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현 상황과 우리의 과제
이광수 (아시아평화인권연대 공동대표. 부산외국어대 인도학과 교수)
미얀마는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나라 중의 하나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저항 의식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0년 11월에 치러진 미얀마 총선에서 아웅 산 수치의 국민민주연맹에 선거 가능한 75% 의석 중 무려 83.2%를 몰아주면서 전체 의석의 62.4%를 확보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에 따라 NLD는 독자적으로 정부를 구성할 권리가 생겼고 미얀마 정부는 이 힘을 바탕으로 1월 5일, 군부에게 25%의 의회 의석을 할당해주는 헌법을 개정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군부는 당연히 이를 거부하고 반발하였으며 이는 쿠데타의 원인이 되었다.
중국과의 관계
미얀마 군사정권은 2008년 새 헌법을 도입, 2010년 직접선거를 통한 민정(民政) 이양을 결정했다. 외교가에서는 당시 미얀마 군부의 결정이 미국 등 서방 자본을 끌어들여 중국의 영향력을 상쇄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많았다. 미얀마 정부는 서방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으나, 군부의 로힝야 인종 청소로 인해서 지원이 거의 끊긴 상태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중국에 접근하게 된다. 이 방문 동안 일대일로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민주화가 가시화되자 중국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NLD와의 협력에도 공을 들여왔다. 2015년 선거에서 NLD가 승리해 정권 교체에 성공하자 중국 물자와 돈이 미얀마로 몰렸다. 2016~2020년 중국과 미얀마의 무역은 연평균 11% 증가했다. 중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포위 전략에 맞서 미얀마를 통한 인도양 진출이 필요했다. 집권 초기 친서방 제스처를 취했던 아웅산 수치도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학살로 서방의 비난을 받자 군부 출신보다 더 적극적으로 중국과 협력에 나섰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는 중국이 국경지대의 소수민족 민병대들에게 자금과 무기를 조달해준다는 의심을 하고 있었고 중국에서 미얀마를 사실상 속국으로 취급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 터라 그 대안으로 러시아에 접근한다. 중국이 미얀마의 군통수권과 인사권, 의회 의석의 25%를 가진 군부와도 협력을 중단한 것은 아니다. 군부와 정부의 긴장이 한창이던 1월 시진핑과 왕이가 미얀마를 방문하였고, 정부 지도자인 아웅 산 수치와 군부 지도자인 민 아웅 흘라잉을 각각 접견하였다.
군부 쿠데타 직후 중국은 “미얀마 내정”이라며 불간섭 원칙을 천명했다. 하지만 미얀마 사태가 악화될수록 중국은 권력을 가진 군부와 NLD를 지지하는 미얀마인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양다리 전술’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이 미얀마 군부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반대하면서도 “쿠데타는 중국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중국의 이런 태도가 군부에 대한 지지로 비치면서 반중 여론을 넘어 미얀마 내에서 중국의 이익마저 위협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장준영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연구원은 “2012년 중국이 미얀마에서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확대된 미얀마 내 반중 정서가 이번 시위를 계기로 결집,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미얀마 군부의 무차별 진입으로 하루 동안 110여명이 사망한 가운데 중국 정부가 원론적인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미얀마 국내 민주주의 전환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9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자오리젠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미얀마 사태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미얀마 각 관련측이 자제함을 유지하고 건설적인 태도와 행동을 취하며 현재 긴장 정세를 완화시킬 것을 촉구한다.”고 답했다.
인접 국가와의 관계
중국이 뒷배가 되고 있는 한, 미얀마에 대한 경제 봉쇄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쿠데타를 중지시키기 위해 경제 제재를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다. 그렇다고 직접 군사 개입하는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미얀마 군부 뒤에 중국, 러시아가 있으니 쉽게 개입할 수도 없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입한 후 그 반군을 미국이 지원한 것 같은 상황을 기대할 수도 없다. 미얀마 주변 나라들이 모조리 미얀마 군부와 가깝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때는 파키스탄이 미국의 입장에 서서 이슬람 반군을 지원했지만 미얀마의 경우에는 미얀마 반군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주변 국가가 없다. 쿠데타 이후 중국과 러시아와는 달리 미국·EU·영국 등 서방 정부는 미얀마 군부를 비난하고 제재에 나서겠다고 했다. 이런 전통적 대립 가운데 주변의 여러 나라도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침묵을 택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가 개최한 ‘국군의 날’ 행사에는 러시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태국 등 8개국이 사절단을 보냈다. 특히 러시아는 알렉산드르 포민 국방차관이 이끄는 대표단이 참석했다.
