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부담스런 과거와 대면할 것인가? – 전진성(부산교대 교수, 본회 운영위원)

지난 9월 16일, 아시아평화인권연대 두번째 월례워크숍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많은 분들이 참석하시고 토론의 열기도 높아 앞으로 진행될 워크숍에 대한 기대도 더 커진 듯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관심갖고 참여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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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부담스런 과거와 대면할 것인가?
“과거극복(Vergangenheitsbewältigung)”개념에 대한 이론적 검토

전 진 성 (부산교대)

I. 과거청산 개념의 문제점
II. 과거극복 개념의 어제와 오늘 – 형성, 정착, 변이
III. 과거극복의 이론 – 목적, 형식, 한계
IV. 애도 – 과거극복의 이념형
V. 과거의 청산에서 극복으로

“그것을 행했다라고 나의 기억이 말한다. 그것을 행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나의 자존심이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 마침내 기억이 굴복하고 만다.”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을 넘어서』

I. 과거청산 개념의 문제점

철학자 니체가 특유의 도발적인 어투로 지적했듯이, 과거는 흔히 우리가 현재 바라는 모습대로 탈바꿈되어 나타난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과거의 체험을 애써 기억하려는 것은 과거 그 자체가 소중해서라기보다는 과거의 영상에 자신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의 체험을 선별적으로 기억함으로써 우리의 삶에 의미와 방향성을 부여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과거의 일부에 특권을 부여하는 일을 과연 과거의 ‘왜곡’이라고 폄하할 수 있을까? ‘왜곡’이란 발상은 왜곡되지 않은 ‘진실’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라는 넓은 해안에 잔뜩 널려있는 ‘사실’의 모래알 전부를 ‘진실’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것들 대부분은 고작해야 ‘골동품적’ 가치나 인정받는다면 다행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과거만이 진실에 속하는가?
현대의 역사이론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 과거는 현재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한 어차피 상실된 대상일 뿐이며 오직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인위적 작업을 통해서만 우리 앞에 드러나게 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수지타산이 맞는 과거만을 골라 ‘재현’시키기에도 벅차다. 공공적 차원에 국한시키더라도 이 작업에는 각종 기념물 제작, 제의 및 경축일의 연출, 전통의 보존, 역사서술, 또한 이들과 관련된 각종 제도적이고 법적인 장치의 마련과 운영이 두루 포함된다. 과거의 ‘진실’이란 이와 같은 재현의 작업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진실이란 단지 객관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구성’해낸 사실인 것이다.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의 맹신자들처럼, 구성된 것 외에는 아무런 사실도 존재하지 않다고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과거의 존재양태가 바로 이와 같다면 한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을 부각시킬 수 있는 영광스런 과거를 선호하고 그에 주목하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것은, 다시 니체의 표현을 빌자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치 않다. 만약 한 공동체가, 너무도 쓰라린 과거의 상처에 시달리고 있는 경우라면 어떠할까? 이 경우 단순히 상체기를 가린 채 화려한 기억으로 치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온전히 아물 수 있겠는가? 주지하다시피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신경정신적 증상이 기억을 은폐하는데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과거의 체험이 생생한 기억으로 의식에 남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울 경우 그것은 무의식으로 추방된다. 프로이트는 이를 “억압(Verdrängung)”이라 지칭한다. 물론 이처럼 억압된 기억은 진정으로 망각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정신에 고스란히 “상흔(傷痕 Trauma)”으로 남아서 끊임없이 고통을 가한다. 따라서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의식속에 놓여있는 기억을 다시금 불러내어 그것이 분명하게 의식되도록 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Freud 1914) 상처를 가리기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수술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건강을 위한 지름길이다. 결국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이 우리의 논의를 위해 시사하는 바는 영광스런 과거보다 어두운 과거의 경우에 ‘진실’을 ‘재현’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타민족을 강제적으로 지배했거나 그 지배를 받았던 민족 또는 반민주주의적이거나 반인권적 체제를 경험했던 사회는 어떻게든 자신의 과거와 씨름할 필요를 갖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과거청산” 또는 “역사청산”이라는 용어는 바로 이러한 필요성을 웅변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용어는 한국사회의 의미론적 용례에 따르면 주로 일제에 부역한 친일인사들과 그들의 행적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규명함으로써 식민지라는 치욕적인 과거와 그것이 남긴 부정적인 유산을 ‘비판적으로 지양’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수많은 희생에 대한 정확한 책임의 소재를 따지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정확히 구분하며 희생자의 규모와 신원을 밝혀내고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악의 잔재를 말끔히 척결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도의적이며 동시에 정치적인 과업으로서 현재의 올바른 좌표를 설정하고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서 상정된다.
과거청산은 이처럼 사회정의의 구현을 지향하는 매우 실천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다지 엄밀하지는 못한 개념이다.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청산’이라는 표현의 수사학적 빈곤함이다. 그것은 과거와의 대면에 있어서 지나치게 정태적인 형식을 제시하고 있다. 즉, 이 용어는 일제시대와 그 이후의 한국 현대사의 파동을 자칫 단선론적으로 파악하게 하여 ‘가해자’ – 또는 수탈자 – 로 상정된 일부 층에 모든 책임을 전가해버릴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에서 청산의 대상으로 지목되어야 할 것은 각 시기와 각각의 사건들에서 그처럼 동질적으로 연쇄되어 있지 않으며 그것을 판단하는 주체나 판단하는 기준도 결코 동일할 수가 없다. 청산될 수 있는 것이란 오직 심각한 도덕적 과오로 인하여 존립의 정당성이 명백히 결여된 과거의 유산 – 인적, 제도적, 물질적인 – 일부에 국한된다.
