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나코 장학사업 “Project for Children Fund” 방문 보고서(2013년 5월)

사피나코 장학사업 “Project for Children Fund” 2013년 방문 보고서
< SAPINAKO, 희망을 키우다 >

정귀순, (사)이주민과 함께 상임이사

하나, 희망이 자라다

부산과 경남지역 필리핀 바탕가스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필리핀 공동체 ‘SAPINAKO’에서 2009년 태풍과 홍수로 큰 피해를 입은 고향 필리핀 돕기 사업이 일회적인 사업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장학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가난한 어촌마을 카리다드이바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학용품 전달사업을 시작하여 올해 세 번째 학용품 전달사업이 있었다. 이 사업은 해마다 조금씩 성장하여 2011년에는 아이들 100명에게 학용품을 전달하고, 지난 해 200명, 올해는 400명에게 학용품을 전달하게 되었다. 특히 올해는 사피나코 회원들의 회비와 희망의 저금통 모금 뿐 아니라, 한국 내 아이들의 예쁘고 튼튼한 유치원 가방이 버려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그것을 모아 그 가방을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아시아 가난한 지역 아이들에게 보내기로 한 생각 깊은 엄마들의 모임인 ‘반갑다 친구야!’에서 아이들의 가방 400개를 기증하여, 400명의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전달할 수 있었다.

둘, 아이들의 기다림

2012년의 장학사업을 마치고 2013년의 사업을 준비하면서 ‘SAPINAKO’에서는 중요한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이바바 초등학교 외에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교가 많은데, 이바바 학교에만 지원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문제제기였다. 지난 해 이바바 초등학교 학용품 전달식을 지켜 본 인근 학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들에서 지원요청을 하기도 하였고, 좀 더 많은 아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갔으면 하는 사피나코 회원들의 마음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정리된 결론은, ‘여기 저기 지원하기보다 한 곳이라도 충분히 지원하여 사피나코에서 지원하는 학교가 훌륭한 학교로 성장해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그리고 여력이 생긴다면 다른 학교 특히 도움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지역의 학교를 돕도록 한다’ 였다. 진지한 마음이 읽혀지는 이런 과정을 거쳐 사피나코에서는 올해 이바바 초등학교에 학용품 400set와 학교에서 간곡히 요청한 엠프를 준비해서 전달하게 되었다.

5월 25일 아침, 한국과 홍콩 등지에서 날아온 이들이 움직이는 까닭에 출발이 늦어져 조금 늦게 도착한 학교에는 기대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아이들이 목을 빼고 있었고, 학교에서는 환영 플랭카드를 걸고 기다리고 있었다. 꼬맹이들이 방학 내 준비했으리라 짐작되는 공연으로 시작하여, 학용품이 담긴 가방 전달식에 이어, 한명 한명 전달하느라 전달식이 지체되는 중에 냄새만 솔솔 풍기던 맛있는 점심식사가 이어졌다. 작은 덩치에도 접시에 넘치도록 받은 점심을 다 먹을 수 있을까 염려하는 이들의 눈길이 가 닿은 곳에는 언니가 동생에게 밥을 먹여주는 모습, 아이들 여럿이 모여 나누어 먹는 모습이 있었다. 아이들은 가방도 좋지만 먹는 것이 더 반가운 모습이었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교사들과 방문단의 간담회가 있었다. 지난 해에 비해 학교에서는 방문단을 맞는 준비를 많이 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새로 부임한 교장선생님의 의욕 덕분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가방 몇 개를 챙기고 싶어 하는 교장 선생님, 혹시 가방이 남으면 내 아이에게도 하나 줄 수 있는지 묻는 교사들에 대니는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생계비에 턱없이 모자라는 이곳 교사 월급을 생각하면, 한국에서 공수되어 온 멋진 가방을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하나 가져다 주고 싶은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아, 다음에는 교사들에게도 하나씩 돌아갈 수 있도록 넉넉하게 가방을 준비하면 좋겠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벌써 내년 사업에 대한 얘기들을 나누었다. ‘내년에는 이바바 학교 아이들 모두에게 학용품을 전달하고 싶고(전체 학생 수 510~520명), 교실이 부족해 유치부는 야외에서 수업이 진행되고 있어 학교 건물을 더 지어주고 싶고, 무더위에 선풍기 하나 없는 교실에 선풍기를 달아주고 싶고……’. 해마다 조금씩 자라나는 희망이 있으니, 내년에 다 이루어지지는 않더라도 조만간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셋, 이주의 시작과 끝

