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패권주의와 러시아의 신외교정책
홍 완 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동유럽학과 교수
2004. 12. 7.
목 차
Ⅰ. 푸틴시대 러시아의 신 대외전략
1. 푸틴정부의 대외정책 기조
2. 푸틴의 대외노선
1) 전방위 강대국노선: 세계전략
2) 기회적 고립주의 노선: 대서방․대미전략
3. 푸틴의 외교전략
Ⅱ. 푸틴 정부의 동북아 전략
1. 푸틴시대 러시아의 대 동북아정책 정향
2. 동북아에서 러시아의 국가이익과 정책목표
Ⅲ. 푸틴 정부의 대 한반도정책
1. 옐친 정부의 대한반도정책 전개: 과정, 추동력 그리고 결과
1) 친남소북(親南疎北) 노선기: 1991. 12. – 1994. 7
2) 친남포북(親南包北) 노선기: 1994. 7. – 1996
3) 남북한 등거리 노선기: 1997 – 1999
2. 푸틴 정부의 대한반도정책: 기조, 목표, 전략
1) 한반도정책 기조: 실용적 신 등거리 노선
2) 대한반도정책 목표
2-1) 안보이익과 정책목표
2-2) 정치이익과 정책목표
2-3) 경제이익과 정책목표
3) 한반도전략: 기회와 제약성
Ⅳ. 참고 자료
1. “북핵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과 역할,”
『한국과 국제정치』 제 19권 2호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2003), pp. 153-183.
2. “테러사냥 나선 미․러 두 수퍼파워: 겉으로는 ‘蜜月’, 내심은 ‘異夢’,”
『月刊 중앙』 통권 325호/12월호 (중앙일보사, 2002), pp. 158-165.
3. “미국의 대 테러전에 대한 러시아의 반응과 대응,”
『月刊 내외저널』 통권 114호/12월호 (연합뉴스사, 2001), pp. 134-145.
4. 기타 日刊紙 기고 및 방송
번호
제 목
보도 일자
1
● [TV 방송] “기름값 52조원, 우리의 선택은?”
『SBS』, 2004/11/30
[뉴스추적] 20:55 – 21:55
2
● [특별기고] “21세기 한국과 러시아”
『The Financial News』,
2004/10/15
3
● [기획] “러시아 新에너지 패권주의,”
전문가 좌담, 5면
『The Financial News』,
2004/10/06
4
● [R-방송]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방문 성과와 의미”
『KBS 제1 라디오』, 2004/09/22
[시사플러스] 09:00 – 11:00
5
● [시론] “러시아 인질극 참사의 교훈,” 34면
『중앙일보』, 2004/09/07
6
● [기고] “석유 보고(寶庫), 사하를 공략하라” A30면
『한국일보』, 2004/08/25
7
● [시론] “테러집단과 이슬람은 다르다,” 30면
『중앙일보』, 2004/06/28
8
● [R-방송] 체첸 테러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KBS 제1 라디오』, 2004/05/11
[안녕하십니까 강지원입니다]
9
● [기획] 新러시아의 중심 상트페테르부르크
“천도(遷都)론의 배경,” A14면
『한국일보』, 2003/6/24
※ 한국일보 기획특집
10
● [기고] “다자회담, ‘러’ 참여는 필수,” A30면
『한국일보』, 2003/7/16
11
● [시론] “정경유착 단죄하는 푸틴,” 30면
『중앙일보』, 2003/11/3
12
● [R-방송] “푸틴의 올리가르히 제거 배경”
『TBN 교통방송』, 2003/11/7
[아침을 달린다]
13
● [R-방송] 그루지야 무혈혁명
『KBS 국제방송』, 2003/11/28
[움직이는 세계]
Ⅰ. 푸틴시대 러시아의 신 대외전략
푸틴의 대외노선은 세계전략과 대 서방전략을 차별화 하는 중층적 구조를 그 특징으로 한다. 먼저 세계전략 차원에서는 위대한 강대국 러시아의 재건을 목표했던 옐친의 ‘전방위 외교노선’(Multidirectional Diplomacy)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편 대 서방전략 차원에서는 시급한 경제난 타개를 위해 서구세계와의 협력을 지향하면서도, 대외정치적 과제 해결에 있어 한때 간과하였던 군사적 요소의 비중증대, 즉 전통적 수단의 보강과 재래식 전력대신 핵무기 의존도 강화 방향으로의 안보전략 변경을 통해 러시아의 지정학적 세력권을 보전하는 ‘기회적 고립주의 노선’(Constructive Isolation)을 지향한다. 이를 종합하면 푸틴의 대외노선은 경제발전 우선 전략과 강대국 지위 회복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 전체적인 대외전략 목표들의 유기적 균형과 접근방법의 탄력성을 중시하는 일종의 ‘실용적 전방위 강대국노선’으로 표현할 수 있다.
1. 푸틴정부의 대외정책 기조 푸틴의 신대외전략에 대해서는 다음 졸고를 참조. 홍완석, “푸틴시대 러시아의 대외정책과 전략: 분석과 전망,”『국가전략』제6권 3호(세종연구소, 2000), pp. 79-116.
옐친 시대 러시아의 대외정책은 체계적이라기 보다는 외부의 자극에 조건 반사적으로 대처했던, 대증적(對症的) 치료에 불과한 일종의 ‘홍역기간’이었다. 대외정책 방향성과 외교노선은 일관성을 결여한 채 혼란스런 과도기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즉, 유럽과 아시아사이에서 그리고 대서구 협조와 독자적인 행보사이에서 방황하였다. 옐친 재임 10년 동안 러시아의 대외노선 변화과정, 즉 아시아를 시야에서 제쳐두고 유럽 중심외교로 일관했던 ‘친서방 추종노선’(1991. 12 – 1993. 12); 동․서간 대외정책의 불균형을 시정하여 실리적 국익 극대화를 모색했던 ‘지정학적 실용주의 노선’(1994 – 1995); 러시아 외교의 자율성을 토대로 국익스펙트럼 확대의 외연을 넓혀 나갔던 ‘전방위 강대국 노선’(1996-1999)으로의 전환이 이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그러는 사이 러시아의 국익과 국제적 위상은 서구세계에 의해 현저히 잠식되었고, 결국 과거 국제질서의 디자이너에서 하루아침에 ‘방관자’ 내지는 ‘들러리’로 전락되는 수모를 경험해야만 했다.
그러나 새 천년의 경계선에서 옐친의 퇴장과 푸틴의 등장은 러시아 국가가 지향하는 대내외적 나침반의 변화를 의미했다. 실제로 푸틴은 2000년 1월 1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집권과 동시에 대(大)러시아 애국주의 이데올로기에 기초해 위대한 강대국 러시아의 재건을 보장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토해냈는데, 그것은 ‘러시아연방 국가안보 개념’(2000. 1. 10.), ‘러시아연방 군사독트린’(2000. 4. 21.), ‘러시아연방 대외정책 개념’(2000. 6. 28.) 등으로 표현되었다. 일련의 외교․안보문건 속에 용해된 푸틴의 대외정책 기조를 분석해 보면 크게 다음 세 가지 방향으로 모아진다.
