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찾는 아이티 해법
구호는 강요가 아니라 연대다
[22호] 2010년 07월 12일 (월) 15:30:10 피에르 미슐레티 info@ilemonde.com
해마다 6~7월이면 홍수 등 자연재해에 시달려온 인도의 오리사주(州) 사람들은 2004년 쓰나미의 악몽을 잊을 수 없다. 이들은 지난 1월 12일 대지진을 겪고 아직도 재건 활동에 몸부림치는 아이티 사람에게 남다른 동병상련을 느낀다. 오리사주의 재건 경험은 지금 아이티에 인도적 대응과 재건 프로그램 방식에 시사점을 던진다.
오리사주 주도(州都)인 부바네스와르(인도 북동쪽). 매년 열리는 대규모 장인전의 진열대 사이를 수많은 커플이 오가면서 이 지역에서 생산된 온갖 천이며 사리를 구경하거나 산다. 1965년 창설된 비정부단체(NGO)인 ‘아난다 마르가’ 국제구호팀(Amurt) 로고 아래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아이티 사람들은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1)
어떻게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이 거대한 나라의 벵골만 지역민이 아이티 비극에 연민을 느낀 것일까? 이유는 두 지역이 한 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자연재해에 취약한 지역에 속해 있다는 점이다. 오리사주는 지난 수십 년간 2008년 아이티에 닥친 것과 같은 강력한 태풍 피해를 수차례 겪었다. 첫 번째 태풍은 1971년 10월 28일 600만 명에게 피해를 입혀 6천 명의 희생자를 냈다. 두 번째는 1999년 10월 29일 1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구호 인력인가 점령군인가?
2004년에는 쓰나미 강타로 희생자가 1만6천 명 발생했지만, 인도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현장 방문을 포함해 외부 원조를 일절 거부했다. 그전인 1999년에도 ‘국경없는의사회’(MSF)는 물자 30t을 실은 비행기를 부바네스와르 공항에 착륙시키기 위해 인도 당국과 치열한 협상을 벌여야 했다. 인도 당국은 부바네스와르 공항이 공식적으로 국제선을 수용할 수 없는 여건이라는 핑계를 댔다. 그러나 일단 착륙하고 나자 MSF 구호팀은 물자 보급 지원 체계를 조직하는 데 며칠을 지체했다. 이런 늑장에 지역 언론은 동요했다. 이 나라에서 인도주의 원조에 대한 여론은 그다지 좋지 않다.
▲ <포르토프랭스>, 2001-클라브 디즈 슬루반
지난 1월 12일 아이티를 강타한 지진 후 국제사회는 신속하게 대응했지만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2) 아이티 정부의 무기력, 미국의 헤게모니와 국가로서 아이티의 주권 상실감, 때로 효과적인 긴급 구호를 뒷전으로 밀어놓을 정도로 우위를 점한 외국 군대 개입(바로 미국), 군대 세력에 기댄 일부 비정부단체의 보란 듯 과시하는 행태 등 문제가 많았다. 심지어 앞뒤 재지 않고 즉각 행하는 외과 수술도 문제가 되었다.(3)
프랑스는 이전 쓰나미 때처럼 언론과 자선단체 간 공모 관계가 재생산되었다. 이번에는 이 둘을 잇는 ‘온정주의 프로토콜’을 더 강화하고, 그 값으로 모든 TV 채널에서는 더 이상 추하고 불경할 수 없을 정도로 희생자의 주검을 대대적으로 전시했다.
성격은 다르지만 아이티의 지진과 쓰나미는 엄청난 파괴성을 지닌 자연현상이라는 점 말고도 ‘내부’와 ‘외부’가 모순관계에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아시아에서 일어난 쓰나미는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의 희생으로 국제적 반향으로 확대되었다. 카리브의 작은 섬에서 일어난 지진이 국제적으로 큰 이슈가 된 것은 방대한 규모의 국제사회와 인도주의 단체의 지원(4), 또 북미와 유럽에 거주하는 적잖은 아이티 이민자 수 때문이었다. 여기에 프랑스의 경우 아이티와 맺은 문화 및 역사적 관계, 또 프랑스 섬인 앙티이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가 더해진다.
