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한국원폭피해자 특별법 제정_2005.4.12

한국원폭피해자와 원폭2세환우의 진상규명 및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관련 기자회견

1. 일본 제국주의의 광기 어린 침략과 가공할 착취가 막을 내린지도 어언 60년 그러나 아직도 이 땅에는 60년 전 역사가 남긴 고통의 굴레와 소외의 빙벽에 갇혀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1945년 8월 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연이어 투하된 원자폭탄은 대량인명살상이라는 엄청난 재앙을 인류 역사에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생존자들과 그 후손들에게까지 결코 씻기지 않는 고통을 안겨주었다. 일제의 강제연행에 의한 인간수탈로 삶의 터전을 상실하고 뜻하지 않은 원폭피폭의 상흔을 입은 것도 모자라 일본정부와 한국정부로부터 철저하게 방치된 채 살아온 ‘한국인 원폭 피해자’ 는 국가차원의 진상규명과 지원 대책이 전무한 가운데 지금도 ‘대를 이어’ 고통을 강요받고 있다.

2. 지난 2005년 2월 국가인권위원회는「원폭피해자 2세의 기초현황과 건강실태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이 조사는 2003년 8월 한 원폭 2세 환우가 원폭2세 환자들의 건강권과 생존권 보장을 한국정부에 요구하는 진정서를 인권위에 제출한 이후, 정책 권고 마련을 위한 기초조사의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번에 공식발표한 인권위의 조사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질병이환상태를 살펴본 결과, 원폭피해자 1세의 경우 일반인에 비해 우울증이 93배, 암이 70배, 빈혈 52배, 정신분열증은 36배의 격차를 보여 이들의 질병발생 위험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원폭피해자 2세의 경우 조사대상자 중 7.3%가 이미 사망 하였고, 사망연령은 10세미만이 52.2%로 가장 많았으며 사망원인으로는 원인불명이거나 미상인 경우가 과반수이상을 차지하였다. 또한, 원폭피해자 2세는 일반인에 비해 빈혈 88배, 심근경색·협심증 81배, 우울증 65배, 천식 26배, 정신분열증 23배 등으로 원폭 1세와 마찬가지로 질병발생의 위험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3. 이와 같이, 원폭피해자들은 현재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는 현재까지 정책 권고와 관련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며, 이러한 태도는 보건복지부도 마찬가지이다. 보건복지부는 원폭피해자 2세의 경우 원폭에 의한 유전문제가 규명되지 않는 한 정부차원의 지원대책마련은 현재로서는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어, 일본 후생성의 입장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원폭피해자들은 고령이며, 갖은 병고와 가난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등 원폭으로 인한 직·간접적인 피해가 대를 이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정부는 문제의 심각성과 시급성 차원에서 원폭피해자에 대한 국가차원의 진상규명과 지원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60년 동안 외면해 온 한국정부가 원폭피해자문제를 끝까지 외면한다면 이것은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기본적인 책임의 방기이며 이는 명백한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인 것이다.

4. 지난 1월 20일에 공개된 정부 문서인『한국인 원폭 피해자 구호 1974』는 한국인 원폭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한국정부가 얼마나 기만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서에 따르면 1974년 당시 한국정부가 '한국원폭피해자원호협회'에 등록된 원폭피해자1세를 9,362명으로 공식파악하고 있었으며 그 외 공개하지 않은 원폭피해자1세까지 추정하면 약 2만여명, 그리고 원폭피해자 2세 자녀까지 포함하면 '상당한 수'가 한국에 살고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 보건사회부는 한국인 원폭피해자 1세와 2세들이 직면하고 있는 건강상의 문제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즉 ‘원폭피해자의 병상은 특수하여 외상뿐만 아니라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여러 가지 병발증을 포함하고 있어 특수치료가 필요’하며 ‘이 병은 유전성이 있어 피폭자들의 후손에 대한 건강관리도 크게 우려되고 있다’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이들 피폭자(1세,2세)에 대한 치료와 재활대책이 시급하나 일본에 파견 치료함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어 국내에 이들을(원폭피해자1세,2세) 위한 현대적 치료센터 및 재활원 설립이 요망된다’라고 하여 한국인 원폭피해자1세와 2세들에 대한 치료와 재활을 위한 400병상 규모의 국립원폭전문병원을 설립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5. 1974년 당시 보건사회부는 한국인 원폭피해자1세와 2세들이 시급하게 ‘의료원호’를 정부차원에서 실시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더 나아가 ‘한국인 피폭자의 대부분이 장기요양 치료가 불가피한 상태로 생계비 부담 능력이 없어 이들에 대한 자활의 길을 터주는 것이 시급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한국정부는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의료지원 및 생계지원 등 제반의 지원대책을 마련하지 않았고 무대책으로 일관하여,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이 지금까지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갖가지 질병과 빈곤으로 고통 받으며 인권이 유린된 삶을 살아가도록 ‘강요’하여 왔던 것이다. 이것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도록 규정한 헌법정신을 위배하는 행위일 뿐더러, 원폭피해자에 대한 한국정부의 무대책 방침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기만적인 정책인지를 이번에 공개된 정부 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6. 이에 우리는 한국정부가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실태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제반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원폭피해자를 상대로 한 국가 권력의 횡포일 뿐더러 명백한 직무유기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또한, 지난, 1965년 한일 협정당시 일본군위안부, 원폭피해자, 사할린 동포 문제가 제외되었음이 공식 확인되었고, 이에 따라 한국정부는 진상규명 작업 등 적절한 구제조치를 마련하고 일본 측에 도의적 책임을 묻겠다고 천명한 이상, 원폭피해자 문제는 정부가 직접 나서 이들의 인권보장과 명예회복을 반드시 실천하여야 한다. 오늘 우리는 원폭피해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과 제반의 지원대책을 마련할 것을 한국정부에 강력히 요구하며, 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골자로 하는 국회 청원을 시작으로, 원폭피해자들과 후손들의 훼손된 명예가 회복되는 그 날까지 지속적인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을 선언하는 바이다.

2005년 4월 12일

한국원폭피해자협회,원폭2세환우문제해결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건강세상네트워크,아시아평화인권연대,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한국교회여성연합회,한국원폭2세환우회,평화시민연대〕/나눔의집,일본군‘위안부’역사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한국정신대연구소, 한국청년연합회, 한벗장애인이동봉사대,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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