첫째는 기본적으로 서구와의 호혜적 협력노선의 견지이다. 연방 출범 이후 러시아가 대외정책 영역에서 일관되게 표방한 외교 주제는 국내개혁의 성공적 완수를 위한 유리한 대외적 환경 창출이다. 러시아는 여전히 경제재건과 시장경제체제의 착근이라는 시급한 국내적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국가적 과제에 직면해 있고, 그런 점은 푸틴 시대에 접어들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나토의 동진 팽창을 둘러싼 안보적 불협화음에도 불구하고 푸틴은 경제이익의 확보, 특히 러시아 경제의 서구 국제경제체제로의 편입(WTO, OECD, EU 등), 대규모 경제지원 확보와 외자유치를 위해 서방세계와 협력적 상호작용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될 객관적 현실에 처해있다. 서방에 성급하게 적의를 표하는 것은 세계경제체제로의 진입과 절박히 요구되는 서구의 독점적 투자역량 및 현대 선진기술로부터의 차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푸틴은 지나친 반서구적인 외교적 ‘수사’(修辭)를 가급적 삼가하고, 그 대신 실용적 어조와 실리적 접근방식을 강조한다. 그와 같은 정향은 ‘신 대외정책 개념’에서도 명확히 확인된다. 푸틴은 러시아의 심리적 안보경계선을 침범한 서구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보내면서도 러시아 외교의 3대 원칙으로 일관성, 가측성, 호혜적 실용주의를 제시하면서 정치, 경제, 안보분야에서 서구와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Концепция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и РФ, Дипломатический Вестник, № 8(Август), 2000. http://www.ln.mid. ru/website/dip_vest.nsf.
두 번째 특징은 러시아 외교의 유럽중심성에서 벗어난 탈서방적 외교정향의 강화이다. 푸틴은 ‘신 대외정책개념’에서 CIS, 중동, 남아시아, 아시아태평양지역, 심지어 아프리카지역에 대한 관심의 제고와 이들 지역 주요 국가들과의 전략적, 동반자적 협력의 중요성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여 강조하고 있다. 물론 러시아 외교의 탈서방적 정향은 강대국 지위 회복을 위해 다극적 세계의 독자적 중심부세력들과의 전략적 연계를 모색했던 옐친의 전방위노선 단계에서도 강조되었다. 그러나 푸틴은 이를 보다 더 가일층 확대 강화하고 있는데, 특히 반미세력 결집 차원에서 한때 소홀히 했던 과거 동맹국들과의 견고한 전략적 협력체제의 복원에 높은 외교적 비중을 두고 있다.
세 번째 특징은 영토적 안전보장과 서방과의 상실된 힘의 균형을 보완하기 위해 대외정치적 과제 해결에 있어 한때 간과하였던 군사적 요소의 비중 증대, 즉 전통적 수단의 보강으로서 핵 선제권의 강화이다. 1997년 12월의 ‘구(舊) 국가안보개념’과는 달리 2000년 1월의 ‘신(新) 국가안보개념’에서는 외부로부터 가해져 오는 심각한 군사․안보적 위협을 강조하고 있고, 그 위협의 범위를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즉, 나토 등 정치․군사적 동맹체 및 블록의 세력 확대; 세계에서 러시아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영향력 약화를 노리는 세력; 러시아 국경 근접지역에 외국의 군사기지 설치 및 대규모 군사 병력의 출현 가능성; 러시아 국경지대를 넘어서 CIS국가 외부국경을 훼손하는 세력; 독립국가연합(CIS) 통합 과정을 방해하는 세력 등을 러시아 국가안보를 심각히 위협하는 외부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Концепция национальной безопасности РФ. http.//www.scrf.gov.ru/Documents/Decree/2000/24-1. html.
위의 안보적 위협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책으로 푸틴의 러시아는 그간 자제해 왔던 핵무기 선제 사용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핵무기 사용조건과 관련하여 구 안보개념에서는 “외부의 군사적 침략으로 주권독립국가로서 러시아 연방의 존립이 위협받을 시, 핵무기를 포함하여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동원 가능한 군사적 수단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하면서 핵무기 선제 사용을 엄격히 자제하고 있었다. http://www.ln.mid.ru/website/dip_vest.nsf.
그러나 신 안보개념에서는 “군사적 침략의 격퇴가 필요하여 위기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모든 비군사적 수단들이 무용하고 비효과적일 경우”로 규정하고 핵무기 사용 조건을 현저히 확대했다.
푸틴의 핵 선제권 강화는 다음과 같은 다중적 수준의 전략적 포석이 깔려있다. 즉, 국제무대에서 위축된 러시아의 발언권 고양; 미국의 오만과 일방주의 견제; 미국의 신 군사 개입주의 저지; 러시아의 통상재래식 전력 취약성의 보완; 체첸 분쟁에 대한 서방의 무력간섭 개연성의 사전 차단; CIS제국에 대한 통제권 강화; CIS제국, 특히 중앙아시아에서의 정치적 불안을 자극하는 터키, 아프카니스탄 등 이슬람세력권에 대한 경고 등을 함의하고, 이는 나토의 동진 팽창을 저지하는 견고한 차단막 구축과 함께 러시아의 지정학적 위상 강화를 목표로 한다.
2. 푸틴의 대외노선
1) 전방위 강대국노선: 세계전략
일련의 외보․안보 문건속에 반영된 푸틴 대외노선은 옐친 집권 2기 ‘전방위 강대국노선’의 기본 틀을 유지하고 있다. 옐친의 ‘전방위 강대국노선’은 러시아 외교의 서구 예속성에 대한 반성에 기초하고 러시아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냉철한 평가에서 출발한다. 즉, 전방위 외교노선은 객관적인 대내외적 현실 인식을 토대로 러시아의 성공과 기회를 담보해 주는 방향으로 대외정책 우선 순위를 결정하고, 이를 통해 국가의 능력과 잠재력에 상응하는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는 것을 그 목표로 하였다. 요컨대 전방위 강대국노선은 국가적 관심과 에너지의 무분별한 분산을 통한 러시아 영향력의 범 지구적 확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대외적 활동 범위를 확대하되 러시아의 제한된 자원과 국가의 능력을 고려하여 국익과 국가안보에 중요한 국가 및 지역에 외교력을 집중하는 저비용 고효율의 ‘선택적 집중전략’이라 할 수 있다. 강봉구, 『현대 러시아 대외정책의 이해』(서울: 한양대학교 출판부, 1999), p. 240.
현실정치에서 전방위 외교노선은 서구 일원론적 국제관계 틀에서 벗어나 다극적 세계의 독자적 중심부 세력들과의 다원론적 관계 확대를 통해 침해된 러시아의 국익을 옹호함과 동시에 강대국 지위를 회복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옐친은 미국 중심의 단극적 패권질서를 저지하는 가운데 러시아의 국제적 역할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다중심 세계질서 구축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선진국정상회의(G8)와 APEC 가입을 추구하였고, 과거 전통적 우방국들과의 관계 복원 노력과 함께 프랑스, 독일, 중국, 인도, 이란 등 지정학적 추축(樞軸)국가들과의 전략적 연대를 모색하였다.
