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지 만 10년이 지났다. 근대 역사상 가장 참혹한 인간 차별로 꼽히고 있는 아파르트헤이트는 백인들에 의한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이었다. 1948년 이래로 백인 정부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통해 각 인종에게 특정 지역을 지정하여 이미 살고 있던 곳에서 그곳으로 강제로 이주하도록 하였고, 그곳에서만 거주하도록 제한하였다. 1970년대 중반까지 흑인들은 교외 지역으로 이주시켰고 그 경계에 기관총 라인을 설치함으로써 흑인을 쾌적한 도시로부터 완전히 격리시켰다. 하지만 노동력은 필요했고, 이 경우, 흑인 남성만 (즉 가족과 격리시킨 채) 도시에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신분증소지법을 통해 철저히 통제하였다. 인종간의 결혼도 물론 법으로 금지하였고, 유색인들에게는 참정권도 허락하지 않았다. 모든 공공 부문에서는 백인들만을 위한 공간이 따로 설정되어 유색 인종들은 그것을 사용은커녕 접근조차 할 수가 없었다. 교통사고가 나 백인 아이와 흑인 아이가 모두 위급한 상황 중에 백인용 구급차가 오면 흑인 아이는 그것을 이용할 수가 없었다. 흑인용 구급차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가 죽으면 그만이었다. 이런 처참한 인종 차별 안에서 백인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사회적 특권과 지위를 만끽하였고, 흑인들은 범죄와 질병 속에서 고통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아프리카 흑인 단체들은 일부 백인의 지원을 받아 시위, 파업, 폭동 등을 통해 아파르트헤이트 정부에 항거하였다. 국외에서도 줄기찬 비난을 받았다. 그 결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61년 영연방에서 탈퇴할 수밖에 없었고, 1985년에는 영국과 미국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한 선택적 경제 제재 조치를 단행하였다. 그러다가 1989년 이후에는 소련과 동유럽에서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 아프리카국민회의(Africa National Congress)의 재정적이고 도덕적인 지지 기반이 무너져 버렸다. 이러한 국내외적 압력과 정세의 변화 속에서 1990~91년 클레르크 대통령은 아파르트헤이트의 근간을 이루는 법률들을 대부분 폐지하고 넬슨 만델라를 석방하면서 정세를 뒤집는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결국 1994년 다인종이 참여하는 총선거에서 아프리카국민회의 의장인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남아프리카에서는 최초의 흑인정권이 탄생했으며 이로써 적어도 법률상으로는 아파르트헤이트에 종지부를 찍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인종 차별은 남아프리카 사회에 여전히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길거리에 백인 거지가 공공연하게 등장하고 그들에게 흑인들이 동냥을 베풀어주는 것이 볼거리를 제공해주고는 있으나 근본적인 변화는 아직 오지 않았다. 흑인들은 정권을 잡아 그들의 정부를 구성하고 과거에 압박받은 흑인들에게 여러 부문에서 유보 의석을 할당해주고 많은 혜택을 주는 등의 정책을 쓰고는 있으나 대부분의 흑인들은 여전히 가난과 범죄와 질병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인 독립은 하였으나 경제적으로는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웃 국가인 짐바브웨의 경우, 무가베 대통령이 2000년 8월 백인들의 토지를 몰수하였고, 이후 1000여 건이 넘는 흑인들의 백인 농장 점거 사건으로 인해 경제가 크게 악화되고 엄청난 규모의 부의 해외 유출이 일어나고 있는 상태다. 결국 흑인 정권은 파산 직전에 놓여 있다. 남아공에서는 무지개 국가를 표방하며 관용과 화해를 부르짖고 있지만, 흑인들의 가난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많은 흑인들이 끊임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결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세계에서 가장 으뜸가는 범죄율이 높고 치안이 불안한 나라로 만들어 놓아 버렸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다른 데 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으로 인해 흑인은 정권을 유지할 능력이 본래부터 없었다든가 과거 백인 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 때가 낫다든가 하는 식의 의식이 사회 곳곳에 널리 퍼져 가고 있다. 죽은 아파르트헤이트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아파르트헤이트가 남긴 가장 무서운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