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시민운동과 PeaceBoat (성공회대엔지오학과 홈에서 퍼옴)

강연제목 : 일본의 시민운동과 PeaceBoat
강연자 : 노히라 신사쿠(野平晋作)

강연 내용(발췌)

1.피이스 보트는 1982년 교과서문제 발생에 대한 반성으로 냉전 극복, 역사인식, 남북문제(경제격차)의 3개 방침 하에 만들어진 평화 엔지오 단체이다. 세계 분쟁 지역을 배로 순방하며 현지 견학, 취재, 토론 등을 통해 평화를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피이스 보트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① 80년대 이후 사회운동단체가 고령화하고 젊은층의 탈정치화/탈사회화가 진행되는 가운데서 드물게 젊은 층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의 연 참가자 약 23,000명 중, 약 50% 이상이 10-20대이다. 이는 피이스보트를 젊은 층이 ‘자기 찾기’ 과정으로, 혹은 실제 체험을 통해 행동을 위한 근거 찾기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또 하나. 젊은 층이 참가하기 용이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예를 들면 대인지뢰 제거를 위한 100엔 켐페인이 있는데, 이는 1평방미터 내에 있는 대인지뢰를 찾아내고 이를 제거하는데 소요되는 경비가 100엔이라는데서 착안했다. 다시 말하면 100엔을 내면 지뢰 하나를 없앨 수 있고 이를 통해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동기부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혁명을 하자면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지만 100엔을 내서 목숨을 구하고 평화를 쟁취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100엔을 낸다.

② 경제적 자립성 : 재정자금을 주체적으로 조달한다. 하나는 책임 파트너십이라 불리는 일종의 공동운영자가 100명 정도 있다. 이들은 직업적으로 학생부터 교수, 사장까지 아주 다양하다. 이들은 출자자이면서 프로그램 시행시 발생하는 적자를 머리 수로 나누어 분담하는 일을 감당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경우에 따라서 수백만엔의 빗을 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술자리에서 노히라 대표는 자신도 약 12년 동안 하고 있는데 빗이 수백만엔에 달한다고 고백하였다) 또 하나는 일반 프로그램 참가자의 경우 약 100여만엔의 여행경비를 부담해야 하는데, 이는 다른 선박 여행에 비해서는 싸다고 하지만 특히 학생들에게는 적지 않는 부담이다. 따라서 출항 전에 프로그램 시행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에 참여할 경우, 노동 시간 1시간 당 약 1,000엔의 감면혜택이 주어지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재정자립의 원칙은 일본정부나 자치단체가 주관하는 <청년의 배>라는 프로그램과 피이스보트를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왜냐 하면 <청년의 배>는 일본 정부 등으로부터 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전쟁책임문제나 ODA(정부개발원조) 등의 문제에 대해서 발언할 수 없으며 또한 일본과 국교가 없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는 갈 수가 없다.

③ 구체적 현장을 방문해 현장을 매개로 한 현지 엔지오와의 연계를 중시한다.

2.한반도와 관련해서는 남북한을 방문해서 분쟁 대립의 원인을 조사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해오고 있는데, 그러나 한 개 프로그램에서 남북한을 순차적으로 방문한 것은 1991년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 때도 결국은 편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왜야 하면 한 프로그램에서 남북한 동시 방문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일본→이남→다시 일본→(배 갈아타고)→이북으로 갔으며, 남쪽을 갈 때는 <피이스 보트>라는 이름으로 이북을 갈 때는 <평화의 旅人>이라는 이름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런 편법 없이 갈 수 있게 되었다.
3. 개인적으로 미일안보조약을 인정하는 우파 성향의 후지와라 기이치(동경대학 교수)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현실 인식에 동조하는 부분이 있다. 그는 말한다. ‘유럽은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주권이나 국가를 넘어서 공동행동(action)을 취할 수 있다, 혹은 취해야 한다는 공동인식이 나치스 독일의 역사적 경험에서 역사적 교훈의 토양 위에서 만들어져 있다’고 말한다. 이를 내 나름대로 해석하면 인권에 대해서는 국경을 넘어서서 물론 비폭력이라는 원칙 하에 국제사회가 개입해 해결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이에 대해 일본은 가해자와 피해자(공습, 원폭)의 동시 경험이라는 독특한 역사적 기억이 있는데, 이와 같은 역사적 교훈에서 반전이라는 교훈을 끌어내는데 실패했다.