손상된 러시아의 대국적 자존심 회복과 국제적 위상 강화를 목표했던 옐친의 전방위 강대국노선은 푸틴의 대외정책에서도 더욱 강화되어 발현되고 있다. 세계적 강대국으로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푸틴 정부의 노력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 인도-파키스탄 국경분쟁, 북한 핵 위기 등 국제적 분쟁 해결을 위해 적극적 중재자역을 자임하고 있다는 점에서 잘 확인된다. 아울러 과거의 ‘동지’들에 대한 푸틴의 일련의 역동적인 순방외교, 이를테면 중국, 북한, 인도, 몽고, 쿠바, 베트남 등도 2000년 푸틴의 북한(7.19-20)과 몽고(11.14-15) 방문, 그리고 2001년 베트남(2.29-3.2) 방문은 러시아 역대 최고지도자 가운데 최초 방문이었다. 과거 철의 단결을 과시했던 군사동맹 시절에도 러시아 연방 출범이후 옐친시대에도 크레믈린 지도자가 이들 국가를 방문한 적이 없었다. 이는 그 만큼 시급히 전통적 우방국들과 과거 수준의 완벽한 전략적 협력체제의 복원을 희구하는 푸틴정부의 의지를 반영한다.
옐친 시대 단절된 전략적 연대를 복구하려는 푸틴 정부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반영한다. 전통적 우방국들과의 관계 회복은 러시아의 지정학적 영향력 회복 이외에 반미세력 또는 견미세력 결집차원에서 모스크바에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부여한다.
푸틴의 러시아는 미국의 일극우위적 세계지배구조 구축을 저지하고 국제질서에 다극체제를 이식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도 가일층 강화하고 있다. 푸틴은 세계사회에서 비중 있는 국가들, 특히 중국, 인도, 이란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지원하고 있다. 최근 이들 세 국가에 대한 최신예 군사무기 공급의 확대는 경제적 이익 이외에 지정학적 영향력 확대와 다극체제의 확산을 위한 러시아의 숙고된 전략의 일환이다. 독일과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적극 지지와 중국의 G8가입 지원도 동일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밖에 유엔의 위상 제고 및 역할 강화 지지, 국제 평화유지 활동에의 적극 참여, 유럽에서의 러․독․프 공조체제와 아시아에서의 러․중․인도 삼각동맹 구축 노력, 러․중 정상회담의 연례화, 상하이협력기구(SCO) 상하이 정상회의는 국경선을 마주한 중앙아시아국가들이 국경획정 및 분쟁 예방, 지역 내 이슬람 과격 세력에 대한 대책 논의를 위해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키즈스탄 등 5개국의 참여로 1996년 중국 상하이에서 출범했다. 그리고 2001년 6월 제 6차 상하이 연례정상회의에서 우즈베키스탄을 신규회원으로 영입하였으며, 공식 명칭을 ‘상하이협력기구’(SCO)로 명명하고 상설기구화 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SCO 확대 강화 노력은 중앙아시아의 안정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미국의 역내 영향력 침투 견제와 국제적 일방주의에 제동을 걸려는 전략적 포석 측면이 강하다.
의 확대, 중앙아시아 신뢰구축 협력회의(CICA) ‘중앙아시아 신뢰구축 협력회의’(Conference on Interaction Confidence-Building Measures in Asia: CICA)란 1992년 카자흐스탄 발의에 의해 범아시아 지역의 안보와 경제협력 등을 목적으로 창설됐지만 유명무실했고, 1999년 9월 중국, 아프가니스탄, 인도, 파키스탄 등이 참여함으로써 주목받기 시작했다. 창설을 주도한 것은 카자흐스탄이지만 러시아와 중국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재 회원국은 러시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터키, 아프가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이집트, 이스라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몽골, 팔레스타인,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총 16개국이다.
의 개편, 동남아국가연합(ASEAN) 및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의 활동 강화 등도 다극적 세계질서 창출과 함께 ‘팍스 아메리카나’(Fax Americana)에 대항하기 위한 러시아의 원대한 세계전략이라 할 수 있다.
2) 기회적 고립주의 노선: 대서방․대미전략
서방에 대한 푸턴 정부의 외교적 접근은 전방위 강대국노선의 궤도를 벗어난다. 유럽은 강력한 미국이 독점하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안보적 지배 권역이고 러시아에 배타적이며 힘의 역학관계에서 현저히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활적 이해가 걸린 대 유럽 극복을 위해 푸틴의 러시아가 추구하고 있는 외교노선은 무엇인가? 안보는 물론이고 러시아 국가의 성장과 직결된 유럽방면에서의 외교적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푸틴의 대외노선은 ‘기회적 고립주의 노선’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 노선에 대한 개념정립과 이해를 위해서는 우선 ‘고립주의’에 관한 적확한 정의와 설명이 필요하다.
고립주의는 원래 미국의 대외정책의 한 주류를 형성하는 외교노선으로서 일반적으로 대외개입의 축소 내지는 회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고립주의는 형식에 있어서는 타국 불간섭주의를 취하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철저한 국익옹호를 위한 현실주의 노선 다름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톰슨(K. Thomson)은 ‘고립주의’(Isolationism)를 “(국제)정치적 소용돌이로부터 자국을 분리시키려는 기도이자, 주권국가의 최대한의 자결권과 행동의 자유를 추구하는 태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미국의 고립주의는 자급자족의 자신감, 도덕적․정치적 가치의 우월감, 타국의 이익과 미국의 이익간의 상이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http://user.chollian.net/~justinsw/int-politics/fpolicy.htm
톰슨이 정의한 바처럼 고립주의는 양면성을 띄고 있다. 즉, 1) 국제정치적 소용돌이로부터 자국을 분리시키려는 기도와(이상주의적인 측면) 2) 주권국가의 최대한의 자결권과 행동의 자유를 추구하는 태도로(현실주의적인 측면) 동전의 앞뒷면을 형성한다. 그런데 미국의 고립주의는 전자보다는 후자를 목표로 한 측면이 강했다. 미국의 고립주의 태동 배경과 그 경과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미국에서의 고립주의는 19세기 초 제정러시아를 필두로 한 유럽열강의 미주대륙 세력권 분할 기도를 저지하기 위해 1823년 먼로 대통령이 불간섭 고립주의를 선언한 이른바 ‘먼로 독트린’에서 비롯된다. 당시 먼로 독트린은 타국에 대한 불간섭주의를 표방하였으나 사실은 ‘실리’와 ‘대의명분’ 두 가지 측면을 내포하는 아주 현실주의적인 정책이었다. 즉, 실리적 측면은 미주대륙에서 유럽세력의 간섭을 배제해 미국의 독자적인 영향권을 형성하는 것이었고, 대의명분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였다. 최영진, 『동아시아 국제관계사』(서울: 지식산업사, 1996), pp. 64-65.
결론적으로 말해 먼로 독트린은 미국이 미주대륙을 식민지화하려는 유럽열강들과의 세력권 다툼에서 평화와 안보라는 명분을 내세워 자국의 국익옹호와 미주대륙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먼로주의의 진정한 목적이 미국의 미주대륙 지배욕에 있었다는 점을 예증해 주는 역사적 사례는 다음과 같다. 1895년 베네주엘라 사건 때 미국이 베네주엘라의 영토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선언한 ‘올니(Olney)독트린’; 1904년 도미니카 공화국 사건 시 미주대륙에서 미국이 경찰역할을 할 의무가 있음을 선언한 ‘루스벨트 독트린’; 1940년 미주대륙의 어느 한 부분도 비 민주국가에게 할양되어서는 안 된다는 미국 의회의 결의안 채택 등이다. 이밖에 먼로 독트린의 이름 아래 또 먼로 독트린의 새로운 해석에 따라 미국은 1912년 니카라과에 무력 개입했으며, 윌슨 대통령 때도 니카라과에 두 번 개입하였고, 1915년 아이티에, 1916년 도미니카공화국에 각각 개입하였다. 미국은 미주대륙의 경찰로 행세하면서 문제가 있는 정부를 없애거나 교체하였다. 태평양 진출 때도 먼로주의를 대의명분으로 여러 번 활용하였다. 미국의 고립주의는, 유럽열강들로 하여금 미주대륙에 일어나는 일에 개입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미국의 국익을 지켜나가는데 훌륭히 봉사했다.
