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고, 실천하는 것이 강하다.
이광수 (아시아평화인권연대 공동대표. 부산외국어대 교수)
작은 홈페이지를 하나 가지고 있다. 컴퓨터를 잘 다룰 줄 모르지만 홈페이지를 가지고 싶어 하는 내게 몇 년 전 제자 하나가 만들어 주고 간 홈이다. 그러다 보니 그 홈에 무슨 문제가 생길라치면 심봉사 동냥 젖 구하러 다니듯 주변에 있는 제자들에게 문제 풀이 구걸을 하고 다닌다. 사실은 실제로 사는 집도 그렇게 유지하고 있어 별 다를 바도 없지만. 그래저래 간신히 그 집을 지탱하고 있는지 벌써 5년이 넘었다. 그러던 중 최근 그 홈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그렇지만 제자로 보이는, 한 녀석이 이상한 동영상을 올려놨다. 어떤 광인의 모습을 하고 다니던 할아버지 이야기다. 몇 가지 요즘 생각하고 있는 문제가 그 안에 한데 담겨 있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독립 운동가 출신의 부잣집 아들이 그 많은 재산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 구제 사업 하다가 병에 걸리고 그러저러 하다가 예수를 만나 병을 나으면서 남은 인생을 예수와 조국 통일을 위해 맨 발로 삼십년 넘게 서울 지하철을 돌아다니며 전도하고 다니는 이야기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에 나오는 조동팔의 실제 이야기라고 하면 좀 더 쉽게 와 닿으려나?
여러 가지 생각들이 겹쳐 상영이 끝난 후 한 동안 멍청하게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할아버지의 실천적 삶에 몹시 부끄러웠다. ‘예수’와 ‘통일’이 할아버지께서 안고 있는 화두의 중심에 서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런 비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나약한 책상물림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어 이내 접었다. 그러다가 그 할아버지가 택하신 방편에 자꾸 생각이 머무르게 되었다. 왜 할아버지는 미치광이의 모습을 택하였을까? 불현듯 며칠 전 단식을 중단한 지율 스님이 떠올랐다. 내게는 그 할아버지의 미치광이 모습이나 지율 스님의 100일 간의 단식이나 매한가지의 방편이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스님의 생명을 담보로 생명 운동을 하는 그 운동 방식을 비판하고 있고, 나 또한 그 부류에 속하여 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방편이 아니라 본질이다. 본질이 일정하게 담보가 되어 있다면 방편에 대해서는 이해해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아버지가 보험금에 눈이 어두워 아내와 친 자식들을 살해해 달라고 청부한 세상, 중학교에 다니는 여자 아이를 남자 아이들 10여 명이 돌림으로 강간한 세상, 내 자식 영어 발음 좋게 해 달라고 성형외과에 가서 혀를 짧게 자르는 수술을 하는 세상, 부정과 비리에 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교사, 교수, 목사들이 넘쳐흐르고도 남는 세상, 1년 365일, 24시간 전국 어디서라도 돈만 있으면 성(性)을 사고 팔 수 있는 세상… 언급을 하자니 한도 끝도 없을 지경이다. 나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돈을 위하여 사는 세상이다. 내가 아니고 우리가 아니고 돈이 아닌 그 주위에 대해서는 거들떠보지 않는 세상이다.
더 무서운 것은 세상이 하도 극렬하여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방편으로는 옳고 바름을 널리 알릴 수가 없는 세상이라는 사실이다. 좀 더 세고 좀 더 강하고 좀 더 자극적인 것만이 통용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 비정상적인 방편을 쓰지 않으면 누구 하나 돌아보지 않는, 그런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래서 난, 그 안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려 미치광이의 방편을 택하는 것,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도 아쉬움 하나는 남는다. 그 비정상적인 방편 속에서는 보다 궁극적인 본질의 문제가 그 방편 속에 묻혀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들이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는 방편에 대해 쉽게 이끌리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본질이라 하는가? 오늘 내가 속한 이 자리에서 내 뜻한 바를 작은 것부터 하나 씩 실천해 나가는 일이 바로 본질 아닐까.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아도 좋다. 자리가 초라해서 일에 더 큰 효과가 나지 않아도 좋다. 그냥 작은 것이 아름답고, 실천하는 것이 강한 것이라 믿고 묵묵히 가야 한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고 하지 않던가.
세상이 이 모양이니 더욱 그렇다. 세상이 이 모양인데 어찌 미치광이의 방편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