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비하르의 갈등과 학살
이성규(Report25 PD)
인도의 중북부에 자리잡은 비하르주.. 인구 1억의 땅에서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카스트간의 갈등으로 해마다 500여명씩 학살된다. 그것은 불가촉 천민 계급을 기반으로 한 무산계급투쟁주의자들인 마오이스트 그룹과 상층 카스트 그룹이 만든 사병조직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하르의 무산계급 조직은 여타의 공산주의 조직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그것은 봉건적인 토지소유관계의 불합리성에 대해 자각하고 공산주의로 무장한 인텔리계층과 힌두교에 바탕을 둔 현실의 부조리한 사회구조와 신분의식, 그로부터 파생된 가난에 심한 불만을 가진 달리트의 결합이다. 이러한 결합은 조직적인 양상으로 발전했고, 이에 기득권을 지키려는 지주들의 행동은 군사적인 대응으로 연결되어, 20여 년 동안의 이런 갈등은 학살과 보복의 반복이라는 비극을 초래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태에 이르고, 그 정도는 점차 심해지고 있다.
비하르의 불합리한 체제에 대한 조직적인 저항이 시작된 것은 60년대 말, 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작은 Naxalites movement(낙샬은 웨스트벵갈 다르질링 지역의 마을 이름으로 이곳에서 1960년대 지식인들과 천민이 결합된 무장봉기운동이 일어난다. 이후 공산무장봉기 운동을 인도에선 낙랼라이트 운동이라고 창한다) 이는 60년대 말 Bhojpur 지역에서 CPI-ML(Communist Party of India-Marxist Lenin)의 깃발아래 시작된 농민운동이다. 그 주체는 코뮤니즘(communism)을 정신적인 무기로 삼은 인텔리 계층(Naxalites라고 불림)이었다. 그들은 우선 인도에 잔존해 있는 봉건적인 토지 소유관계를 타파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에 기반해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농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세를 확장시켜갔고, 토지의 봉건적인 소유관계로 인한 달리트(Dalit)들의 불만이 가장 큰, 인도에서 가장 빈곤한 땅인 비하르는 공산주의자의 활동에 힘을 싣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운동의 초기 비하르 지역에서 그 구체적인 활동은 두 가지로 나뉘어졌다. 하나는 그 지역에서 가장 가혹하다고 판단한 지주를 타겟으로 삼아 테러를 가하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달리트(Dalit)에게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보장하지 않거나 신분적인 우월감을 심하게 내세우는 지주의 땅에선 노동하기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후자의 경우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둬 지주가 양보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게릴라들의 활동이 점차 확산되고, 특정 지역은, 정부도 인정하는 바, 상당한 통치력을 행사하면서 일종의 '해방구'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 곳에서는 토지의 근대적인 소유관계로의 이행이 이뤄지기도 하고, 달리트들을 위한 교육도 시행하면서 이전과 질적으로 다른 사회구성체로의 변화를 구체화시켜갔다.
60년대 말 Bhojpur지역에서 CPI-ML(Communist Party of India-Marxist Lenin)의 깃발아래 Naxalites(공산주의 경향을 띤 지식인)가 곳곳에서 활동을 벌이고, 땅이 없는 농민들을 조직하기 시작했을 때 지주(landlord)들은 대단히 노했다. 놀랍게도 그들의 노여움은 게릴라들의 무력 때문이라기 보다 전근대적인 신분의식에 의한 것이었다. 가장 작은 규모의 토지를 소유한 소작농들조차도 자신들을 달리트보다도 '원래' 우수하다고 여긴다. 카스트의 흔적이 너무나 강하게 남아 있는 나머지 그들은 자신들이 낮은 카스트의 사람들을 통제할 권한을 갖고 있다고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토지 소유계급은 땅이 없는 사람들의 권한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것이 비하르 문제의 출발점이다.”(빠뜨나 A.N. Sinha Institute of Social Science의 경제학자 Jagdish Prasad 에서 인용)
20여 년이 넘는 갈등의 기간 동안 학살과 보복으로 사망한 사람은 3천여명. 이 수치는 갈수록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그것은 지주들이 Ranvir Sena를 조직하면서부터다. 이 조직은 지주들의 불법적인 개인 군사조직으로서 1994년, 점차 확대되는 Naxalite의 영향력에 위협을 느낀 지주들이 조직적인 군사행동에 나서기 위해 형성했다. 비하르 16개 지역(district)에서 상층계급(upper-class)과 중간계급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군사조직인데, 달리트들을 살해하고, 테러를 일삼으며, 그들의 재산을 약탈, 부녀자를 강간하는 등 잔인한 활동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첫 학살을 저지른 95년 4월부터 Bhojpur, Patna, Jehanabad 지역에서 18차례의 군사행동으로 179명의 달리트를 살해했다. Ranvir Sena의 군사행동이 본격화하면서 비하르의 비극은 학살과 보복이라는 악순환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있다. 1999년에만 1월 25일과 2월 11일에 Ranvir Sena측에 의해 각각 23명, 11명의 달리트가 살해됐으며 이에 대한 보복으로 2000년 3월18일과 6월 2일 농민게릴라의 한 분파인 MCC(Maoist Communist Centre)와 PW(The People's War)에 의해 각각 34명, 9명의 지주쪽 사람들이 살해됐다. 그러나 이한 통계는 공식적인 것일 뿐 실제는 더많은 사람들이 학살되는 것으로 현지에선 전한다.
