 이후 무슬림 차별 심해져…‘똘레랑스의 꽃’ 노르웨이에서도 가혹한 배제의 매카니즘이 지배하는 건 마찬가지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유럽적 톨레랑스’와 같은 표현은 필자의 귀에 거슬린다. 세계의 주요 문명권 중 17~18세기까지만 해도 후진이었던 유럽에서 톨레랑스가 가장 부족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인·유대인들은 신분적인 불평등은 따르더라도 박해받는 일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이슬람 신도들과 공존은 주변부의 특수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20세기까지 상상할 수 없었고 유대인들은 박해와 멸시 속에 떨면서 살았다.

조선 후기의 천주교 개종자들이 노비를 해방시켜 신앙적 동지로 만들고 백정들과 같이 기도하는 등 해방적 색채를 띠었지만 이것은 ‘유럽 종교의 덕’이 아니라 신분제도의 철폐가 과제였던 시대의 특수성으로 인한 일이었다. 같은 시기에 백인 천주교 성직자들은 중남미에서 흑인·인디언의 노예노동을 긍정하고 신분적 경계선들을 신성시했다. 60년 전까지 유럽 사회는 톨레랑스를 가치로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타 지역보다 훨씬 더 잔혹한 인종·종교·문화적 배제·차별의 메커니즘을 개발·가동했다.


경계선 바깥의 단기계약 노예들




계몽주의의 보편주의적 사상에 입각한 톨레랑스가 사회적 가치로 받아들여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데 그 배경에는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다. 파시즘의 광기에 반발하는 측면도 있었고 노동계급의 꾸준한 투쟁도 성과를 거뒀지만 무엇보다 1945~73년 전례 없던 장기 호황기의 분위기에서 지배자들이 각종 소수자들을 ‘다원적 시민사회’ 영역으로 끌어들여 포섭하려 한 것이다. 호황의 상황에서 노동자들을 ‘파트너’로 삼아 잉여가치의 일부분을 나눠줄 여유도 있었고 끊임없이 새 노동력이 필요했다.

현재 유럽연합 총인구의 약 5.5%에 이르는 이슬람계 인구는 그때 알제리 출신들의 프랑스 이민, 모로코 출신들의 네덜란드 이민, 터키 출신들의 독일 이민 등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경제가 잘 돌아가던 당시의 유럽에서는 노동력에 대한 갈증이 심해서 1960년대 말의 독일의 경우 해마다 난민 신청자의 85%에게 체류 허가를 내주는 것이 보통 일이었다. 난민에게 비교적으로 덜 잔혹한 노르웨이에서마저 80%의 신청자가 퇴짜를 맞는 오늘의 현실에서 보면 신화처럼 들리는 이야기다. 그때가 바로 ‘톨레랑스의 황금기’였는데 그때라 해도 국가적 이해관계가 걸리는 문제에서는 하등의 톨레랑스도 보이지 않았다. 예컨대 알제리의 독립전쟁 시절(1954~62)에 공산당을 제외한 프랑스의 일체 주요 정치세력들은 처음부터 탄압을 위한 무력 사용에 동의했고, 공산당마저도 사르트르와 같은 양심적 지식인들이 실망하는 가운데 적극적 반전운동을 펼치지 않았다.

그런데 유럽 전후 자본주의 황금기는 영원하지 않았다. 1970년대 오일쇼크와 성장률·이윤율 둔화, 1970~80년대 탈산업화 시작과 1990년대부터 제조업의 동유럽, 중국 등지로 본격적 이전 등으로 미숙련 노동에 대한 수요가 급감됐고, 1990년대 이후 동유럽 등지의 ‘문화·인종적으로 동질적’ 노동의 단기적 수입·이용의 가능성으로 인해 주로 미숙련·준숙련인 이슬람 계통의 이민자들은 일감을 놓치게 되었다. 피부색이 달라도 유럽 여권을 가지고 유럽 현지 수준의 월급을 요구하고 노조에까지 가입해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는 아프리카·중동 출신을 쓰느니 차라리 우크라이나 출신을 6개월간 들여와 한 달에 700~800달러만 주고 실컷 부려먹은 뒤에 보내버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현대판 ‘경계선 바깥의 단기 계약의 노예’들이 도저히 맡을 수 없는 일부 분야(택시업 등)를 빼고 저숙련 노동시장에서 구축을 당한 이슬람 출신의 가난한 이민자들에게 유일하게 남은 길은 학력 축적을 통한 신분 상승인데 가족의 문화 자본(공부를 장려하는 고학력 집안의 분위기 등)이 빈약한데다 ‘주류’ 사회에서 인종주의가 내면화돼 있는 상황이라 그것도 어려웠다.


