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학살 유발자들’

전쟁과 ‘학살 유발자들’
[인권프리즘] 미국의 이라크 민간인학살,그리고 한국

2006/7/10 최재훈 경계를넘어

몇 년 전, 그 당시 한창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던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운동을 위해 베트남전 참전군인 A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나름대로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겪어봤다고 자부해왔던 나였지만, 그때만큼 긴장하면서 사람을 만나기는 처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행여나 대화 도중에 버럭 화를 내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해하며 대화 내내 표현 하나, 질문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워야했다. 그런데,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당사자가 한 명이 아닌, 두 명의 각각 다른 사람을 마주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는 것이었다.

A씨는 한국군과 베트콩들 간의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베트남 중부지역에서 숱한 전투를 치렀던 전투병 출신이었다. 그는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별 자체가 불가능했던 상황에서 불가피한 민간인의 희생은 있었지만, 의도적인 민간인 학살은 결코 있을 수 없다며 언성을 높이며 마구 흥분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자신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베트남인들의 얼굴이 3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생생히 떠오른다며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의 죽음에 대해 사죄하고 싶고, 그래서 그 전 해에는 베트남도 직접 다녀왔다고 했다.

이렇게 그동안 애써 잊으려 했던 전쟁 당시의 참혹한 기억을 떠올리고 난 다음에는 한 일주일 정도는 술에 취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다고도 했다. 자신의 영혼은 아직 베트남 정글 속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며 괴로워했다. 그러다가도 내가 사진촬영을 요청하자 갑자기 안방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해둔 군복에 모자까지 갖춰입고는 포즈를 취했다. 자리를 옮겨 이어진 저녁식사 자리에서 그의 부인으로부터 전해들은 그의 평소 가정생활도 이중적인 그의 자아를 잘 나타내주었다. 처음 본 사람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부인의 입에 직접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넣어줄 정도로 자상해보이는 그였다. 그러나, 가끔 뜻대로 일이 안풀리거나 베트남 참전군인들을 만나 술에 취해 들어온 날에는 감정을 주체 못하고 폭력적으로 돌변해 가재도구를 집어던지고, 부인과 자식들을 구타하곤 했다고 한다.

우리는 ‘지옥의 묵시록’, ‘디어 헌터’와 같은 영화들을 통해, 아니면 책이나 신문, 잡지의 기사들을 통해 전쟁의 한복판에서 극도의 긴장상태 속에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의 현장을 경험했던 참전군인들이 전쟁이 끝난 후 심각한 정신적인 공황과 현실 부적응의 후유증을 겪는다는 사실을 간간히 접해왔다. 각각의 경험의 차이, 정신적으로 강인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 주변 친지들과 사회의 이해와 지원의 차이에 따라 위의 K씨처럼 그나마 조금씩이라도 자신을 다스리며 극복해나가는 사람도 있고, 심한 경우 알콜과 약물 중독, 심지어 자살에까지 이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분명한 건,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 그 중에서도 치열한 전투에 직접 참여했던 전투원 출신들은 거의 예외없이 나름의 정신적인 후유증을 앓는다는 사실이다.

요즘 이라크에서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 잇달아 터져나오고 있다. 특히, 스티븐 그린 이등병과 동료병사 4명이 열다섯살 난 이라크 소녀를 강간하고 일가족을 살해한 사건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회의를 품게 만들면서 전세계인들을 분노에 떨게하고 있다. 나는 개개인의 잔인한 범죄행위에 대해 무조건 사회나 조직 전체의 책임으로 몰아가며 “사람이 무슨 잘못이냐, 구조가 문제지”하는 식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똑같이 옆의 동료가 폭사했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다 무고한 민간인들을 향해 총질을 해대지는 않는다. 설사 그것이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 명령에 따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용기있게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하물며, 그린 이병처럼 사전계획까지 세워서 저항능력조차 없는 소녀를 상대로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짓을 한 경우에는 죄를 저지른 그 사람에 대한 비난과 처벌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사건이 알려진 후, 미국 정부와 미군 당국이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 일어났지만, 99.9%의 미군들은 성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잇따른 민간인 학살 사건들을 품행이 나쁜 극소수 병사들 개인의 일탈행위나 우발적인 사고로 몰아가려는 행태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이미 미국은 전쟁이 아니었다면 그런 행동을 상상조차 못했을 젊은이들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위험한 살인기계로 변하는 모습을 자신들이 일으킨 몇 차례의 대규모 전쟁을 통해서 익히 알고있는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사침략을 강행했고,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점령을 계속해오고 있다. 아부 그라이브 사건과 최근의 하디사 학살과 일가족 몰살 사건,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다른 민간인 학살들은 어쩌면 침공 시작 시점부터 이미 예상되었던 일들이고,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스티븐 그린들이 나올 거라는 것도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그런데도 군사점령을 멈추지 않는 조지 부시 정부가 어찌 그 학살책임을 모면할 수 있겠는가.

또다른 베트남 참전군인이자 지금은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는 김영만 씨는 2004년 말, 서울에서 열렸던 이라크전범민중재판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제가 살아오면서 펑펑 울어본 기억이 두 번 있습니다. 한 번은, 베트남 짜빈동 전투에서 부상을 당해 제대한 뒤 군복을 벗은 날이었고, 또 한 번은 아부 그라이브 사건의 린지 잉글랜드 일병 이야기를 듣고서였습니다. 아부 그라이브 사건은 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쟁 때 포로는 누가 잡습니까. 전투에서 잡혀온 전쟁포로들을 후방 부대로 넘기기 전에 먼저 전투부대원들이 일차 심문을 합니다. 그 때 저희들도….. 린지 일병보다 훨씬 더 심한 짓을……저희도 했습니다.”

최재훈 경계를넘어 활동가

*NGO타임즈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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