미주대륙을 분할하려는 유럽세력들과의 전략적 관계에서 열세에 처한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정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먼로주의로 표현되는 고립주의는 오랜 동안 미국의 국익을 견고히 옹호하는데 기여한 매우 성공적인 외교정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푸틴의 고립주의도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상황은 역전되어 이제 미국이 나토를 앞세워 러시아의 전통적 세력권 분할과 함께 단극적 세계질서 구축을 기도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푸틴도 고립주의 노선으로의 선회를 모색했다. 푸틴의 고립주의 또한 실리와 대의명분을 갖는다. 대의명분은 미국 중심의 패권적 단극질서를 배격하고 다원화된 국제질서를 창출하여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담보하자는 이른바 ‘전략적 안정화’(strategic stabilization)이다. 실리는 미국과 서방의 간섭을 배제하여 독립국가연합(CIS), 중․동부 유럽 등 러시아의 지정학적 텃밭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 강화하는 것이다. 신 안보전략에서 푸틴의 핵 선제권 강화는 전통적 세력권을 보전하려는 강한 의지를 반영한다.
푸틴의 고립주의는 러시아와 미국간 국력의 ‘비대칭성’과 국익의 ‘불양립성’에 대한 명료한 인식에 기초하고 슬라브주의적 가치의 우월감에서 출발한다. 단, 미국의 고립주의와는 달리 경제적 취약성, 즉 서방의 경제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기회적’이라는 접두사가 붙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푸틴의 기회적 고립주의 노선은 미국의 먼로주의와 형식은 다를지 모르나 내용은 동일선상에 있다.
푸틴이 추구하는 기회적 고립주의 노선은 시급한 경제재건이라는 국내적 요구에 따라 서방과의 우호적 협력을 기본 원칙으로 하되, 러시아의 안보이익이 경제이익과 충돌할 경우 과거처럼 안보이익을 경제이익에 무작정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함의한다. 요컨대 기회적 고립주의 노선은 정경분리에 입각한 일종의 이중전략으로서, 경제이익과 같은 ‘실리적 이익’과 안보이익과 같은 ‘배타적 이익’을 엄격히 구분하여 사안에 따라 협력과 대립각을 선택하는, 즉 서구에 의존해야 하는 영역은 서방과 계속 협력하지만 그렇지 않은 영역에서는 러시아 자신의 특별한 역할을 모색하고 그 과정에서 서방과의 갈등도 회피하지 않는 매우 정치(精緻)한 현실주의 노선이라 할 수 있다.
기회적 고립주의 노선에서 국익확대의 ‘기회적 측면’은 WTO, OECD 및 EU등 러시아 경제의 서구의 국제경제체제로의 편입과 가일층 확대된 서구의 경제지원 확보이고, 반면 국익방어의 ‘고립적 측면’은 견고한 안보체제의 구축을 밑변으로 전통적 세력권의 보전, 이를테면 나토와의 군사적 비대칭성 극복과 동진 팽창 저지, CIS의 통합과 이 지역에서의 지정학적 주도권 장악, 중․동부 유럽에서의 발언권 강화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3. 푸틴의 외교전략
푸틴의 기회적 고립주의 노선은 러시아의 대내외적인 객관적 현실, 즉 제한된 자원과 국가의 능력에 대한 명료한 인식 하에 다분히 실사구시적 접근을 내포한다. 즉, 푸틴은 서방과의 관계악화가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을 감안해, 가급적 무익한 갈등구도를 형성하기보다는 냉정하고 합리적인 전략적 선택을 통해, 또는 새로운 정치지형을 면밀히 판독하는 가운데 힘의 균열공간을 틈입함으로써 실리를 극대화하는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푸틴의 그런 전략은 다음과 같은 일련의 정책에서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먼저 탈냉전이후 미국과 서유럽 사이에 노정 되고 있는 지리․경제학적, 국제 정치적 입장 차이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일종의 틈새전략이다. 탈냉전이후 미국과 서유럽사이에 미묘한 국익충돌 현상이 가시화 되면서 균열작용이 증폭되고 있다. 세계 기축통화로서 유로화와 달러화의 신경전; 세계무역기구(WTO)내에서의 미․EU간 무역분쟁과 주도권 경쟁; IMF에 대한 미국의 과도한 간섭을 배제하려는 서유럽의 움직임; 미국의 군사적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독일과 프랑스 주도의 서유럽동맹군(WEU)역할 강화;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체제(MD) 계획에 대한 프랑스, 독일 등 EU제국들의 반발; 미국의 대이라크 침공에 대한 프랑스, 독일의 반대 등이 이를 구체적으로 반영한다.
구체적으로 러시아는 세계무대에서 서방전체를 통틀어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양대 세력을 잠재적 동맹자와 잠재적 적으로 나눠 분할 대응한다. 미국과 서유럽을 분리시켜 유럽과의 경제 및 안보 협력을 우선시 하는 유럽 중심 국가발전 전략을 추구하고, 이를 통해 국제질서를 일방적으로 재단하는 미국의 독주와 전횡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의 독자적인 탈(脫) 나토 신속대응군(RRF) 창설에 대한 러시아의 적극적 지지 표명과 독일, 프랑스와 연대해 미국의 대이라크 침공에 한 목소리로 반대했다는 사실이 적절한 사례가 될 것이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이견으로 더욱 확대된 미국과 유럽사이의 균열작용의 심화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지적처럼, 러시아 외교의 승리로 평가할 수 있다. “美 석학 2인, 부시에 전후 훈수,” 『문화일보』 2003년 4월 15일.
다음으로 푸틴은 나토의 ‘동진’(東進) 팽창에 러시아의 ‘서진’(西進)이라는 영민한 역대응 전략을 구사한다. 러시아는 2002년 5월 나토(NATO)와 범세계적 안보 이슈에 관해 공동의 의사결정과 행동을 규정한 이른바 ‘로마선언’을 채택하고, ‘나토․러시아 협의회’ 설치에 합의했다. 비록 러시아가 비토권을 부여받지는 못했지만, 발언권을 통해 자국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나토 확대에 따른 안보위협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효과는 있다. 이는 수세적 지역방어로부터 적극적 전면 강압 수비로의 정치안보전략의 전환을 의미한다.