그러나 과거청산이라는 용어가 갖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따로 – 물론 앞의 것과 연관되지만 – 있다. 역사철학적인 차원에서 볼 때 역사적 과거가 말끔히 ‘청산’될 수 있다는 발상은 “세계사의 법정”을 논했던 헤겔 류의 관념 속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역사가 어느 시점에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면으로 정의되는 한 어느 누구도 역사의 공정한 재판관 역할을 맡을 자격은 없는 것이다. 과거청산이라는 용어는 과거와의 대면을 일정한 선에서 종결시키려 함으로써 본래의 정의로운 의도와는 반대로 오히려 과거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적 문제제기와 희생자에 대한 추모의 정신을 저해할 수도 있다.
서두에서 살펴보았듯이, 과거의 ‘진실’은 반드시 확보되어야 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확보하는가이다. 과거는 영영 지나가 버렸고 남은 것은 그것에 대한 기억뿐이다. 따라서 과거의 모습은 원형적인 상태가 아니라 그에 대한 기억이 ‘재현’되는 방식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현대의 역사이론은 이 방식을 규정짓는 것이 무엇보다 현재 작용하고 있는 권력관계임을 알려준다. 과거의 ‘진실’은 결코 순수한 원형을 지니지 않으며 오직 권력의 망치질을 통해서만 나름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순수한 진실이 아니라는 점이 아니라 그 진실을 특정한 집단만이 독점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처럼 특정 권력집단이 모든 분파적인 기억을 억압하고 ‘최종의 진실’을 독점하지 않으면 않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과거청산이란 용어는 그 실천적인 함의에도 불구하고 향후 한국 현대사의 ‘진실’을 지속적으로 규명해 나가고 그것과 대면하는 올바른 원칙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오히려 저해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독일에서 사용되는 “과거극복”(Vergangenheitsbewältigung) 개념을 하나의 대안으로서 검토해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II. 과거극복 개념의 어제와 오늘 – 형성, 정착, 변이

옛 독일연방공화국(BRD)에서 1950년대 생겨나서 1960년대 이래 일반화된 ‘과거극복’ 개념은 ‘과거청산’보다 훨씬 반성적이며 포괄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이 개념의 의미론은 전후 독일인들이 나치 과거와 대면해 온 지난한 과정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우선 사전적인 정의에 따르면 과거극복이란 여타의 과거와는 별도로 오로지 “나치시기와 그것이 가져온 재앙에 대한 전후 독일인들의 대면(Umgang)”을 의미한다. (Benz 1990, pp.180) 이 개념의 특징은 과거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관념을 전제로 하면서도 이러한 과거가 단순히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부단한 “대면”을 통해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긍정적인 계기로 탈바꿈될 수 있다는 믿음을 담고 있는 것이다. 독일어의 “Bewältigung”은 어떤 어려운 과제의 ‘극복’ 또는 ‘해결’을 의미하며 매우 지난한 과정이라는 함의를 띠고 있다. 따라서 과거(Vergangenheit)를 극복(Bewältigung) 한다함은 과거가 우리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올 때 그것을 회피하지 않고 끊임없이 대면함으로써 그것이 더 이상 우리를 억누르지 않고 오히려 한층 고양시킬 있도록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과거극복이란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언젠가 종결시켜야 할 일이 아니라 항상 긴장을 풀지 않고 지속적이고도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과정을 의미한다. (Hey 1986, pp.75)
과거극복 개념은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1950년대에는 이와는 꽤 상이한 함의를 담고 있었다. 그것은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거나 과거가 주는 부담을 극복한다는 의미보다는 과거가 남긴 상처를 '치유'한다는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었다. (Kittel 1993, pp.14-21; Schulze 1993) 소련점령지역에 비해 불철저한 ‘탈(脫)나치화’를 이룬 채 탄생한 신생 서독은, 헌정 초기의 대한민국의 경우와 일견 유사하게, 반공산주의 노선 외에는 뚜렷한 이념적 기조를 결여하고 있었으며 많은 나치의 유산을 그대로 떠 안고서만 비로소 성립될 수 있었다. 민주주의의 정착과 사회통합을 기치로 내세웠던 초대 수상 아데나우어(Konrad Adenauer)는 나치 독재체제가 남긴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유산에 대한 본격적인 ‘청산’ 작업을 유보했다. 아데나우어 정권은 신생 이스라엘과 “관계회복(Wiedergutmachung)” 협정을 맺고 재정적 보상을 약속함으로 최소한도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일단 그것으로 나치의 범죄와 관련된 모든 법적, 도덕적 분쟁을 하루빨리 ‘종결(Schlußstrich)짓고’ 과거가 주는 부담을 덜어내고자 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실제로 많은 서독인들의 지지하에서 수행될 수 있었다. (Herf 1997, pp.272; Schwann 1997; Glaser 1990, pp.162 이하; Röhrich, 1988; Schwarz 1983) 당시 서독 역사가들이 사회에 만연된 “역사에 대한 권태(Geschichtsmüdigkeit)”를 심각하게 진단했던 것은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Heimpel 1957, Heuß 1959)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치적 환경이 급변하고 나치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세대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과거극복 개념은 비로소 본연의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그것은 좌파 철학자 아도르노(Theodor Adorno)가 제시했던 “과거의 비판적 규명 작업(Aufarbeitung der Vergangenheit)”이라는 어의에 점차 다가서게 되었다. (Adorno 1977) 이제 나치과거의 문제는 더 이상 ‘권태’를 자아내는 주변적인 문제가 아니라 서독의 “정치적 Layout” (Roellecke 1989) 으로서 자리잡게 되었고 그것을 은폐하는 것은 “애도할 수 있는 능력의 결여” (Mitscherlich 1967) 로서 공개적으로 비판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과거극복 개념은 나치과거의 ‘억압’(Verdrängung)을 극복해내는 것과 거의 동일한 의미를 띠게 되었다.
