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 이제 ‘단골손님’ 된다

북한 인권, 이제 ‘단골손님’ 된다

유엔 인권위원회 세번째 결의안 초안 공개…북의 태도 변화와 한국 정부 중재 노력 필요

▣ 제네바= 박원석/ 참여연대 사회인권국장

유엔의 세 번째 북한 인권 결의안 상정을 앞두고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61차 인권위원회에서는 북한 인권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는 북한 인권 상황에 “실질적 개선이 없다”는 서방쪽의 평가와 유엔 결의안 등 ‘외부 간섭’을 주권 침해로 받아들이는 북한의 강경한 태도가 충돌하며 북한 인권은 접점을 못 찾고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지난 결의안 보다 공세의 강도 높아져

이같은 상황 속에서 3월29일에는 2004년의 결의안에 따라 임명된 비띳 문딴혼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의 조사결과 구두 보고가 있었고, 이틀 뒤인 3월31일에는 유럽연합과 일본 등이 주도한 세 번째 북한 인권 결의안 초안이 공개됐다.

이번 결의안은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지난 결의안들과 비슷한 우려와 개선 요구를 담고 있으면서도 그 공세의 수위나 강도가 한층 높아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별보고관의 수임 사항에 대한 북한의 거부를 강한 어조로 비난하고 협력을 촉구한 것이나, 북한으로서 민감할 수밖에 없는 체제 문제, 즉 “민주적 다원주의와 법치, 모든 결정 과정에 시민사회의 참여를 위한 보다 넓은 공간과 더불어 국제인권 기준을 지지할 것”과 같은 문구가 새로 포함된 것이 이를 보여준다. 결의안 상정까지는 공동발의 국가들간의 비공개 협의와 한 차례의 공개 청문회 등이 예정돼 있지만, 앞서 언급한 공세의 수위에 특별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번 결의안이 채탁되면 ‘강제 교화노동’ ‘정치범 수용소’ ‘강제 결혼’, ‘영아 살해’ 등 결의안에 서술돼 있는 일부 자극적인 표현의 근거, 경제적 동기로 북한을 빠져나온 탈북자들에 대한 난민 지위 인정, 결의안의 정치적·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비판 등 북한 인권 상황을 둘러싼 여러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번 결의안으로 북한의 인권 상황은 국제사회의 ‘골칫거리’로 공인되는 결과를 낳을 전망이다.

실제 유엔 인권위 현장 곳곳에서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단적인 예로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국가간 인권 상황에 대한 논란은 정치적 성격을 띠게 마련이어서, 침해 당사국으로 지목되는 제3세계 국가들과 이들을 비난하는 미국·유럽 등 서방쪽간의 정치적 성격을 띤 공방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이번 경우 중국, 쿠바 등 국제 사회에서 목소리 크기로 유명한 나라들도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이 나라들이 북한과 전통적인 동맹 또는 우방 관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인권 문제가 이미 국제 외교무대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굳어져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북한은 유엔 결의안에 대해 단호한 거부의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비띳 보고관의 구두 보고 이후 유엔 북한 대표부의 최명남 참사관은 성명을 내어 “북한은 60차 인권위원회의 결의안과 특별보고관 일체를 절대적으로 거부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특별보고관 보고에 대해 “우리의 적대 세력에 의해 조작되고 지속돼온 음모적 선동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비난했다.

북한의 강경한 반응의 이면에는 3년째 거듭되는 유엔 결의안 추진에 대한 곤혹스러움이 녹아 있다. 부분적이나마 북한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적으로 형법 개정을 통해 경제적 이유로 인한 한시적 탈북자들에 대한 처벌을 완화한 것이 한 예다. 결의안은 단호히 거부하면서도 유엔 인권기구 등과 협력 방안을 찾는 움직임은 멈추지 않고 있다.

북한, 겉으론 강경하나 변화 조짐도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인권위원회 현장에서는 북쪽이 “결의안을 의장성명(chairperson’s statement)으로 대체하면, 인권고등판무관실의 기술적 지원 등 유엔 기구와의 협력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장성명은 구체적인 인권 상황에 대한 거론 없이 관례적 우려와 비난의 내용을 담는 것으로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대응 수위를 조절할 때 활용된다. 또 북한 대표부가 유럽연합이 사전 예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결의안을 추진하고 이를 지속하는 것을 비난하면서도 그전까지 유럽연합과 인권 대화를 추진해왔던 점, 두 번째 결의안이 추진되던 지난해 인권위 기간 중에도 ‘아동권위원회’의 방문을 허용했던 점 등도 북한의 태도가 밖으로 나타나는 것만큼 강경한 게 아니라는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이런 북한의 부분적 태도 변화가 공식적이며 확고한 의지 표명은 아니다. 이미 결의안 초안이 완성돼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미미한 변화가 북한 인권 결의안의 흐름을 바꿀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인권 문제가 향후 국제 외교인권 무대에서 단골손님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을 감안할 때, 이같은 변화는 북한 인권 문제의 해법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 북한이 그동안의 강경 일변도의 대응에서 한결 유연한 입장으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결자해지’ 차원에서 북한 인권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가져오는 실마리가 될 수 있으며, 식량을 포함한 국제사회로부터의 인도적 지원이 끊기지 않게 하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 사회의 험악한 분위기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북한의 구체적인 태도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정부가 나서 인권 문제를 인정하고 유엔기구와 협력을 약속하는 등의 변화를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북한 인권 문제로 인한 국제적 개입으로 북한 다음으로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한국 정부의 정치적·외교적 중재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정부는 지난 두번의 결의안에 이어 이번 결의안 표결에서도 ‘기권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인지 한국 정부는 제네바 인권위윈회 현장에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침묵이 국제적 환경과 남북 관계의 고유한 측면 양자 사이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 앞으로는 북한의 태도 변화를 더 민감하게 주시하면서 한편으로 유럽연합 등 국제 사회를 향해 중재와 설득의 노력을 기울이고 북한쪽에 더 과감한 조처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

셋째, 한국 시민사회의 더 적극적인 목소리가 요구된다. 제네바 인권위원회 현장에서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등 국제 인권단체들은 북한 인권의 실체 판단의 근거 등을 이유로 다소 조심스럽고 조용한 행보를 보이는 데 견줘, 미국과 영국에 기반을 둔 보수적·자유주의적 성격을 지닌 단체들은 탈북자 증언, 공개 처형 장면 등 자극적 정보를 활용해 북한 인권에 대한 비난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 이들 단체의 일부 인사들은 북한 정권 붕괴, 유엔안보리 상정, 무력 사용 등을 공공연히 거론하며 북한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 인권 상황이 평화적·협력적 방식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남북한 정부, 유럽연합 국가, 국제인권단체 등에 한국 시민사회가 좀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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