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2세 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그 동안의 노력에 대한 경과 보고
-2003년 3월.
‘선천성면역글로블린결핍증’을 앓고 있는 김형률씨가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통해 원폭2세환우 문제의 해결을 호소함.
-2002년 5월.
일본 히로시마 원폭건강센터에서 한국원폭2세로는 처음으로 김형률씨가 형식적이나마 건강검진을 받음. 담당 의사가 정밀 검진을 권유함.
-2002년 8월.
“한국원폭2세환우회” 결성.
김형률씨가 대구전교조와 히로시마일교조와의 역사교류회 참가. 한국과 일본의 역사 교사들에게 한국원폭2세환우의 문제 해결을 호소함.
-2002년 12월.
부산에서 아오야기 준이치 (부산대), 조석현 (전교조) 등이 주축이 되어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지원하는 모임” 결성.
-2003년 5월.
“한국원폭2세 환우회를 지원하는 모임”에서 한국원폭피해자와 한국원폭2세환우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결의, 서울의 관련 시민단체들과 연대 추진함.
-2003년 6월28일.
서울에서 '한국원폭2세환우 문제해결을 위한 간담회’ 개최 및 ‘원폭2세환우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이하 공대위)’ 구성 결의 및 8월 5일 국가인권위원 진정 및 기자회견 가지기로 함.
-2003년 7월12일.
서울과 부산에서 제1차 공대위 회의 각각 개최함.
-2003년 7월26일.
부산에서 “한일원폭2세회 심포지움” 개최. 공대위 심포지움 참관 및 공대위 2차 회의 개최함.
– 2003년 7월30일
서울에서 서울 지역 공대위 회의 개최. 기자 회견 준비 및 향후 활동 방안 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