백인 청소부를 본 적이 없다네

 



프랑스 대졸자 중에서 이슬람 계통들의 실업률이 유럽인 토박이보다 3배 이상 높다는 것은 과연 본인들이 못나서인가? 인종차별 방지법이 있어도 유럽 고용주들이 성명란에 ‘아흐마드’나 ‘모하메드’라고 적혀 있는 이력서를 맨 뒤로 밀어놓는 일은 몸에 밴 것이다. 그런데 경제적 이용 가치를 상실해 게토에 몰려 사회복지망에 의존해서 살게 된 이슬람 계통 빈민 이민자들에게 정치적 이용 가치가 붙어버렸다. 덴마크·네덜란드 등지의 극우 정권들은 반이슬람 광풍을 이용해 집권했고 이민자 청년들을 ‘쓰레기 인간’으로 명명해 구설수에 오른 프랑스의 내무부 장관 사르코지도 같은 전략을 구사해 대통령직을 노리고 있다. 톨레랑스는 빈 명분이 됐고 앵톨레랑스(불관용)야말로 정치판에서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그러면 ‘톨레랑스의 꽃’으로 불리는 북유럽 노르웨이의 상황은 어떤가? 복지정책이 프랑스보다 포괄적이고, 학교에서 이슬람 여성들이 즐겨 입는 차도르(너울)를 금지해 이슬람 계통 이민자들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프랑스와는 달리 다문화 정책이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두고 전체적인 실업률이 프랑스보다 거의 3배 낮기에 이민자 청년 폭동이 아직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차별과 배제의 장치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된다. 전체 노르웨이 인구 가운데 실업자가 보통 3~4%밖에 안 되는데, 이민자의 실업률이 9~10%이고 그중에서도 아프리카 계통 이민자의 실업률은 거의 15~17%다. 그럼 실업을 면한 이민자가 잡을 수 있는 직장은 어떤 것일까? 오슬로 주민의 약 25%가 주로 이슬람 계통에 속하는 이민자나 그 후손이지만 오슬로대학교에서 이슬람권 출신 이민자나 그 후손이 교수가 되는 경우는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다.



그 대신 필자가 오슬로대에서 재직하고 있는 5년여 동안 노르웨이 토박이나 백인 이민자가 대학교에서 청소부 일을 맡은 것은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여태까지 본 청소부들은 다 피부색이 짙은 이민자였고 그중 대부분은 이슬람권 출신이었다. 이민자들과 그 후손이 가방끈이 짧아서 그런 것일까? 물론 학력 격차도 크지만 이민자들의 학력을 노르웨이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것은 상황을 더욱더 악화시킨다. 오슬로에서 택시를 탈 때, 이라크·코소보·소말리아 등지에서 학사나 석사 학위를 받아도 그 학력을(수업 연한과 질의 구체적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노르웨이에서 인정받지 못해 핸들을 잡게 된 사람들을 적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노르웨이 안에서 대학을 나와도 ‘이슬람식 이름’에 대한 혐오 어린 시선들은 없어지지 않는다. 오슬로대를 졸업한 파키스탄 계통의 학생 중에서 장기 실업자가 토박이보다 2배나 많다는 것은 학력을 구제의 동아줄로 삼아 빈곤의 수렁을 벗어나려는 유럽의 무슬림에게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보여준다.


게이트 구르메 노동자들이 보여준 희망


침체기와 첨예해진 경쟁 시대에 유럽 지배자들에게 톨레랑스는 허구다. 그러나 만약 유럽의 백인 노동계급이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는 연대만이 살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에 나선다면 톨레랑스는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도 있다. 지난 여름에 영국항공(BA) 기내식 납품업체 게이트 구르메가 주로 이민자 여성인 수백 명의 노동자를 전격적으로 정리해고하자, 주로 백인 남성인 수화물 처리 노동자들이 주동이 되어 들고일어나 런던공항이 마비돼 악덕 기업주인 영국항공사가 4천파운드 정도의 손실을 보게 되었다. 요즘 특히 신자유주의의 공격이 거친 영국에서 이와 같은 연대 투쟁의 고무적인 사례들을 많이 접할 수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짜 톨레랑스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