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요새 시내버스 타 보셨나요?

요새 시내버스 타 보셨나요?

권기철(부산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아시아평화인권연대 자문위원)

옛날 내가 대학 다닐 시절(1970년대말, 1980년대초)에는 시내버스 안에서 기사나 승객이나 담배를 예사로 피웠다. 사람들이 꽉 찬 버스에서는 함부로 그러지 않았지만 버스가 좀 한가해지면 여기저기서 담배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버스에서 담배 피는 사람이 사라졌었다.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게 되었고 그 감정이 흡연가들에게 전달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세상은 급하게 또는 천천히 바뀐다. 그래서 나는 ‘진보’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
그러나 세상이 다 바뀌어도 안 바뀌는 것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버스기사의 운전행태이다. 버스의 품질은 좋아졌다. 에어컨이 설치되어 여름에도 시원하게 차를 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버스의 소음도 옛날에 비해 많이 줄었다. 심지어 승객들이 탈 때 “어서 오라”고 인사하는 기사도 생겼다. 그렇지만 버스기사의 난폭운전은 안 변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진보에 대한 내 확신은 여지없기 무너진다.
얼마 전에 시내버스의 운전석 뒤편에 차단막을 설치하겠다는 건설교통부의 발표가 있었다. 시내버스 기사에 대한 폭력이 잦아지는데 대한 대응책이라고 한다. 처음에 버스기사 폭행사건은 하나의 가십기사거리였다.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개를 무는 것”이 신문기사거리가 된다는 맥락과 통하는 것 정도의 것이었다. 버스 안에서 기사의 권력은 절대적(승객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다)이기 때문에, 그 권력에 도전하여 폭력을 누군가가 행사했다는 것은 “사람이 개를 무는” 것 이상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으려고 하고 있다. 최근에 일어난 버스 기사 폭행사건을 최근에 일어난 버스 기사 폭행사건을 유형별로 보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다른 차 운전자가 버스기사를 폭행하는 경우가 있었다. 버스의 난폭운전에 화가 난 승용차 운전자가 버스로 뛰어올라 버스기사를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장면이 TV에 보도되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둘째, 버스를 기다리던 정차장의 승객이 차에 뛰어올라 버스 기사를 폭행하는 경우가 있었다. 셋째, 버스를 타고 가던 승객이 버스기사를 폭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세 유형의 원인을 따져보면 모두, 버스기사가 버스 내외에서 자행하는 폭력적 행동에 대한 대응으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버스를 자주 타고 다니는 사람이면 누구나, 버스기사들이 그런 폭력을 자초했다는, 그래서 속으로는 고소하다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버스기사 폭행사건이 빈발해진 이후 모든 언론들이 왜 버스기사편만 드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버스기사가 피해자이므로 그 피해에 대한 보도와 대응방안 등이 다루어져야 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보라. 당연히 폭행사건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 뒤따를 것이고, 그러면 또 당연히 버스기사의 난폭운전이 문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때때로 절망하는 것은, 버스 승객들이 대부분 학생과 노인, 중년여성 등으로 사회적 약자여서 아무도 그들이 버스 안에서 당하는 일상적 폭력, 인권유린의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버스에서 기사에게 문제를 제기하면 승객들은 대개 불안해한다. 저 친구가 운전기사를 자극해서 나중에 차를 더 난폭하게 몰게 하지 않을까하는 걱정 때문일 것이다. 그 정도로 사람들은 주눅 들어 있다. 버스기사가 폭행당하지 않을 권리만큼 중요한 것이 버스 승객들이 안락하게 목적지까지 갈 권리이다. 버스기사에게 차단막을 설치해주기 전에, 승객들에게 안전운전이라는 보호막을 먼저 설치해주어야 한다.
여기에 인권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인권은 잘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쉽게 무시되는 일들에 대한 가치 부여의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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