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2세 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 기자회견

원폭2세 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 발족 및 국가인권위 진정 기자회견

일본 제국주의의 광기 어린 침략과 식민지에 대한 가공할 착취가 막을 내린 지 어언 58년, 그러나 아직도 이 땅에는 58년 전 역사가 남긴 고통의 굴레와 소외라는 차가운 빙벽에 갇혀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1945년 8월 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연이어 투하된 원자폭탄은 대량 인명살상이라는 엄청난 재앙을 인류 역사에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간신히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그 후손들에게까지 결코 씻기지 않는 고통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거주하다 원폭이라는 잔혹한 대량살상무기의 표적이 된 한국인들은 일제 식민지 착취의 희생자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전후 세계지배전략의 희생자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조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원폭후유증으로 인한 심각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상처를 치유 받을 기회를 제공받기는커녕, '일제의 광기 어린 침략전쟁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평화의 제물'로, 혹은 '한-미-일 삼각동맹의 유지를 위해 잊혀져야 할 존재'로 간주되면서 또 한번 버림받아야 했다.

역설적이게도 58년 전 자행됐던 인간 존엄성에 대한 범죄행위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 끝내 잊혀지지 않고 다시금 오늘날 현존하는 인권문제로 떠오르게 된 것은 그 범죄행위가 낳은 잔혹한 고통의 대물림 때문이다. 원폭(原爆)피해자들의 고통은 또다시 그 2세들에게까지 대물림되면서 최소 2천3백여 명에 달하는 원폭2세환우들이 지금도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채 인간다운 삶은 물론이고 생명 자체를 위협 당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지금 그들은 58년 전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와 그 후 58년 동안 자행된 한국정부의 외면이라는 2차 가해가 얼마나 잔혹한 것이었던가를 온몸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김형률'이라는 한 원폭2세환우의 용기있는 증언과 목숨을 건 노력을 접하면서 원폭피해자 1세들과 원폭2세환우들이 감내하고 있는 고통에 찬 삶이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뼈아프게 자각하고, 오늘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한다. 오랜 세월 강요돼 왔던 침묵과 사회적 외면 속에서 질병과 빈곤과 낙인에 대한 공포와 싸우다 소리 없이 죽어가야만 했던 원폭피해자들의 고통이 또다시 그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지는 일이 묵과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결코 부정될 수 없는 인간적 진실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성과 역사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고압적인 자세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책임을 철저히 외면해 온 일본과 미국 정부에 그 책임을 준엄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신들의 책임을 부정해 온 양 정부의 오만은 오늘날 아무 거리낌없이 군사대국화를 추진하고, 핵무기 사용 불사까지 거론하며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원폭으로 인한 역사적·사회적 고통을 오로지 피해자 개인과 그 가족의 몫으로만 전가시킨 채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을 철저히 외면해 온 한국정부의 책임 역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하며,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인권의 기본 원칙이다. 하물며 이들 원폭피해자들의 고통이 가진 특수성과 심각성을 고려할 때, 이들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수립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정부의 책임일 것이다. 더구나 한국정부는 이미 65년 한일협정을 체결할 당시 이들의 존재 자체를 철저히 무시함으로써 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챙긴 전후보상금으로 경제발전을 추구한 전력이 있다. 오늘 원폭피해자들과 2세환우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한국정부 역시 무죄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의 생명권과 건강권, 그리고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일은 비단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일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아니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이 지구상에서 침략전쟁이 허용되어서는 안되며 다시는 원폭과 같은 대량살상무기가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너무도 당연한 진실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이에 우리는 평화와 인권을 희구하는 보통 사람들의 열망을 담아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 한국정부는 원폭피해자들과 원폭2세환우들의 인권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의료·생활 지원체계를 즉각 수립하라.

– 국가인권위원회는 한국정부에 법·제도적 대책을 수립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시급히 권고하라.

– 일본정부와 미국정부는 원폭피해자들과 원폭2세환우들에 대한 배상책임을 즉각 이행하라.

2003년 8월 5일

원폭2세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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