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버마이슈2004.6>아시아 최대 식량 수출국에서의 식량 부족

아시아 최대 식량 수출국에서의 식량 부족

A.CAMPBELL

“그 나라의 영토 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식량주권을 존중하는 국가는 모든 개인이 언제나 풍족하고 적정한 식량에 대해 접근을 보장하여야 하며, 개인의 이러한 접근을 막을 것으로 보이는 행동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 2003년 4월에 선포된 시민권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서약의 2장에 규정된 위와 같은 선언에 따르면 버마는 국민의 식량을 탈취하는 국가일 뿐만 아니라 자국 내에서 광범위한 기아를 지속적으로 퍼트리는 국가이다.

1922년부터 1927년까지 버마의 공무원 이였던 조지 오웰은 버마가 영국의 통치가 끝난 후 가장 번영할 것 같은 나라로 예상했다. 하지만 UN의 보고에 빠르면 40년도 체 지나지 않아, 버마는 세계 1위의 쌀 수출국에서 세계 최하위 저개발국의 하나로 전락했다. 엄청난 자연자원과 경제적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집권 SPDC는 식량에 대한 권리를 포함해 많은 국민들의 기본적 권리를 무시하고 있다.

1997년 식량 및 농업 기구는 식량 안보를 “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활기차고 건강한 삶을 위해 언제나 충분한 식량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버마는 자원은 풍부하지만 대부분이 미개발되고 있다. 쌀이나 다른 농작물처럼 이용되거나 확대되고 있는 자원들은 군대에 대한 보급을 목적으로 정부의 주요 목표물로 전락했다. 그 결과, 버마의 일반 시민, 특히 농업에 삶의 기반을 둔 소수민족들은 그들의 생계보다는 군대를 위해 농작물을 보급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Asian Legal Resource Centre가 UN 난민고등판무관에 제출한 진술에 따르면 음식부족에 대한 인민법원의 판결과 2001년 2월 버마의 군사화를 관찰할 때 SPDC는 계속적으로 식량안보보다 군사적 이익을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인민법원에 대한 조사는 1997년부터1999년 사이 ‘버마이슈’와 ‘아시아 인권 위원회’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이 조사는, 버마에서의 식량 부족은 SPDC가 자국 내에서 군사화를 계속적으로 지지한 직접적인 결과라고 말한다.

1999년 2월 인민법원에 제출된 첫 번째 진술에 따르면 ‘버마이슈’와 ‘아시아 인권 위원회’ 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SPDC는 조직적으로 식량공급을 피폐화시키거나 빼앗아갔는데 이 때 마을 전체를 불태우거나 볏단을 마구 베고 태우고 또한 뽑아버리는 등의 행동을 일삼았다. SPDC와 민족주의 폭력그룹에 의해 설치된 지뢰에 의해 경작지로의 접근은 금지되었다. 부분적으로 정부에 의해 관리되는 지역에서는 발전계획이 강제로 동원된 노동력과 짐꾼을 증가시켰으며, 농민들이 그들의 경작지를 돌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 갔다. SPEC가 눈에 띄는 영향력을 가진 지역에서는 농지탈취와 비공식적인 과세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었다. 심지어 SDPC가 완전히 통치하고 있는 “white zone”에서조차 발전과 식량생산의 이점들은 대부분 군대와 공무원들에게 돌아간다.

인민법원의 Mark Tamthai는 2000년 UN 인권위원회 에 제출한 진술문에서 버마에서 식량부족과 관련하여 가장 위험한 상태에 놓인 것은 반혁명계획에 의해 보금자리에서 쫓겨나서 식량을 구하기 힘든 동쪽 버마의 정글로 유입된 수천 명의 사람들 즉 Internally Displaced People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버마에서의 식량부족이 문제가 되는 것은 몇 십년간 계속적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정부의 2가지 정책이 버마의 식량부족을 광범위하게 퍼트리는 데 원인이 되었다. 이 중 첫 번째인 Four Cut Program이라 불리는 계획은 1960년 중반 혁명집단의 주요한 4가지 연줄인 식량, 자금, 정보, 인력을 차단하기 위해 Ne Win 장군에 의해 발전되었다. 인민법원이 기술하는 Four Cuts 정책의 유인은 바로 필연적으로 일반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반혁명계획이다. 내전이 존재하는 지역에서는 SPDC가 강제로 마을을 정부가 통치하는 지역으로 재배치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경작을 위해 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가옥과 곡식을 불태워버렸다. 이러한 조치는 혁명집단으로 자원이 유입되는 것을 막고 종족거주지역에 군사적 통치를 강화하는 유용한 방법을 더욱 향상시켰다.

