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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제목 : 1503 방문단 참가보고서 1,294 - 조회
- 작성자이름 : 아시아연대  2015/04/05 - 등록
- 다운로드 1 :   베트남 (이광수).pdf (344.71 KB), 10 :download

<방문단 참가 보고서>


하나, 학살과 사과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생각하다


                                                                                                                  이광수, 아시아평화인권연대 공동대표


베트남 중부 빈딘성에 있는 따이빈싸를 다녀왔다. 한국군에 의해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곳이다. 제가 공동대표로 있는 아시
아평화인권연대에서 이곳의 학교에 장학금과 컴퓨터, 정수시설 등을 지원하고 한국군이 자행한 빈안 학살 49주기 위령제에 참석하고 왔다. 베트남전에서 아버지와 남편을 잃은 가족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이에서 흘린 눈물과 사과하려 찾아온 원수를 환대해야 하는 그곳 인민들의 착잡한 마음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다.


빈딩성에 가면 김치를 만날 수 있다. 숙소인 큰 호텔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싶었는데, 우리와 사업 파트너인 이곳 인민위원회 부주석이 차린 초대 식사에서도 나왔다. 그러면서 “전쟁 때 한국군으로부터 많이 얻어먹었다.”고 했다. 베트남전 때 한국군이 통조림으로 가져 와 인민들과 나눠 먹을 때부터 그 곳에 널리 보급되었던 것이다. 그 때는 전쟁 중이었지만, 인민들과의 교류는 폭넓게 이루어졌다. 베트남전은 일부 시점을 제외하고는 전면전이 아니었다. 농사를 짓고, 학교를 다니며, 일상 생활을 하는 중에서 게릴라전 형태로 싸움이 벌어진 전쟁이었다. 그래서 한국군은 비록 용병이었지만, 베트남 인민들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전쟁 전술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선량한 인민들을 적대할 필요 없는 인간의 본성이리라. 누군들 전쟁에 참가하여 사람을 죽이고 싶겠는가? 그럼에도 전쟁의 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명령을 받았다. 이 마을 모든 사람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죽이라는 ... 그리고 비극이 시작되었다.  1966년 1월 23일부터 2월 26일까지 빈안사(Binh An)에서 남조선 군인이 15곳에서 무고한 1004명의 인민을 학살했다


힘없고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라 어쩔 수 없이 용병으로 왔지만, 그 나라 사람들과 굳이 사이를 나쁘게 할 이유가 없었음에도, 아니 그 동안 줄곧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음에도, 끝은 학살로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본래 그런 것이라고 한다 한들 쉬이 납득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잔악한 전술을 사용한 미국이 졌다. 물고기가 물을 배척하면 그 물고기는 죽을 수밖에 없다. 전쟁에 이기려면 진실과 인간 존중이 있어야 한다. 어쩌다 한국군은 양민 학살의 멍에를 진, 그들 참전 한국군 ... 운명이라 말할 수 있을까? 운명이라 한다면 너무 무책임 한 것일까? 혼란스럽고 머리가 어지럽다.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전쟁의 역사 안에서 가해자라고 규정되는 그 참전 군인들을 온전히 가해자라고만 규정할 수는 없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 또한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 무력 앞에서 저항할 수 없는 약한 인민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조국과 민족의 번영을 위해 전쟁터로 나아갔다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만들어진 비극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적어도 참전국으로 나선 한국 정부가 나서서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일이 일단락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더 우선인 것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당사자가 먼저 행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나서 역사학자를 비롯한 관계있는 일을 하는 시민들이 나서고, 그것이 이루어지면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양심적 시민 조직이 나서야 한다고 본다. 정부 혼자 해결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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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2015년 “베트남 청소년들에게 꿈날개를” 장학사업 방문단 참여 소감문


