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 노동법 개악안에 대한 인권단체 연석회의 의견서

0. 시작하며

○ 지난 9월 10일 노무현 정부는 「파견근로자보호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하 파견법안)과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하 기간제법안)을 입법예고하고 11월 2일 국무회의를 통해 정부안을 확정했습니다. 정부는 정부입법안의 기본방향으로 첫째 비정규근로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처우를 금지하고 남용을 규제하되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조화를 도모하고, 둘째 비정규직 제도를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하도록 개선하되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여건을 충분히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며 정부가 내놓은 이들 입법안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기는커녕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으며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스런 현실을 외면한 법입니다. 개악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모든 기업이 임시계약직과 파견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비정규직이 ‘예외적’인 고용이 아니라 정규직이 ‘예외적’인 고용형태가 될 것입니다. 이에 따라 전체 노동자의 일상적 고용불안의 심화, 노동권의 약화와 노동조합의 무력화가 급속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1. 비정규 노동법 개악안의 문제점

1) 파견법안의 문제점

□ 파견 허용업무의 자유화

○ 현행 파견법은 원칙적으로 26개 업무에 한하여 파견제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파견법안은 ‘건설공사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업무’, ‘선원의 업무’ 등 소수의 금지업종을 제외하고 모든 업무에 파견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현행법에서도 건설업 등은 파견금지업종이지만 실제로는 인력소개소를 통한 불법파견이 만연해 있고 이에 대한 감독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음을 고려하면, 정부 입법안은 사실상 파견 허용업무의 완전 자유화라 할 수 있습니다.

○ 최근 사내하청 불법파견 집단진정으로 쟁점이 되었던 제조업에 대해서는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 업무에 대하여는 출산·질병·부상 등으로 결원이 생긴 경우 그 사유가 해소될 때까지, 그리고 일시적·간헐적으로 인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최장 6개월”까지 허용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실제로는 제조업에서도 파견제를 허용하겠다는 것입니다. 현행법 하에서 제조업은 26개 허용업무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일시적 인력 필요가 있는 경우 6개월 한도 내에서만 허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입법예고안에 따르면 제조업 직접생산공정만 6개월이라는 기간 제한을 받을 뿐이고, ‘직접생산공정’을 제외한 간접공정과 지원부서는 3년까지 파견제를 허용하는 것이 됩니다. 이로 인해 간접고용 노동자(사내하청)에 대한 전환배치와 구조조정과 함께 제조업 전반에서 파견제가 급속히 확산될 것입니다.

□ 파견 허용기간의 자유화

○ 입법예고안은 파견 허용기간을 현재의 2년보다 연장하여 (반복갱신을 포함하여) 최장 3년까지 연장했습니다. 따라서 현행 파견법 하에서 2년마다 파견노동자를 교체사용 하던 것이 3년마다 교체사용 하는 것으로 바뀔 뿐이고, 파견노동자의 주기적 해고는 계속될 것입니다. 이는 오히려 파견기간 연장을 통해 기업이 상시적 업무에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는 여지를 더욱 열어준 것입니다. 결국 사용자가 파견노동자를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은 연장되었으나 파견노동자의 주기적 고용불안은 전혀 해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 또한 고령자고용촉진법에 의한 고령자(55세 이상) 또는 준고령자(50세 이상)는 3년을 초과하여 파견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규정을 신설하여(법안 제6조 제3항) 파견허용기간도 무제한이고 직접고용 의무조항도 적용받지 않도록 했습니다. 현재도 중고령노동자들이 경비·청소·환경미화 업무에서 용역으로 대거 사용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파견법안은 중고령노동자의 간접고용화를 더욱 부추길 것입니다.

○ 정부는 동일 업무에 파견노동자를 교체사용하는 것을 규제하기 위해 파견제 사용 중에 휴지기간(동일한 업무에 파견노동자 사용이 제한되는 기간)을 두겠다고 공언한 바 있으나, 파견법안에 따르면 사용사업주는 3년 간 파견노동자를 사용한 경우 3개월의 휴지기간만 가지면 다시 3년 간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동일 업무에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없는 ‘휴지기간’이란 명분에 불과하게 됩니다. 실제로는 “3년간 파견노동자 사용 → 3개월간 계약직 전환 → 다시 3년간 파견노동자 사용”이 가능하게 됩니다. 결국 휴지기간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상시적으로 파견노동과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직접고용 간주규정의 삭제

○ 현행 파견법은 “사용사업주가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2년의 기간이 만료된 날의 다음날부터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제6조 3항)고 ‘간주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파견법안은 이 부분을 “사용사업주가 3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사용사업주는 당해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하여야 한다”로 사용사업주의 ‘의무규정’으로 개악하고 있습니다. 현행법대로라면 파견허용기간을 초과하여 파견노동자를 사용한 시점부터 사용사업주에게 직접고용된 것으로 법적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파견법안대로라면 설령 파견 허용기간을 초과하여 노동하더라도 사용사업주에게 직접고용되었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되고 기껏해야 재판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뿐이어서 파견노동자 보호를 위한 사법상의 효력이 현저히 약화됩니다.

