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권의 사각 지대를 찾아서

지금, 네팔에서는 양민 학살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네팔에서는 지금 한창 빨갱이 사냥이 진행 중이다. 여기에서 빨갱이라 함은 중국의 모택동주의를 이념으로 삼아 공산 혁명을 일으키려 하는 세력을 말함이고, 사냥꾼은 의회를 해산하고 왕정을 복구하여 독재를 자행하는 세력을 말한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1972년 비렌드라 왕은 전제 왕정의 군주로 군림하였고, 이에 대해 1980년대부터 민주화의 열기가 고조되었다. 결국 1990년에 비렌드라 국왕은 민주화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절대 왕정을 입헌군주제로 전환하고 다당제를 도입할 것을 약속하였다. 하지만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고, 정국은 의회를 중심으로 하여 민주화를 이루고자 하는 민주 세력과 왕권 강화를 추구하는 왕실 세력 사이의 치열한 싸움만 지속되었다. 그러한 와중에 경제는 침체하고, 인민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기득권자들의 억압은 갈수록 기승을 부렸다. 결국 1996년에 모택동주의를 신봉하는 공산당 세력은 왕정에 대해 권력 분점을 요구하며 '인민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공산주의자들은 무장 봉기를 통해 지주와 인민의 약탈자들을 처단하면서 극빈 상태에 있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네팔 국토의 1/4을 사실상 장악하면서 독자적인 행정 기구를 운영하기까지 했다. 그러자 2002년에는 국왕이 의회를 해산하였고, 비상사태를 선포하여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짓밟았다. 그 사이 정치인들은 권력 투쟁과 권력 남용을 일삼은 채 국민의 이익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개인의 사리사욕에만 눈이 어두워 정국을 풀지 못하였다.
반군들에 대한 가난한 인민들의 지지는 점점 높아져 가면서, 이후 경찰의 투입이 큰 효력을 보이지 못하자 본격적으로 정부군을 투입하여 공산주의자 소탕을 시작하였다. 그로 인해 매년 300명 내외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그러면서도 사태가 해결되지 않자, 2001년부터 네팔 정부는 반군 세력 척결을 위해 정규군을 투입하기 시작했고,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에게 협조하지 않은 자들에게 보복 살인을 끊임없이 자행하였고, 그 가운데는 반군이 양민들을 인간 방패로 삼아 그로 인해 죽은 수가 수백이 넘는다는 사실을 보면 양민 학살의 책임과 잔혹성을 정부에게만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는 해방 시기의 제주도 4.3이나 여수·순천, 거창 등지에서 일어난 좌우 충돌로 인한 양민의 학살과 다를 바가 아무 것도 없다. 그 사이 죄 없는 양민들만 셀 수 없이 죽어 나갔다.
내전이 시작되면서 네팔 전국 가지에는 정부군의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인권 유린은 극에 달하였으니 살인, 유괴, 납치, 강간, 고문 등이 그 수나 방법이 갈수록 잔인해졌다. 1996년부터 현재까지 양측에 의해 살해된 수가 약 11,000 명에 이른다. 국제사면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실종자 수가 2000명이 넘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치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된 실정이다. 정부는 납치, 강간, 살인 등을 저지른 군인들에 대해 전혀 손을 쓰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 공산주의 반군 또한 그들과 다를 바는 전혀 없다.
비록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사태가 이 지경이 되면서 세계의 인권과 평화 관련 시민 기구들은 이 문제에 대해 적극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UN 사무총장, UN인권고등판무관실, 국제사면위원회, 인권감시단, 아시아인권위원회, 국제법률가위원회 등이 관심을 갖고 이곳을 방문하여 평화와 민주화가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인권 단체들이 앞장서서 실종자를 찾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나마 법치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부분이고 생사 여부를 확인해주는 것이 당사자 가족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쉽게 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아직도 곳곳에서 고문과 보복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네팔에 민주주의가 복원되지 않고서는 작은 문제 하나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국제 사회가 거미줄같이 연결되어 네팔 문제 해결에 동참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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