                                                                                                                 전진성, 아시아평화인권연대 운영위원


(박)숙경씨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진 것은 방문 3일째 되는 날 오후였다. 2015년 2월 26일 오후 따이빈사 인민위원회와 뜨어빙 중학교에 들러 교육용 컴퓨터 시설을 확인하고 나서 정해진 일정에 따라 빈안학살 49주년 위령제 장소에 들어서면서부터 분위기가 급변했다. 방금 전까지 마치 여고시절 봄소풍이라도 온 듯이 왁자지껄하던 그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납덩이처럼 무거운 침묵과 탄식의 시간이 찾아왔다. 때로는 우렁차고, 때로는 구슬픈 현지인들의 노랫가락도 그저 귓전을 스치고 지나갔으며 주변 사람들의 염려 섞인 시선 또한 불편할 뿐이었다.


대체 사람들의 노랫소리와 저 화환들, 타오르는 향로란 다 무어란 말인가? 내빈들의 열정적인 연설, 단상을 올라 향을 피우는 마을 사람들, 카메라의 찰칵이는 소리들은 과연 원혼들의 선잠을 깨워 기억하고도 싶지 않을 이 원한의 장소로 불러들일 수 있을까? 과연 이곳에서 그들의 패인 상처가 아물고 그들의 분노가 삭혀지며 더 이상 구천을 떠돌지 않고 안식할 수 있게 될 것인가? 과연 나 자신은 이곳에서 용서를 구해야할까 아니면 나 자신의 ‘치유’를 바래야할까? 과연 이 베트남 땅에 와서 그나마도 산 사람들과 화해하고 그들에게 아주 작은 도움이나마 베풀고 사라진 원혼들을 성심껏 기억하는 일로 나 자신도 오랜 마음의 짐을 벗었다고 할 수 있을까? 숙경씨는 말이 없다.


극심한 악연을 아름다운 인연으로 전환시킨다는 것, 상처를 부활의 계기로 삼는다는 것, 과거를 미래의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다는 것, 이는 분명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이 풍진 세상에서 그나마 우리가 단단히 쥐고 놓치지 말아야할 인간성의 징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엇이 바뀌랴. 고인들의 짓밟힌 과거가 어찌 바뀌랴. 나의 회한과 탄식이 어찌 그칠 수 있으랴. 내가 나의 강한 의지로 내 운명을, 심지어 그들의 운명까지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면 얼마나 속 시원할까? 하지만 이는 실로 어불성설이다. 내가 나를 속이지 않는 한 나는 결국 과거와 현재에서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어쩌면 이처럼 우리가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것, 어떤 불가능성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의 가장 기본적인 인간적 도리일 것이며, 바로 그러한 불편함을 통해 나는 아픔을 끊임없이 기억하게 될 것이다. “베트남의 청소년들에게 꿈날개”를 달아준다는 우리의 멋진 사명이 현지의 행정적인, 혹은 경제적인, 혹은 심성적인 벽에 부닥치고, 혹여 우리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탈선하고, 심지어는 안하느니만 못하게 되더라도, 실망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아니, 실망은 용인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우리의 사명은 ‘멋진’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 mission impossible(?) - 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우리가 만날 수 없는, 만나본 적도 없는 고인들과 해후하는 일이라면, 그분들께 뒤늦게, 때늦게 용서를 구하고, 그분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어설픈 노력이라도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실적’에 의해 판단될 수 없다. 가장 본질적인 것은 우리가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잊지 않고 있음을 토로하는 일이 사안의 본질이다.


위령제가 끝나고 그 장소를 떠나고 나서 숙경씨는 이내 쾌활함을 되찾았다. 당연한 일이다. 저녁햇살이 감도는 뀌년의 드넓은 백사장 앞에서 우리는 납덩이같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그저 천진한 백사장의 어린아이가 되었다. 우리의 ‘사업’에 대해, 그 근원적인 불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아무런 조급함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날 밤만큼은 충분히 쾌활할 수 있었다. 모처럼 아름다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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