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리나가 들추어 낸 미국 인권의 현주소
지난 9월 미국 남부에 불어 닥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우리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을 드러내주었다. 그것은 세계 최고의 문명국이자 인권 보호국이라 알려진 미국이 바로 인권의 거대한 사각지대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인종 차별의 문제였다. 미국의 인종차별주의는 법적으로는 1960년대에 폐지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명목적이고 형식적인 것이었다. 겉으로는 교육이나 보건 의료 복지 등에서 평등함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번 일을 통해 미국 사회는 인간적 가치나 공동체적 가치를 바탕으로 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닌 국가 권력의 강제성에 의해 간신히 유지되고 있을 뿐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유지 체제의 중심에는 백인의 지도만 있을 뿐이다. 미국에서의 실질적인 사회 통합은 아직도 요원한 상태이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은 단지 경제적인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이번에 여실히 드러났다. 저지대에 흑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피해가 컸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흑인이 가게에 가서 먹을 것을 가지고 나오면 약탈하는 것이 되고 백인이 가지고 나오면 먹을 것을 발견하는 것이 되는 언론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복구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의 일은 벌어진다. 피해가 극심한 저지대 빈민가의 흑인들은 구조에서조차 뒷전으로 밀렸다. 반면 뉴올리언스 내 부유한 백인들만 산다는 생 찰스 스트리트에는 침수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는데도 구조에서는 우선적으로 처리되었다.
뉴올리언즈는 오래 전 노예 시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100년이 지난 그곳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 정책이 여전한 사실을 통해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것은 백인들과 돈 있는 자들의 인권일 뿐 흑인들과 가난한 자들의 인권은 아무런 관심조차 끌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과연 그러한 미국 사회가 아프가니스탄이나 중동의 여성 인권의 문제를 거론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