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의 광주, 안디잔의 비극

우즈베키스탄의 광주, 안디잔의 비극
[인권프리즘] 카리모프의 전제정치과 국제사회

최재훈 국제민주연대 khis21@empal.com

공자가 제자들과 태산 기슭을 지나가 숲에서 울고 있는 한 여인을 만났다. 이유를 물어보니, 여인의 시아버지와 남편, 자식이 해마다 차례로 호랑이에게 잡아 먹혔는데, 그 곳에서 계속 사는 게 너무 무서워 운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무서운데도 왜 사람들 많은 마을로 내려가지 않냐니까 그 여인은 적어도 못된 벼슬아치들에게 시달리고 재산을 뺏기는 일은 없으니, 호랑이 때문에 무서울 지언정 여기가 낫다고 대답하더란다. 이 이야기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고사의 유래다.

사이버민주인권관 김아영기자
안디잔 시민들이 군인들의 발포로 숨진 시신들 중에서 가족과 친지를 찾고 있다

공자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고 한 가혹한 독재정치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사람을 잡았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다. 야당은 745명이 숨졌다고 하고, 목격자들의 증언을 종합한 현지 인권단체들은 한 학교 운동장에만도 500여구의 시체가 있었다며, 사망자 수가 1천 명에서 2천 명에 육박한다고 말한다. 바로 지난 달 13일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동쪽 끝에 위치한 인구 35만명의 도시 안디잔과 국경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다.

비극의 발단은 이렇다. 안디잔에서 영농교육을 실시하고 소규모 작업장을 건설해 자립기반을 만들어주는 등 빈민구제활동을 벌이던 이슬람 기업가 23명이 당국에 체포됐다. 혐의는 ‘아크라미아’란 이슬람 급진단체를 조직해 헌법을 파괴하려했다는 명목이었다. 그러자, 지역 주민들 수천 명이 법원 앞에서 그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평화시위를 벌인 후, 이틀 뒤인 12일 밤, 시위대들 중 무장한 일부가 교도소를 급습해 23명을 포함한 수감된 죄수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평화적인 거리시위에 참여한 평범한 시민들을 향해 군인들이 무차별 발포를 한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후, 대량학살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과 진상규명 요구가 빗발치자,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은 “무장한 이슬람 폭도들을 제외한 일반 시민들은 단 한명도 사망하지 않았으며, 모든 사태의 책임은 알 카에다 등과 연계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에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거짓이다. 사건의 근본원인은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16년동안 장기집권하면서 국민들의 자유와 기본권을 철저하게 억압하고, 석유, 천연가스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대다수 국민들은 극심한 가난에 허덕이는 현실을 외면한 채, 극소수 기득권층의 배만 불려온 카리모프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에 있다. 그리고, 민주화와 부정부패 척결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이슬람 급진주의자로 몰아붙이고, 감히 미국의 전매특허(?)인 ‘테러와의 전쟁’을 전가의 보도인양 반대파를 탄압하는데 휘둘러온 카리모프의 전제정치에 있다. 더 나아가, 카리모프 정권처럼 중앙아시아에서 맨먼저 미군에게 군사기지를 제공해 줌으로써 아프가니스탄 전쟁 수행과 카스피 해의 에너지자원 확보에 교두보를 마련해주고, 미국민들이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되는 것을 면제해주는 협정 체결에 흔쾌히 응해주는 등, 자기들에게 이쁜 짓만 골라서 하는 독재자라면 부시 대통령 스스로가 역설한 ‘폭정의 종식과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말 정도는 가볍게 잊어줄 줄 아는 ‘센·스!'를 지닌 미국에 있다.

안디잔과 국경지대에서의 학살이 벌어진 지 한 달이 흘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날 광장에서, 거리에서, 아니면 살기 위해 넘던 국경 근처에서 목숨을 잃었는지, 정확한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카리모프 정권이 국제인권단체들과 외신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고,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도 아직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우리를 포함한 국제사회 모두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지만, 그 가혹한 정치가 저지른 만행과 죄상을 외면한 결과는 호랑이 천 마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참담할’ 거라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최재훈 국제민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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