지난해 새벽에 도착해 두어 시간 자고 움직이던 일정과 달리 하루 일찍 도착해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 시간, 얼마 전 한국에서 귀국한 사피나코 멤버이자 <이주민과 함께>와 인연이 많은 두 가족을 방문했다. 크리스와 아라의 집, 대니의 사촌형님인 로니의 집. 한국에서 6년간 일한 크리스와 7년간 일한 아라는 한국에서 만나 결혼했고, 두 아이 크리스티나와 민주도 한국에서 낳았다.(필리핀의 독립기념일에 태어난 아이에게 대니와 마리안나는 한국이름 ‘민주’를 지어주었단다) 태어나 6개월, 9개월째 부모를 떠나 필리핀에서 할머니와 지내던 아이들은 지금 예쁜 엄마의 곁을 떠나지 않고 멤돈다. 한국이 다섯 번째 이주노동 국가였던 크리스는 다음달 즈음 다시 사우디아라비아로 취업을 떠날 예정이라 한다. 매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서둘러 귀국해야 했던 크리스 부부는 비교적 조건이 좋은 한국에 다시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미등록체류 경력이 있는 크리스에게는 여의치 않아 다른 나라를 선택해야 했다.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지만, 필리핀에서는 적당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으니 아름다운 아내 아라와 예쁜 두 아이를 두고 다시 멀리 떠나는 걸음이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이 함께 가족으로 살아가는 동안 함께 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크리스의 집 망고나무 아래서 필리핀 공동체 행사 때면 빠지지 않았던 바비큐와 산미구엘 맥주를 마시며 얘기 나누는 동안, 더위를 식히는 스콜이 지나갔다.

저녁식사에 초대한 로니는 사피나코 멤버이자 대니의 사촌형이다. 나이 지긋한 그의 집은 시 공무원인 아내의 손길에 정갈하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푸짐한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5년간 일한 로니 역시 한국이 이주노동의 첫 국가는 아니었고, 그날 저녁 식사에 함께 한 이들 중 로사의 남편은 지금 김해에서 일하고 있고, 한명의 사피나코 멤버는 한국 재취업 절차를 완료하고 한달 내 경기도 부평에 있는 공장으로 이주노동 올 예정이고, 두명의 사피나코 멤버는 한국 재취업을 위한 한국어 시험에 합격했다고 기뻐했다. 아마 1년 이내 이들 세 명은 한국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사피나코 회장을 맡기도 했던 조디는 이번에도 대니와 함께 장학사업의 준비와 진행에 바쁘다. 다시 한국에 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는 그의 가족은 나이 드신 어머니와 여섯명의 아이들이 있다. 조디가 한국에 일하는 동안 그의 아내가 사망했다. 지난 해 방문했을 때 그의 첫째 딸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고 있었고, 이번에는 첫째가 사우디에서 막 일을 끝내고 돌아왔고, 둘째 딸이 지난 11월부터 경기도 화성에서 일하고 있다. 그렇게 가족 중 누군가는 이주노동 중이다. 이렇게 필리핀에서 이주노동은 ‘한번의 고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나은 가족들의 삶을 위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이런 이주노동의 끝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넷, 미셀과의 만남

대니의 초대로 사피나코 멤버들의 Re-union Program에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위원장이었던 미셀이 함께했다. 미셀은 지금 필리핀의 진보적인 단체 'Migrante International'에서 일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최대 인력송출국 중 하나인 필리핀에서 이주노동 중인 필리핀인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Migrante International'은 쏟아지고 있는 일을 감당하기에 벅차 보였다. 특히 약 110만명의 필리핀인들이 일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최근 미등록 필리핀인의 추방정책을 강도 높게 진행하면서 30% 정도의 미등록 필리피인들의 출국 러시로 출국을 원하는 필리핀인들이 필리핀 대사관 앞에서 텐트를 치고 지낸다고 한다. 이들의 귀국을 돕고 있는 미셀은 휴일도 없이 사무실에서 숙식하며 지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미셀과의 대화는 아주 흥미로왔다. 미셀은 한번 시작하면 끝없이 이어지는 이주노동을 끝내기 위해 필리핀의 정치가 민주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들을 하면 이주노동을 하는 당사자들은 가족들을 부양해야 한다며 하나둘 빠져나가버린다고, 그래서 아주 어렵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브라질의 빈민촌에서 활동 중인 한 분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에게 우유를 나누어 줄 때 브라질 정부는 우리에게 천사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가난한 이들에게 ‘왜 가난한가?’라는 질문을 하자 브라질 정부는 우리에게 악마라고 했다.”