○ 노동부의 설명자료에서도 고용의제규정을 고용의무규정으로 전환하는 이유에 대하여 “당사자의 의사의 합치없이 근로관계가 강제되어 사적자치(계약의 자유)의 원칙에 반한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노동부는 사용사업주가 직접고용의무 불이행시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여 직접고용의 유인을 만들겠다고 하지만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입니다.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만 경제적 제재 수단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설령 행정적 제재를 가한다고 하더라도 사용사업주는 직접고용보다는 이것을 택할 것입니다. 현재도 노동부가 불법파견으로 시정명령을 내린 경우에도 사용사업주가 이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으로 가는 경우가 허다한데, 파견법안은 파견법에 의해 사용사업주에게 직접고용되었음을 재판상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차단했기 때문입니다.

2) 기간제법안의 문제점

□ 기간제 고용의 무제한 확산

○ 기간제법안은 3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간제고용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법안 제4조 제1항), △사업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휴직·파견 등으로 결원이 발생하거나 근로자가 학업·직업훈련 이수 등으로 결원이 발생한 경우 △고령자(55세 이상)나 중고령자(50세 이상)의 사용의 경우 △전문적 지시·기술의 활용이 필요하거나 정부의 복지정책·실업대책 등으로 일자리가 제공된 경우 △기타 이에 준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 대통령령으로 정한 경우에는 3년을 초과하여(무제한으로) 기간제 고용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법안 제4조 제3항).

○ 기간제법안대로라면 사실상 기간제 고용을 무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법안 제4조 제3항에 열거되어 있는 예외사유는 지나치게 포괄적일 뿐 아니라 대통령령을 통해 계속 확대할 수 있는 길마저 열어 두었습니다. 이러한 기간제한 예외사유가 과연 3년을 초과하여 허용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인데,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이 3년을 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은 사실상 모든 업무에서 상시고용을 대체하여 기간제고용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정규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제30조에 따라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노동자에게 중대한 징계사유가 있거나 정리해고 요건을 갖춘 경우)가 없는 한 해고할 수 없고 정년까지의 고용이 보장됩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해고책임을 회피하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1개월, 3개월, 6개월, 1년 등으로 근로계약기간을 정하는 기간제(계약직) 노동자를 선호하게 됩니다. 정부가 제출한 이번 기간제법안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헌법상의 기본권을 가진 국민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할 의무(헌법 제32조, 제34조)를 위반한 것입니다.

□ 기간제 근로계약기간의 3년연장, 그러고 자유로운 재계약거부

○ 정부 기간제법안은 “사용자가 3년을 초과하여 기간제 근로자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정당한 이유없이 근로계약기간의 만료만을 이유로 당해 근로자와의 근로관계를 종료시킬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법안 제4조 제2항). 이것은 언론이 보도하는 식으로 3년을 초과하여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하면 함부로 해고를 시킬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3년을 초과하여 계속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하다가 그 이후 재계약을 거부하는 경우, 이 때의 재계약거부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법적으로 다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현행법 하에서도 일정 기간 계약을 반복한 경우 재계약 거부시에 해고의 정당성 여부를 다툴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이 때의 해고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할 때 정규직에 비해 폭넓게 사용자측의 정당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경향이었습니다. 따라서 언론의 보도는 왜곡된 것이고, 오히려 파견노동자와 마찬가지로 3년마다 기간제 노동자를 교체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입니다.

○ 게다가 이마저도 법안 제4조 제1항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즉 제4조 제3항에 규정되어 있는 포괄적인 예외의 경우에는 이 정도의 규정마저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결국 기간제고용의 남용을 막을 수 있는 장치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 재계약거부를 통한 해고에 대하여 법률적으로 다툴 수 있는 가능성이 축소됨

○ 현행 근로기준법 하에서는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반복갱신한 경우 무기근로계약임을 다툴 수 있는 법적 가능성이라도 있었으나, 개악안 대로라면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아무리 여러번 반복하여 장기근속한 경우라도 재계약거부를 통해 해고되었을 때 노동자측에서 기간의 정함이 형식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법적 여지 자체가 없어지게 됩니다.
입법예고안이 광범위한 경우에 기간제고용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이후에는 법원이나 노동위원회에서 기간제고용이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상당히 장기간 사용되어도 입법취지상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볼 것입니다.