4. 최근에 일본에는 오래 만에 반전 데모가 붐을 이루었다. 특히 4-5만 명이 모이는 집회를 보다니 꿈만 같다. 한국에서 보면 이런 정도의 규모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한국과 일본의 청년의 차이(자신은 1964년생이고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386에 속한다)는 한국의 젊은이가 ‘노력하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하다는 점이다. 반전 데모가 이 정도 규모에 달한 것은 획기적이다. 그러나 왜 그런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전쟁일반에 대한 반대가 아닌 것 같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침공을 받는 이라크에 동조적인 사람들조차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에 대해서는 심한 공포감을 갖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작년 조일정상회담 이후 ‘납치’문제가 표면화되면서 일본에 ‘북조선 배싱’이 ‘병적’(술자리에서 내가 쓴 이 표현에 대해서 노히라씨는 찬동)으로 진행된 결과일 것이다. 또 하나는 이건 내(권) 의견인데,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미국의 북조선 공격의 가능성을 키우는 것이고, 따라서 이는 북조선을 자극해 북조선이 일본을 미사일로 공격할 가능성에 대한 공포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참 신기한 논리이다. 일본은 언제나 군비 강화의 논리로 외부로부터의 공격 가능성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는데, 사실 공격을 받은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주변국 어느 곳도 일본을 공격할 수 있는 공격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노히라씨는 남한 사람들도 이북에 대해서 전혀 공포감을 가지지 않는데 왜 일본만이 이를 강조하는지, 정말 한심하다는 의견을 피역했다.

5. 그는 반전 데모에 많은 인원(특히 청년층)이 참가한 원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본의 사회운동은 대부분 60-70년대 학생운동이나 베트남 반전 운동을 주도한 세력이 중심이어서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 그러나 지금 반전 운동에 참여하는 청년층은 주로 국게협력 분야나 환경 분야에 종사하거나 관심을 갖던 층이고 결국 이들이 반전운동에 참여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역사인식이 부족하다. 따라서 올해 프로그램에 이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킬 생각이다.
6. 이와 같이 젊은 층 육성을 위해 피이스 보트 프로그램에는 <지구대학>이라 불리는 전문가 양성 코스가 있다. 지구대학은 선상에서 이루어지는 ‘엔지오 활동가 양성 코스’이다. 약 3달 동안 항해하면서 지속적인 학습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 하에 진행된다.

① 전문성 : 현장으로부터의 사고, 법literacy, 미디어literacy 등을 확보해 정부의 법제정이나 언론에 대한 시민의 전문적인 개입을 가능케 한다.
② 시점 혹은 positionality의 문제 : ‘타자(他者)에게 자신은 무엇일까’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모잠비크를 방문했을 때, 모잠비크 사람들에게 우리들이 일본인이라는 것을 전하자마자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에서 난민을 보러 오셨군요’라는 말을 들었다. 이는 우리들이 타자에게 어떻게 비추어진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고 이 확인을 통해서만 자신이 누구인지를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흔히 일본인이 자주 발언하는 ‘국경을 넘어서서 평화를’이라는 구호는 일본인이 국경을 간단하게 넘어설 수 있는 특권 특혜를 지닌 부류에 속해 있다는 자각이 전제되어야 한다.이에 대한 자각이 없이는 타자와의 연대는 불가능하다.
③ 스킬(skill) 교육
(1)에드보카시(advocacy) : 정책 비판/제언/로비 능력
(2)action : 집회/데모/조직/홍보/자료작성
(3)field:개발 엔지오 스탭의 일원으로 현지활동/분쟁조정
(4) 져널리즘 : 비디오 카메라 촬영 및 편집을 이용, 홍보.

-2003년 4월 23일 이상 발췌 정리 권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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