정부는 현재까지 별 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전근대적인 토지소유관계 극복책의 하나로 토지개혁책을 내세웠으나 효력이 없다. 정부는 각각의 토지 소유자(지주)에게 18에서 45에이커의 땅만을 소유하도록 했으나, 706명의 토지소유자는 각각 200에이커씩의 토지를 소유, 전체 37만 2천 에이커의 땅이 그들에게 속해 있는 셈이다. 또한, 정부가 결정한 최저임금제는 의미가 없다. 정부고지 최저임금은 하루 37.75루피, 그러나 지주들은 20에서 25루피 정도(1루피는 한국 돈으로 약 30원), 혹은 3?4kg의 쌀을 지급하는 데 그친다. 심지어 일부 지역은 이보다도 못한 임금으로 달리트를 임금 농부로 고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만큼 지주들에게 정부는 커다란 위협이 되지 못하는 데, 이는 이들에게 뿌리깊게 박혀있는 신분의식때문이다.
현재 비하르의 좌경 조직은 온건파부터 급진 강경조직까지 12개파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 중 가장 힘을 갖고 있는 조직이 바로 MCC(Maoist Communist Centre)인데, 모택동주의를 추종하고 있으며 군사행동을 과감하게 벌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The Liberation(해방전선), PW(The People's War,인민의 전쟁), CPI-ML(Communist Party of India, arxist-Leninist) 등이 있는데 이들 중 일부는 지상으로 올라와서 활동하기도 한다.
이러한 공산 게릴라 조직은 비단 비하르 뿐만 아니라, 트라이벌스가 거주하는 지역인 오리사 州를 비롯해서 안드라 프레데쉬州에도 그 거점을 확보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힌두교 원리주의 정당인 BJP가 집권하고 있는 우타르 프레데쉬 州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취재를 시작하던 당시의 현지 언론에 따르면 1999년 6월 2일 PW의 무력행위 이후, 그동안 방관만 해오던 정부가 “란비르 세나”와의 공조 하에 적극적으로 소탕작전에 나서기로 했으며 이에 따라 일부 게릴라들이 보복과 소탕작전을 피해 비하르 외곽지역으로 이동해가고 있다.(99년 6월 5일자 에 근거) 그러나 한편으로는 게릴라들이 이전에 도시 외곽지역에서 군사행동을 벌였던 것과는 달리 비하르 중심부인 빠뜨나에서의 활동을 강화할 조짐이 여러 곳에서 보여 정부에서 적색경보를 내리고, 순찰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지주측 私兵조직인 Ranvir Sena는 지난 2일의 테러에 대한 보복을 다짐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하는 등 비하르 지역은 긴장감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99년 6월 6일자 인디아타임스에 근거)고 한다.
학살과 보복의 반복은 비하르를 비극의 땅이라 부르기에 충분하도록 만든다. 가족 중 3/4이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하고, 남편을 잃은 여인들이 절망에 빠져 삶의 의욕을 잃기도 하며, 보복이 두려운 농민들이 살던 곳을 모두 떠나 단 두 명의 노인만이 마을을 지키기도 하고(Senari 지역), 아이들은 순수한 놀이대신 나무로 만든 총으로 편을 갈라 전쟁놀이를 하는 모습이 아주 쉽게 목격되기도 한다. 이밖에도 20세기를 마감하는 세기말인 지금까지도 봉건적인 지배계급의 인권유린이 자행되기도 하는데, 그 중의 대표적인 사례가 달리트의 결혼에서 신부에 대한 지주의 初夜權 행사가 일부 지역에서 보고되기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가난의 땅으로 삶이 고단한 사람들, 이제 죽음의 그림자가 더욱 짙게 배어버린 비하르에서 그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게 됐다. 신이든 게릴라든 란비르 세나든 누군가가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순간을 그들은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윤회를 억겁을 끊는, 다음 세상에서 복을 바라는 막연한 기대이다.
20세기 마지막 계급투쟁의 현장, 한가운데에 서있는 그 비극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