버마에서의 식량부족의 원인이 되는 두 번째 정책은 Paddy Procurement Program(쌀조달 프로그램)이다. 1974년에서 1975년 사이에 이 정책은 전국적으로 소개되었으며 이로 인해 SPDC에 의해 전국에서 생산된 쌀이 시장가격 아래로 강제 구입이 가능해졌다. 마을에 강요된 쌀징수 및 할당은 농부들에게 주어진 쌀 할당량 군대에 강제적으로 팔게 만들었다. 이 정책은 UN에 서면으로 제출된 Asian-Legal Resource Centre의 진술에서 “이는 실제 수확량을 고려하지 않고 각 농부들의 땅소유에 근거하고 있다.” 할당량은 수확량이 기준이 미치지 못하더라도 강제되었다. 이로 인해 농부들은 자신들의 경작지에서 생산하지 못한 쌀을 시장가격을 사서 단지 주어진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정부가 정한 가격에 군대에 팔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버마의 농부들은 자신들의 가족의 생계를 이을 쌀도 가지지 못한 것이다.

Four Cuts Program은 21세기가 시작하면서 그리고 Paddy Procurement System의 시행이 2003년 4월에 공식적으로 끝이 났지만 그것들의 잔재는 여전히 남아있다. 2003년 10월, 버마 국경연합 (Burmese Border Consortium)은 “쌀에 대한 권리의 반환 – 식량안보와 동버마에서의 국내추방” 이라는 보고서에서 쌀 생산에 대한 할당량 부과와 쌀에 대한 절대적인 판매세의 징수로 인해 쌀조달정책이 내년에 완전히 철폐된다는 정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농부들은 계속해서 빈곤해진다.

“버마이슈”에 의해 입수된 내부문서 역시 이러한 BBC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강제이주, 추방, 착취, 비공식적 과세, 토지 징발, 또한 강제로 짐꾼이나 노동자들을 동원하는 것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으며 버마 국민들의 식량에 대한 권리를 효과적으로 빼앗아갔던 정책들이 비공식적으로 여전히 효력이 있다는 가시적인 흔적이 있다. 이주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농업세로 엄청난 세금을 강제 징수당하고 있고 강제 동원된 노동자와 마을의 안보를 위한 납입금을 포함한 안보계획 및 발전 계획을 위해서도 많은 돈을 착취당하고 있다. Karen 거주자들은 여전히 살기가 어렵고 충분한 음식이 없다고 주장한다. 발전이 되지 않고 생활수준이 평균이하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빈곤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식량부족은 소위 무차별 포격지대에서도 역시 나타난다. 정부가 진두지휘하는 발전계획은 노동력의 강제동원이 필수적이고 또한 강제이주 지역의 주민들이 주 대상이 된다. 정부의 발전계획에 동원되는 모든 순간
이것 이외에도, SPDC는 이러한 대규모 투기를 통해 땅을 획득하기 위해 농장이나 논, 또는 다른 형태의 토지를 적절한 보상 없이 농부로부터 착취하였다.

자연적인 요소와 기후조건이 한 나라의 식량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버마에서의 식량부족에 대해 언급할 경우 모든 책임은 SPDC에게 돌아갈 것이다. 지속된 군사화를 통해 집권 군사정부는 조직적으로 – 추방, 강제이주, 강제노동 어떤 형태로든 -국민들의 식량에 대하 권리를 빼앗아 갔으며 이는 버마 전체를 기아상태로 몰고 가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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