이러한 소위 ‘억압’-테제는 저널리스트 랄프 지오르다노(Ralph Giordano)의 유명한 저서 『두 번째 과오』에서 가장 극적인 표현을 얻게 되었다. “모든 두 번째 과오는 첫 번째 과오를 전제로 한다. 여기서 첫 번째 과오란 히틀러 치하의 독일인들이 자행한 범죄를 말한다. 두 번째 과오는 1945년 이후 첫 번째 과오를 억압하고 부인한 것을 말한다.” 지오르다노는 나치체제가 비록 군사적으로는 1945년에 종식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채 극복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나치과거를 “억압”하는 행태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Giordano 1987, pp.11 이하, pp.335; Kleßmann 1982, pp.252; Doering-Manteuffel 1983, pp.210)
억압-테제는 의심할 여지없이 과거극복 담론을 활성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과연 과거에 대한 철저한 규명작업만이 과거극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지나치게 생생한 기억은 치명적인 ‘상흔’이 어느 정도 아물기 전까지는 오히려 부작용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까? ‘억압’도 단순히 ‘과오’라고 매도될 것이 아니라 과거극복을 달성하는 하나의 해법으로서 인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바로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1980년대 이래 과거극복 문제를 정치적으로 도구화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가 제시되면서 억압-테제를 수정하려는 흐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보수주의 철학자 헤르만 뤼뻬(Hermann Lübbe)는 억압-테제란 아무런 역사적 진실도 말해주지 않으며 단지 특정한 세대가 자신의 정치적 대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활용한 무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서구 사회에서 일대 변혁의 바람을 몰고 왔던 소위 ‘68세대’는 서독 ‘부르주아’ 체제의 정당성에 흠집을 내기 위해 바로 이 억압 테제를 내세웠다는 것이다. 뤼뻬에 의하면 서독초기에 비록 나치과거를 충분히 공개적으로 논의하지는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치시기의 권위주의적인 정치문화가 서독의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완전히 무력화되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않된다. 서독 초기에 나치과거에 대해 침묵을 지킨 것은 나름대로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서독 민주주의 체제의 안정화를 위해 일정한 기능을 했다는 것이다.(Lübbe 1988; Wolffsohn 1988, pp.731; Kittel 1993; Mohler 1991)
실제로 서독에 대한 역사학적 연구들은 일정기간의 망각이 참혹한 경험을 한 직후 평화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했다는 점에 대해서 대체로 합의하고 있다. 민주주의 정착 및 국가주권의 회복과 비판적인 과거극복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양자가 비로소 결합될 수 있었던 것은 1960년대 이후였다. 그러나 1950년대에도 과거극복 문제가 완전히 방치되어 있었던 것만은 아니며 불미스런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고자하는 노력들이 동시에 있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Schwarz 1983, pp.434 이하; Röhrich 1988; Smith, et al. 1997; Bergmann 1998; Berghoff 1998)
억압-테제와 과거극복의 정치도구화에 대한 이와 같은 문제제기로 인하여 1960년대 이래 나름대로 의미론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던 서독의 과거극복 개념은 동요를 겪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에 들어서 콜이 이끄는 보수적인 기독교민주당(CDU)이 정권을 획득하게 되면서 그간 숨죽이고 있던 신보수주의의 물결이 일게 된 것과 궤를 같이한다. 보수주의 진영은 역사와 전통의 의미를 새롭게 강조하면서 과거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따르면 현대인은 지나치게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기에 과거에 대해 관심을 가짐으로써 이에 대한 정신적인 ‘보상’을 얻고자 한다. 예를 들어 박물관의 유물이라든가 유적지 또는 역사 이야기는 잃어버린 삶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정신적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와 같은 사고를 근거로 보수주의자들은 과거란 비판이나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향유의 대상이거나 안식의 장소라고 주장한다. (Lübbe 1985; Lübbe 1989; Marquard 1986, pp.93) 신보수주의의 물결은 주지하다시피 1980년대 중반 서독 지식계에 “역사가 논쟁(Historikerstreit)”의 파란을 몰고 왔다.
