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직선제로 달리고 싶다
베이징 영향력 유지하려는 입법회의 정치개혁안 부결로 민주화 새로운 국면
시민세력과 중국 정부의 힘겨루기, 반환 10돌을 앞두고 세계의 주목
▣ 조홍식/ 베이징외국어대 객원교수
홍콩 정부의 정치 개혁안이 12월21일 입법회에서 부결됨에 따라 홍콩의 민주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정부 개혁안의 부결은 조속한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의와 홍콩을 지속적으로 통제·관리하려는 중국 중앙정부 사이에서 홍콩 정부의 타협점 찾기가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1국2체제라는 정치적 구호가 실질적으로 얼마나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인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1국2체제로 가는 가시밭길
올 3월 둥젠화에 이어 행정부 수반으로 행정장관에 부임한 도널드 창에게 2007년의 행정장관과 그 이듬해의 입법회 선거 관련 정치법의 개혁은 홍콩 정치의 미래 틀을 결정짓는 중대한 과제였다. 그는 정치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압력이나 요구를 충족시켜야만 했다.
그 첫 번째 압력은 홍콩의 정치경제적 미래에 대해 지속적인 통제력과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중국 중앙정부의 의지에서 비롯된다. 중국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받으면서 50여 년간 1국2체제라는 제도를 통해 홍콩의 높은 정치적 자율성을 인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행정장관 및 입법회 직선제에 대해서는 계속 거부감을 보여왔다. 게다가 홍콩의 정치 개혁은 중국 중앙 전인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정치적 자율성을 인정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명확히 표명했다.
그러나 중앙의 통제 의욕 못지않게 강력하게 대두된 요구는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압력이다. 이들은 2003년 7월과 2004년 7월 수십만 명이 참여한 시위를 통해 민주화의 열기를 보여주었고, 민주적인 권리와 가치의 옹호를 외치는 한편, 행정장관과 입법회 의원 전원의 직선제라는 구체적인 정치 개혁 요구를 제시했다.
세 번째 압력은 국제 사회에서 홍콩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다. 영국의 식민지로서 정치적인 자율성을 빼았겼지만 시민권이나 경제적 권리에서는 상대적으로 커다란 자유를 누리던 홍콩이 공산당 지배의 중국에 반환된 뒤 어떻게 변화할지는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또한 홍콩은 중국이 대만에 대해서도 제시하고 있는 1국2체제 또는 1국다체제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전시장이다.
이상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려는 도널드 창 신임 행정부의 노력이 10월에 제안된 정치 개혁안이다. 이 개혁안은 분명 기존의 정치 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었지만 직선제를 향해 나아가기보다는 베이징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제도의 보완에 더 가까웠다.
구체적으로 행정장관의 선거인단을 기존의 800명에서 1600명으로 늘리고, 입법의원 수를 60명에서 70명으로 증가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기존에 절반으로 제한된 입법의원 중 직선으로 선출되는 의석의 비율을 대폭 증가한다거나, 행정장관 선거인단의 선출을 민주화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이러한 개혁안의 전략은 정치에 참여하려는 일부 명사들에게 희망과 만족을 줄지는 몰라도 시민들의 민주 열기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둥젠화보다 세련된 도널드 창
이같은 제한적 정치 개혁안에 반발해 12월4일에는 10만여 명의 시민이 참여하는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다. 이는 2003년과 2004년 민주화 시위의 전통을 지속하는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민주세력은 정부의 개혁안이 민주화 일정조차 제대로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행정장관과 입법회 선거의 직선제를 요구했다. 게다가 둥젠화 아래서 정무사장을 역임한 안손 찬 여사가 시위에 동참함으로써 민주세력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물론 이번 시위의 한계 역시 뚜렷했다. 2005년 겨울의 민주세력 동원은 분명히 대규모임이 틀림없지만 지난 1~2년 전 시위의 동원 규모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게다가 당시 즉각적인 직선제를 요구했던 데 반해 이번에는 직선제의 일정을 요구했다는 점에서도 어느 정도 노선의 온건화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몇 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노쇠하고 권위적인 이미지를 보여주었던 둥젠화의 퇴진과 상대적으로 세련된 도널드 창 행정장관의 등장이 한 요인이다. 신임 행정장관은 분명 그의 전임자보다는 타협과 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 다음은 2004년 9월에 실시된 입법회 의원 선거인데 민주파가 과반수를 차지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입법회 의석 절반인 30석은 직선으로 선출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입법회의 의석은 총 60석인데 친중국파 35석과 민주파 25석으로 분배돼 있다. 이들 민주정치 세력의 등장은 폭발적으로, 그리고 가끔은 통제하기 어려운 쪽으로 방향을 트는 시민들의 직접적 시위보다는 훨씬 현실적이고 타협적인 대의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도널드 창의 정치 개혁안은 홍콩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로 인해 찬반 양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으로 발전했다. 12월 초의 시위는 민주파의 단합을 가져왔으며, 헌법적 성격의 기본법 개정을 위한 의원 정수의 3분의 2인 40석을 채우기 위해 5~6명 정도의 민주파 의원을 끌어들이는 전략의 추진과 실현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다급해진 홍콩 정부는 19일 수정 개혁안을 발표했다. 이는 행정장관의 임명제는 유지하되 입법회의 직선을 위한 일정을 제시하는 타협안이었다. 이 수정안에 따르면 입법회의 임명직은 2008년 현재 절반에서 3분의 1로 줄이고, 2012년에는 완전히 없애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안은 기존안에 비해 상당한 진전을 보여주었음에도 시민의 지지로 한창 열기가 오른 민주세력을 포섭하기에는 불충분했다.
결국 21일 투표에서 민주파 의원 25명 중에서 24명이 반대표를 던져 개혁안을 부결시켰다. 시민의 직접 참여가 간접 대의정치에 정확한 명령을 내린 셈이었다. 홍콩 정부는 자신의 개혁안을 홍콩 시민의 대부분이 찬성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는 직선제 민주화를 거부하기 위해 여론을 동원하는 모순적 모습이었다.
대한 민주화 도미노가 두려운 중국
홍콩 정부의 개혁안 부결은 이제 대의정치적 타협보다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세력과 중국 중앙정부의 힘겨루기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은 국면으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홍콩의 민주세력은 총통의 직선제를 획득한 대만을 사례로 들면서 행정 수반의 직선제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부분적 양보를 이끌어냈음에도 개혁 수정안을 부결시켰기 때문에 향후 지속적으로 시민의 동원을 통한 강력한 민주화 투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국에서는 이미 관영 신문들을 통해 ‘홍콩이 민주주의의 거대한 발전을 위한 기회를 상실했다’는 유의 논평들을 쏟아놓고 있다. 중국 정부에게 홍콩은 큰 골칫거리임이 틀림없다. 1국2체제의 전시장에서 시민세력을 독재적으로 진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직선제를 허용해 민주세력이 집권할 경우 홍콩의 대만화를 막기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홍콩에 인접한 중국 광둥성에서 잦은 시민들의 시위와 저항운동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 역시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의 민주화를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진정한 1국2체제가 실현되면 하나의 민주적 체제를 위한 거대한 요구의 태풍을 막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2007년 홍콩의 중국 반환 10년을 앞두고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열기가 활발하게 열매를 맺을지, 아니면 거대한 대륙의 압력 아래 숨죽이고 꺼져버릴지, 올 한 해 홍콩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