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어린이 여름캠프 자원 활동을 마치고 -정지숙

그 곳엔 사랑이 있었네
– 캄보디아 어린이 여름 캠프 자원 활동을 마치고

정지숙(자원활동가)

봉스라이 좀립수어!
아이들의 해맑은 인사로 하루를 시작한다.
캄보디아 어린이 장학사업 중 하나인 여름캠프 프로그램에 교사로 지원하여 뽀이–Š에 온 지 어느덧 3주가 훌쩍 지났다. 여명에 돼지 멱따는 소리로 울어대는 옆집 수탉소리도 견딜만해지고 해 뜨면 움직이고 해지면 깃드는 단순한 일과가 점점 좋아진다.  변화와 자극이 없는 하루하루가 되풀이되는 것, 일반적으로 지루하다고 표현하는 것들이 때때로 얼마나 큰 위로와 평화를 주는지….
뽀이–Š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  2009년 결연가족 방문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5년만이다. “이 더위에 왜 사서 고생?” “좋은 일 하네..” “우아~  재밌겠다” 캄보디아로 자원활동 간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다양했다. 그러나 정작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고민도 없이 덜컥 결정한 일이었다. 시쳇말로 막상 ‘질러’놓고 보니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명색이 교사라는데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서로 문화도 다른데 어떻게 교감해야 할지, 괜히 민폐 끼치는 건 아닌지…. 이런 고민으로 초등학교 교과서를 사서 교안을 만들고 교구도 이것저것 준비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랑으로 충분했다고나 할까?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관심과 지지였던 모양이다. 아이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길을 느끼면 꽃처럼 피어났고 보듬어 안아주고 입 맞출 때 작은 새가 되었다.