물론 신보수주의자들이 내세운 소위 ‘보상(Kompensation) 테제’만이 과거극복 개념의 의미론적 동요를 낳은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이와 더불어 서독 외부 주변환경의 급격한 변화도 단단히 한 몫을 했다. 1980년대 중반기부터 서방국가들이 2차 세계대전 중에 그들이 나치와 협력했던 사실을 뒤늦게나마 공개적으로 시인했고 또한 동구 사회주의권이 무너져 결국 독일이 통일하게 되면서 본래 나치과거에만 국한되었던 과거극복 개념은 범위를 전지구적 차원으로 확대하게 된다. 1990년대를 지나면서 “과거극복”이라는 독일 어휘는 잘못된 과거와 대면하는 보다 일반적인 양태를 지칭하게 되었다. (Sühl 1994; Wengst 1995) 특히 이 어휘는 독재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체제변화를 설명하는 분석개념으로서 동독의 독재 유산을 청산하는 일을 포함하여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가 이전의 비민주주의적인 체제와 대면하는 행위와 지식의 총체를 의미하게 되었다. (König 1998, pp.375)
이처럼 과거극복 개념이 나치과거의 비판적 규명 작업이라는 본연의 차원을 넘어서서 나치과거의 의도적인 망각으로부터 전 세계의 몰락한 독재체제를 반성하는 행위까지를 모두 담아내야 한다면 그 개념은 분명 의미론적 인플레이션을 겪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90년대 이후 이 개념의 무용성이 지적되고 여러 대안적 개념들이 제시된 것은 전혀 놀랄 일이 못된다. 페터 두덱은 과거극복 개념 대신 실제적이고 소박한 “교육화 작업(pädagogische Verarbeitung)” 개념을 제안하였으나 (Dudek 1992) 그다지 큰 반향을 얻지는 못했다. 페터 라이헬은 이미 문화과학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는 “기억문화”(Erinnerungskultur) 개념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개념은 파토스가 강하게 배어있는 과거극복 개념보다 과거의 현재화를 위해 작용하는 행위의 장, 문화적 체계, 사회적 과정 그리고 예술적 매체를 보다 과학적으로 세밀히 분석하는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Reichel 1995)
과연 그렇다면 서독 정치문화의 ‘layout’으로서 기능하던 과거극복 개념은 서독이라는 정치적 단위가 현재성을 잃어버린 지금의 시점에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게 된 것일까? 이 지점에서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현실적 여건이 부단히 바뀌어감에도 불구하고 나치과거는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특별히 부정적인 과거와의 대면을 특징지우기 위해 과거극복보다 더 적합한 개념은 없는 듯싶다. 이 개념은 집단적 ‘상흔’을 치유하려는 갖가지 노력들을 함께 담고 있다. 우리는 이 개념을 매개로 부담스런 과거와 대면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상호 비교■검토함으로써 비로소 포괄적인 실천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과거의 부정으로부터 긍정으로의 변증법 그리고 포괄성이야말로 과거극복 개념이 갖는 명백한 장점인 것이다.

III. 과거극복의 이론 – 목적, 형식, 한계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과거극복 개념을 둘러싼 담론은 해당 시기의 과거극복의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 즉, 이 개념은 서독체제의 형성, 발전, 변이의 과정에 그대로 상응하는 노정을 걸어왔다. 1960년대 이후 서독에서 과거극복 개념이 정착되었을 때 그것은 서독 정치문화의 결함 – ‘억압’테제 – 을 진단하고 새로운 정치 교육의 실천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그럼으로써 과거를 망각하는 것에 대한 강한 경고가 이루어졌고 나치과거 또는 여타의 부정적 과거에 대한 ‘비판적인 규명작업’이 요구될 수 있었다. 1980년대 이후의 담론에서 특징적인 것은 과거극복이 역사적 고찰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때까지 현대사 연구는 대부분 나치시기의 역사에 집중되어 있었고 전후의 과거극복의 문제는 주로 직업정치가나 언론에 의해서만 조명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나치 과거 극복의 구체적 과정이 현대사 연구의 주요한 주제로 등장함으로써 (Bergmann 1998; Frei 1996; Brochhagen 1994) 과거극복 개념은 이전처럼 실천지향적이고 당위론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분석개념으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과거와의 역사적 대면 자체를 역사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곧 이론적 성찰의 단계가 무르익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1990년을 전후로 서독이 통일독일 체제로 ‘변이’되면서 이전의 과거극복 개념은 동요를 겪게 되었고 이에 따라 과거극복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절실해졌다. 나치과거와 동독과거라는 이중의 과거에 시달리게 된 통일 독일은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종래의 과거극복 개념에 대해서 근본적인 이론적 검토가 필요했다. 이제 이 개념은 보다 이론적으로 확충되고 경험적인 사례로 뒷받침되어야 했다. 자칫하면 무너진 동독체제의 과거를 극복하는 일이 나치과거와의 대면을 궁극적으로 ‘종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었고 이상적인 경우에는 ‘첫 번째 과거극복’의 문제점을 거울삼아 ‘두 번째’ 경우에는 훨씬 올바른 과거극복이 이루어질 수도 있었다. (Bergmann 1998, pp.406) 따라서 1990년대 들어서서 그간의 과거극복에 대한 많은 경험적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과거극복의 목적과 형식 그리고 한계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들 시도들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과거극복의 실천적 목표는 피해에 대한 응분의 보복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피해자와 가해자간의 화해를 도모함으로써 악연의 반복을 막는 것이다. 과거의 망령으로부터 자유로와짐으로써만 진정으로 새로운 출발을 기약할 수 있다. 과거극복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유로운 민주사회 건설을 지향한다. 지나간 과오를 인정한다는 것은 단지 과거에 대한 고백 이상의 것이다. 자기 사회가 범한 죄를 자신이 짊어져야 할 부담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건전한 시민층의 양성이야말로 향후 모든 억압과 불의를 막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되는 것이다. (Höpken 2000) 그런데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전제가 되는 것은 ‘과오’의 원인과 과정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갖는 것이며 또한 다양한 형식의 과거극복을 실천하는 것이다.
