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무시무시한 언론 자유!
무슬림으로 살아온 인도네시아 기자의 항변…서양 언론의 도발이 사태 악화시켜…마호메트 만화로 종교적 존중을 가르쳐온 고유한 시민권을 침해할 이유가 있나
▣ 아흐마드 타우픽(Ahmad Taufik) / 시사주간지 <템포> 기자
요즘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분노한 시민들이 들끓고 있다. 예언자 마호메트를 그린 만화 때문이다. 수만 명의 시위자들이 반덴마크를 외치며 날마다 덴마크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그동안 인도네시아 시위대들이 각종 집회 때마다 들고 나온 ‘반서양 깃발’이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게 사실이지만, 그 단골이 주로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였는데 이번처럼 인구 500만 명의 덴마크가 집중타를 맞은 경우는 처음이다. 심지어 인도네시아 최고 인기 종목인 배드민턴마저 반덴마크를 들고 나왔다. 인도네시아 배드민턴협회는 3월14일로 잡힌 덴마크와의 친선 경기 계획을 일찌감치 철회해버렸다. 배드민턴협회 국제담당 수리스티얀토는 “시민들의 반감 때문에 선수들의 신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이슬람 단체와 정부도 재빨리 반응
중부 자와 주도인 솔로에서는 분노한 무슬림 수백 명이 외국인들을 몰아냈다. 남부 술라웨시 주도인 마카사르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덴마크 정부는 동부 자와 주도 수라바야의 자국 영사관이 짱돌 세례를 받자 아예 문을 닫아버렸다. 미국 영사관도 마찬가지였다. 시위가 없었던 발리에서마저 수백 명에 이르는 덴마크 관광객들이 짐을 싸서 떠났다. 일이 이쯤 되자 덴마크 정부는 자국민들에 대한 철수령을 내렸다.
덴마크 시위를 보면 시위대의 정체도 다양하고 항의 방법들도 서로 다르다. 온건파들이 주로 덴마크 국기를 불태우며 성토하는 정도였다면, 이슬람수호전선(FPI) 같은 강경파들은 돌과 토마토로 대사관 건물을 공격하면서 덴마크 대사의 목을 자른 피투성이 만화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 대사관 내부로 돌진한 일부 시위자들이 기물을 파손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최대 이슬람 단체인 나들라툴 울라마(NU)와 모함마디아는 “이슬람이 우상숭배를 배격하고자 예언자 마호메트를 형상화하는 것마저 금지해왔는데, 심지어 그 만화들은 예언자 마호메트가 폭탄을 터번처럼 머리에 쓰고 있는 모습까지 담고 있다”며 덴마크 신문의 무지와 불경에 대해 심각하게 항의했다. 이런 반덴마크 분위기는 그동안 원리를 놓고 둘로 나뉘었던 수니(Sunni)와 시이테(Shiite)를 하나로 묶어놓았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재빨리 반응했다. 반덴마크 시위가 세계적 규모로 벌어지자, 이틀 만에 대통령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는 “인도네시아는 그 만화가 무슬림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표현의 자유가 어떤 종교를 대상으로도 손상을 입혀서는 안 된다”고 언론 자유에 대한 경고까지 쏟아냈다.
문제의 만화는 이미 지난 2005년 9월 덴마크 신문에 실렸던 것을 최근 노르웨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언론들이 ‘언론 자유’라는 이름을 붙여 다시 실으면서 무슬림들을 분노케 했다. 그러나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살아온 무슬림 기자인 내 입장에서 보면,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양 언론들이 ‘언론 자유’라는 이름을 내걸면서 오히려 인도네시아 언론 자유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다는 느낌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집단적이고 계획적인 도발행위
예컨대 인도네시아 언론들은 스스로 1990년대 말부터 동부 섬 암본의 크리스천-무슬림 분쟁을 놓고 사실보다는 종파적 속성을 지닌 왜곡된 보도를 경험해오고 있다. 크리스천과 무슬림 배경을 지닌 두 갈래 신문들이 서로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입장을 앞세운 탓이다. 이런 종파적 언론의 보도 행태는 암본과 같은 종교분쟁에서 좀더 많은 이들을 살해하고 희생자를 양산하는 결과만을 낳았을 뿐이다. 그 언론들이 비록 규모가 작은 암본 지역 신문이긴 하지만 어쨌든 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언론 자유’를 지옥으로 몰아간 최악의 경험이었다. 그러다 보니 암본에서는 수만 명이 살해되는 엄청난 희생을 겪으면서 크리스천과 무슬림 양쪽이 모두 극도로 피곤함을 느낀 뒤에야 분쟁이 시들해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언론들은 ‘언론 자유’가 사용법에 따라 시민을 살해하는 살상무기로 변할 수도 있다는 처절한 체험을 한 셈이다.