□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금지 구제신청의 실효성 여부

○ 노동부 스스로가 입법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부안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과 동일하게 처우하라는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고 따라서,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격차가 당연히 법위반이 되는 것이 아니며 그 중 합리적인 이유없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발생하는 임금격차가 금지·시정대상이 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 이에 따르면 해당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비교가능한 노동자가 있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비정규직의 업무와 정규직의 업무 자체가 구분되어 있거나 설사 유사한 업무를 하는 경우에도 정규직이 관리직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 차별의 성립 자체를 판단하기가 불가능해집니다.

○ 한편, 정부입법안은 차별적 처우에 대한 벌칙조항을 두지 않고 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위원회를 설치하고 근로자가 차별시정신청을 하여 노동위원회에서 시정명령을 하는 절차를 마련하였습니다. 차별시정절차는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행정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의 5단계를 거치게 되며, 사용자가 확정된 시정명령을 정당한 이유 없이 이행하지 않으면 1억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 위와 같은 노동위원회에 의한 차별시정절차가 실효성을 가질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노동위원회의 심판절차와 마찬가지로 시정명령이 최종적으로 확정되기 위해서는 대법원까지 5심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적어도 3-4년 이상의 기간이 걸릴 것입니다. 기간제, 단시간, 파견근로자 등 비정규근로자는 대개 고용기간이 정해져 있는데 차별시정절차를 밟는 초기단계에서 근로계약기간이 만료되어 근로관계가 종료되고 사용자가 재계약을 하지 않음으로써 근로자의 신분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근로자가 차별시정절차를 계속 수행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비정규직 노동기본권의 무력화

○ 기간제법안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계약기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노동자는 정해진 근로계약기간 중에 퇴직의 자유가 제한됩니다. 이것은 비정규직 사용을 통한 사용자의 편의를 극대화시키는 것으로서 사용자는 재계약 절차를 통해 선별적으로 고용하거나 해고하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 현재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재계약이 되지 않을까봐 두려워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일례로 사용자가 신규 채용자를 일정기간 계약직으로 채용한 이후 선별적으로 정규직화하거나 계약직으로 재계약하는 방식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내부의 경쟁과 위계화를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기업은 정규직을 채용할 필요 없이 핵심업무에 있어서도 계약직을 사용하여 원하는 노동통제를 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계속 고용하거나 해고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비정규직의 노동3권은 극도로 위축될 것입니다.

3) 비정규 노동법 개악안의 국제기준 위반

□ 국제인권법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권
○ 노동기본권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서 중추적인 권리 영역입니다. 노동기본권이 보장된 위에서 사회보장권, 건강권, 교육권 등의 권리들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따라서 국제인권조약들에서는 노동기본권에 대해 매우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으며, 조약의 당사국들이 지켜야할 의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 세계인권선언 23조는 “모든 사람은 노동할 권리,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조건을 확보할 권리, 실업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 “모든 사람은 어떤 차별도 받지 않고 동등한 노동에 대하여 동등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또한 그것에 가입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며 단결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 국제노동기구(ILO)의 조약들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하 사회권규약)에서도 6조, 7조, 8조에 노동기본권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사회권규약 제 6조는 노동의 권리로 자유롭게 노동을 선택할 권리와 강제 노동 및 노예노동의 금지, 자의적인 해고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회권규약 제7조는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조건의 권리로 최저임금,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상당한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공정한 임금, 안전하고 위생적인 작업조건, 승진에 대한 동등한 기회, 휴식, 여가, 합리적인 노동시간의 제한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회권규약 제8조는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 노동자의 선택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할 권리, 총연합을 설립할 권리, 노동조합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권리, 파업권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 이런 사회권조약의 이행과 관련한 가장 권위 있는 해석은 사회권위원회의 일반논평들과 국제법률가위원회 등에서 마련한 마스트리히트 가이드라인(1997)에 잘 담겨 있습니다. 마스트리히트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사회권 조약의 당사국은 “국가가 사회권을 향유하는데 저해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할” 존중(respect)의 의무, “제3자가 인권침해를 하지 않도록 국가가 막는” 보호(protect)의 의무, “국가가 사회권을 완전하게 실현시키기 위해 적절한 법률·행정·예산·사법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 실현(fullfill)의 의무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 마스트리히트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노동조합의 정당한 파업에 대해 부당한 수사를 통해 노동조합 간부를 구속하는 것은 존중의 의무를 위반한 인권침해를 저지르는 것이 되며, 기업에서 노동자의 기본적인 일할 권리와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조건을 만드는데 실패한다면 보호의 의무를 위반한 인권침해를 하는 것이며, 완전한 노동조건을 만들기 위한 노동정책을 채택하여 실행하지 않으면 실현의 의무를 위반한 인권침해를 하는 것이 됩니다. 아울러 마스트리히트 가이드라인에서는 국가의 작위와 부작위에 의한 인권침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정부는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권 개선보다는 자본의 이익을 위해 노동권을 끊임없이 무력하게 만들었으므로 실현의 의무를 위반해온 것입니다. 게다가 이번 정부의 비정규 노동법 개악안은 아예 그동안 보장되어온 수준마저도 훼손함으로써 작위에 의한 인권침해까지 자행한 것입니다.