과거극복을 실천하는 형식은 일련의 단계를 포함한다. 첫 번째 형식은 현재와 미래의 필요를 위해 과거를 되도록이면 ‘억압’하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뼈저린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측이 극적으로 몰락해간 경우 – 예를 들어 나치독일이나 일제의 패망 – 그들의 치명적인 상흔을 아물게 하기위해서 어느 시점까지는 필요하기도 하다. 물론 ‘억압’의 단계는 협의의 과거극복 개념에서는 배제될 수도 있다. 둘째로는 사법적인 조치가 있다. 이를 통해서 직접적인 범죄관계자가 처벌받고 관계기관이 폐쇄된다. 이것의 가장 명시적인 예는 전후 동■서독에서 수행된 ‘탈나치화(Entnazifizierung)’인데 이러한 과정이 없이는 여타의 과거극복 단계는 불가능하며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Quaritsch 1992) 세 번째 형식은 희생자의 복권과 그들에 대한 응분의 배상이다. 이것이야말로 과거극복에서 결코 제외시킬 수 없는 단계이다. 가해자측 또는 그 후손들로부터의 이러한 노력만이 피해자가 과거의 죄를 기꺼이 용서할 수 있는 실질적 토대가 된다. 네 번째 형식은 아도르노가 말한 ‘과거의 비판적 규명작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제도화된 형식 및 의사소통 과정 – 하버마스가 말한 “의식을 변화시키는 자기확실화 담론” (Habermas 1994, pp.54; Habermas, 1992, pp.243) – 이 요구된다. 여기에는 구체적으로 비판적 역사연구와 역사교육 또는 각종의 공적인 문화사업, 예를 들어 기념물 제작, 기념일 제정, 박물관 건립 등이 포함된다. 과거극복의 이 네 번째 형식은 한마디로 말해 지난 과오에 대한 ‘계몽’으로 특징지워질 수 있으며 따라서 희생자의 생존여부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König 1998)
이상과 같은 다양한 과거극복의 형식들은 물론 현실적 조건에 의해 규제된다. 즉, 극복되어야 할 지배체제의 성격, 그것의 지속기간 및 폭력성의 정도, 범죄에 대한 사회의 참여정도 또는 구체제의 이행과 극복의 방식, 국제정치적 여건 등이 그것이다. (Höpken 2000; König 1998) 전후 동■서독의 과거극복에 그토록 굴곡이 많았던 것은 나치체제의 전무후무한 범죄행태와 '평범한' 독일인들의 참여 (이진모 1998), 전쟁의 후유증, 냉전과 분단상황이라는 악조건에 기인한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악조건이 과거극복의 부진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과거극복의 한계범위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과거란 이미 상실된 대상에 불과하다. 우리가 아무리 겸허하고 충실하게 과거와 대면한다고 해도 이미 지나간 과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다. 더구나 과거 중에서도 성격이 워낙 강하고 유난히 부담스런 유형이 있다. 나치과거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과거를 진정으로 극복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과연 과거극복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선은 어디까지인가?
이 한계선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잣대가 바로 “역사화(歷史化 Historisierung)” 개념이다. “역사가 논쟁”의 와중에서 중심화두로 등장한 이 개념은 현대사가 마르틴 브로샤트(Martin Broszat)가 제기한 것으로 나치시기가 과학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견해를 암시하고 있다. 브로샤트에 따르면 역사가는 인식대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비판적인 거리를 두면서도 동시에 역사적 행위자의 의도와 그 과정 및 결과를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해함으로써 한 시대를 다면적으로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화란 이처럼 해석학적인 “이해”를 계몽적인 “비판”의 원리와 조화시킴으로써 비로소 달성되는 역사인식의 지평을 의미한다. 일견 무리가 없어 보이는 이 중성적인 개념은 나치과거라는 민감한 사안과 결부됨으로써 논쟁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이 개념을 둘러싼 열띤 논의에서 초점이 된 것은 역사화에 대한 강조가 자칫 나치체제를 다른 시기와 차등없이 역사인식의 대상으로 ‘정상화’시킴으로써 그 범죄의 유일무이성을 ‘상대화’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점이었다. 이에 대한 브로샤트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에 따르면 인식대상을 거리를 두고 분석적함으로써 객관성에 도달하려는 것은 모든 과학에서 동일하며 나치시기 연구만이 그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브로샤트가 과학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역사화란 역사연구 작업에서 방법을 정상화시키는 것이지 평가의 정상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역사화는 나치과거를 상대화시켜버리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전적으로 “우리의 일”로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치시기를 지나치게 특수화시켜버림으로써 독일사에서 이질적인 것으로 보게 된다면 그것은 대다수 독일인들에게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구실을 주는 것이다. 브로샤트는 나치과거가 독일사의 진행 속에 올바로 자리매김됨으로써만 그것이 비로소 진정으로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나치시기에 대한 역사적 해석에서 수용소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유대인 학살에 지나친 비중을 두는 것은 동시대의 비유대인 희생자들을 간과하게 할 수 있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한다. 결국 역사화는 오히려 도덕적인 가치를 보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Broszat 1985; Broszat 1988; Broszat/ Friedländer 1988; Mommsen 1987; Graml/Henke 1986, pp.153; Langewiesche 1989; Faulenbach 1990; Backes 1990)
