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소망 <국제신문 2004. 11. 5>

#아시아와 친구하기”
안녕하세요. 방글라데시에서 온 샤골이라고 합니다.””와~.” 짝짝짝.
지난달 26일 오후 부산 기장초등학교 6학년 2반 교실. 방글라데시 전통의상인 하얀색 반자비(상의)와 바이자마(하의)를 차려입고 교단에 선 이주노동자 샤골(31)씨는 이국의 교단이 약간은 낯선듯 흥분된 모습으로 인사를 던졌다.

아이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 호기심 어린 눈망울을 반짝이며 책상을 두드리고 이름을 부르며 환호성을 지른다.

“여러분, 방글라데시에 대해 잘 알고 있나요. 우리나라는 두 가지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답니다.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고, 또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죠….”그는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조국을 소개하고 무엇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의 경제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그들이 처한 현실이 어떠한 것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짧은 한국말 솜씨에 손짓 발짓까지 총동원했다.

그가 어린이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일상적이면서도 절실했다. 기계에 손가락이 모두 잘려버렸지만 보상 한푼 못받고 눈물을 흘리며 고국으로 돌아간 인도네시아인 친구, 열이 펄펄 나는데도 사장의 닥달에 쉬지도 못하고 회사에 나와야 했던 동료. 또 체류기간이 지났음에도 임금체불과 빚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사연들.

하지만 슬픈 얘기는 잠시, 고향에 12명의 사랑하는 형제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가족 자랑을 한 샤골은 조국을 소개하는 영상물도 보여주고 직접 만들어온 음식을 나눠주는가하면 어린이들과 전통악기를 두드려가며 함께 어울렸다.

점심시간 운동장에서 뛰어놀다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왔던 아이들도 어느새 벽안의 이방인들과 친구가 된듯 “노래 불러주세요. 결혼은 하셨어요? 애기 있어요?” 등등 짓궂은 질문을 쏟아낸다.

'외국인노동자인권을 위한 모임'(대표 정귀순)이 '아시아와 친구하기'라는 프로그램으로 처음 준비한 80분짜리 수업은 이렇게 후딱 지나갔다.

#한국 돕는 이주노동자현장수업이 있은 지 5일 뒤, 부산 전포동의 외국인노동자인권을 위한 모임 사무실.

샤골씨를 비롯한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5명이 진지하게 무언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부산 경남 방글라데시 공동체' 회원인 이들이 휴일에 이렇게 모인 까닭은 고국의 한 가난한 보육원을 돕기 위해서였다.

지난 6월 방글라데시를 다녀온 샤골씨가 한달에 10만원이면 이 보육원 어린이 40명이 입고 먹고 배울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3년전 이들이 처음 공동체를 만들었던 것은 각 사업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인격적 대우와 임금체불 등 열악한 근로조건, 동료들이 겪는 언어, 건강 등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들은 노동현장에서 “나도 한국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고, 단순히 자신들의 문제에 매달리기보다는 그들의 모국과 자신들이 살고 있는 한국사회에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이들은 지난 2002년 추석때 부산의 한 양로원에 성금과 성품을 전달한 것을 시작으로, 대구 지하철 사고와 북한 용천 참사때 성금을 모아 전달했고, 태풍 매미로 수해를 당한 경남 마산 인근의 농가를 찾아가 성금과 함께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얼마전에는 백혈병에 걸린 한 여고생의 치료비도 보탰다.

“비용은 때때로 음악회나 바자회 등을 열어서 충당하고 있습니다. 하루 12시간 가까이 일을 하다보니 짬이 없어 자주는 못하지요. 그래도 다음달부터는 매달 한차례씩 봉사활동을 나가려고 해요.”#편견없는 세상을 꿈꾸며이주노동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냉랭한 시선과 그들의 인권과 자유를 막고 있는 제도는 이제 족쇄가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다. 이들 이주노동자는 자신이 심각한 인권침해를 받는 불쌍한 사람 또는 한국사람의 일자리를 뺏아가는 사람 정도로 비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최근 들어 저희들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고 있어요. 실제로 자기 자식보다 이주노동자를 위해주는 사업주들도 많고 친구로 생각하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속담에 '아픈 밤이 아무리 길어도 아침이 온다'는 말이 있는데 점점 그렇게 바뀌어가길 희망합니다.”외국인노동자인권을 위한 모임 김민정 사무국장은 “9·11테러 이후 이슬람계 이주노동자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모는 정부와 언론의 무책임한 처사가 이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산 경남에 4만명, 전국적으로 42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아시아 이주노동자들. 그들은 이제 이 땅에서 단지 가난을 벗어던지기 위한 돈벌이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싹을 키우며 행복한 귀환을 꿈꾸고 있다.

국적과 인종, 피부색에 따른 편견을 버리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소수자에 대한 인권을 존중하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 손에 쥐어줘야 할 덤이다.

/ 글 = 이원구기자 man3325@kookje.co.kr
[국제신문] 사진 = 박수현기자 pa kimdh@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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