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6400명, 자위대에 맞서다

일본인 6400명, 자위대에 맞서다

이라크 파병의 위법성 따지며 소송 걸고 위자료까지 청구한 미노와 노부루
전국 11개 법원에서 5600명의 원고인단과 800명의 변호인단이 함께 참여중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한겨레21)

미노와 노부루(81)씨는 자위대 문제나 일본의 방위정책에 매우 정통하다. 방위청 정무차관, 중의원 안전보장특위 위원장, 자민당 국방부회 부회장을 지낸 그의 경력이 이를 잘 말해준다. 자민당 정권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이력 탓인지 늘 ‘매파’로 불렸다. 1990년 정·관계에서 은퇴한 그는 2004년 1월 홋카이도 삿포로 지방법원에 불쑥 소송을 하나 냈다. 상대는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봉사해왔던 정부다. 청구 취지는 소장에 이렇게 소개돼 있다. “자위대원과 장비품을 이라크 국내와 그 주변지역 및 해역에 파견 또는 수송하는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그는 1만엔의 위자료도 함께 청구했다. 홋카이도에서 소송이 먼저 제기된 까닭은 파병된 자위대 본대가 홋카이도의 육상 자위대이기 때문이다. 미노와씨의 소송은 일본의 시민사회를 조금씩 그리고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매파로 불려온 자민당 출신의 반란

어느덧 소송에 동참하는 원고인단은 33명으로 늘었다. 전 중의원 의원, 의사, 교수, 시인, 동화 작가, 목사, 농민, 평화운동가 등 다양하다. 변호인단은 무려 110여명에 이른다. 원고인단은 ‘자위대 이라크 파병 금지 소송 제기에 즈음해’라는 글에서 “이라크 파병은 헌법과 자위대법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원고인단 주장의 핵심은 헌법에 있다. 일본의 헌법 제9조 1항은 “일본 국민은…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 행사를 영구히 폐기한다”고 명시했다. 따라서 ‘국제 분쟁지역’이자 ‘전쟁 상태’에 있는 이라크에 자위대를 보낸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또 이라크 파병은 자위대법 위반이라고 한다. 자위대법 제3조는 “직접침략 및 간접침략에 대해 나라를 방위하는 것을 주된 임무로 한다”고 규정한다. 이라크 파병은 그동안 정부가 자위에 필요한 최소한도의 자위력은 합헌이라는 태도를 취해오면서 지켜온 ‘전수방위’의 헌법 해석에도 벗어난다는 것이다. 미노와씨가 이라크 파병 금지 소송에 발벗고 나선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노와씨는 지난 6월22일 제7차 구두변론에서 “자위대는 전수방위를 한다. 일본이 무력 공격을 받았을 때에만 무력공격이나 무력행사를 할 수 있다. 자위대가 마음대로 무력 공격의 재료나 도구를 외국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은 인정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라크에 파병된 자위대는 무반동포나 개인 휴대 대전차포 등의 중화기로 무장했으며, 연합국 잠정 당국(CPA)의 일원으로서 교전규칙(ROE)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원고인단은 이를 근거로 자위대가 법 취지와 맞지 않게 ‘무력행사’를 하고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일본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서로 죽이는 일 없이, 평화적으로 사는 ‘평화적 생존권’이 침해받고 있다는 법정 변론을 펴고 있다.

원고의 변호인단은 소장과 준비서면, 구두변론 등을 통해서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국제법을 어긴 ‘침략전쟁’이라고 규정한다. 미국의 패권주의적인 침략전쟁에 일본이 공범자로 나섰다는 것이다. 또 고이즈미 총리는 부시 대통령이 기르는 ‘개’라고 개탄한다. 더 큰 우려가 있다. 자위대의 ‘집단방위’가 가능하다고 보는 현 고이즈미 정권이 전쟁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고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본 시민사회는 다시 전쟁에 나서는 일본의 모습을 두려워한다.

이를 막아보자는 것이 이번 소송의 취지이기도 하다. 나고야, 도쿄, 오사카, 시즈오카 등 전국 11개 법원에서 같은 소송이 진행 중이다. 전국에 걸쳐 5600명의 원고인단과 800명의 변호인단이 참여하고 있다. 과거에도 비슷한 소송이 있었다. 1991년 걸프전 때 도쿄 등 다섯곳의 법원에서 제기된 자위대의 소해정 파견과 130억달러의 전쟁 비용 배분 금지 소송을 비롯해, 평화유지군으로서 자위대의 캄보디아, 골란고원 파견 등을 둘러싼 위헌 소송이 잇따라 제기됐다. 모두 패소하긴 했지만, 자위대 활동에 대한 시민사회의 견제와 감시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동북아 시민사회가 함께 연대해야

자위대 파병 금지 소송에 동북아의 시민사회가 연대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우려했던 일본 후소샤판 중학교 교과서 채택률이 0.41%에 그친 것도 한·중·일 시민사회의 연대를 통해서 가능했기 때문이다. 미노와씨와 함께 삿포로 법원 소송에 원고인단으로 참가한 재일동포 2세 임병택(59)씨는 <한겨레21>에 “자위대 파병은 단순히 이라크에 가는 것 이상으로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가 걸린 문제라고 볼 수 있다”며 “동아시아 민중의 교류와 연대를 통해서 미국의 군사전략에 따라 이뤄지는 전쟁의 움직임을 막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미노와씨는 법정에서 “자위대의 파견이 잘못임을 나타내지 않으면, 중국이나 이웃 국가 국민에게 큰 걱정을 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전쟁을 하는,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은 일본 시민사회의 두려움일 뿐 아니라, 동북아 모든 국가가 경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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