○ 한편, 우리 나라가 당사국으로 가입해 있는 사회권조약에 대해서는 유엔 경제·사회·문화권리위원회(이하 사회권위원회)에서는 2001년 우리 나라 정부의 보고서를 심사하고, 이에 대한 최종견해를 채택하였습니다. 사회권위원회는 제13항에서 “위원회는 빠른 속도의 경제발전이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수반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권리들 혹은 일부 집단의 권리들이 경제회복과 시장경쟁력확보를 위해 희생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또 제17항에서 “위원회는 보고서 심의 시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정부보고서의 신뢰도에 의문을 표하고 있습니다. 이어 “독립적인 정보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 연금혜택, 실업, 의료혜택, 직업안정성 등에서 정규직 노동자와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 위원회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50% 가까이 되며, 이들 중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며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처한 상황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어 38항에서 “위원회는 ‘비정규’ 노동자의 상황에 관한 자세한 정보가 3차 보고서에 포함되어야 함을 권고한다. 한편, 위원회는 한국정부가 비정규노동자의 지위를 재고(再考)하고 규약 하의 권리들을 보장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며 한국정부의 규약 위반 상황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이 조약으로 마련된 국제기준의 기본적인 사항조차 지켜지지 않는 조약 위반 상황임을 의미하며 이에 대해 유엔의 사회권위원회가 지속적으로 감시하겠다는 뜻입니다. 이번 비정규 노동법 개악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2006년으로 예정된 3차 보고서 심의에서 한국정부와 국회는 “비정규노동자의 지위를 재고”하라는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하면서 동시에 그 지위를 더욱 열악하게 만든 책임을 추궁당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한국정부는 노동기본권을 보장하지 않는 인권후진국으로 낙인찍히게 될 것입니다.

□ 중간착취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의 침해

○ 국제인권규범과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는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조건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중간착취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국가에 부과하고 있습니다. ILO의 ‘실업에 관한 권고’ 1호는 “각 회원국에게 수수료를 징수하거나 또는 영리를 목적으로 한 사업으로서 경영하는 직업소개소의 설립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ILO의 95호 ‘임금의 보호에 관한 조약’ 제9조는 “노동자가 취업 및 고용유지를 위하여 사용자, 대리인 또는 중간인(근로공급 또는 모집에 종사하는 자)에게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지불하도록 하는 것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하여지는 임금공제는 금지된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 그러나 한국정부는 파견법을 통해 중간착취를 합법화함으로써 이러한 국제법상의 의무를 위반하고 있습니다. 파견업체들은 인력모집과 공급, 임금정산 외에 실질적인 노무관리를 전혀 하지 않는데도 30%~50% 안팎의 임금을 매달 수수료명목으로 떼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간착취는 결국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저임금상태에 놓이게 함으로써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조건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는 지난 98년 파견법을 시행하면서 불법적인 중간착취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그 취지를 밝혔지만, 파견법으로 오히려 중간착취가 합법화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특히 정부는 지난 1999년 ‘유료직업소개사업 규제완화 조치’를 취함으로써 불법·편법의 간접고용을 더욱 확대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 게다가 정부는 이번 파견법안에서 기존 26개로 제한된 파견허용업무를 소수 금지업종을 제외한 모든 업무로 확대함으로써 사실상 파견 허용업무가 완전 자유화되었습니다. 이는 정부가 그동안 파견법을 통해 파견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명분마저 벗어던지고 노골적으로 전체 노동자에 대한 중간착취를 합법화함으로써 국제기준을 위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 노동3권의 침해

○ 앞에서 검토한 것처럼 국제인권규범은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등 노동3권을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이 이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할 의무를 국가에게 부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파견법 제정을 통해 노동3권 행사를 원천봉쇄하는 이중적인 고용관계를 합법화함으로써 노동3권 보호에 대한 국제법상의 의무를 이미 위반하고 있습니다.

