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귀순 (아시아평화인권연대 공동대표, 외국인노동자인권을 위한 모임 대표)
한국 민주화의 상징적인 장소 서울명동성당 들머리에 가면, 얇은 비닐천막을 두르고 가을과 겨울을, 그리고 다시 봄을 맞고 있는 이들이 있다. 우리와 국적과 피부색이 다른, 그러나 유창한 한국어에 김치를 좋아하는 이미 한국이 제2의 고향이 되어버린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17일부터 시작되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소위 ‘인간사냥’이로 불리는 정부의 미등록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과 강제추방에 반대하며, 110일째 노숙농성 중이다.
어려운 조건에서 열심히 일했던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정부의 정책에 공개적인 반발을 하고 나서게 된 것은 지난 10여년간 조삼모사했던 한국정부 외국인력정책의 결과이다. 40만명에 이르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으면서도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았는 정책, 전체 이주노동자의 80%를 미등록으로 전락시킨 정책, 재외공관 공무원조차 비자장사에 나선 형편없는 정책들 말이다.
가끔씩 관계 공무원들이 몰려나와 농성중인 이주노동자들을 한사람씩 잡아 보호소에 가두고는 의기양양해 하는 꼴을 보면서 한국정부를 그토록 속 좁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왜 한국은 얼마전 모든 미등록노동자의 합법화 조처를 발표한 영국처럼 할 수 없을까? 왜 비록 불법체류 상태였지만, 미국사회에 기여한 것을 인정하여 장기체류자들에게 합법적인 취업기회를 주는 미국처럼 할 수 없단 말인가?
애초 선별적인 합법화가 아니라 모든 미등록노동자들에게 합법취업의 기회를 주었다면 미등록노동자 문제도 해결하고 생색도 나서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정부는 미등록이주노동자들에게 폭넓은 합법취업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더불어 새롭게 한국취업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불법체류로 전락하지 않도록 입국비리근절과 공장 내의 인권침해근절 등의 조처를 제대로 취해나가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이 문제들의 근저에는 두 가지 편견이 존재한다. 하나는 이주노동자들이 가난한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혹은 국적이 다르기 때문에 차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편견이다. 지난 60~70년대 한국에서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했던 독일의 경우 이주노동자를 ‘손님’노동자로 불렀던 것, 독일인과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았던 것을 한번 떠올려 보았으면 한다. 또 하나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일하는 것(그것도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일)은 괜찮지만, 한국에 정착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소위 민족 운운하는 지극히 폐쇄적인 생각들이다.
한국사회가 이 편견들로부터 벗어나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를, 그리고 부디 명동성당에서 고단한 농성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좋은 봄소식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