브로샤트의 최대 논적으로 등장한 유대인 역사가 프리트랜더(Saul Friedländer)는 역사화 개념이 학문적 연구작업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나치범죄의 비교불가능성을 희석시킨다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나치가 행한 범죄는 결코 비교가 불가능한 “역사적 한계사건”이므로 과학적 설명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화를 논하는 것은 본질적인 도덕적, 실존적 문제를 덮어버리는 것에 불과하다. 그는 역사학적 객관성이 결코 도덕적 중립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Broszat/Friedländer 1988; Friedlander 1992 a; Friedlander 1992 b)
프리트랜더의 이와 같은 주장은 그가 지나치게 도덕적 단죄의 입장에 머물고 있지는 않은가하는 의구심을 일으킨다. 브로샤트가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히틀러의 만행이 결코 이해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비판적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그것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한다. 만약 역사화 개념이 나치체제가 노정하였던 다면성, 모순성, 상대적 개방성을 진지하게 고찰하도록 독려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도덕적 기회주의로 폄하될 수는 없으며 오히려 과거극복의 지평을 확대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브로샤트의 역사화 개념은 다소 오해의 소지는 있지만 대체로 아도르노가 말한 ‘과거의 비판적 규명작업’이라는 대의에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화 개념에 대한 프리트랜더의 비판적 문제제기에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이 유대인 역사가는 나치과거를 가해자가 아닌 희생자의 입장에서 접근했다. 사실 희생자의 입장에서 보면 흔히 ‘홀로코스트(Holocaust)’ 또는 ‘쇼아(Shoah)’라 불리는 나치범죄는 과학적 인식의 대상이 되기 힘들다. 피해자 개개인의 뼈저린 ‘상흔’이 문제가 될 때 역사화란 부조리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극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나치범죄라는 ‘한계사건’의 경우에 그것이 남긴 상처가 역사화를 통하여 진정으로 치유될 수 있는가하는 점이다. 역사화를 통해서 비록 공식적으로는 과거극복이 실현되었더라도 그것은 명백한 한계를 보인다. 실제 피해를 겪은 당사자들의 기억 속에서 과거는 여전히 극복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에게 있어서 기억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진실’을 머금고 있지 않은가!
과거극복의 긴 노정은 역사화의 지평에까지 도달했으나 결국 기억의 문제에 부닥치면서 행로가 막히게 된다. 그렇다면 기억은 과연 과거극복의 한계지점인가? 기억은 어떠한 합리적인 비판도 절대 끼어들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인가? 기억은 과거의 진실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가?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보다 심도있는 이론적 성찰이 필요하다.

IV. 애도 – 과거극복의 이념형

기억은 분명 합리성의 저편에 있다. 그것은 ‘역사화’나 ‘비판적 규명작업’으로는 대체되기 힘든 종류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앞서 설명했듯이, 기억은 결코 과거의 원형적 체험을 순수하게 반영하지는 않으며 특정한 ‘재현’의 방식에 종속된다. 원형적 체험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나치범죄는 절대 이해가 불가능하다. 모든 원형적 체험은 돌발적으로 이루어지며 양도될 수 없고 불연속적이다. 이것이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제 모습을 갖추려면 사후적으로 반드시 어떤 인위적인 구성작업을 거쳐야 한다. 다시 말해, 직접적 기억만이 과거의 진실을 보증할 수 있다는 발상은 과거의 재현방식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Koselleck 1999)
기억 구성의 문제를 가장 논리적으로 해명해주는 것은 다시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다. 한 개인이 자신의 과거와 대면하는 과정은 사랑하는 대상의 죽음과 그 슬픔의 극복에서 가장 극적으로 그리고 가장 표본적으로 드러난다: 나는 과거에 나의 체험세계와 긴밀히 결부되어 있던 대상을 상실할 때 심리적인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것의 상실은 곧 나 자신의 상실과도 같은 것이기에 나는 그것의 상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애써 버틴다. 이와 같은 나르시시즘적 “동일화”의 심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약화되어 결국 나는 새로운 현실을 직시하기에 이른다. 과거의 대상을 “타자”로서 인정하고 그에 대한 애착을 포기하는 것은 “우울”의 감정을 수반하지만 결국 나는 이를 통해 다시 “자유롭고 장애없이” 새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포기된 대상과 나와의 관련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포기된 대상에 대한 “애도작업(Trauerarbeit)”을 통해 그것은 나의 일부로 화하고 나는 바로 자아의 현존 속에서 그것을 끊임없이 기억하게 된다. (Freud 1917)