○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노동자들은 고용관계가 이중화됨으로써 노동3권의 행사를 원천적으로 봉쇄당하고 있습니다. 파견·용역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하면 사용업체는 아예 계약을 해지하거나 조합원을 해고하도록 압력을 넣습니다. 이러한 부당노동행위는 사용업체의 의한 것이지만 이들은 근로계약상의 사용자가 아니므로 아예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한국 정부와 사법부의 입장입니다. 이렇게 정부의 책임방기 속에 파견, 용역노동조합들이 설립직후 공중분해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는 기간제(계약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기간제 노동자들의 계약갱신 여부가 사용자에게 달려 있으므로 이들은 파업은커녕 사용자의 위협없이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실제적인 권리조차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이는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활동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면 계약기간이 경과된 후 재계약을 거부하거나 파견계약등이 해지되어 결과적으로 해고되어도 구제받을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 등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파견노동자와 기간제 노동자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동3권의 보장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파견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노동조건을 좌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사용업체이므로, 사용업체를 상대로 한 노동3권의 보장이 아니고서는 그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사용자 개념을 확장하여 사용사업주가 사용자로서 법적 책임을 지도록 관련법제도를 개선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 이처럼 한국정부는 파견노동자와 기간제 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제인권규범이 정한 기준에 따라 관련 입법을 개선해야 할 의무를 이미 위반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정부가 주도한 이번 비정규 노동법 개악은 파견업종을 전면 확대하고 기간제 근로계약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며 그 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노동3권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층을 대폭 확대하는 파괴적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 자의적인 해고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의 침해

○ 국제인권규범과 국제노동협약은 자의적인 해고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ILO 조약 158호 ‘사용자에 의한 고용해지에 관한 협약’ 3조는 “본 조약에서 요구하는 보호를 피하기 위한 목적의 일정기간을 정한 고용계약방식을 방지하기 위하여 충분한 보호조취가 취하여져야 한다”며 고용에 있어서 기간을 정하지 않은 노동(정규직) 우선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ILO 권고 166호 ‘사용자에 의한 고용해지에 관한 권고’ 3조는 “기간을 정한 계약방식은 실행되는 작업의 성질 또는 작업환경 혹은 노동자의 이익 때문에 불가피하게 고용관계에 기간을 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경우에 한정”하며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간을 정하지 않은 고용계약으로 간주”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기간을 정한 계약이 1회 이상 갱신되는 경우 “기간이 정하여지지 않은 계약으로 간주”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 파견, 용역 등 간접고용은 실질적인 사용사업주가 사용자의 법적 의무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사용사업주는 일방적인 인원교체 지시 혹은 파견 및 용역계약 해지 등을 통해 노동자들에 대한 자의적인 해고를 수월하게 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간접고용을 남용하고 있습니다. 간접고용노동자들은 사용업체의 인원교체를 지시하거나 파견·용역계약이 해지되는 경우 아무런 예고 없이 해고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파견·용역 업체는 임시직으로 노동자를 채용하는 모집형이기 때문에 해고에 대한 노동법상의 책임을 회피합니다. 또 현행 파견법에서는 ‘2년 이상 고용한 파견노동자는 사용업체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기업은 2년이 되기 직전에 해고하거나 초단기 계약직으로 채용하며 직접고용의무를 피하고 있습니다. 파견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되던 지난 2000년 사용업체들은 이 조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직접고용의무를 면하기 위하여 비정규직노동자들을 ‘대량해고’ 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진 바 있습니다. 현실이 이런데도 이를 규제할 의무가 있는 한국정부는 오히려 파견법을 제정해 사용업체에게 직접고용의무를 회피할 수 있는 편법을 제공함으로써 자의적인 해고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할 국제법적 의무를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명문화 거부

○ 정부는 이번 비정규직 노동법 개악안을 통해 그동안 차별받아왔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설움을 해소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개악안에는 차별해소에 있어 핵심 사항이며 그동안 노동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명문화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다수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정규직과 같은 사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단지 비정규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임금차별을 받고 있는데도 정부는 추상적인 차별금지원칙을 두고 실효성이 불분명한 차별시정기구의 도입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일노동 동일임금 규정이 명문화되지 않는다면 차별을 판단한 기준과 근거가 없고 항상 약자인 비정규노동자들이 노동위원회 내의 구제기구에서 제대로 된 차별인정과 시정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나 부당노동행위에 대하여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을 보면 정부안의 실효성은 전혀 없습니다.

