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북한의 인권상황 이해를 위한 정치환경적 접근(김홍수 영산대교수)

김 홍 수(영산대)

프롤로그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필자 홍세화 씨는 말한다. 프랑스 빠리에서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를 거쳐 몽고의 울란바트로로 가고, 다시 북경을 거쳐 평양에 도착하며, 그리고는 서울에 도착하고 싶다고. 그의 글을 작년 중국 북경에서 보았다. 한국에 태어나서 유럽 가는 일이 비행기 이외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홍세화 씨는 기차로 유럽에서 서울에 오는 상념을 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런데 지도를 놓고 보면 홍세화 씨의 소망이 헛된 꿈이 아니라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북경에서 평양 가는 기차는 일주일에 두 번 있다. 가격은 인민폐로 450원 정도. 우리 나라 돈으로 약 6만원이면 된다. 그리고 북경에서 몽고의 울란바트르를 거쳐 모스크바까지는 일주일에 두 번 기차가 있다. 시간은 6일. 그리고 보면 그의 소망의 꿈이 동강난 곳은 바로 평양과 서울까지의 단절이다. 배낭여행을 준비하면서 철도여행을 설계하기란 싶지 않다. 그런데 통일이 되면 기차를 타고 프랑스로 갈 수 있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이처럼 분단은 지리적-정치적-경제적 피해를 넘어 우리의 인문학·사회과학적 상상력을 파괴시키고, 꿈을 접게 만든다. 그 뿐 아니다. 프리즘을 통해 펼쳐지는 색감조차도 반공의 렌즈, 이념의 렌즈로 채색되어 광분해 된다. 이게 우리네 현실이다. 그 뿐이던가 그런 닫힘에 의해 우리들의 사고의 폭이 좁아짐에 따라 우리들의 성격까지 좀스러워지고 있다. 다양한 주장과 담론이 꽃피지 못하고 나의 방식이 최고라든가? 차이보다는 차별에 더 집착하게 만든다. 따라서 분단의 비용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지경이다. 바로 우리 삶의 맛을 빼앗으며, 멋을 절단하며, 꿈을 접게 했다.(김홍수의 습작노트에서)

Ⅰ. 1990년대 탈냉전시대의 한-중-북 삼각체제의 위상변화
▣ 탈냉전의 비동시적 진행
– 서구의 탈냉전이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에서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늦었음.
– 70년대 탈냉전이 7.4공동성명이었다면 90년대의 탈냉전은 한·소 수교, 한·중
수교, 그로부터 10년 후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음.
–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탈냉전의 세계적 흐름은 지역적 흐름으로 연결됨.
▣ 한국과 중국의 경제-정치적 근접과 북-중 관계의 상대적 냉각
– 1992년 한·중 수교와 무역량 증대; 한국은 중국의 3대 무역국,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국.
– 북-중관계는 이념적인 차원(한국전쟁 및 항일전쟁의 동질성 포함), 안보환경적
이해 관계로 특수관계에서 탈냉전으로 일반관계로 전환되다가 2000년 이후 미국
과 일본의 중국위협론 등장으로 다시 북-중 관계가 긴밀해지고 있는 상태.

Ⅱ. 북한 핵 문제의 국제정치적 배경

▣ 북한 핵문제 발생의 구조적 뿌리
○ 냉전시대 핵관리: 자유주의진영(미), 공산주의진영(소련)
○ 탈냉전과 핵관리의 혼란 → 세계의 핵관리는 실질적으로는 미국, 공식적으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관리, 핵확산금지조약(NPT)를 통해 핵관리.
※NPT – 1970년 핵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 미국과 구소련이 주도해 만든 국제조약. 주목적은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5대 핵 강국이 핵무기 및 관련 기술을 핵 비보유국에 넘겨줘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금지하는데 있음.
– 현재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쿠바 등 제외한 전세계 187개국이 가입.
– NPT 탈퇴는 규정상 탈퇴한 선언한 날로부터 3개월이 경과하고 가입서류를 찾아가야 한다는게 국제법 전문가들의 견해.