서구 모델, 공동체 강화는 뒷전
그러나 효과성과 긴급성이라는 명분하에 암묵적으로 용인된 인도적 차원의 개입 이후, 이제는 또 다른 형태의 개입인 정치와 경제 개입, 또 재건 과정에서 미국의 독단적 지배가 횡행하는 꼴을 보게 될까? 국제기구에서 이런 구태의연한 모델을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원조를 고안해낼 수 있을까? 서구 국가에서 고안된 ‘모델’이란 자금조달(5), 기구를 통한 조직화, 또 서구 국가의 기준에 따른 작업 방식이다.
보건 문제는 즉각적 대응(프랑스의 응급처치 시스템인 ‘사뮤’ 같은 종류)과 함께 파괴된 보건 시설 등을 재건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인구의 78%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나라의 지역 공동체를 강화하는 문제는 뒷전이다. 한 국가의 총체적 재건 문제도 마찬가지다. 흔히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내는 방식을 통해 수십억 유로 규모로 투입된 돈이 ‘서서히 스며들어’ 최하층민에게 도달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2004년부터 재정 원조를 실시하고 ‘유엔 아이티 안정화군’(Minustah)을 대대적으로 배치했지만 아이티 국민 대다수의 삶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NGO들은 열강의 위장 정찰병
지구 반대편 ‘인도의 자원건강연합’(VHAI·Voluntary Health Association of India) 책임자 말은 명확하다. “아이티의 위기 상황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다르게 영향을 미칩니다. 불행히도 피해자 계층별로 특정한 필요성을 충족시켜줄 만한 원조는 거의 고민도 실행도 하지 않습니다. 지진 피해자에 대한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조사가 전무한 실정입니다. 지원단체는 수혜 대상이 정말 원조를 필요로 하는지, 그 효과가 어떠할지 제대로 평가하거나 보고한 적이 없습니다.”
현재 실행 중인 원조의 도식은 신뢰성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국제 정세 변화에 뒤떨어진 도식은 시대에 맞춰 변해야 한다. 풍자적이고 위험한 문화주의에 빠지지 않고 ‘탈서구화’해 현재의 독점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 이것은 서구 열강의 이해 논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서구 열강의 이해관계 속에서 비정부단체는 정부의 위장 정찰병이나 청소부 노릇을 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 지속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비’정부성을 재확인해야 한다. 이는 배반이나 가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역민과 다양한 배경의 국제연대 활동가, 또 이들의 노하우가 자유롭게 화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함께할 파트너와 지지자, 인적·재정적·기술적 자원을 찾아야 한다. 인도, 남아프리카, 브라질, 그 외 여러 나라는 그런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인도 재건의 두 축, ‘예방’과 ‘자생’
1999년 태풍 최대 피해 지역 중 하나인 야가츠싱푸르 지역은 인도 비정부단체에 재건 과정을 맡겼다. 일단 (지역 당국의 심각한 능력 부족에 따른) 긴급 상황을 넘기자, 비정부단체의 재건 작업은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바로 예방과 자생적 재원 강화였다.
우선 ‘예방’과 관련해 마을 공동체 전체가 재난에 대비하고 조직을 정비하는 데 역점을 뒀다. 즉 마을 주민이 일기예보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교육하고, 가정마다 식수와 식량을 비축하도록 했다. 가족별로 행정과 법적 중요 서류는 따로 잘 보관하도록 했고, 상처 부위가 감염되지 않도록 1차 응급처치 약상자를 배포했다. 정기적으로 임신부와 아이 인구를 조사해 비상시 우선적으로 대피시키도록 준비했다. 또 마을 주민 전체를 모아 안전한 시설로 대피시키기 위해 구역별로 집결 단위를 조직했다. 안전시설은 1999년 이후 건설된 것인데 심각한 비상사태 때 임시 대피소 또는 피난처 역할을 한다.