3. 비정규직 권리 보장을 위한 올바른 입법방향

1) 기간제 고용의 제한

○ 현재 통계청 조사만으로 보아도 전체 노동자의 55.4%가 비정규직입니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일 정도로 불안정노동이 확산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에 대한 법적 제한이 없다는 점입니다. 기간제 노동자의 대다수가 근로계약서에 정해진 계약기간을 여러 번 반복갱신 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자본은 상시적인 업무에도 비정규직을 활용하면서,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계약기간 만료’라는 이유로 해고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맺는 것 자체를 엄격히 제안하고, 상시적 업무에는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근로기준법 제23조(근로계약기간) 개정방향>

① 근로계약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으로 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경우는 예외로 한다.
1. 출산·육아 또는 질병·부상 등으로 발생한 결원을 대체할 경우
2. 계절적 사업의 경우
3. 일정한 사업완료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다만, 사업자가 동일한 목적으로 수행하는 사업은 하나의 사업으로 본다.
4. 기타 일시적·임시적 고용의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경우

○ 위 개정방향에서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 즉 정규직 고용을 근로기준법의 원칙으로 분명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예외적으로 기간제 고용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일시적 고용의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로만 제한하고 있습니다. 기존 노동자의 출산·질병 등 사유로 일정한 기간 결원이 발생한 경우나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사업이 완료되어 더 이상 고용이 지속될 수 없는 경우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반면 경기변동이나 주문량의 변화 등 흔히 노동유연화가 필요한 이유로 제기되는 시장상황의 변화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사업자가 동일한 목적으로 일련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을 경우, 그 중 하나의 사업이 완료되었다는 이유로 기간제 고용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점입니다. 이러한 단서 조항을 둔 이유는 건설산업이나 연구기관의 경우처럼 프로젝트별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 프로젝트별로 기간제 고용을 남용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한 단지에서 현대의 아파트건설이 완료되었다고 하더라도 현대건설은 또 다른 단지를 건설하는 식으로 계속 동일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건설노동자들을 일용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2) 파견법 철폐와 간접고용 근절

○ 파견·용역·사내하청 등 간접고용은 무권리의 노예노동이라는 점에서 철폐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1998년 파견법을 도입하면서 “전문적인 지식·기술이 필요한 경우”나 “일시적·임시적 고용이 필요한 경우” 간접고용을 합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6년여의 경험은 간접고용이 결국은 저임금과 노동기본권의 억압을 가져올 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전문적인 지식·기술이 필요한 경우라도 그것이 기업의 상시적인 업무와 관련되어 있다면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이 정당합니다. 정말로 일시적·임시적으로만 고용할 필요가 있다면, 그 때는 1년의 한도 내에서 기간제 고용을 사용하면 됩니다. 따라서 간접고용을 합법화시킨 파견법은 폐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그런데 파견법의 폐지만으로 간접고용을 모두 근절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에도 파견법에 의한 근로자파견 형식이 아니라 도급계약 형식으로 불법파견을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런 위장노무도급을 구분하여 원청과의 직접고용관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위장노무도급을 판별하는 기준을 강화하여 직업안정법에 포함시키는 방향의 개정이 필요합니다.

<직업안정법 개정방향 : 제33조의 2(도급 등과의 구별) 신설>

① 근로자를 타인에게 제공하여 사용시키는 자는 다음 각호 모두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근로자공급사업을 행하는 자로 본다.
1. 도급계약의 목적·내용이 특정되어 있고 단순히 노동력의 공급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경우
2. 다음 각목의 사항에 관하여 도급인의 사업과 독립적으로 스스로 결정하고 직접적으로 지시·관리하는 등 노동력을 스스로 직접 이용하는 경우
가. 업무수행방법, 업무수행결과 평가 등에 관한 사항
나. 휴게시간, 휴일, 휴가, 시업 및 종업시각, 연장근로 등에 관한 사항(근로시간 관련사항의 단순한 파악은 제외한다)
다. 배치결정과 그 변경 및 복무상 규율, 채용 및 해고, 인사이동과 징계에 관한 사항
라. 도급인과 구별되는 독자적 사업목적에 따른 작업조직 및 작업수행방식
3. 다음 각목에 해당되는 경우로서 도급인 또는 위임인으로부터 독립하여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
가. 소요자금을 전부 자기 책임 하에 조달·지급하는 경우
나. 민법, 상법 기타 법률에 규정된 사업주로서의 모든 책임을 부담하고, 그 근로자에 대하여 법률에 규정된 사용자로서의 모든 의무를 다하는 경우
다. 자기 책임과 부담으로 제공하는 기계, 설비, 기재(업무상 필요한 간단한 공구는 제외) 또는 자재를 사용하거나, 스스로의 전문적인 기획과 기술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로서 단순히 근로자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경우
라. 도급계약에 대한 보수가 수급인의 근로자의 수, 근로시간 등을 기초로 산정되는 것이 아닌 경우
② 제1항의 각호에 해당하는 경우라도 그것이 법의 규정을 위반하는 것을 면하기 위하여 고의로 위장된 경우에는 근로자공급사업을 행한 것으로 본다.

