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말해 주세요

<미니님 팔레스타인 방문기>

나블루스로 온 첫 날

오늘(1월18일)은 라말라에서 나블루스로 왔습니다. 나블루스로 오는 동안 3개의 체크 포인트(검문소)를 통과했고, 칼리드의 얘기에 따르면 이건 단지 늘 있는 체크 포인트일 뿐 언제든지 임시 체크 포인트가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나블루스로 오는 길에 또 많은 점령촌을 보았습니다.

“칼리드, 대부분 점령촌 집들의 모양이나 색깔이 비슷한 것 같아요.”
“맞아요. 왜냐하면 정부에서 디자인해서 제공하는 집들이니깐요.”
“그리고 대부분 언덕이나 산 위에 있는 것 같아요. 팔레스타인인들을 감시하려고 그러는 건가요?”
“맞아요. 위에서 아래를 보며 감시하고 통제하려고 다 산 위에 있는 거에요.”

이런 얘기를 나누며 체크 포인트를 지나기 위해 길게 늘어선 팔레스타인인들의 차량과 사람 행렬을 뒤로 하고 나블루스로 들어왔습니다. 어제도 이스라엘 군이 마을을 덮쳐서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얘기를 들으며…….

옴 이하브 이야기

2004년 7월24일 밤, 나블루스 올드시티에 살고 있던 옴 이하브의 남편과 두 아들은 베란다에서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폭발음이 들렸습니다. 옴 이하브가 베란다로 나가보니 남편은 머리에 부상을 입었고, 작은 아들 바하브는 눈에 부상을 입었고, 큰 아들 이하브는 얼굴 반쪽이 부서진 채 죽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하브의 살점이 벽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습니다.

사진 1 옴 이하브가 사건 현장에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옴 이하브는 소리쳤습니다. 제발 도와 달라고, 누가 좀 도와 달라고…….

하지만 어떤 이웃도 그들을 도우러 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길에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가득했기 때문에 모두 두려워서 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옴 이하브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애원했습니다. 제발 치료를 받게 해 달라고……. 하지만 이스라엘 군인들은 치료를 거절했고, 1시간이 지나서야 구급차가 마을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사진 2 왼쪽이 큰 아들 이하브, 오른쪽이 작은 아들 바하브

당시 이스라엘 군의 공격으로 한쪽 눈을 잃은 바하브는 자신들이 공격 받을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현장에 가 보면 알 수 있는 것이 바하브의 집은 2층이어서 길에 있던 군인들이 사격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군은 공격을 했습니다. 그들이 개발한 신형 무기를 가지고.

사진 3 이스라엘 군의 공격으로 한쪽 눈을 잃은 바하브

“우리를 공격할 줄 몰랐습니다. 무기를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깐요. 그때 부상을 입은 이후로 냄새를 맡는 데도 문제가 생겼고, 숨 쉴 때도 어려움을 느낍니다. 팔레스타인이 아닌 다른 나라로 가서 더 좋은 치료를 받고 싶습니다.”

마날과 가족들 이야기

이하브 가족들과의 만남 뒤에 우리는 다른 피해자 가족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 4월 서안지구 전역을 휩쓸었던 대규모 군사 공격 때 일어났던 일을 마날이 얘기해 주었습니다.

“2002년 4월7일, 이스라엘 군이 우리 마을을 공격했어요. 탱크가 움직이는 모든 것에 대해 사격을 했어요. 그 때 아버지와 언니는 마당에 있었는데 탱크 사격으로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가슴에 부상을 입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어머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주변 이웃과 친척들이 와서 언니를 응급 치료 했어요. 하지만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가 없어서 3일 뒤에야 의사가 집으로 와서 수술을 했어요.”
“집에서요?”
“어쩔 수 없었어요. 이스라엘이 계속 통행금지 명령을 내렸으니까요.”
“아버지는요……”
“아버지 시신을 다른 곳에 묻을 수가 없어서 일단 집 마당에 묻었다가 6개월 뒤에야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었어요.”

사진 4 마날(왼쪽)과 조카

옆에 있던 아홉 살 난 무함메드와 얘기를 나눠 봤습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공격하는 걸 본 적 있니?”
“네.”
“언제?”
“이스라엘 군이 집으로 와서 가족들을 한방에 몰아넣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 기분이 어땠니?”
“무서웠어요.”

열 두 살 난 사메헤에게도 물었습니다.

“학생이니?”
“네, 6학년이에요.”
“어떤 과목 좋아해?”
“아랍어요.”
“꿈이 뭐니?”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거요.”
“만약에 지금 옆에 있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 군인이라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니?”
“우리 땅에서 떠나라. 여긴 우리 땅이다라구요.”

사진 5 나블루스 올드시티에서는 이스라엘 군에게 살해당하거나 싸우다가 죽은 사람들의 포스터를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습니다. 주로 인티파다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결혼해서 지금은 요르단 암만에 살고 있는 마날의 언니 리마와도 얘기를 나눴습니다.

“팔레스타인으로 올 때 별 어려움은 없었나요?”
“국경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몇 시간씩 우리를 버스에 태워 놓고 있어요.”
“왜요?”
“몰라요.”

‘왜요’와 ‘몰라요’ 저는 끊임없이 왜 그런지를 물어대고 사람들은 아무도 이유를 모릅니다. 단지 자신들이 팔레스타인인이라는 것 밖에는.

“67년 전쟁을 기억하시나요?”
“아니요. 그 때는 2살이었거든요.”
“얼마에 한번씩 팔레스타인으로 오시나요?”
“3년에 한 번 쯤요.”
“꿈이 있으시다면요.”
“팔레스타인에 왔을 때 체크 포인트를 안 봤으면 좋겠어요.”

마날의 얘기가 이어집니다.

“임산부가 병원으로 가려고 하는데 체크 포인트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통과를 못하게 해서 사람들이 죽는 경우도 많이 생깁니다. 저는 ‘평화’ 같은 것이 아니라 인티파다로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뿐만 아니라 서안지구에서도 떠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제가 만난 몇 사람들이 말하는 ‘평화’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런 평화가 아니라 평화 협상을 한다고 하면서도 상황을 더욱 악화 시키는 그런 의미의 ‘평화’였습니다. 오늘 ‘평화협상’을 하고 내일 다시 폭격을 해 대는 그런 평화.

마지막으로 마날의 인사와 당부가 이어졌습니다.

“여러분들이 팔레스타인을 찾아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시면 이스라엘이 만든 것이 아닌 팔레스타인의 진짜 상황을 한국 사람들에게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꼭 말해 주세요. 이스라엘이 테러리스트이지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구요.”

*팔레스타인 평화인권연대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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