애매한 입장의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다. 인도는 1988년 미얀마에서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을 때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 진영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1990년 치러진 선거에서 민주 진영이 승리하였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미얀마 군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후 미얀마인의 피난민이 인도에 많이 들어왔으나 정부가 방관했다. 하지만 이번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이후 인도는 군경 진압 과정에서 숨진 시위대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각 측이 최대한의 자제력을 발휘해 평화적이고 건설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다. 중국과 비슷한 입장이다. 또 쿠데타를 피해 인도로 넘어오는 미얀마인들을 막기 위한 국경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는 중국을 견제하려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미국·일본·인도·호주 4국의 안보 협의체 ‘쿼드(Quad)’에도 가입했다. 그럼에도 쿠데타에 침묵하는 것은 미얀마 군부를 비판할 경우 미얀마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만 강화할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G7(주요 7국) 회원으로서 미얀마 쿠데타를 비난하는 성명에 동참했지만 자체적으로는 아직도 “상황을 살펴보고 있으며 대응 방법을 고려하겠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일본은 미얀마의 5위 투자국으로 미얀마가 서방 경제 제재를 받을 때도 미얀마와 경제적 협력을 이어왔다. 휴먼라이츠워치, 미얀마 인권단체 등은 일본 정부에 제재 등 행동에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인권단체의 영향력이란 국제관계에서 별로 크지 않다.
내전의 가능성
이번 사태에서 매우 보기 힘든 연대가 이뤄졌다. 박해받던 미얀마 소수민족이 민주화운동 지지에 나섰다. 미얀마 인구의 약 70%는 버마인이다. 나머지 30%는 135개 이상의 소수민족이다. 군부 억압과 버마족 차별이란 이중고에 시달린 사람들이다. 이는 민주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의 상태였으니 심한 경우 일부 소수민족은 투표권도 없었다. 대표적인 것이 2017년 미얀마 군부의 7,000여명에 달하는 로힝야인 학살이다. 100만 명이 방글라데시 난민촌에서 살고 있고, 인도로도 많이 유입되었다. 민주정부를 이끌었던 아웅 산 수치 국가 고문 또한 군부의 로힝야인 학살을 두둔했는데, 로힝야 인권 활동가들이 군부를 비판하며 수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버마족 중심의 민주화운동을 지지한 것이다.
미얀마 민주 임시정부인 ‘연방의회 대표위원회’(CRPH)는 테러 집단으로 규정했던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연대를 선언했다. CRPH는 국제사회의 지원을 무망한 것으로 판단하고, 유일한 선택으로 연방군 편성을 들고 나왔다. 군부를 공동의 적으로 삼은 내전 지향의 전황이다. 카렌민족동맹 소속 5사단이 미얀마-태국 국경 인근의 파푼에서 군부 66연대 75 보병대대의 주둔지를 급습 점령하였고, 이에 군부가 공습을 실시하였는데, 사실 미얀마 군에게 공습은 흔한 전술이 아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군부는 양자회담을 제안했으나, 카렌민족동맹 측이 거절했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군부는 어린이를 집중적으로 사살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에게 공포와 좌절을 주려는 전술이다.
점차 학살의 규모가 커지고 본격화 된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서방국들이 미얀마 군부를 겨냥한 제재를 쏟아내지만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고, 이에 유혈사태는 갈수록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서방과의 관계가 무의미하게 전개되면서 본격적으로 학살이 전개되고, 이에 내전 상황으로 급격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한국 시민운동의 지원
한국을 비롯해 해외에 있는 미얀마 사람들이 송금 운동에 적극적이다. 이른바 ‘시민불복종’ 운동인 미얀마 노동자, 공무원, 학생 등을 지지하기 위해서다. 특히 수만 명의 공무원이 군부의 업무 복귀 명령과 관사 퇴거, 월급 미지급 등의 위협 속에서도 군부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군부에서 월급을 지급하지 않거나 해고를 할 경우를 대비해서 이들의 생계비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기자들이나 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지금은 과거 식민 치하 인도에서 했던 방식의 모든 것을 정지하는 총파업으로 무력 피해를 최소화하며 군부에게 타격을 가하는 방식의 운동을 전개하는 중이다. 과거 인도에서는 서방 세계의 영향력이 있어서 일정 정도 성공을 거둘 수 있었지만, 지금 미얀마에서도 그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한국의 시민운동 차원에서 당면 과제는 세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첫째는 미얀마 시민들이 유일하게 도움을 받는 외부 세력으로 한국의 시민운동이 얼마나 다양하고 오랫동안 끈질기게 연대 운동을 하고, 그것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미얀마 시민에게 지속적으로 보내면서 격려를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둘째는 내전을 예상하고 그 결과로 발생하는 난민들을 보호하는 여러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일 것이다. 셋째는 현재 여러 가지 루트로 성금을 모으고 그것을 전달하고 있으나 군부에게 들키지 않고 안전히 돈을 전해줄 방법을 찾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