이상과 같은 프로이트의 임상적 기술은 좀더 설명을 필요로 한다. 과거의 원형적 체험이 기억에로 이르는 과정은 어떠한 경우든 필수적으로 인고의 시간을 요한다. 과거가 아름다운 것이던 참혹한 것이던 상관없이 그와 철저히 결별하지 않고는 지속적인 기억이란 불가능하다. 더구나 ‘홀로코스트’의 경우처럼 극심한 ‘상흔’이 남는 체험은 무의식의 영역으로 쫓겨나게 되기에 그것을 기억의 형태로 구성해내는 과정은 더욱 지난할 수밖에 없다.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이처럼 진정한 기억이란 원형적 체험에서 직접적으로 구해지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지는 것이다. 기억의 구성에서 가장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는 것은 다름아닌 상실의 인정이다. 기억이 적어도 허위가 아니라 진실을 담고자 한다면 상실된 과거를 어느 정도는 객관화 – 대상화 –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잃어버린 대상의 ‘타자성(他者性)’을 감내함으로써 비로소 그것과 현재의 나와의 연관성을 새롭게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이제 나는 내가 포기한 것을 정확히 의식하고 그것의 타자성을 인정하게 됨으로써 비로소 그것을 나의 현재적 의식 속에 내면화시킬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나 자신을 구성하는 본질적 일부로 자리잡는다. 결국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부터 자유로와진다는 것과 과거의 상실을 새로운 정체성을 구성하는 계기로서 자리매김함을 의미한다. (Ankersmit 2000; Hölscher 1989, pp.13 이하)
여기서 프로이트는 ‘애도작업’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우리의 일상언어에서 애도(英: mourning, 獨: Trauer)란 타자의 상실을 슬퍼하는 지속적 행위를 일컫는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더 이상 과거에 집착하지 않은 채 그것을 기리고 겸허하게 성찰하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애도작업’을 기억구성의 규범으로 제시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가 타자의 상실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 우리는 진정으로 타자를 애도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슬픔을 느끼는 것은 소중한 그것의 상실이 다른 무엇으로 대체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지적했듯이 우리가 나르시시즘적 ‘동일화’라는 퇴행적 심리에 빠져 소중한 그것이 아직도 내 곁에 있다고 믿는 한 우리는 결코 애도를 행할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한다. 물론 과거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두는 행위만을 가지고는 애도라고 할 수 없다. 애도란 상실된 과거에 대한 비판과 계몽을 슬픔과 연민의 감정에 결합시키는 의식적인 ‘작업’이다. 오직 이를 통해서만 상실되어버린 그것은 계속적으로 우리 안에 살아있게 된다. (Liebsch 2001)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 난제가 놓여있다. 프로이트는 ‘애도작업’을 상실된 대상에 대한 사적인 기억에 국한시킨 바 있다. 애도란 오직 개별자간의 관계에서만 효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앞서 살펴 본 브로샤트의 ‘역사화’ 개념과는 상호 배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가 과학적, 비판적으로 연구될 때 개개인의 죽음은 ‘상실’로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단순히 익명적인 타자의 죽음으로 환원되기 쉽다. (Bohrer 2001)
우리는 이 지점에서 다시금 브로샤트에 대한 프리트랜더의 반론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개개인의 죽음은 상호 비교불가능하며 결코 상대화될 수 없다. 그것은 결코 역사적이거나 의학적인 ‘사실’로서 대상화될 수 없다. 상실의 아픔이 배제된 애도의 유포리아는 과거의 희생자를 자칫 체제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시킬 수도 있다. 우리는 특히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과거의 희생자를 ‘투사’로서 영웅화한 많은 예를 알고 있다.
애도 개념을 정치■역사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일은 많은 이론적, 방법론적인 난점을 안고 있다. 애도를 위해서는 일단 쓰라린 과거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개인의 경우와 집단적인 경우에 별반 차이가 없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까다로운 종속변수가 등장한다. 독일인들은 과연 진정으로 ‘아우슈비츠’를 애도할 수 있는가? 가해자의 자기비판은 표면적으로는 희생자에 대한 애도를 내세우고 있더라도 실제로는 상실된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기위해 필요한 것이 아닌가? (부루마 2002, pp.91 이하)
미쳘리히 부부가 분석한 바 있듯이, 히틀러라는 유일무이한 영도자의 “상실”을 아파하며 나르시시즘적 집착에 빠진 독일인들에 있어서의 “애도능력의 결여” (Mitscherlich 1967) 와 홀로코스트의 상흔을 치유하지 못하는 유대인, 집시 – 신티(Sinti)와 로마(Roma) 족 – , 동성연애자들의 경우를 동일한 차원에서 논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가해자 집단에 있어서는 그런대로 속죄와 은폐의 문제가 선악의 대립으로서 비교적 명확하지만 피해자 집단으로서는 자신 내부에 존재했던 많은 가해자들을 과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분명치 않다.