도착 후 사흘은 현지 자원교사(17세~20세 내외의 청소년 자원봉사 그룹)들과 프로그램 매니저인 하수수녀님, 그리고 한국에서 간 두 명의 자원활동가가 모여 프로그램의 세부적인 내용을 조정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했다. 수녀님과 캄보디아 자원교사들은 수년간 호흡을 맞춘 팀이라 그런지 차분하고 익숙하게 학생들을 맞을 준비를 해나갔다.
프로그램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회 2주간 진행되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영어, 미술, 독서, 종이접기, 연극, 텃밭 가꾸기 등 전인적 교육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캄보디아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과목의 수업이 한 시간 간격으로 이어진다. 캠프 초창기에는 학업 성적 향상을 위한 보충수업에 역점을 두어 수학과 국어(크메르어) 위주로 진행했으나 최근엔 휴식과 놀이, 생활에 유용한 것들을 배우는 ‘즐거운 캠프’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사실 창의성은 놀이를 통해 계발되고 또래들과의 어울림을 통해 자기 가치를 발견하고 더불어 사회성이 길러진다는 건 우리에겐 이미 익숙한 이론이다. 그러나 캄보디아의 교육현실은 질서를 배우고, 규칙을 익히고 권위에 복종하는 근대화 단계에 있는 듯 보였다.
일과는 오전 7시30분에 시작하지만 아이들은 6시면 와글와글 모여들어 고무줄뛰기, 신발차기 놀이하며 아침밥을 기다린다. 내 나이 열 몇 살 무렵 우리 놀던 모습과 비슷하다. 놀잇감이라 불릴만한 게 드물고 귀했던 그 시절, 우리도 저렇게 서로의 몸을 부대끼며 놀았더랬다. 술래잡기, 고무줄 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노랫가 절로 흥얼거려지는 풍경이다. 이 개구쟁이들 속에도 제법 어른스런 아이들이 있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침밥 먹고 조회할 큰 교실의 바닥을 쓸고 마당을 치운다. 제 키보다 큰 빗자루로 능숙하게 비질하는 품새가 익숙하다. 기특한 생각 한편에 짠한 마음이 묻어난다, 아이들 대부분이 부모가 집안과 육아를 돌볼 틈 없이 일해도 먹고 살기가 빠듯한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적잖이 정이 들었나보다.
내일이면 여길 떠난다 생각하니 좀처럼 잠이 안온다. 길고도 짧았던 한달 일정이 모두 끝났다. 프로젝트 담당수녀님과 메인스텝 몇몇이 모여 가진 평가회 날 하수수녀님은 장난스럽고 은밀한 웃음을 내비치며 비닐가방 속에서 맥주캔을 꺼내놓는다. 아침 9시다.
엥, 이렇게 이른 시간에? 창문을 가리키며 커튼을 닫으란다. 유쾌한 분이다.
인도출신의 그녀는 캄보디아에서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한지 10년째라고.  햇수가 더할수록 조금씩 더 밝아지고 아이답게 변해가는 게 보람 있지만 10학년(고등학교 과정)을 포기하고 가정을 돌보거나 돈벌이에 나서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속상하단다. 올해도 장학생 3명이 공부를 포기했고 이곳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돈을 벌기 위해 태국으로 갔다. 좋은 소식도 있다. 80명의 학생 중 단 한명을 제외하곤 좋은 성적으로 학기 말 학력평가를 통과했고 홀로 된 아버지와 두 동생을 돌보기 위해 공부를 포기하려 했던 슬라이니엥은 한국 엄마의 성원과 설득에 힘입어 어떻게든 계속 공부해보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콩다니는 보다 여건이 좋은 사립학교 시험에 합격해 프로그램을 떠난다 한다.
인도에도 비참하게 살아가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 캄보디아냐?
그녀의 어머니는 이렇게 묻곤 하신단다. 그녀의 대답은 “거긴 돌봐줄 사람도 많잖아요.”
이곳은 무책임한 정부와 엉망인 시스템, 탐욕스런 관료들… 문제가 많지만 사람들이 너무 순박해요. 무심코 던진 말에 수녀님이 문득 눈물을 보여 깜짝 놀랐다.
“많은 돈을 들여 진행하는데 결과가 값어치를 하는지…” 한숨을 쉬는 그녀를 보며 실무자의 갈등과 고충을 짐작한다. 외국의 원조나 외국인의 구제 행위에 대한 여러 개의 시선이 있음을 알고 있다. 행복의 기준이란 게 물질적 풍요가 전부가 아니기에, 국가 사회의 구조적 문제 해결 없이 개인에 대한 지원과 원조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또한 종교단체의 선교를 목적으로 한 제3세계에 대한 지원활동이 그 나라의 고유한 전통과 가치를 침범하는 지경에 까지 이른 선례들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러나 최소한 내가 경험한 바로는 가난한 이웃 속으로 들어가 공동체적 삶을 이루는 그녀들은 숭고하다.
싱가폴에서 온 유치원교사인 메이. 처음 봤을때 you may be May라고 했더니 하하 유쾌하게 웃던 그녀는 내년엔 네팔에 일하러 갈 거라 한다. 진정한 지구인이다. 교사그룹인 빠우, 멩라이, 하이, 쏙란은 어린나이 임에도 놀라운 인내심과 헌신성을 보여주었다. 베풂을 통해 그들도 날로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나를 이곳에 이끈 양숙쌤. 장학생캠프 시작 첫날 그녀의 추도식을 가졌다. 사진속의 그녀는 살아생전 그랬듯이 환하고 씩씩하게 웃고 있었다. 모든 아이들이 그녀를 기억한다. 나를 '양숙'이라고 부르는 아이도 있었다. 수녀원 정원에 심어진 그녀의 망고나무처럼 여기 아이들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리라.
부끄러운 듯, 그러나 허물없이 안겨드는 아이들도 예뻤지만 나눔의 기쁨을 아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여서 더 행복했다.
어느 심리학 책에서 ‘자원봉사는 결국 이기적인 행동이다.’는 구절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 말에 동의한다.
모두들 평안하시길.. 좀 립 리어 뽀이–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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