푸틴의 실용주의 외교전략은 가장 중요한 외교상대인 대미 정책에서도 뚜렷이 확인된다. 러시아는 국제정치경제기구와 세계자본을 통제하고 있는 미국과의 불편한 관계의 지속이 결코 자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고 러시아의 이해관계 영역을 제한하고 그 세력권을 갉아먹는 미국의 독단적인 군사적 전횡과 무차별적인 힘의 행사를 마냥 바라만 보고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의 대미 외교적 접근방식은 특정한 도그마나 원칙에 집착하지 않은 유연한 ‘상황주의적’(Situational) 대응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상황주의적 대응이란 러시아의 국제적 역할을 제한하고 세력권을 잠식하는 미국의 패권적 전횡을 견제하되, 러시아의 국익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정치이념과 지정학적 대립을 초월해 그 어떠한 사안에 대해서도 미국과 타협하면서 최대한의 ‘반대급부’를 확보하는 일종의 기회주의적 접근법이다. 푸틴의 그런 실용주의적 접근은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체체(MD) 구축과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조약 파기 요구에 대한 러시아의 대응에서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러시아는 미국의 독자적인 MD 구축을 위한 ABM 협정 파기 요구를 일관되게 반대했으나, 치밀한 이해득실 계산 끝에 결국 수용했다. 현실적으로 러시아는 미국의 MD 계획에 맞대응 할만한 국가적 능력과 자원이 결여되어 있다. 설사 미국의 MD를 상쇄시키는 억지력을 갖추기 위해 군비경쟁에 뛰어들더라도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요구되고, 이는 러시아 경제재건에 지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국의 MD 계획이 러시아보다는 중국을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타협했고 그 대가로 향후 러시아의 나토 참여와 WTO 가입이라는 묵시적 반대급부를 얻어냈다. 미국의 대아프칸 전쟁에 대한 지지의 대가가 러시아의 대체첸무력 진압 묵인이라는 점도 동일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상(以上)의 분석으로부터 푸틴의 대외노선은 세계전략과 대서방 전략을 차별화하는 중층적 구조를 그 특징으로 함을 알 수 있다. 먼저 세계전략 차원에서 푸틴의 러시아는 옐친의 전방위 강대국노선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즉, 지정학적 중추국가들과의(프랑스, 독일, 중국, 인도, 이란,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전략적 연합을 가일층 확대 강화하여 미국 중심의 일극적 패권질서를 저지하고 다원화된 세계질서를 창출하며, 궁극적으로 다극체제의 핵심 축으로서 러시아의 지정학적 위상 강화를 목표하는 ‘신 전방위 외교노선’이다. 한편 대유럽 전략차원에서는 전통적 세력권 보전이라는 안보이익을 공고히 하는 가운데 러시아 경제의 서구세계와의 통합이라는 경제이익 확보를 추구하는 ‘기회적 고립주의노선’을 견지한다.
전방위 강대국 노선과 기회적 고립주의 노선은 언뜻 양립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두 노선 모두를 관통하는 공통 키워드가 철저한 현실주의적 실리추구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다. 또 유라시아 국가로서 러시아 외교의 취약성을 커버해주는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기도 하다. 서방으로부터의 선진자본을 흡수하는 한편, 유럽에서의 정치․안보적 열세를 세계의 독자적 중심부세력들과의 전략적 연계 강화와 강대국 지위 회복을 통해 만회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푸틴의 대외노선은 경제발전 우선 전략과 강대국지위 회복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 전체적인 대외전략 목표들의 유기적 균형과 접근방법의 탄력성을 중시하는 일종의 ‘실용적 전방위 강대국노선’으로 표현할 수 있다.
Ⅱ. 푸틴 정부의 동북아 전략
1. 푸틴시대 러시아의 대 동북아정책 정향
지정학적 이익에 대한 전략적 관리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범세계적 규모의 정치․군사적 안보와 관련하여 러시아의 운명을 결정하는 핵심적 대외적 공간은 유럽과 동북아이다. 강봉구, “21세기 러시아의 신안보 전략”,『국제정치논총』제 40집 2호(한국국제정치학회, 2000), p. 151.
이는 러시아가 위치한 유라시아 대륙의 양 날개에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경제적 생산성이 높은 6대 경제대국과 강한 ‘근육질’의 군사대국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유럽과 동북아는 세계의 지정학적 중추인 유라시아 대륙의 안정적 관리와 러시아 국익의 창조적 확대에 사활적 중요성을 지닌 ‘생명선’과도 같다.
푸틴은 유라시아 강대국으로서 러시아의 역할과 국제적 권위를 보장하기 위해 신 전방위 강대국노선을 천명하고, 위축된 러시아의 지정학적 활동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현 러시아에게 있어 신 전방위 강대국노선을 뒷받침할 수 있는 동원 가능한 자원과 유효한 전략적 지렛대가 제한되어 있다. 그럼에도 푸틴은 가용할 수 있는 힘과 수단의 합리적 배분과 외교적 접근방법의 효율성 제고를 통해 러시아에 불리한 대외적 환경을 타개하고자 한다. 그런데 유럽은 미국이 독점하고 있는 정치, 경제, 안보적 지배 권역이고 러시아에 배타적이기에 현상타파가 쉽지 않다. 반면 동북아의 전략환경은 유럽에 비해 훨씬 더 빈틈이 많고 덜 독점적이며 유동적이다. 따라서 푸틴은 동북아를 러시아의 제국적 추동력에 강한 전위로 삼고자 하고, 아시아에서의 성공을 통해 유럽에서의 열세를 극복하고자 하며, 21세기 러시아를 열어갈 국가발전의 원동력을 동북아의 다이나믹한 경제적 역동성에서 찾고자 한다.
유라시아 동단지역을 향한 푸틴의 새로운 접근은 2000년 11월 푸틴이 이례적으로 발표한 ‘러시아: 동방의 새로운 전망’(Россия: новые восточные перспективы)이라는 신 동방외교 문건 속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여기에서 푸틴은 아․태지역 국가들과의 가일층 강화된 지정학적, 지경학적 연계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러시아는 항상 스스로를 유라시아국가로 여겼고, 영토의 중요한 부분이 아시아에 걸쳐있다는 점을 결코 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유라시아국가로서의 지정학적 우월성을 항상 잘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아시아태평양국가들과 정치, 경제 및 기타 분야에서의 협력관계 증대를 ‘말이 아닌 실천’(от слов к делу)으로 옮겨야 할 시점이다… 러시아가 아․태지역 공간에서 진행되고 있는 통합과정에 소외되어서는 안되고, 완전한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필연적이다. 이는 러시아야말로 아시아와 유럽 심지어 아메리카까지를 잇는 독특한 통합적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이 발표한 ‘러시아: 동방의 새로운 전망’(Россия: новые восточные перспективы) 전문 내용은 다음을 참조. Дипломатический Вестник, № 12(Декабрь), 2000. http://www.ln.mid.ru/ putin_st.htm
이상의 인용문에서 보여주듯 푸틴의 언술은 그간 러시아가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여 국외자가 되었다는 점을 회한하고, 아․태지역의 객관적이고 당위적인 회원으로서 역내 지역 통합에 적극 참여하여 러시아의 국익을 전향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함축하고 있다. 그 강한 의지는 ‘말이 아닌 실천’이라는 표현 속에 잘 드러나 있는데, 이는 언행이 일치하지 못한 과거의 대아시아정책에 대한 솔직한 반성이기도 하다. 옐친은 아시아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과도한 유럽중심 정책을 펼친다는 여론의 비판을 받을 때마다, 러시아 국가문장(紋章)인 ‘쌍두 독수리’를 거론하면서 이를 부정해 왔다. 즉, “쌍두 독수리의 두 눈이 각기 아시아와 유럽을 향해 있듯이 러시아의 대외정책은 항상 동과 서의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다”고 항변하곤 했다. “Российский двуглавый орел смотрит одновременно на Восток и на Запад, а не обращен только одну сторону.” Андрей Козырев, Преображение. -М.: Международные отношения, 1994. С. 237.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못했고, 동방을 향한 쌍두 독수리의 눈은 항상 반쯤 감겨져 있었다.
