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적 가치’ 새롭게 만들자
박은홍(성공회대 아시아NGO 정보센타 부소장)
기존의 아시아적 가치 담론은 주변부로부터의 오솔길을 빠져나오는데 성공한 아시아 신흥공업국가들의 경이적인 경제적 업적을 배경으로 부상하였다. 그동안 동아시아의 경이적 경제성장 요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가 이루어진 바 있다. 이들 연구작업은 크게 국내적 요인을 중시하는 시각과 국제환경적 요인을 중시하는 시각으로 분류할 수 있다. 국내적 요인을 강조하는 시각은 아시아적 가치라는 동아시아에 내재된 문화에 부응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반면 국제환경적 요인을 강조하는 시각은 냉전 시대에 반공블록의 안정화 차원에서 미국이 제공한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강조하였다.
이들 양 시각의 논의를 절충해보자면 아시아적 가치는 냉전체제 하에서 미국으로부터 공급된 자비로운 혜택을 주어진 조건으로 하여 자원관리 능력이 비교적 우수했던 일부 동아시아 정부주도로 이루어진 경제적 성과를 배경으로 하여 부상할 수 있었다. 특히 아시아적 가치는 역사의 종언론을 토대로 하는 문명 충돌론의 도발적 주장을 계기로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다.
요컨대 아시아적 가치는 개인보다는 집단, 변화보다는 안정, 그리고 경쟁보다는 합의를 중시하는 공동체적 문화로 정의된다. 후원-수혜 관계를 특징으로 하는 아시아적 민주주의도 공동체의 한 표현으로서 정당화된다. 싱가포르의 전 수상 리콴유나 말레이시아 전 수상 마하티르는 아시아적 가치를 서구의 규범보다 더 우월한 대안적 가치로 주장하면서 무모하게도 서구는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세계표준으로 삼고 이를 비서구사회에 이식시키려고 한다고 비난한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구화를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의 확산을, 경제적으로는 시장중심의 미국식 자본주의의 지배를 추동하는 전환의 물결로 보자면, 아시아적 가치는 서구, 특히 미국식 패러다임에 대한 일부 동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의 반발이자 도전이다.
하지만 아시아적 가치는 공리주의(功利主義)로서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시아적 가치는 시민사회에 대한 통제를 경제성장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아시아적 가치론은 개발도상국의 경우 경제적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이른바 잔인한 선택론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아시아적 가치는 개발독재의 이데올로기의 다른 이름이다.
그렇지만 개발도상국에 대한 팍스 아메리카나 이데올로기와 금융세계화의 압박이 심화되고 있는 세계시간속에서, 아시아적 가치가 강대국과 자본 중심의 지구화를 견제하는 대항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일정하게 하였다는 평가에 대해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의 대항이데올로기로서의 아시아적 가치 역시 작금에 들어와 궁지에 몰리고 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계기로 미국식 정치모델로서의 자유민주주의가 세계표준의 위용을 과시하게 되었다면, 1997년 동아시아 시장의 결빙을 계기로 미국식 경제모델로서의 자유방임적 자본주의가 또다시 아시아적 가치의 자랑거리였던 동아시아경제를 궁지로 몰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아시아적 가치가 신자유주의의 대안일 수는 없다. 일부 이슬람권에서 발견되는 종교근본주의나 유교권에서 발견되는 권위주의적 민족주의가 시장의 독재를 대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싱가포르의 아시아식 민주주의는 정실자본주의와 거리를 둔 아시아적 가치를 제도화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이들의 실험은 도시국가라는 예외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반면 32년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군부독재의 붕괴를 가져오는데 투명성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신자유주의의 압박이 하나의 환경요인이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본의 투자특권과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시장의 폐해를 확대강화해온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맞설 수 있는 대안의 조직화와 관련해서 동아시아의 어떤 정부도 이를 혼자서 감당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폐해와 맞서야 할 책임과 몫은 동아시아 시민사회에게도 있다. 특히 경제력으로나 민주화 정도로 보나 한국의 시민사회는 그간의 내부지향적 운동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시민사회와 함께 신자유주의와 맞설 수 있는 민주적이면서도 능력있는 정부, 이른바 좋은 정부를 동아시아에서 만들어내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한국 시민사회가, 아시아 시민사회가 아시아적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