▣ 2002-2003년 북한핵 문제의 새로운 국면의 현황
○ 직접적인 요인: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 북한은 악의 축이다.→
-. 미국공화당의 견해와 일치, 북한을 봉쇄해야한다는 요구가 많음
-. 남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한 반감도 작용(미국입장에서는 현정권을 가장 반미적인 정권으로 규정한 상태임)–2002년 부시방한 전투기 구입건으로 무마
→ 2002년 10월 초 부시의 특사로 제임스 켈리 미국무부 아·태담당 차관보에게 북한 외무성 강석주 제1부상이 핵 개발을 시인함에 따라 제2의 핵위기가 터짐 → 북·미관계는 대화부재에서 → 대결상태로: 미국은 선 핵개발포기, 북한은 제네바협정 파기한 미국이 먼저 북한과의 불가침조약체결(북한생존과 안전보장), 경제적 지원 요구 → 2003년 1월 10일 북한은 NPT탈퇴선언(북한적대시 정책반감)
-.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침공이 임박한 상황에서 미국은 북한의 체제보장과 NPT복귀 및 핵개발중지 동시 대화가능 카드를 제시.(미국은 핵포기를 전제로 에너지·식량을 지원할수 있다고 성명발표)–북한이 거부하고 있는 상태. 다만, 북·미 불가침조약체결과 핵문제 해결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서로 좁혀감.
○ 구조적인 요인: 북한의 체제개혁과 생존은 북미관계에 있음. 북미관계의 개선 없이는 남북관계를 포함하여 그 어떤 관계정상화도 힘들다.

▣ 북한과 미국이 주장하는 제네바협정 위반이란 무엇인가
○ 1993년과 1994년 북한 핵문제 부상과 제네바협정 체결(아래 도표 참조)
– 건국이래 미국의 주요 주간지 표지인물이 제일 많이 실린 해다.
– 북한핵의 투명성 요구에 북한이 NPT 탈퇴로 맞섬.
○ 94년 10월 제네바협정 4개 합의문 체결
– 흑연감속로와 그 연관시설 동결하는 대신 경수로를 2003년까지 건설한다.
– 정치 및 경제관계를 완전히 정상화 한다.
-. 미국은 북한에 핵무기를 사용하지않는다.
-. 핵사찰을 받는다.
▣ 북한의 입장
-. 2002년 7월 1일 “새로운 경제관리 개선조치” → 북한의 개혁개방 본격화
-. 북미관계 및 북일관계 개선 희망
-. 이런 모든 것의 핵심은 북미관계개선에 있다고 봄 → 미국의 이라크 침공가능성 임박, 북한과 이라크 동일시하는 미국에 대한 반감, “후세인 없는 이라크””김정일 없는 북한”을 동일선상에서 인식하고 대응. 부시의 '악의 축'등
-. 국제적인 여건 감안 현싯점이 미국에게 가장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시점으로 파악 → 핵무기전파방지조약(핵확산금지조약)탈퇴 결심
-.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존재 시인과 동시에 핵을 만들 생각도 없다. 핵활동은 오직 전력생산을 비롯한 평화적 목적에 한정한다고 주장.(자위적 응당조치다)
-. 켈리에게: 미국이 ① 북한의 자주권 인정, ② 불가침 확약, ③ 경제발전에 장애를 조성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선에서 협상을 통해 해결할 용의가 있다는 점을 주장

▣ 미국의 입장; 채찍이냐 당근이냐, 봉쇄정책이냐 포용정책이냐, 억지책이냐 선제공격이냐
-.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92년 1월), 제네바 협정파기를 들어 선 핵 개발 포기, 후 협상을 주장했다.
– 북한의 북·미간 불가침 조약 체결안을 거부 → 콜린 파월 미국무장관 등 유연한 입장으로 선회.
– 동맹국들간의 문제(APEC회의)를 통해 공동대처
– '맞춤형 대북봉쇄정책'
– '후세인 없는 이라크' '김정일 없는 북한'
– '또 하나의 코리아' 논의로 북한에 대한 직접 제재 선호
– 북일관계개선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제외된 것에 대한 섭섭함.
-. 2002년 11월에는 이라크와 북한 동시 공격가능성 → 이라크 우선 북한에 대해서는 대화로 풀겠다, 무력사용을 하지 않겠다고 주장.
※ 국가안보전략(2002년 9월 17일): 미국은 2001년 9.11테러사건 이후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등 불량국가 제거에 적극적임. 미국방비 증액: 미국의 연 국방비는 미국이외 강대국 8개국의 예산을 합친 것 보다 많음. 대량살상무기의 확산방지를 위해 억지뿐 아니라 선제공격도 불사한다. 국제협조도 받지만 단독행동도 한다. 핵확산방지는 불량국가가 주된 표적이다. 부시행정부는 여기서 북한은 여전히 불량국가이며 탄도미사일 제1수출국이며, 사거리와 성능이 개선된 미사일 실험과 농축우랴늄 재고량 증가로 파악