바로 그 암본 분쟁이 가장 처절했을 무렵 나는 <템포>의 국내 뉴스 데스크를 맡아 매우 불편한 경험을 했다. <템포>는 암본의 크리스천 지역과 무슬림 지역 두 곳에 각각 현지 주재 기자를 두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두 기자는 각각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담은 일방적인 기사를 보내왔다. 말하자면 한 사건을 놓고 나는 늘 두 개의 서로 다른 입장을 담은 기사를 받아들었던 셈이다. 나는 기자로서 또 뉴스를 총괄하는 데스크로서 ‘객관성’을 놓고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내 스스로가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지녔기 때문에 크리스천과 무슬림 분쟁 사이에서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피 말리는 고통을 받았다. 현장기자가 보내온 뉴스를 들고 데스크가 다시 현장을 일일이 점검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졌다. 그 지긋지긋했던 암본 뉴스 처리 과정을 통해 나는 무슬림으로서 또 기자로서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집중해서 바라보는 지점은 그 만화로 무슬림의 분노가 폭발하면서부터 흘러다니고 있는 국제적 ‘음모설’보다는 서양 언론들이 느닷없이 들고 나온 ‘언론 자유’라는 부분이다. 이번 만화로 비롯된 사태는 마치 서양 언론들의 합법적인 ‘표현 자유의 권리’에 맞서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모든 무슬림들이 ‘분노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희한한 구조로 돌변하고 말았다. 내가 경험한 ‘언론 자유’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번 사태는 서양 언론들이 이슬람의 ‘시민권’을 침해한 경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기자라는 직업을 벗고 무슬림이라는 종교적 입장에서 보자면 이번 서양 언론들이 내건 ‘표현의 자유’는 이슬람에 대한 집단적이고 계획적인 도발행위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번 경우는 종교적 자유뿐만 아니라 종교적 존중을 함께 가르쳐온 ‘시민권’에 대해 서양 언론들이 언론 자유라는 ‘법적 권리’를 내걸고 충돌을 일으킨 사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라는 시민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자유가 하위 개념에 속하는 법적 논리를 내걸고 고유한 시민권을 박해하거나 모함하지 않는다는 엄숙한 자기 성찰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만화 사건은 병든 사회의 병든 마음을 시험한 좋은 본보기가 아닌가 싶다.
내가 무슬림이라는 종교적 신분을 접고 다시 기자로 돌아와 언론계 동료라는 입장에서 볼 때, 덴마크 신문은 말 없이 이번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 관용적인 무슬림들의 실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따른 심각한 자기 반성을 해야 한다. 준엄한 도덕적 기준은 언론 자유의 영원한 어머니라 생각한다. 나는 기자로서 종교를 성역으로 남겨놓아야 한다는 주장을 결코 받아들이거나 인정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언론 자유라는 법적 권리를 앞세워 종교적 자유와 존중을 가르쳐온 고유한 시민권을 박해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 없다. 그게 무슬림이든 크리스천이든 힌두든 어떤 종교든 상관없이 시민권은 언론 자유에 선행하는 고유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건 무슬림들이나 이슬람에 대한 비판과는 전혀 다른 성질임을 국제 언론이 깨달아야 한다.
‘범죄자 마호메트’가 분노의 폭발점
참고로 무슬림에 대한 경험이 부족할 <한겨레21> 독자들에게 한마디 덧붙이자면, 코란이나 예언자 마호메트가 그런 만화와 같은 형상을 금지한 적이 없다. 그러나 후세 이슬람 교리학자들이 예언자 마호메트가 무슬림들의 마음속이 아닌 겉치레 형상으로만 존재할 수도 있다는 뜻에서 금지시켰다고 한다. 이건 크리스천들이 지저스 크라이스트 형상을 만들어놓고는 함부로 대하는 걸 보면서 배웠다고 전한다. 그러나 일부 시이테 이슬람 학자들 가운데는 예언자 마호메트 형상이나 그림을 부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여, 무슬림들 사이에도 논란이 아주 없지는 않다. 다만, 덴마크 신문들이 퍼트린 만화는 예언자 마호메트를 테러리스트로 또 흉악한 범죄자 모습으로 형상화했다는 게 분노의 폭발점이었음을, 그 만화를 보지 못했을 대부분의 <한겨레21> 독자들에게 밝혀둔다.
<출처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