한편 신 동방외교 문건 속에는 러시아의 아시아적 정체성 확보와 과거의 지정학적 영향력을 복원하고자 하는 야망도 짙게 배어있다. 여기에서 푸틴은 21세기가 아․태지역의 세기가 될 것으로 내다보면서 이 지역을 ‘우리 공동의 집’(наш общий дом)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울러 세계적 및 지역적 차원의 전략적 안정화를 위한 중국과의 동반자관계의 지속; 아세안(ASEAN) 국가들과의 독자적 연계 강화; 전통적 우방국들(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몽고, 북한 등)과의 전면적 수준의 관계 회복;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러시아의 역할 강조 등도 특별히 언급되어 있다. Россия: новые восточные перспективы. Там же.
푸틴의 신 동방외교 문건은 1986년 아․태지역을 향해 문을 두드렸던 고르바초프의 ‘블라디보스톡 선언’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신 아시아 독트린’과도 같다. 아․태지역, 그 중에서도 동북아에 대한 푸틴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열정은 이 지역이 유라시아 강대국으로서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과 국익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확대시켜주는 중요한 지정학적 ‘곳간’이 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에서 출발한다. 이를테면 세계 정치․경제관계의 지리적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동북아에서의 안정된 지위 유지가 러시아 연방의 국내 개혁과 유라시아 세력으로서의 입지 그리고 탈냉전이후 다중심 세계질서 형성 과정에서 러시아의 권익과 국제적 지위를 증대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에 기초한다.
이에 따라 푸틴의 러시아는 동북아에 대한 국가적 관심과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동방외교의 비중을 현저히 증대시키고 있다. 집권이후 푸틴의 일련의 외교 ‘대장정’(大長征), 즉 중국, 북한, 일본, 인도, 몽고, 남한, 베트남, 말레이시아 방문과 매년 APEC 정상회의 참석 등이 이를 극명히 입증한다. 푸틴의 역동적인 동아시아 순방외교는 이 지역에서 손상된 경제적, 안보적, 지정학적 이익을 되찾고자 하는 러시아의 야망을 보여준다.
2. 동북아에서 러시아의 국가이익과 정책목표
그렇다면 푸틴의 러시아가 동북아에서 추구하는 인식적 차원의 국가이익과 동기적 차원의 정책목표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이를 안보영역, 경제영역, 정치영역으로 세분하여 요약하면 <표 1>과 같다.
푸틴 시대 러시아의 동북아 국가전략 프로그램은, 먼저 체제안정과 경제개혁에 바람직한 대외적 환경 조성을 위해 가급적 역내 국가들과의 선린우호 협력관계를 최대한 심화 발전시켜 나가는 ‘외교적’ 노력을 기본전제로 하고, ‘안보적’으로는 포괄적인 다자간 안보체제의 창설을 모색하여 동쪽 국경선에서의 영토적 안전을 보장받음과 동시에 러시아의 안보적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며, ‘경제적’으로는 시베리아 및 극동지역 개발 촉진과 신흥 아시아시장 개척 그리고 역내 경제협력기구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고, ‘정치적’으로는 다극체제의 이식과 함께 과거 전통적인 우방국들과의 전략적 관계복원을 통해 유라시아 강대국으로서 러시아의 배타적인 국익과 지정학적 위상을 강화해 나가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표 1> 동북아에서 러시아의 국가이익과 정책목표
국가이익
정책 목표
세부 실천 목표
안보영역
1. 동부 국경선의 안정과 안전보장
․중국의 잠재적 위협 제거
․일본의 북방영토 반환요구 차단
․일본의 재무장 및 군사대국화 견제
․미국의 MD구축 및 주변국들의 참여 저지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 예방
․한반도의 비핵화
2. 영토적 통일성 보전
․시베리아 극동지역에서의 분리주의 움직임 차단
․동 지역에서의 슬라브계 인구 부양
․불법이주 중국인들의 인구 삽투압 방지
3. 동북아 안보주도권 확보
․역내 군축의 실현
․다자간 안보기구 창설
․아세안지역포럼(ARF)에서의 활동 강화
경제영역
1. 시베리아 극동지역 개발 촉진
․러시아 극동경제의 아․태 시장분업체제에 편입
․시베리아 극동지역의 원유 및 에너지자원 개발
․경제특구의 창설
․동북아 국가들로부터의 투자 유치
2. 시베리아횡단철도의 국제화
․시베리아철도의 한반도 종단철도와의 연결
․궁극적으로 TSR의 일본종단철도와 연결
3. 신흥 아시아 수출시장의 확대
․경쟁력을 구비한 첨단무기, 원전, 에너지 자원의
아시아 시장 개척
4. 역내 경제협력기구에의 주도적 참여
․APEC, ASEAN에서의 주도적 역할 강화
․소외된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여
정치영역
1. 한반도에서의 배타적 영향력 확대
․한반도에 대한 미․중의 독점적 영향력 억제
․러시아 참여하는 한반도 6자회담 창설
․남북한의 반러화 방지
2. 전통적 우방국들과의 관계 복원
․북한, 몽고, 베트남 등과의 전략적 협력체제 구축
3. 동북아 다극체제의 이식
․중국 및 인도와 견미․반패권 연대 강화
Ⅲ. 푸틴 정부의 대 한반도정책
1. 옐친 정부의 대한반도정책 전개: 과정, 추동력 그리고 결과
푸틴 정부의 대한반도정책 기조를 지속과 변화라는 관점에서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옐친 정부의 대한반도정책 전개과정을 살펴보고 출발함이 옳다. 옐친 시대 러시아의 대 한반도정책은 크게 다음 세 단계의 특징적인 변화과정을 거쳤다. 즉, 탈냉전에 따른 ‘외교적 낭만주의’(Diplomatic Romantism)가 지배하던 신 러시아연방 출범 초기, 한국에 대한 과도한 기대 하에 전통적 우방국 북한과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경원시하고 남한과의 전면적 수준의 밀월 협력관계를 추구하였던 ‘친남소북기’(親南疎北期: 1991.12.-1994.7.); 친 남한 편향노선이 기대에 부응할 정도로 유익한 조건을 제시하지 못하자, 그 반작용으로 한국과의 우호적 협력노선을 견지하는 가운데 북한체제를 옹호하고 포용하면서 단절된 대북관계 복원을 모색했던 ‘친남포북기’(親南包北期: 1994.7.-1996); 한반도에서의 지정학적 영향력 회복을 목표했던 친남포북 노선이 오히려 남북한 모두에서의 정치적 소외라는 정반대의 현상으로 나타나자, 재차 러시아의 역할과 권위를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으로서 냉철한 남북한 균형론적 시각에서 서울과 일정한 거리감을 두고 북한과의 관계정상화 작업에 외교력을 집중하였던 ‘남북한 등거리 노선기’(1997-1999)로의 변증법적 진화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은 전체적으로 국내적 요구와 국제적 필요에 따른 러시아의 대외정책 노선 변화 과정과 일치하는 것으로서, 전체적으로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국익증대를 위한 정책조정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정책 조정의 핵심은, 한반도에서의 소외를 자초했던 일방적인 친남한 노선에서 벗어나 북한과의 독자적인 전략적 관계 발전을 통해 이 지역에서 상실된 지정학적 영향력을 회복하고, 나아가 자신에게 유리한 이익균형과 세력균형을 모색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럼 여기서 각 시기별 옐친 정부의 대한반도정책 내용과 특징 그리고 그 정책변화를 추동한 다양한 수준의 대내외적 동인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1) 친남소북(親南疎北) 노선기: 1991. 12. – 1994. 7
소연방 붕괴에 따른 동․서 대결구도의 종식과 신 러시아 사회 및 국가체제의 서구적 시장민주주의체제로의 변동은 대외관계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한반도정책에서도 본질적인 변화를 수반하였다. 특히 소련으로부터 물려받은 피폐한 경제상황은 과거의 대결적 대외노선으로부터의 급격한 이탈을 요구하였다. 여기에 탈냉전의 구조적 변화, 즉 경제적 상호의존성의 심화는 신 러시아의 대외노선을 현대 세계발전의 합법칙성 및 객관적 요구에 부응하도록 강요했다. 이렇듯 민주적 도정으로의 체제변동과 국제관계 패러다임의 변화는 신 러시아의 대외 정치적 행위 내용을 규정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결정인자로 작용하였고, 과거와는 완전히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대외노선, 즉 친서방 협조노선을 지향케 하였다.