활동비도 없이 사무실에서 숙식을 하며, 휴일도 없이 고단하게 일하지만 미셀은 한국에서보다 더 빛나 보였다. ‘일은 힘들겠지만 행복해 보인다’는 나의 말에 그는 ‘그렇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고립감이 컸지만, 이곳에서는 같은 어려움을 겪고 또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을 만나고 있으며, 한국에서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고 했다. 필리핀의 현안과 필리핀 사람들 속에 자리 잡은 미셀을 보며 이주민 활동가의 연대의 폭이 한국 내에 국한되지 않고 귀국한 이주민 활동가의 활동들과도 넓게 연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다섯, 반갑다 친구야!

이번 사피나코의 장학사업에 새로운 파트너가 동행했다. ‘반갑다 친구야!’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네명의 단짝 친구들이 비슷한 연령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튼튼하고 질 좋은 유치원 가방이 잠깐 쓰고 버려지는 것이 아까워 가방을 모아 가방이 유용하게 쓰일 지구촌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전달하자는 취지로 주변의 지인들에게 알리기 시작하여, 취지에 공감한 분들이 보낸 학용품을 전달하는 활동들을 하고 있는 작은 모임이다. 그 뜻이 소박하고 진실하여 주변의 많은 분들이 공감한 덕분에 가방이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단다. 지난 해 <아시아평화인권연대>의 ‘캄보디아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장학생들에게 가방 80개를 전해준 것을 인연으로 사피나코 장학사업을 소개하였더니 흔쾌히 가방 400개과 학용품을 전달해 주었다. 필리핀 아이들에게 더 많은 가방을 전달할 수 있겠지만, 현지의 사정을 눈으로 직접 보고 사피나코 장학사업에 함께 하면 이후 사업 진행에 서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동행을 결정했다. 아이들이 어려 짧은 일정으로 네 명의 엄마와 초등학교 1학년인 한명의 아이가 동행했다.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보다 필요한 물건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잘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 동행한 이들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 애쓰는 배려심을 가진 보기 드문 파트너였다. 헤어지가 전 사피나코의 내년 사업에도 함께 하기로 의기투합하여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을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망고 알레르기로 고생한 지혜님의 일화는 아마 ‘반갑다 친구야!’의 활동에 오래 오래 특별한 일화로 남으리라 생각한다.

여섯, 작별

이번 필리핀 방문 때 가장 아쉬웠던 것은 지난 해 테스의 시골집에 머무는 동안 테스 아버지께서 나무를 때서 끓여주시던 진한 바탕가스 커피, 그리고 그 가족들의 편안하고 따뜻함이었다. 안타깝게도 테스의 아버지는 우리가 필리핀으로 출발하기 며칠 전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가셨다. 그리하여 이번엔 필리핀에 가기 어렵다던 테스도 급히 필리핀으로 날아가 병원에서 밤을 지새며 간병 중이었다. 거의 1주일째 병원을 떠나지 않았던 테스도 가족들이 떠밀어 이바바 학교 방문과 Re-union Program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시간동안 마음 한켠의 걱정을 누르고 벗들을 만나 즐겁게 지냈다. 이바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테스에게 말했다. “테스, 아마 아버지가 테스를 이 모임에 오라고 부른 모양입니다.”

필리핀을 떠나기 전날 테스 아버지가 입원해 계시는 병원을 찾았다. 그는 아주 힘들어 보였다. 의식이 거의 없는 그가 한국에서 찾아온 테스 친구의 힘내라는 말에 눈을 잠시 떴다 감았다. 지금도 알 수 없다, 그가 나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하루 50만원에 이르는 병원비는 가족들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지만, 테스는 아버지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 돌아온 3일 뒤, 이른 아침 테스로부터 긴 문자메세지를 받았다. '따따(아버지)는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어 이제 따따를 편안하게 해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형제들과 긴 얘기 끝에 따따를 집으로 모시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병원에서 퇴원할 예정입니다. ……'. 그리고 다음 날 새벽, 그는 돌아가셨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테스는 남편, 아이와 함께 장례식을 위해 필리핀으로 가고 있다. 그는 이제 그의 가장 큰 자랑이던 총명하고 용감한 딸들의 작별인사를 받으며 떠나가실 것이다. 필리핀을 떠올리면 가장 마음 따뜻한 곳, 가장 맛있는 커피를 끓여주시던 분, 이제 내게도 기억으로 남았다. 부디 편안하게 잘 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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