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파키스탄 노동자 4년여 중노동 월급 송금
'불법체류' 치료 못받아 네가족 두고 '불귀의 객
의료사각지대에서 치료시기를 놓쳐 생명이 위독했던 외국인 노동자(13일자 본보 27면에 보도)가 입원 3일만에 숨져 끝내 '코리안드림'을 이루지 못했다.
파키스탄인 무하마드 아시라프(26)씨는 15일 오후 2시45분께 부산의료원 응급실에서 '속립성 결핵'이 급속히 악화돼 뇌와 폐가 크게 손상되면서 호흡곤란에 의한 심부전증으로 숨졌다.
부산의료원 내과 담당의 박찬호씨는 '속립성 결핵은 한국사람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병으로 과도한 육체적.정신적 피로에다 영양상태가 크게 결핍됐을 경우 결핵이 침투해 급속도로 퍼지는데 아시라프 씨의 건강상태가 그 정도로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시라프 씨는 지난 97년 1월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들어와 부산 사상공단 내 한 회사에서 성실하게 일했다.아시라프 씨는 지난해 초 3년 간의 연수기간이 끝났지만 고국의 식구들에게 좀더 많은 돈을 송금하기 위해 귀국하지 않아 불법체류자로 전락했다.
이 바람에 아시라프 씨는 아무런 의료혜택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지난해 10월부터 팔이 몹시 저리고 아팠으나 불법 체류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참고 지냈다.그러나 하루 2교대 12시간씩 중노동을 하며 통증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악화되자 지난 1월 '부산외국인노동자를 위한 모임'(대표 정귀순)에 도움을 요청,뒤늦게 부산의료원을 찾게 됐다.
그러나 그 땐 이미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악화돼 뼈가 썩어 들어가고 속립성 결핵까지 앓고 있어 생명이 위독하다는 진단을 받았다.불법 체류자란 멍에 때문에 치료를 미루다 지난 12일에야 입원했던 아시라프 씨는 끝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국만리에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아시라프 씨는 고국 파키스탄에서 스포츠용품회사에 다니며 월 200달러 정도 임금을 받았으나 아들 3명이 태어나 생활이 어려워지자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왔다.산업연수생으로서 받던 월급 55만원 가운데 매달 50만원을 가족들에게 송금했으며 불법 체류상태에서도 월급 70만원의 대부분을 송금하고 자신은 파키스탄 친구들과 함께 월세방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생활해 왔다.
정 대표는 '한국으로 온 뒤 태어난 막내아들 사진을 수첩에 넣고 다녔던 아시라프 씨는 지난 14일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모임에서 준 초콜릿마저 옆 병실 어린이에게 전해 줄 정도로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가족에 대한 정이 깊고 다정했다'고 회상했다.
부산외국인노동자를 위한 모임은 가장을 잃고 슬픔에 빠져 있을 아시라프 씨의 가족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민간차원에서 모금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2001.2.16 부산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