그러한 신 러시아의 친 서방 추수(追隨)노선은 한반도정책에서도 그대로 투영되었는데, 이는 일방적인 ‘친 서울 경사노선’(курс на просеульский крен)으로 나타났다. 연방출범 초기 옐친 주변에 포진한, 시장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서구적 개혁세력들은 한국과의 전면적 협력이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국익증대는 지정학적 위상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판단 하에 한반도 외교의 무게중심을 북에서 남쪽으로 옮겼고, 철저히 친남한 일변도노선을 견지하였다.
반면 신 러시아는 북한과의 맹방관계를 스스로 청산하였는데, 이는 “북한에 대한 불가피한 소외”(неизбежное отдаление от КНДР)를 명시한 1992년 12월의 ‘신 대외정책 개념’ 속에 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1992년 발표된 신 대외정책 개념에서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불가피한 소외”(неизбежное отдаление от КНДР)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바 있다. Концепция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и РФ. Дипломатический Вестник МИД РФ, No. 1(январь), спецвыпуск, 1993, С. 16.
실제로 러시아는 서구적 잣대의 인권과 외교의 이데올로기적 원칙을 내세워 전통적 동맹국 북한과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경원시하였고, 한반도문제에 대해서도 한국과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면서 서방의 북한 고립화 전략에 적극 가담하였다. А.В. Торкунов, Е.П. Уфимцев, Корейская проблема: новый взгляд(Москва.: Анкил, 1995), С. 202.
1992년 봄 북한의 핵무기 개발 계획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과의 유기적인 정책 공조 1992년 봄 한반도에서 북한의 핵개발 의혹 문제가 국제적인 사건으로 이슈화 되었을 당시 러시아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계획을 중단시키기 위한 압력의 일환으로 북한과의 모든 군사협력을 중단한다고 선언하였다. 아울러 미국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핵무기 개발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기술과 인력, 그리고 물자의 북한내 유입을 차단하는데 협력하였다.
; 1961년 체결된 ‘조․러 우호동맹조약’에 대한 ‘효력정지’(иссяк) 선언; 러시아 정부 및 언론의 북한 인권문제 거론; 김일성의 한국전쟁 남침을 입증하는 비밀문서의 공개; 러시아내 북한 벌목공들의 한국 귀순 방조; 약 35억 달러에 달하는 북한의 대소 부채 상환 촉구; 바터무역의 중단과 대북 수출상품에 대한 경화결제 요구; 북한과의 군사협력 중단 선언 등은 러시아의 변화된 대북 정책을 반영한 구체적인 사례들이었다. 이러한 러시아의 비우호적인 일련의 정책은 북한의 적의와 격렬한 반발을 사기에 충분했고, 그 결과 러․북관계는 ‘악화’라는 단어를 향해 치달아 김일성 주석 사망이전까지 외교적 교류가 끊긴 채 한동안 단절상태에 있었다.
그렇다면 신 러시아 연방 초기 크레믈린 지도부가 평양과의 관계악화를 감수하면서까지 선명한 ‘친남소북’(親南疎北) 노선으로 급선회한 배경은 무엇인가 ? 그 배경을 단지 신 러시아 국가지배 이데올로기의 시장민주주의체제로의 변동이라든가 한국으로부터 대규모 물적 지원 확보라는 경제적 조건에서 찾기에는 러시아의 외교적 수준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물론 한․러간 새로운 이념적 동질성과 러시아의 시급한 국내 개혁 및 시장경제체제 착근, 낙후된 시베리아․극동지역의 조속한 개발 등을 위해 한국의 국제적 경제력 활용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실리적 관점이 러시아의 대한반도정책 수정을 견인한 일차적인 요인이기는 했다.
그러나 모스크바의 정책담당자들이 지난 3세기 동안 범세계적 행위주체였고, 북해에서 남미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경영한 경험을 갖고 있는 제정 러시아와 소련 책략가들의 후손들이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강봉구, “모스크바 ꡐ서울 길들이기ꡑ시작했다,” 『신동아』 9월호(1998). http://www.donga.com /docs/magazine/new_donga/9809/nd98090090.html.
,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 요컨대 러시아의 친 남한 일변도노선으로의 선회는 결코 충동적이거나 단선적이지가 않고, 대차대조표상의 이해득실에 대한 치밀한 계산이 고려된 것이었으며, 다음과 같은 다중적(多重的)인 전략적 의도를 내포하였다. 그것은 첫째, 한국을 ‘지렛대’(рычаг)로 일본의 대러 투자확대를 유도하려는 포석이 짙게 깔려있었다. 즉, 북방영토문제 미해결을 이유로 이른바 ‘정경불가분의 원칙’(принцип неразделимости политики и экономики)을 고수하면서 러시아 극동 및 시베리아 개발 참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일본을 자극하려는 의도였다. 둘째, 크레믈린 지도부는 북한의 조속한 붕괴를 전망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반도 통일 주체세력으로서 한국과의 관계강화가 장차 러시아의 국익에 부합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셋째, 한국과의 전략적 연계강화가 견고한 한․미 동맹체제에 일정부문 균열을 가할 수 있고, 한국을 미국으로부터 분리시켜 그 사이를 틈입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상대적으로 러시아의 정치적 영향력을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 고부가가치의 러시아산 첨단무기 시장개척과 관련하여 대규모 한국 무기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미국의 지위를 잠식할 수 있다. 넷째, 경제적 성공에 힘입어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한국과의 협력강화는 냉전종식 이후 아․태지역에서 활발히 모색되고 있는 다자간 협력체제, 즉 동북아 다자간 안보체체 창설과 아세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 아세안지역포럼(ARF) 등에 러시아의 참여와 역할 확대에 기여할 것이다. 이러한 다차원적인 전략적 계산이 연방출범 초기 신 러시아의 ‘주남종북’(主南從北) 노선을 유인한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론된다.