○ 위에서 밑줄로 강조한 부분이 현재의 노동부고시를 보강한 내용입니다. 즉 진정한 도급관계라고 인정되려면 원청의 사업과 구별되는 사업목적과 작업조직을 가져야 하고, 원청의 필요에 따라 노동력을 투입하는 것은 위장도급으로 불법적 간접고용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노동부의 입장처럼 하청업체 관리자가 있으면 그것이 곧 인사상 독립성이고 하청업체가 일정한 자본만 있으면 곧 경영상 독립성이 인정된다는 식으로는 간접고용을 근절할 수 없습니다. 설령 원청 관리자가 직접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지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원청의 필요에 따라 노동력이 투입되고 그 대가로 도급계약의 보수가 산정된다면 그것도 불법적 간접고용으로 보아야 합니다.

3) 원청(사용)사업주의 사용자 책임 인정

○ 불법파견 근절에만 머무르지 않고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따로 분명히 못박아야 합니다. 근로계약상의 고용주가 아니더라도 해당 노동자의 노동조건 결정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력·영향력이 있으면 노동법상의 사용자로 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불법파견임을 인정받고 원청에 대해 직접고용관계를 주장하는 투쟁을 주로 벌여 왔지만, 앞으로는 직접적 고용관계까지는 인정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결정력이 있는 자에게 사용자 책임을 부담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청 자본이 점점 더 간접고용화를 고도로 발전시켜 직접적인 지시·관리를 하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원청을 상대로 하는 노동조합활동의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근로기준법 제15조 개정방향>
근로계약의 체결 여부와 상관없이 당해 근로자의 근로조건 등의 결정에 대하여 실질적인 지배력 또는 영향력이 있는 자를 사용자로 본다.

<노동조합법 제2조 제2호 개정방향>
“사용자”라 함은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를 말한다. 근로계약 체결의 형식적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당해 노동조합의 상대방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거나 또는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인 지배력 또는 영향력이 있는 자도 같다.

4)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0000법 개정방향>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자라 하더라도 특정사용자의 사업에 편입되거나 상시적 업무를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고 그 사용자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대가를 얻어 생활하는 자는 근로자로 본다.

○ 이번 정부안에는 아예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위탁계약을 체결하여 일하고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적용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근로계약의 체결 여부에 따라 노동법상 근로자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특정 자본에 편입되어 노동하고 보수를 받는 노동자들을 노동법상 근로자로 보아야 합니다.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고 노동3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노동법상 근로자 개념을 현실에 맞게 넓히자는 것입니다.

5)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 비정규직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면서 직접고용·상시고용이 노동법의 원칙임을 확인해야 합니다. 비정규직의 남용을 방지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원칙을 위반하여 비정규직을 사용한 경우 정규직화됨을 명시하여야 합니다.

<근로기준법 제23조 개정방향>
④ 제4항의 기간(1년)을 초과하여 계속 근무하는 경우 그 기간을 초과하는 시점부터 근로계약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으로 본다.

<직업안정법 개정방향 : 제33조의 3 신설>
이 법 위반의 근로자공급사업이 행해진 경우에는 공급을 받은 자가 당해 근로자를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본다. 다만, 당해 근로자가 명시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경우를 제외한다.

○ 기간제고용의 경우 기간제고용을 사용해야 할 객관적 필요성이 없거나 1년 이상 기간제고용을 사용한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됨을 분명히 못박아야 합니다. 간접고용의 경우는 근절되어야 하기 때문에 불법적 간접고용으로 일한 시점부터 직접고용으로 전환됨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6)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 금지

○ 객관적인 필요성이 있어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 때 동일한 가치의 노동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객관적인 직무수행능력과 노동강도, 작업조건 등 객관적인 것이어야 하고, 책임감, 성과 등 주관적인 가치판단이 개입되어서는 안 됩니다.

