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전쟁과 악, 그리고 연민

전쟁과 악, 그리고 연민
(신라대 철학과 교수, 인문사회과학대 부학장) 류의근

파키스탄의 카시미르 지역에 지진이 덮쳐 최대 40,000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외신들이 전하고 있다. 지진은 우리가 싫어하는 것들 중의 하나이다. 태풍 카트리나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악한 것이라 하겠다. 또한 세계 각국의 분쟁 지역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인권 유린과 평화 파괴의 자범적 또는 미필적 고의적 악행들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9ㆍ11 테러를 비롯하여 이라크 전쟁, 런던 테러전, 인도네시아 테러전도 있다. 시비를 가리고 심판을 내리기 전에, 우리 모두는 그런 류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인류는 스스로 일으키는 전쟁과 악, 또는 수용할 수밖에 없는 자연적 재앙들과 세상의 악들이 없기를 바라지만, 우리의 소원에는 아랑 곳 없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두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쟁과 악에 대하여 인간이 대처해 온 운명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것들에 대하여 많은 시행착오의 경험을 거치면서 연륜과 경륜도 터득했으나, 아직까지 뾰족한 수가 없는 채로 최선을 다해 싸우는 중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끝없이 맞닥뜨리는 현실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격파하기 위한 인류의 실험은 역사적으로 다양했다. 인간의 죄와 고통의 뿌리를 신에 의존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변신론, 헤겔의 역사 철학이나 마르크스의 사회 혁명론 등은 신학적 철학적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과 그 힘에 의하여 세상의 전쟁과 악의 위협을 죽이려는 전략도 있다.
신학적 철학적 전략은 사변적이고 해석적이며, 과학적 기술적 또는 정치적 전략은 실사구시적, 결과 중심적이다. 모두 다 한계가 있고 일시적이다. 이와 다른 소박한 전략의 길이 하나 있다. 세계의 전쟁과 세상의 악과 고통의 삶으로부터 벗어나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따스한 타인의 마음을 맛보는 것이다. 나 또는 너를 위해 주는 누군가의 존재가 우리에게 삶의 구원일 때가 있다. 나의 삶이 언제나 너의 삶의 구원이 되는 자를 우리는 성자라고들 한다. 세상의 악에 대한 연민이 아시아에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실현하는 선으로 가는 길이다. 아시아의 전쟁과 악이 아닌 평화와 인권을 위해 연대하는 마음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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