▣ 미국의 이라크 침략 이후 북핵 문제
○ 북한의 대미 관계 변화: 2003년 4월 북-중-미 3자 회담 등 중국의 적극적인 중재
노력과 북한의 유연한 태도(중국과의 관계, 남북한 관계)
▣ 북-미 논쟁의 핵심: 미국은 핵 우선 포기 천명 및 모든 핵 프로그램 완전 제거,
NPT 복귀 및 핵 관련 국제조약 준수
북한은 북한생존권 보장, 자주권 인정, 불가침 확약(북미불가침
조약체결), 경제발전 장애물 제거

▣ 북한핵문제 해법: 분명한 입장정리, 유연한 정책 선택, 확실한 끝내기 전략
○ 기본입장정리: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의 원칙을 견지
– 한반도의 핵문제, 북한핵문제는 북한의 주장처럼 북-미간 문제인 동시에 남북한 당사자 문제이면서 주변 국가들의 문제다; 한마디로 동북아안보 및 평화체제를 구축하느냐 평화의 파괴냐로 봐야 한다. 북한은 핵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과 한국, 일본도 북한에 대한 지원약속을 지켜야한다.
– 한반도 비핵화, 평화적 해결, 당사자 원칙
○. 구체적인 조치: 정부차원의 대책
–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명확한 반대와 함께 미국과의 공조 및 북한과의 신뢰 계속.
→ 노무현 정권은 정권의 성격상 미국과의 허심탄회한 공조가 필요하다. 이건
당위가 아니라 현실이고 힘의 논리로 봐야한다. 지혜가 필요.
○ 북한에 대한 에너지 지원에 대한 미국의 지원과 협조를 얻어내야 하고 필요하다면 한국의 독자적인 지원도 고려해야한다.
○ 핵개발에 대한 영구동결 조치와 북한체제의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의 교환
○ 92년 남북기본 합의서 준수와 북미간 새로운 협의서가 필요

Ⅲ. 북한 핵문제를 둘러산 중국의 건설적 역할론

▣ 북한 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기본 입장
– 한반도 비핵화
–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
– 외교와 정치적 수단에 의한 평화적 해결

▣ 2002년 이후 6자회담에서 중국의 역할에 대한 평가
○ 중국역할론의 근거
– 북한에 대한 식량과 에너지 지원의 중요한 공급원
– 남북한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강대국
– 북한과의 전통적인 외교관계 및 휴전당사자

○ 제1차 회담: 2003년 8월 북경에서 중국의 주선 하에 미일중러+남북한 참석
; 북한핵문제를 의제로 테이블에 앉았다는 의미, 해법의 단초 제공
○ 제2차 회담: 2004년 2월 25일 – 28일 북경에서 공동의장 성명: 한반도 비핵화,
북한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확인
○ 미국의 연간 국방비 약 4,000억 달러, 한국 국방비 약 131억 달러, 남한주둔
미군 비용 30억 달러, 북한 국방비 약 50억 달러
○ 제3차 회담: 2004년 6월 23일-26일 3차 회담: 6자 회담을 통한 북한 핵문제 해결의 중요성 합의, 북한은 핵개발 계획 동결에 대한 적극적 의사와 미국의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과 경제 지원 요청, 미국은 '완전한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CVID)' 원칙 주장함. → 북한과 미국 양쪽 다 핵문제 해결의지에 적극적이고 한국과 중국의 역할이 커짐. 이것은 한국의 이라크 파병과 연계해서 해석하는 견해가 많음.
○ 이라크 전쟁 이후 중국의 북핵 문제에 대한 강한 중재노력과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지역에서의 역할 강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 2004년 7월 9일: 라이스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
구체적인 해법

Ⅳ. 중국사회의 쟁점(인권문제와 관련하여)
▣ 서장(西藏) 티베트족과 신강(新疆) 위그르족 등 소수민족 문제의 독립과 인권문제
– 철저한 탄압과 동화정책; 1959년 달라이라마 14세 망명, 우루무치를 중심으로 끊임 없는 무력충돌과 독립기도로 긴장이 높은 지역; 서장은 티베트식 불교, 신강은
이슬람교 종교를 갖고 있어 한족과는 이질적인 존재
– 소수민족정책: 한족이주를 통한 동질화 정책, 소수민족 언어와 문화의 존중, 자치권
부여, 정규 간부 양성기관에서 교육받은 소수민족 인재들의 해당지역 파견.
– 서부대개발을 통한 소수민족의 무마책: 해외 인권단체들은 이것을 동화정책의
일환으로 파악하고 반대하고 있음: 뉴욕의 인권단체인 <중국인권(Rights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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