‘자생적 재원 강화’는 신용도를 높이고, 작은 규모의 기업 또는 장인 생산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생산품 판로를 개척하는 전략도 세웠다. 극심한 자연재해를 입은 마을이 재난에 대응하고 재생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자립 기반 강화와 사회·경제적 요소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한 모델이다.
인도자원건강연합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프로그램의 전제 조건은 지역 공동체의 실질적 참여입니다. 그러나 자급자족을 위한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재난 대응 시나리오는 항상 구호물자를 싣고 현장을 달려가는 인도 지원단체를 앞세웁니다. 이 단체들은 시간에 쫓겨 일을 진행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우선시 여기는 당면 과제와 조직적 구속만 보게 되지요. 대부분 지역의 능력과 자원은 무시되기 일쑤고 외부로부터 오는 서비스로 대체되지요.”
누가 주인인지 먼저 생각하라
가장 먼저 필요한 연대는 가족, 이웃, 지역 책임자에게서 오는 아낌없는 근접 원조라는 것을 확인하면, 실제 행동은 다음 세 방향으로 귀결된다. 재난 피해 지역민을 단순히 희생자로 도식화하는 논리를 깨고, 아무리 궁핍해도 이들의 중요한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다. 법치국가 자리를 인정해주고 반정부가 아닌 비정부단체답게 처신한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도식화된 틀에 갇힌 원조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방식과 새로운 지지 세력을 찾는다. 전세계 언론에 비친 기존 인도주의적 원조와 군사 개입은 복잡다단한 문제 때문에 인도와 같은 수많은 나라에서 점점 부정적 여론을 낳는 듯하다.
국제 NGO들이 새로운 국제 역학관계 현실에 적응하는 지혜를 갖게 될까? 또 자기중심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인식할 수 있을까? NGO들이 이런 질문에 어떤 답을 내리는지에 따라 장기적으로 미래 활동과 효과의 역동성이 결정될 것이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아이티에서도 하나의 의문이 제기됐다. ‘과연 NGO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한 나라를 그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신념을 갖고 처신하는 것일까?’
글•피에르 미슐레티 Pierre Micheletti
그르노블 정치대학(IEP) 교수며 세계의사회(Médecins du monde) 프랑스 지부 회장. 저서로, <인도주의: 변화에 적응하거나 포기하거나>(Humanitaire: s‘adapter ou renoncer, Marabout·2008) 등이 있다.
번역•박지현 sophile@gmail.com
<각주>
(1) The People of Haiti needs your help.
(2) 크리스토프 와르그니, ‘아이티 대지진, 강요된 재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2월호 참조.
(3) 2010년 1월 30일자 <르몽드>에 실린 아닉 코제앙의 글 ‘아이티에서 절단 딜레마에 빠진 의사들’.
(4) 유엔아이티안정화군(Minustach)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1542 결의안에 의거해 2004년 파견되었다. 브라질군 지휘 아래 18개국에서 온 군 7천 명과 민간인 2천 명으로 구성되었다. 지진 후 3500명이 증파됐다.
(5) ‘지구촌 인도주의적 원조’(GHA·Global Humanitarian Assistance)에서 2009년 2월 발간한 보고서인 `NGO를 통한 재난의 공적 지원’(Public support for humanitarian crises through NGOs) 참조. 이 보고서에서는 국제 인도주의 원조의 긴급 조처에 대한 재원이 어디서 나오는지 밝히고 있다. GHA는 19개 최대 자선 NGO의 114개 사무소의 재원 정보를 분류했다. 이 NGO들은 모두 개발원조위원회 소속 국가, 즉 서구 국가 소속이었다. 이들의 사설 기금은 전세계 NGO 전체 사설 기금의 75~80%를 차지한다.
www.globalhumanitarianassistance.org.
[르몽드 디플로마티끄 2010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