그렇다면 애도 개념은 오로지 사(私)적인 과거극복에 대해서만 유효한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진정한 과거극복이 궁극적으로는 희생된 개개인의 문제로 귀결됨을 인식해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는 애도 개념의 효용성을 의심하기에 앞서 과거극복의 본원적 한계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운명’의 차원에서 볼 때 과거는 결코 완전히 극복되기 힘들다. 후대인들이 한 개인의 죽음을 영웅적인 투쟁의 결과로 보던 아니면 치욕스런 패배로 보던, 그러한 사후의 의미부여와는 상관없이 그의 죽음은 그 자신과 친지들에게는 ‘절대적인’ 것이다. 적어도 이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 대해서는 우리는 전적으로 무력하다. 우리가 상실된 과거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것을 어떻게든 재현시켜내는 것뿐이다. 이 점은 개개인에게 있어서나 공적인 차원에서 예외가 없다. 우리는 우리가 재현해낸 기억이 결코 최후의 진실이 아님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지속적인 애도작업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
중요한 점은 바로 애도 개념이야말로 이와 같은 과거에 대한 겸손함을 전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과거의 원형적 체험을 객관화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슬픔과 연민의 감정을 유지한다. 이처럼 애도란 역사화 개념과 결부된 과학적, 비판적인 과거규명과 개개인 또는 개개 집단의 기억에서 비롯되는 실존적, 도덕적인 문제를 연결시킬 수 있는 최적의 이음새이다. 만약 이러한 애도의 작업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역사적 과거에 대해서 일종의 ‘문화적 실천’으로서 지속될 수 있다면 그것은 한 공동체가 스스로의 과거와 건실한 관계를 수립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애도의 과정을 통하여 공동체는 과거의 암운을 걷어낼 수 있으며 비로소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고 능동적인 변화를 겪는 계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Rüsen 1996; Zuckermann 2001; Kirsch 2001) 이는 가해자나 피해자에게 있어서 동일하다. 우리는 바로 여기서 과거극복의 규범적 전형을, 베버(Max Weber)의 방법론적 개념을 빈다면, 과거극복의 “이념형(Idealtypus)”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V. 과거의 청산에서 극복으로

한국사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과거청산” 개념은 재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개념은 우리가 과거와 대면하는 폭을 크게 제한하기 때문이다. 과거가 전적으로 ‘청산’될 수는 없는 법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린 것으로서 근본적으로 우리의 통제밖에 놓여 있다. 우리는 과거를 단지 우리 나름의 방식대로 기억하면서 가능하다면 그것과 부담스럽지 않고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뿐이다. 물론 과거의 부정적 잔재가 채 사라지지 않고 아직 너무도 현실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 경우 우리는 그것을 시급히 제거하여 과거의 영역으로 추방시킬 필요가 있다. 만약 이를 과거청산이라고 지칭한다면 이 개념은 나름의 유효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일제 식민지과거의 유산에 대한 초보적인 청산 작업도 이루어지지 않은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이 개념은 나름의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과거청산 개념은 과거의 잔재가 청산되지 못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내줄 뿐 한국사회가 앞으로 과거와 어떻게 대면해가야 할 것인가에 관한 전망을 제시해주지는 못한다. 만약 과거의 청산이 과거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주된 형식이 되어버린다면 우리가 과거를 지속적으로 기억해야 할 여지는 매우 좁아진다. 여기서 우리가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비록 과거의 잔재는 청산될 수 있더라도 과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결코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과거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새김으로써만 과거를 진정으로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독일의 “과거극복” 개념이야말로 바로 이러한 측면을 부각시키는 유용한 개념이다.
그러면 앞에서 논의한 것을 바탕으로 과거극복 개념을 압축해서 정리해보자. 과거극복이란 다단계의 형식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행위체계이다. 각각의 형식들은 다른 어떤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나름의 가치를 갖는다. 예를 들어 사법적 차원의 조치없이 역사화를 논한다는 것은 무의미할 뿐이며 과거의 진실에 대한 비판적인 규명없이 무작정 과거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할 수도 없는 것이다. 만약 과거극복이 특정한 형식에 치우친다면 그것은 정치적■도덕적 책임소재를 흐리거나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변질되거나 아니면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 허무주의를 유발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온전한 과거극복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과거의 진실을 파헤쳐야하며 그에 따른 적정한 처벌을 수행하고 희생자를 복권시키고 보상하여야 한다. 과거의 망령은 오직 그것을 현재화하고 공개화시킴으로써만 부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더욱 중요한 일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죄업 또는 희생을 과학적, 정치적, 예술적 수단을 통하여 끊임없이 기억하고 내면화함으로써 새로운 정체성으로 통합시켜내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과거극복의 목표이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비로소 ‘애도’를 논할 수 있게 된다. 애도는 과거극복의 규범을 제시하는 최상의 이념형으로서 여기에서는 정치적 조치, 비판적 인식 – “역사화” – 그리고 기억사이에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과거극복의 지평을 이처럼 최상으로 확대시킬 수 있더라도 그것의 한계를 결코 간과해서는 않될 것이다. 과거가 주는 부담은 줄일 수는 있으나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는 법이다. 과거란 마치 우리의 뒤를 항시 따르는 그림자와 같다. 우리가 그것을 움켜지거나 쓸어내려고 몸을 기울인다면 그것은 더욱 길어진다. 바로 이와 같이, 과거를 겸허히 애도하는 자세없이 그것을 쉽사리 소유하거나 또는 ‘청산’해버리려 한다면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는 더욱 길어지기만 할 것이다. 이미 재차 강조했듯이, 우리는 우리가 재현해낸 기억이 결코 최후의 진실이 아님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울려퍼지는 진실의 목소리에 항상 다시금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바로 이러한 자세를 통하여 과거극복은 비로소 인륜적인 차원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끝으로 과거의 죄에 대한 용서의 의미에 관해서 한마디만 언급하기로 하자. 용서란 과거극복의 전 노정 중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이루는 것으로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선사하는 고귀한 ‘선물’이다. 기독교적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신이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켜 죄인인 인간에게 베푸는 ‘은총’이다. 그런데 이러한 용서가 과거극복의 한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지나간 사건을 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기억 – 애도 – 하는 행위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Ricœur 2000) 만약 가해자가 자신의 과오를 스스로 용서하려 든다면 이는 사건의 은폐에 불과한 것으로 의심받아 마땅하다. 이와는 달리 피해자가 만족할만한 ‘비판적 규명작업’의 단계를 밟고 나서 흔쾌히 선사하는 용서는 피해자 자신과 가해자 측 모두에게 부담스런 과거를 떨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신의 은총과도 같은 이 아름다운 의식(儀式)을 집전함으로써 과거의 상처는 아물고 사자의 영혼은 비로소 안식을 얻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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