2) 친남포북(親南包北) 노선기: 1994. 7. – 1996
한국과의 전면적 수준의 협력이 러시아의 아시아 진출, 한반도에서의 정치적 영향력 강화, 한국으로부터의 대규모 경제협력 등을 이끌어내 러시아의 국익 증대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친 서울 일변도노선은 크레믈린 지도부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친 평양노선’(пропхеньянский курс)에서 ‘친 서울노선’(просеульский курс)으로의 급선회는 한반도에서 국익 침식과 정치적 역할 축소라는 정반대의 현상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러시아의 세력약화를 포착하여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정책전환을 시도하였고, 이미 약속한 대러 투자 및 경협에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편 러시아의 친남한 편향정책에 대한 북한의 반작용으로 북․러 외교채널은 장기간 폐쇄되어 있었다. 북한은 러․북관계 단절에 따른 안보적 고립을 핵 보유로 보상받고자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한반도에 러시아의 안보비용 지불을 초래할 수 있는 군사적 긴장이 급속히 고조되었다. 특히 북한은 1994년 초 제 1차 북핵 위기 시 러시아를 철저히 배제한 채 미국과의 협상에 매달렸다. 러시아가 제안한 북핵 8자 회담은 관련국들의 외면으로 반향없는 메아리로 다가와 결국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역할 공간은 현저히 위축되었다.
이렇듯 친남한 노선이 기대에 부응할 정도로 유익한 조건을 제시하지 못하자, 러시아 지도부는 국익 스펙트럼 확대와 지정학적 위상 강화를 위한 자구적 차원에서 한반도 남쪽에 고정된 외교의 방향성을 수정하기 시작하였다. 즉, 러시아 지도부는 친남한 편향노선에서 일정부문 벗어나 북한체제에 대한 인정과 탈이데올로기적 외교원칙에 입각해 제로베이스에서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기 시작하였고, 동결된 대북 대화채널 복원을 위해 지난한 외교적 노력을 전개하였다. 러시아의 대한반도정책 수정은 ‘친남포북’(親南包北) 노선으로 가시화 되었는데, 이는 한국과는 ‘협력관계 유지’ 북한과는 단절된 ‘우호관계 복원’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시기 러시아의 친남한 일변도노선 이탈은 한반도 정세에 대한 냉철한 판단에 기초하고, 그것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수준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곧 붕괴될 것으로 판단되었던 북한체제가 예상외로 공고하다는 점; 둘째, 계속 친 서울노선에 동조하여 북한을 자폐적 고립으로 몰고 갈 경우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있고, 이는 시장경제개혁을 위해 평화로운 대외적 환경조성을 바라는 러시아의 이익에 역행한다는 점; 셋째, 서방의 북한 고립화전략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 한반도에서 스스로의 고립을 자초했다고 주장하는 국내 보수공산세력들의 비판 고조와 이들의 정치적 득세에 따른 격렬한 저항으로 옐친 정권의 입지가 축소되었다는 점; 넷째, 친남소북(親南疎北) 노선이 남한에 대한 영향력 증대로 이어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북한을 미국과 중국의 팔 안으로 내몰아 러시아의 대북 영향력을 ‘제로화’시켰다는 점; 다섯째, 북한과의 성급한 관계단절로 인한 손실을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보상받지 못했다는 점 К. Брутенц, О внешнеполитической концепции России в Азиатско-Тихоокеанском регионе(Москва : Апрель-85, 1995), С. 311.
등이다.
이상과 같은 한반도정책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실제적인 분석을 통해 친남한 정책이 러시아의 기본적인 국익에 합치되지 않았다는 점을 자각한 옐친의 러시아는 남한 일원론적인 한반도정책에서 벗어나 점차 남북한 균형노선으로의 선회를 모색하였다. 이를테면 한반도에서의 외교적 균형감각 상실이 스스로의 국익손상을 초래했다는 반성 하에, 남으로 지나치게 구부러진 외교적 가지를 평평하게 펴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의 사망은 대북 포용노선의 시발점이었다. 옐친은 조전(弔電) 발송과 함께 이례적인 애도 성명을 발표하고, 대북 경제교류 재개와 일련의 고위급인사들의 평양 파견 등을 러시아는 과거에는 전무하였던 일련의 고위급인사들의 평양 방문을 통해 북한의 적의와 불신을 해소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1994년 10월 지리노프스키 민주당 당수, 1995년 4월 파노프 외무차관, 1996년 4월 이크나텐코 부총리 등의 방북은 북한을 포용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복구하려는 러시아측의 노력을 반영한 것이었다.
통해 북한의 반발력을 이완시키기 위한 외교적 노력에 심혈을 기울였고, 평양을 자극하는 행위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북한 ‘달래기’ 작업을 서둘렀다. 1994년 9월(20-24) 평양을 방문한 파노프 외무차관은 옐친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여 김정일 정권의 지지를 표명하였고, 단절된 양국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외교 3원칙 즉, “상호존중, 내정불간섭, 국가발전노선 선택의 자유”를 제시하여 교착국면의 출구를 찾고자 하였다. (“Визит российского дппломата открывает новые перспективы в отношениях Москвы и Пхеньяна,” 『ИТАР-ТАСС』 3 октября 1994).
그러나 북한의 반러화를 방지하기 위한 모스크바의 지난한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이 시기 러․북관계는 정체상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경제분야에서의 양국간 교류가 꾸준히 모색되었으나 그것도 실물분야가 아닌 주로 다양한 명칭의 의정서, 협정서, 합의서 체결 따위의 외교적 수사(修辭)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북한은 과거의 앙금에 사로잡혀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을 풀지 않았다. 1995년 한국을 의식한 러․북우호조약 ‘사문화’ 언급, 1996년 러시아산 무기의 경협차관 상환 북한은 러시아 군사장비의 한국 제공에 대해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북한은 러시아의 군사장비 반출이 “한반도에 붙은 불에 키질하는 격의 무모한 처사로서 전체 조선인민의 커다란 분노를 촉발시키고 있는 2중의 범죄행위”이며 “전쟁 도발을 부추기는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행위”임으로 “조선반도 분열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나라”인 러시아는 그 “후과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력하게 비난하였다(강원식, 1999: 260).
, 한․러 군사협력 강화 등을 목도하면서 여전히 러시아 외교의 친남한적 정향에 깊은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3) 남북한 등거리 노선기: 1997 – 1999
한국과의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단절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여 한반도에서의 전통적 기득권 회복을 목표했던 ‘친남포북 노선’은 크레믈린 지도부의 의도와 달리 러시아 외교의 취약성을 보상해 주지 못했고, 오히려 남과 북 모두에서의 ‘따돌림’이라는 정치적 고립감의 심화로 나타났다. 러시아의 적극적인 관계개선 요청에 북한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러시아 외교의 친남한적 배신행위에 대한 보복으로 한반도 평화회담 참여를 거부했으며 중국의 품안에서 미국과의 관계개선에만 몰두하였다.
한국도 냉전의 패배자로 인식하고 러시아를 여전히 무시하였다. 한반도 4자 회담에서 러시아를 배제하는데 앞장섰고, 한반도 6자 회담 개최요구를 묵살하였으며, 러시아가 희망했던 북한 KEDO 사업에의 참여마저 봉쇄했다. 뿐만 아니라 경협 자금의 상환을 독촉하면서 러시아의 대국적 자존심에 손상을 가했으며, 견고한 한․미 동맹체제의 결집력을 이완시켜 그사이를 헤집고 틈입할 공간도 없었다. 기대했던 한국 무기시장 공략은 미국의 방해로 번번이 좌절되었다. 그 결과 러시아는 경제이익 손실은 물론이고 한반도 세력방정식의 능동적 ‘주체’에서 피동적 ‘관객’으로 전락하는 심각한 지정학적 소외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재차 한반도의 중요한 이해당사국으로서 러시아의 역할과 권위를 보장해주는 새로운 외교전략이 요청되었는데, 이는 이른바 ‘남북한 등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