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사형제는 두려움과 복수에 관한 문제이다. 우선 두려움에 관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자유롭고 평화로운 공동생활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유보하여 법을 만들고 그 위에서 국가를 형성하였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의 실증적 연구를 통해 사형이 다른 일반 처벌과 비교하여 볼 때 특별히 사회 공동체 유지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특히 실제로 대다수의 사형을 받는 범죄자들은 흉악한 살인범이나 정치범들인데 이들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 그러한 흉악범이나 정치범이 나오는 것이 줄어들게 하지 못한다. 이 대목에서 정치범에 대한 사형은 대개가 다 정치 보복이나 정치적 악용이라는 것은 따로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또 하나 남은 문제는 복수에 관한 것이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당신 아내나 딸이 무참하게 짓밟히고 살해당했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사형제를 폐지하자고 주장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명쾌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인가는 누구든 냉철한 논리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타오르는 감정도 가지고 있다. 특히 그 감정이 복수에 관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감정이 형벌의 기초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주체가 설령 국가라 할지라도 복수를 대신해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수는 없다. 국가가 대신한다면 사회 정의가 대신할 수도 있고, 문중 도덕이 대신할 수도 있지 않은가?
과연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을 사형시킨다 해서 그런 범죄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 사회가 그러한 방법으로 통제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냉철히 돌이켜 생각하면 결코 그렇지 못하다. 이것이 슬픈 한국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