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한 체류허가를 위한 데모”
이용일(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
작년에 독일 금속노조와 공공노조가 공동개최한 독일 노동이민 50주년 심포지엄에 참석하고 돌아 온 정귀순 대표님으로부터 건네받았던 “이민은 여러 얼굴들을 하고 있다”라는 책에는 50년 독일 이주노동사를 증언해 주는 여러 장의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그중에서 가톨릭 구제단체 카리타스 명찰을 옷깃에 달고, 손으로 쓴 독일어 “무기한 체류허가를 위하여”가 적혀있는 조끼를 입은 한 둥근 얼굴의 동양여자 사진이 내게는 가장 인상적이었다. 사진 밑에는 그녀에 대한 어떠한 소개도 없이, 1966/67년 무기한 체류허가를 위한 데모라는 설명만 달랑 적혀 있었다. 물론 나는 이름 모를 그녀가 어느 나라에서 왔고, 직업이 무엇이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눈길이 갔던 것이다. 그녀의 무거운 눈꺼풀과 생기 없는 미소가 자꾸만 내 마음을 후벼 파고 있었던 것이다.
가라는 사람도, 오라는 사람도 없던 유학을 결행하고 처음 도착한 본(Bonn)에서 내가 제일 먼저 골몰했던 것은 3개월짜리 임시 체류허가를 연장하는 일이었다. 체류허가조건 중 하나였던 의료보험가입 의무조항이 문제였다. ‘어학시험 준비생’은 ‘정식학생’신분이 아니라 공적 의무보험에 가입할 수 없어 비싼 개인보험에 들어야 했는데, 조금이라도 값싼 보험을 찾아 발품을 팔았다. 직부르크 외국인청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던 외국인들에 놀라며, 한참을 기다려 대면했던 관리로부터 겨우 6개월 체류연장을 받아 나오면서 느꼈던 비애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5개월간의 본(Bonn) 생활을 뒤로 하고, 10년의 유학생활 대부분을 보낸 빌레펠트 외국인청에서의 체류허가 연장신청은 생각해보면 어려울 것도 없던, 정기적으로 치룬 통관의식에 불과했다. 하지만 각양각색의 외국인들과 접하면서 더 관료적이 된 듯한 외국인청 관리들의 무관심, 때론 냉소적인 눈빛과 뉘앙스는 학업을 위해 잠시 머무는 것이 허락된 외국인이라는 나의 ‘처지’를 가장 잘 인식시켜 주었던 다시 접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로 남아있다. 그들의 ‘임의적 법해석’에 의해, 나는 1년, 운이 좋으면 2년의 체제허가를 받으며 안도하곤 했다.
사진 속 20대 한국인 간호사의 불안하고 고단한 얼굴은 20대의 내 초상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