<근로기준법 제5조(균등처우) 개정방향>
①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며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
② 사용자는 근로기간 및 시간 기타 근로형태의 차이를 이유로 고용 및 근로조건상의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한다.
③ 사업주는 고용형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 사업 또는 사업장 내의 동일가치 노동에 대하여 동일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④ 제3항에서의 동일가치 노동의 기준은 객관적인 직무수행능력과 노동 강도, 작업조건으로 한다.

4. 마치며 : 비정규직 노동권 침해에 대한 국가인권위의 책임

□ 국가인권위법 제30조는 위원회의 조사대상을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또는 구금·보호시설의 업무수행(국회의 입법 및 법원·헌법재판소의 재판을 제외한다)과 관련하여 헌법 제10조 내지 제22조에 보장된 인권을 침해당한 경우 △법인, 단체 또는 사인에 의하여 평등권침해의 차별행위를 당한 경우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즉 인권위법은 인권침해와 차별행위에 관한 조사와 구제에 관하여는 그 범위를 한정하고 있어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권 영역의 문제 중 많은 부분에는 개별적인 조사와 구제를 실시할 수 없습니다.

□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정의)는 “인권”을 “헌법 및 법률에서 보장하거나 대한민국이 가입·비준한 국제인권조약 및 국제관습법에서 인정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로 규정하고 있으며, 동법 제19조(업무)는 위원회의 업무로 △인권에 관한 법령(입법과정중에 있는 법령안을 포함한다)·제도·정책·관행의 조사와 연구 및 그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관한 권고 또는 의견의 표명 △인권침해행위에 대한 조사와 구제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와 구제 △인권상황에 대한 실태조사 △인권에 관한 교육 및 홍보 △인권침해의 유형·판단기준 및 그 예방조치 등에 관한 지침의 제시 및 권고 △국제인권조약에의 가입 및 그 조약의 이행에 관한 연구와 권고 또는 의견의 표명 △인권의 옹호와 신장을 위하여 활동하는 단체 및 개인과의 협력 △인권과 관련된 국제기구 및 외국의 인권기구와의 교류·협력 △기타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정부입법안을 포함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인권침해 현실에 대한 실태조사와 노동기본권 확립에 관한 법률·정책·관행의 개선에 대한 권고 등 국가이권위가 의지만 있다면 법으로 보장되어 있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 한편으로 2003년부터 시작된 국가인권위 비정규직 TF팀은 같은 해 7월부터 6개월간 (사)한국비정규노동센터등과 함께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황과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인권실태조사를 벌인 바 있습니다. 당시 조사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규모 △임금 △노동시간 △노동복지 등 양적조사와 40개 공공기관과 48개 노동조합의 인사담당자와 노동자 346명에 대해 노동조건과 사회보장 전반에 걸친 면접조사 등 질적조사를 병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인권위는 2004년 3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 결과 발표회’를 했을 뿐 이와 관련된 어떠한 후속작업도 없을 뿐더러 정부나 자본에 대한 어떠한 권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인권위가 의욕적으로 시작한 비정규직 TF팀 활동은 결과적으로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한 것입니다.

□ 인권단체 사회권전략팀이 참여하고 있는 <불안정노동과빈곤에저항하는공동행동>은 지난 6월 수급권자, 이주노동자, 노점상, 산재노동자, 노숙인 등이 집단으로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인권선언운동”을 벌인 바 있습니다. 당시 제출된 진정서 중 “중간착취 간접고용을 합법화한 파견법의 인권침해”(사건번호 04진기127) 건을 통해 공동행동은 △자의적 해고 등으로 인해 실업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와 노동3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파견법의 폐지 △원청의 사용자성 책임을 인정하여 간접고용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 등의 정책권고를 요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해당 진정을 정책국으로 이관했으나 정부의 비정규 노동법 개악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현 시점까지도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 국가인권위는 비정규직 확산을 목적으로 하는 이번 정부입법안에 대해서도 어떠한 의견도 내지 않고 있습니다. 인권위는 입법과정 중에 있는 법령안을 포함해 인권에 관한 법령·제도·정책·관행에 대해 조사, 연구, 그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관한 권고 또는 의견 표명을 그 업무로 하고 있습니다. 또 국가인권위원회법 제6조 4항은 “위원장은 국무회의에 출석하여 발언할 수 있으며, 그 소관사무에 관하여 국무총리에게 의안의 제출을 건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 또한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인권단체 연석회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이번 노동법 개악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에 이를 적극적으로 저지하는데 국가인권위가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비용절감과 노동운동의 무력화를 목표로 하는 정부나 자본의 시각이 아니라 우리 사회 인권의 옹호와 신장이라는 출범목적에 어울리는 국가인권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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